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도시의 수탈자에게
2023년 1월 2일
삶을 위해 투쟁했고, 투쟁이 곧 삶이었던 사람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만은 없었다. 한 장 한 장마다 그동안 애써 알려 하지 않았던 자리들의 숨겨진 기억들이 드러났다. 누군가를 짓밟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긴 쉽지만, 외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현실의 안정성은 거부하기 어렵다. 그동안 걸어 온 거리와 드나든 건물들 이면에 숨겨진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외면과 무관심을 부끄럽게 직시할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늦은 밤이 되면 노숙인들을 바깥으로 내쫓는 기차역, 잠시 몸을 누이기엔 너무나도 불편하게 “의자 위에 쓸모없이 달린 손잡이”(책161쪽),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단속’한다며 곳곳을 돌아다니는 보안요원들… 이런 식으로 노숙인의 자리를 빼앗아 우리 눈에서 안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평소엔 잘 알지 못했다. 여러 해 전 소방시설과 탈출로가 없어 고시원에서 화마에 사람들이 쓰러져 갔을 때에도, 지난여름 쏟아지는 폭우 속에 근처 반지하 방에 살던 서비스 노동자와 발달장애인 가족이 숨졌을 때에도, 잠깐의 충격과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쏟아지는 새로운 소식들 속에서 잊혀졌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몰리고 때론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은, 잊혀져선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어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도시의 가치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활 속에서 지역의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했던 사람들, 골목의 포차와 대로변의 노점으로 그 공간의 문화를 쌓아왔던 사람들은 도시가 기능하고 또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왔다. 인간으로서, 도시의 거주자로서 권리를 외쳐온 사람들에 의해 도시의 목소리는 조금이나마 더 다양성을 갖추었고, 민주주의의 경계는 미진하게나마 더 확장되어왔다.
이 책의 이야기가 슬프고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은, 용역의 노골적인 폭력과 공무원의 대답 없는 무시 속에서도 조금씩 희망의 길을 열어온 투쟁의 기록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2023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약 5조 7천억 원을 삭감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올가을에도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고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을 조직해 농성을 이어갔다.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조금씩 쌓아온 여러 해의 역사는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보증이 되어주고 있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개입 속에서 자본은 결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재생산하지 못한다고들 말한다. 도시라는 공공의 공간을 사적 이윤의 독점적 장으로 만드는 개발에 맞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늘 저항할 것이다. 비록 많은 시행착오에 부딪히는 운동일지라도 그러한 저항이 있는 한 국가와 자본은 결코 마음대로 공간을 주무르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투쟁 속에서 살아가며 삶 자체가 투쟁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을 비춘다. 싸움의 순간을 낭만화하지도, 혹은 회한과 아픔만으로 형상화하지도 않으면서, 생활을 위해 싸웠고 싸우며 생활했던 삶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형무소 바깥의 옥바라지 골목과 “주황색 천막, 노란 불빛, 음식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연기와 시원하게 땀 흘리는 소주병 같은 운치 있는 풍경”(책 232쪽)을 자랑하던 포장마차촌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지녔던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일한 사 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휘몰아치는 거센 싸움의 한가운데 서야 했을 때, 처음엔 낯설었을 투쟁의 시간이 가치 있었던 것은 함께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동료들이 있어서였다. 때로는 작은 승리로, 때로는 큰 패배로 끝난 싸움에서, 기억의 공간은 완전히 사라질지언정 더 나은 도시를 위해 행동을 이어갈 사람들의 운동은 남았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히 우리가 그동안 내면화했던 편견과 시혜의 시선을 조금씩 벗겨낼 수 있었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정책의 ‘자활’ 프로그램은 늘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가난을 증명하게 하면서,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정상성’의 범주 안으로 밀어 넣고자 애쓴다. 홈리스 사회나 쪽방촌에서 때로는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때로는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동료들의 정을 ‘비정상적’ 인간관계 취급하는 당국의 태도를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욕을 앗아가는 구조적 빈곤에 대해선 침묵하며 유일하게 남은 소중한 사람들까지 앗아가는 ‘복지’가 과연 ‘인간적’일까? 이 책은 가난을 ‘비정상’으로 대해왔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비정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는 우리 모두의 것
사회는 ‘정당한 권리’ 없이 도시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쫓아내려 하면서, 사람들이 공간을 ‘점거’하지 않으면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없이 물러났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 테지만,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지켜나가면서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함께 외칠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2012년 8월부터 1,842일 동안 싸운 농성장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오랜 농성은 장애와 빈곤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1,842일의 시간은 죽어간 사람들의 영정 사진이 늘어나는 아픔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작게나마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나간 시간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배제한 채 질주하는 지하철을 멈추는 장애인들의 투쟁도,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듯 살 것을 강요당한 현실 앞에서 존재를 선언하는 싸움이다.
당장은 빈곤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늘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짧은 계약 기간 동안 빌린 월세방에서, 누군가는 거리 한구석을 차지한 좌판에서 꿈을 키우는 공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이다. 그러나 그런 공간이 지저분해 보인다며 당사자와의 상의 없이 ‘질서’를 부과하려는 공권력, 공공의 공간을 사유화하여 이익을 창출하려는 자본, ‘공정’한 절차와 소유권 없이 ‘무임승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은 끊임없이 부당한 공격을 자행한다. 시민들이 소유와 무관하게 점유하며 생활하고 가꿔나가는 공간이 도시라면, 그 공간을 공권력의 것도 자본의 것도 아닌 시민 모두의 것으로 바꿔나갈 수는 없는 걸까. 우리가 점유해온 공간을 누군가가 빼앗아가려고 할 때, 그 공간을 점거하며 지켜내는 싸움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도시를 모두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차별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평등한 시민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저자가 그동안 재개발 속에 사라진 용산 참사의 흔적을 찾아 용산 다크투어 사업을 이어온 것은 죽어간 사람들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쓰러진 사람들이 마주해야 했던 차가운 배제의 논리가 용산정비창의 투기적 개발로 다시 새로운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는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책장을 덮으며, 같은 도시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을 지켜내고 더 나아가 도시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이다. 김윤영 활동가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산책』은 그 과정에서 빈곤에 대한 묵은 편견을 떨쳐내고,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되는 평등한 사람들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글 : 이재현
교열 : 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