방위산업과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
2023년 2월 28일
지난호에 실린 K-방위산업 비판에 이은 이 글은 방위산업과 각국의 군사활동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소인 기후위기를 조장한다고 설명한다.
자본은 기후위기마저 이윤 증식의 기회로 삼는다. 군수업체(무기 생산에 종사하는 기업)들도 그 중 하나다. 미국의 레이시온(Raytheon Technologies)은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행위와 수요가 변화함에 따라, 사업 기회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놨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 걸까? 우선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기상예측 제품,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비상대응 장비 등이 있을 것이다. 또, 기후 변화는 “가뭄과 홍수, 폭풍우” 등 기후 재난을 야기하고, 이는 “안보 우려”를 낳는다. “극단적인 기상 조건이 ‘파괴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고, 세계적인 기후 변화가 인도주의적 재앙과 정치적 폭력을 강화해 정부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군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란 얘기다.
“국내적으로 기후 변화의 영향은 재난 대응 능력을 압도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기후 변화는 인도주의적 재난을 야기하고 정치적 폭력을 유발하며 취약한 정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전 세계가 에너지 효율, 재생 에너지, 고효율 에너지 공급이 가장 중요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함에 따라 고객의 요구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로 인해 레이시온에 더 많은 사업 기회가 생길 것이다.”
1년이 넘게 지속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공급망 차질, 에너지 및 곡물가격 상승과 고물가를 야기했다. 하지만 전쟁이 불러온 인플레이션과 가스, 전기, 교통 등 공공요금 대란으로 대중이 고통받을 때, 군수산업체와 에너지 기업, 정유사들은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전쟁은 기후위기 주범으로 퇴출될 위기에 있던 석탄기업들에게도 심폐소생술을 해주었다.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 등이 폐쇄하기로 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경우가 늘었다. 치솟은 천연가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등유나 연탄 사용도 늘어나면서 석탄 가격과 탄소배출이 모두 증가하고 있다.
중국 역시 기후위기로 인해 쓰촨성에 닥친 가뭄으로 수력발전이 어려지면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논의 중이다. 한국 정부도 포스코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삼척석탄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5만 명의 요구를 가볍게 무시한 바 있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주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본가들에게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삼척 시민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권리 따위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현실이다. 대다수 국민의 생존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어야 할 정부조차 자본의 재산권을 운운하며 삶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것은 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본래 군사부문 온실가스 배출은 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각국의 배출량 보고를 ‘자율적’으로 맡기고 의무화하지 않아 사실상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2022년 국제적인 군사배출량 감시네트워크가 구성되어, 군사부문의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고, 군사부문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다.
‘지구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군사 활동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5% 정도를 차지한다. 이는 민간분야의 항공(1.9%), 해운(1.7%), 철도(0.4%), 송유관(0.3%)을 합친 것보다 많다. 영국 더함대학교와 랭커스터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펜타곤)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2017년에 내뿜은 탄소량만 5900만 톤에 달하며, 세계 47위에 해당한다. 2017년 펜타곤이 소비한 화석연료의 양이 스웨덴과 덴마크 전체가 사용하는 양보다도 많았던 것이다. 미국이 기후악당인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군사 활동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이유는 군용기, 함정, 전투차량 등 주요 무기와 장비가 대부분 다량의 화석연료로 기동되고, 연비도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투용 차량과 전투기의 연비는 일반 자동차의 각각 1/5, 1/50 수준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 F-35 전투기 20기를 추가 수입할 예정인데, 이 전투기의 1회 작전 임무 수행시에만 2만 7800kgCO2e(탄소발자국 총량;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를 배출한다. 이는 자동차 6천 대가 19.5km를 이동하는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다. 미국의 또 다른 전략폭격기인 B-52의 경우, 1시간 동안 사용하는 연료량이 한 대의 자동차가 7년 동안 사용하는 연료량에 해당한다.
