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는 떼돈 벌었는데, 난방비 인상은 불가피하다?
2023년 2월 27일
기후위기의 최전선
가뭄, 홍수, 더위, 추위 등 극한기후가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런 극한기후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위기의 최전선, 안전망 바깥에 있는 노동자, 노인, 도시빈민이다.
지난해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삼척·울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다. 대피 인원만 약 6,500명에 이르렀고, 피해액은 최소 1700억원에 달했다. 그해 여름 수도권 집중호우로는 16명이 사망·실종됐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참변을 겪어 많은 시민들이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훨씬 심각하다. 지난해 파키스탄에서는 1,700여 명이 홍수로 사망했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050년 기후 난민은 최대 1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기후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우리 삶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난방비 폭탄
올 겨울, 한국 사회에는 난방비 폭탄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도 길고 춥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 이상을 대출로 힘겹게 버티던 영세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은 높은 물가에 40% 인상된 난방비 폭탄을 떠안아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렸다.
영세 규모 점포들, 노약자나 반려동물이 있어 난방을 멈출 수 없는 가구들은 요금 인상에 직격타를 입었다. 농민들 역시 농작물 품질 유지를 위해 하루종일 난방기를 돌려야 해 난방비가 고스란히 적자로 쌓였다. 1년 사이 학교 가스비는 71%까지 늘어났으나, 서울시는 초등학교 운영비 예산에서 가스비와 냉난방비 인상분을 전액 삭감했고, 각 학교는 학생복지비를 줄여 난방비로 돌리기도 했다.
심지어 쪽방촌 거주자들은 노후 건물에 살아 난방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쪽방촌 주민들은 치 솟는 연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스와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찬물 샤워를 해야 하거나 핫팩으로 추위를 버티기도 한다.
이처럼 난방비 인상은 에너지 빈곤으로 인한 고통을 가중시킨다. 한데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에너지 복지 관련 예산을 500억원이나 삭감해버렸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난방비 지원을 차상위계층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밀었다. 상반기 공공요금 인상을 동결하고, 서울시 지하철 및 버스 요금 인상 역시 연기하겠다고 선회했다.
며칠 전 "폐를 끼치기 싫어" 월세와 공과금 한번 안 밀리던 40대 딸과 노모가 함께 숨진 사건은 난방비를 비롯한 공공요금 인상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을 증명하고 손에 쥐어지는 몇십만 원의 에너지 바우처는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차상위계층에서 제외되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아예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이에 반해, 최근 지난 연말 <한겨레>가 고용노동부의 월간 사업체노동력조사 자료(1인 이상 전사업체 대상)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9월 월평균 실질임금(정액급여+초과급여+특별급여)은 전체 임금노동자, 상용직, 임시일용직 모두 매달 전년 대비 감소했으며, 특히 저소득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고, 설상가상 대통령은 노조 때리기에 혈안이다.
- 📑실질임금 하락 : 지난 연말 <한겨레>가 고용노동부의 월간 사업체노동력조사 자료(1인 이상 전사업체 대상)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9월 월평 균 실질임금(정액급여+초과급여+특별급여)은 전체 임금노동자, 상용직, 임시일용직 모두 매달 전년 대비 감소했으며, 특히 임시일용직은 2.3%(4월)~3.5%(6월)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 자본의 이윤 독식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유가, 고물가로 서민들이 힘들어 할 때 5대 정유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누렸다. 에쓰오일의 작년 영업이익만 3조4081억원이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3조 9989억)과 현대오일뱅크(2조 7898억) 등 다른 정유사들도 줄줄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SK와 GS, 포스코 등의 민간발전사 역시 올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또, 한국가스공사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아 지역별로 소매 공급을 하는 민간 도시가스업체의 경우, 서울시의 지원으로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보장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국제가스가격이 올라 가스공사의 적자폭이 커져서 난방비를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래 한국가스공사가 관리해 대기업 발전사가 겨울철만 수요가 높은 가정용 난방비를 보전하게 하던 천연가스공급을 직수입으로 돌리면서 그 비용이 고스란히 가스공사의 적자가 됐고, 국민들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민간기업들은 단기계약으로 차익을 누리는 수급방식을 택하며 가스시장 전반의 불안정성을 높여왔다. 난방비의 원료인 천연가스의 경우 저장이 어려우며 가격변동폭이 큰 편이라 안정적인 장기계약이 중요한데, 역대 정부들의 민영화정책의 연장선으로 민간기업들이 천연가스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가스공사 역시 가스도매산업 전체를 관리하던 장기계약을 줄이고 단기계약을 늘리는 시장경쟁적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기업들이 요구하면 가스공사는 비싼 단기계약 물량을 구매해 기업들에게 싼값에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안정적 에너지수급을 위해서는 불합리한 가스공급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통제하고, 장기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막대한 영업이익을 누리고 있는 대기업들의 초과이윤을 환수해 가스공사의 적자를 보전하고, 서민들의 난방비 인상을 막아야 한다.
가스 직수입이 활성화되는 흐름도 중단되어야 한다. 가스공사의 가스 수급에 있어서는 공공성을 높이고, 민자발전소를 공영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방비와 개발·연구·투자 등의 명목으로 대기업 보조에 쓰이는 수십조 원의 정부 예산을 공공에너지 네트워크 구축과 공공복지 확대에 써야 한다. 가스의 공공성 강화와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에너지 전환(동시에,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는)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우리의 고통은 심화되는데, 정유사의 곳간은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와 서울시, 가스공사·한국전력 등 공기업들조차 이윤중심적 사고회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만 명의 시민들이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의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포스코는 영업권을 무기삼아 건설 중단을 거부했고,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에너지의 공공성을 지키는 싸움이 절실한 이유다.
4월 14일 세종으로!
난방비 문제의 즉각적 해결은 물론,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에너지를 상품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난방과 전기, 교통은 누구의 것인지 제기하고, 정부에게 대기업의 이윤 독식을 제한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지속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 교통, 수도는 필수 공공재이다. 자본에게는 더 많은 이윤 축적을 위한 수단이지만, 냉골에서 잠을 청하고 찬물로 씻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에너지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필수재인 에너지 이용이 누구에게나 보장될 때, 기후정의에도 한 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윤 추구만이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생과 고통을 감당하라는 강압에 맞서, 부자들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공항을 줄여도 모자랄 기후붕괴 앞에 국립공원을 해제하고, 갯벌을 없애고, 숲을 도려내어 전국 곳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미친 정 부. 기후재앙 앞에 난방비 폭탄으로 가난한 노동자민중들을 차가운 죽음으로 내모는 야만 정부. 오로지 자본가지배계급의 이윤을 위해 기후붕괴와 착취를 가속시키는 자본가정부는 우리의 정부가 될 수 없다.
지난해 9월 우리는 기후위기와 연동되어 있는 난방비 폭등과 같은 삶의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3만5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모여 "체제 전환"과 "기후정의"를 외쳤다.
더 이상 자본가지배계급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을 불태우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자본가정부를 멈추자. 생명과 존엄의 이름으로 학살과 착취를 중단시키자.
오는 4월 14일(금) 오후2, 세종에서 기후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전국에서 기후정의를 열망하는 이들이 세종시로 모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난방비를 포함한 에너지·기후 정의를 묻고, 기후정의를 향한 직접행동에 우리의 힘을 모을 때다.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