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 기사는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동동'의 2023년 1월호에 실렸다. 👉동동 구독하기
플랫폼C의 한 활동가를 통해서 알게 된 아나스 나짐은 지난 몇 년 동안 말레이시아 사회운동 진영에서 활동을 해온 좌파 활동가다. 지난 2022년 가을 말레 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아나스 나짐의 소개를 통해 말레이시아 사회운동가들과 만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사회운동의 경험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주 동안 야나스와 함께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래는 아나스와 나눈 말레이시아 사회운동에 관한 짧은 인터뷰이다.
동동 : 한국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사회운동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상황인데요. 그런 점에서 오늘 짧은 인터뷰가 양국 사회운동과 동아시아 민중들의 연대에 있어서 아주 뜻깊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말레이시아의 좌파 학생운동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요. 먼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나스 : 저는 현재 노팅엄대학 말레이시아 캠퍼스에 재학 중인 아나스 나짐이라고 합니다. 스물네 살이고요. Malaysia Muda(청년, 교육 활동을 하는 진보적 사회운동 단체)와 ADE라는 지식인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잠시 멜버른으로 유학을 다녀왔었는데요. 당시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말레이시안 진보주의자들(MPOZ)’이란 모임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동 : 국경을 넘나들면서 활동하셨군요!
아나스 : 네, 사회운동을 처음 접한 것은 멜버른의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 그리고 현지의 말레이시아 디아스포라 운동이었어요. 그리고 난민 문제도 접했죠. 많은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동동 : 다양하네요. 그럼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아나스 : 저는 탈정치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요. 저희 집은 전형적인 말레이시아 가정의 분위기였어요. 그런 곳에서 자라다가 201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마침 길거리에서 사진을 촬영(street photography)하는 취미를 갖게 됐어요.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제가 자란 중산층 사회 바깥의 모습들을 접했죠. 말레이시아에서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 사는지를 보여줘서 그게 저한테 충격으로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성노동자들, 홈리스, 이주노동자 등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면서 지금의 사회가 아주 많은 이들에게 문제적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2015년의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버니 샌더스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사람이 얘기했던 복지국가 같은 아이디어들이 제가 좌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였어요. 그러고 책 읽으면서 공부하다가 딱히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말레이시아 사회운동의 중심인 쿠알라룸푸르가 아닌 당시에 싱가포르 주변에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고 1년이 지나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유학하러 갔어요. 멜버른은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였죠. 그렇게 3년 동안 현지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다시 말레이시아에 돌아왔죠.
그 즈음 (미디어의 영향으로)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주장과 슬로건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사람이 얘기하던 정치적 아이디어들이 제가 좌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였어요.
당시에는 그냥 책을 읽으면서 공부할 뿐이지, 딱히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그때 저는 말레이시아 사회운동의 중심인 쿠알라룸푸르가 아니라, 싱가포르 주변에 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Melbourne)에 유학을 갔어요. 멜버른은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였죠. 그렇게 3년 동안 현지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오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동 : 말레이시아에 돌아와서 어떤 활동하셨나요?
아나스 : 멜버른에서 말레이시아 디아스포라 운동을 하다 보니 말레이시아에 돌아와서 적응하는 데에는 그렇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멜버른에서 활동하면서 말레이시아 활동가분들을 많이 알게 됐고, 제가 활동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말레이시아 진보주의자들(MPOZ)’을 통해 돌아와서 학생운동에 참여를 하게 됐어요. 그 때 참가했던 첫 행동이 말레이시아 공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동동 : 혹시 말레이시아 학생운동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아나스 : 말레이 공산당과 말레이시아 좌파는 말레이 계엄령 이후로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탄압적인 말레이시아 국가에 대항하는 반정부 운동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특히 1970년대에 말레이시아 학생운동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대학가에서 많은 조직을 했어요. 점거 농성, 그리고 수천 명이 참가하는 행진들이 일상이었죠. 그리고 그 운동의 흐름이 현재의 반정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죠. 당시에 활동했던 많은 분이 지금 말레이시아의 야당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이런 학생운동의 성장을 재제하기 위해 학생의 정치 운동 참여를 막는 UUCA(대학 법)법이 통과되면서 많은 학생 활동가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당시 학생운동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탄압이 점점 거세집니다.
이후로 말레이시아 반정부 운동은….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사회운동 진영에게는 좋은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환기가 다시 한번 찾아옵니다. 98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60년 이상을 장기집권한 여당의 총리인 마하티르 모하메드가 안와르 이브라힘 장관을 동성애와 부패 혐의로 해임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실세로 22년 간 독재 집권한 마하티르 총리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많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레포마시운동(개혁운동)이 촉발됐죠. 이 시기에 현대 야당들이 약진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 흐름이 2018년 선거에서 파카탄 하라판(희망동맹:말레이시아 개혁 진보 정당들의 연합체)의 승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말레이시아의 최장기 집권 보수정당)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죠. 하지만 이 정부는 장기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2년 후 무너졌고 이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전국은 락다운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정체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라완 운동(검은 깃발 운동: 2019년 정부의 미흡 한 코로나 19 대책에 반발해서 만들어진 운동, 청년 학생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됨)으로 이어졌어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전국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결국에는 당시 집권당의 무히딘 야신 총리의 임시 대행 정부를 사퇴시켰지만 검은 깃발 운동이 그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서 대응을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 왔죠. 야당들은 혼비백산인 상태이고, 세력이 약해진 사회운동도 현 상황에 대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죠. 지금은 사회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인 상황이라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동동 : 어떤 사회운동에서든 노동운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말레이시아에서의 노동운동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요?
아나스 : 노동운동이 계엄령 때 제일 타격을 크게 받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말레이시아의 독립 이전에 급진적인 노동조합운동이 활발했어요, 영국 식민 정부상대로 파업과 조합활동을 열심히 했었죠. 하지만 영국 식민 정부는 이를 당연히 부정적으로 보고 당시에는 많은 노동조합이 공산당과 연관이 있어서 계엄령이 터지고 탄압이 심해지면서 많은 노동운동가는 밀림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하면서 항쟁을 이어나갔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노동운동은 다시는 그런 급진성을 가지지는 못했어요.
계엄령 이후에도 노동조합들이 만들어졌지만, 독립적인 노동조합보다는 어용 노조의 성격이 강하죠. 아직까지도 파업을 벌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보기 힘든 광경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말레이시아인들은 노조라는 것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니면 노동조합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최근에 좌파적인 생각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수용이 되고 있어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미국이나 영국에서의 운동들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들이 희망적이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동동 : 말레이시아에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이 많은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환경에서 계속 활동을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아나스 : 많은 사람이 현 상황이 잘 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살기도 어렵고 임금인상도 거의 10년 동안 정체돼 있기도 하고요. 동남아시아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경제적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개발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변화가 어떤 것이야 하는지 등등.
그래서 저는 변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정확히 지금 정세가 어떤지 모르고 있으니 사회운동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사람들이 말레이시아인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같이 만나고, 놀고,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정치가 항상 대화 주제에 오릅니다. 사람들은 그저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죠. 하지만 저희는 대안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을 설득하고 더욱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같이 하자고 설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동 :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나스 :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비관적이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변화는 찾아옵니다. 다만 어떤 속도로 오는지는 우리한테 달린 것이죠. ✊
인터뷰 : 최연우
교열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