이처럼 무기운용과 유지에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 소비가 동반되기 때문에 방위산업은 무기제조 업체와 더불어 화석연료 기업들에게도 엄청난 이윤확대의 기회가 된다. 탄소배출뿐 아니라, 무기 원료 추출과정에서 오염되는 수질과 토지까지 군사기구와 그 활동으로 인한 피해는 광범위하다.
2022년 가을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우크라이나 환경보호부 장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만 “3300만 톤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도로에 2년 동안 1600만 대의 자동차가 추가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이 수치는 산불 등 화재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저장소 공격 후 불타버린 석유량을 포함해 계산됐다. 또한,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490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분명 이 재앙적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멸종반란 우크라이나’도 성명을 통해 푸틴의 군대가 석탄, 석유, 가스 산업으로부터 자금과 연료를 공급받고 있고, 화석연료에 중독된 세계가 전쟁을 원하는 푸틴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 역시 뒤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전쟁이 지속되도록 부추길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 증가에도 일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 국가들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며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스웨덴과 핀란드 같은 중립국들까지 나토 가입과 군비 경쟁에 가담하도록 만들고 있다.
군수기업들과 각국 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중의 안전과 평화에 무관심하다. 한국 정부 역시 폴란드에 무기수출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자랑하기 바쁠 뿐, 전쟁 중단을 위한 행위는 전무하다. 설상가상 참전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난민 신청을 한 러시아인들의 호소조차 거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세계의 군사 활동들이 지속되거나 증가한다면, 탄소 배출량과 기후위기는 훨씬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전쟁과 무관한 가난한 나라의 취약계층부터 차례로 집을 잃고, 이들이 식량난과 가뭄, 홍수, 폭염 등으로 고통받는 동안에도 방위산업체와 에너지 기업들은 탐욕스럽게 배를 불릴 것이다.
2021년 한 해 세계 군사비는 2조 달러에 가까웠고, 2022년에는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세계 GDP의 약 2.5%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2015년에 체결된 파리기후협약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계 GDP의 1% 정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상당액은 그린워싱에 남용되고 있다.
올해 말, 세계 각국이 모여 제28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8)가 열린다.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화석연료 퇴출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비용 대책 등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시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예산이 없나? 그렇지 않다. 각국은 방위산업과 에너지기업들의 이윤을 보장하고, 특혜를 주면서 기후위기에는 투자하지 않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자본주의 체제 전환과 함께 가야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군비 지출 모두 세계 10위권에 속한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무기를 수입하고, 각국으로 많은 양의 무기를 수출하는 한국 정부 역시 탄소 배출과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전쟁 특수로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가져가는 에너지기업, 군수산업체로부터 이윤을 환수해 재생에너지 분야로의 에너지전환과 해당분야의 일자리 창출 등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모멘틈을 만들어, 국방비 역시 과감하게 삭감하고, 기후위기 대응과 공공복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무기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전쟁에 진정한 승자는 없다. 죽어가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파괴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한반도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우 리는 ‘전쟁 승리’가 아니라, 민중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참고 자료
- 오리, 「기후위기,전쟁의 원인이자 전쟁의 결과」, 전쟁없는 세상
- 이유진, 「한국의 ‘방위산업 올인’, 기후를 파괴한다」, 한겨레
- 정욱식, 「기후위기, 누구에겐 재앙으로 누구에겐 이윤으로」, 프레시안
- 정욱식, 「군사 활동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할까?」, 프레시안
- 조혜영, 「기후변화로 귀해진 에너지…기후위기 가속화 우려」, 한겨레
- 서유진, 「"러 전쟁으로 환경범죄 2000건…온실가스 3300만t 배출"」, 중앙일보
- Jeremy Schulman, 「Defense Contractor: Climate Change Could Create “Business Opportunities”」, Mother Jones
- Jeremy Schulman, 「Defense contractor: Climate change could create “business opportunities”」, Grist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