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바로 여기에!
2022년 12월 13일
지난 11월 27일, 망원동에 위치한 플랫폼씨 공간에서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라는 제목의 월례포럼 행사가 열렸다. 충북 옥천에서 그저 가족의 생계를 위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부티탄화, 그리고 결혼 이주여성들의 투쟁을 듣고 보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한인정이 연사로 참여했다. 한인정은 이런 구술 인터뷰와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몇 달 전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 첫장을 열면 베트남어로 적힌 한 편의 편지가 등장한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독자는 못읽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부티탄화는 참가자들 앞에서 이 글을 베트남어로 낭독하고 싶다고 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낭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낭독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그가 어떤 절박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활동해왔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주여성들의 싸움이 시작되다
15분 가량의 짧은 발표에서 부티탄화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한국에 왔고, 지금껏 어떤 활동을 펼쳐왔는지 이야기했다.
이주여성들은 누구나 성공이나 행복한 결혼 생활 등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국에 온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온 그 순간부터 차별과 배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환상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고국과는 많이 다른 날씨, 낯선 음식과 풍경, 사람이 한국 생활 적응에 큰 어려움을 준다. 가뜩이나 새로운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적응'을 필요로 하는데 혈혈단신으로 머나먼 이국땅에 오는 이주여성들에게 아무런 지원 없는 결혼이주는 쉽지 않은 곤경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은 이주여성들이 ‘며느리'나, '엄마', '부인’이란 역할로 갈등적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수 없게 한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경험을 해도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조건은 심리적 곤경으로 내몬다.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의 모국이나 피부색, 종교 등에 갖는 몰인식은 무례한 말과 성희롱 등 부당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위 책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의 42.1%는 폭력을 경험한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통역이 되지 않고, 임시숙소는 너무나 열악해 신고를 포기하는 여성이 다수다.
한편에서는 이런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을 '시혜'와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주민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구조, 그들의 상황을 피상적으로 묘사하는 미디어, 실제 우리가 이주여성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주여성은 돈 몇 푼에 시집온 것이 아니다. ‘돈도 벌고 잘 살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부티탄화와 같은 '싸우는 이주여성들'이 무수한 편견과 차별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해온 이유는 그 때문이다. 2020년 1월, 옥천에 사는 이주여성들과 함께 ‘옥천군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든 것은 그러한 노력의 하나다. 협의회가 만들어지기 전, 이주민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기 위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친분을 쌓아왔다. 그런데 2019년 5월 중국과 베트남 출신 이주민 600여 명이 참석한 전북 익산시 행사에서 정헌율 시장이 다문화가정을 비하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 시장은 “생물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란 말도 있지 않냐. 똑똑하고 예쁜 애들(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막말을 내뱉었다.
이에 분노한 이주여성들은 페이스북과 맘카페에 이 사실을 알렸다. 수백 개 댓글이 달렸고, 비슷한 사례들을 공유하며 분노했다. 이주민들이 이런 편견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회가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가득했다. "사적인 공간을 넘어, 공적인 공간에서도 버젓이 혐오발언이 이어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익산에서의 사례지만 전국에 있는 이주여성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150명의 이주민, 시민단체 활동가, 시민들이 익산시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정헌율 시장의 망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 사건은 국내 이주여성들이 매우 보기드물게 집단적으로 투쟁한 사례로 기록됐다. 시위에 참여한 이주여성들은 “이렇게 모이면 뭔가 바뀌는구나”.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조직인 '다문화가족협의회'는 남성(이주여성 배우자)이 임원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주여성들은 다문화가족협의회 일원임에도 의결 사안에 참여할 수 없었다. 부티탄화는 이것이 이상하다고 문제제기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냥 '여성은 임원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했다. 더는 참지 않았고, 옥천이주여성협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옥천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조직이 생긴 것이다. 발대식에는 6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 했고, 지역언론에서도 크게 보도했다. 발대식에 참가한 이주여성들은 “크고 작은 차별대우가 많았지만 우린 살아 남았다"며, "앞으로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요구하고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옥천결혼이주여성협의회의 현재 회원수는 120여명이다.
정책 요구와 확장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실천도 있었다. 후보들에게 이주민 관련 공약이 없는 것에 실망한 이주여성들은 기자회견과 정책토론회를 준비했다. “옥천에는 이주여성 423명, 외국인노동자 301명, 계절노동자가 60명, 등록되지 않은 노동자를 포함하면 수천 명이 거주하고 있으나, 외국인 지원과 관련된 각종 조례에 이혼여성, 외국인 노동자, 계절노동자 대책은 없다. 이주노동자 산재사고가 계속되고, 이주민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으며, 폭력이 만연하다. 사고나 병이 생겼을 때 치료조차 대전, 청주 등으로 가야 겨우 받을 수 있다면 누가 옥천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삶을 살아가겠나?" 이처럼 이주여성들은 정치인들에게 이주민 관련 조례를 새로 제정하고, 이주민 지원센터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정책적 진전은 이주민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도록 도울 것이다.
부티탄화와 옥천이주여성협의회는 멈추지 않고 확장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인근 지역인 보은군과 영동군을 묶어 이주민협의회를 만들고, 전국단위 이주민협의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있다. 월례포럼이 열리기 2주 전인 11월 중순에는 사무실도 개소했다. “가족과 갈등이 생긴 이주여성들이 답답하고 힘들 때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안전하고, 춥지 않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사무실이 언제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든든한 공간이 되어줄 겁니다.” 이제는 이주여성들의 싸움에 음으로 양으로 힘을 보태는 가족들과 군민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옥천이주여성협의회 결성 후, 충청권의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멀리 제주도와 무안군, 울산시에서도 연락이 왔다. '우리도 협의회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의였다. 이처럼 옥천 이주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주여성이 많다.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도, 더 이상 참지 않고, 권리를 요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를 엄마, 며느리, 부인 자리에 넣지 말았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내가 필요해서 부른 것인데 왜 우리를 불쌍하게 보는 건가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활동들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이름으로 내가 잘 살고 싶어 단체 만든 거죠.”
이주민에게 한국어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하지만 이주민에게는 '모국'와 '모어'가 있으며, 한국에서 거주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다. 부티탄화 역시 귀화를 택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한국어 이름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탄화'의 뜻은 베트남어로 ‘꽃’이라고 한다.
부티탄화는 어느덧 한국 거주 13년차다. 옥천군에서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베트남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적 일손돕기 봉사를 하고, ‘옥천군이주여성협의회’ 회장으로서도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어 대화는 되지만 글쓰기를 어려워 하는 이주여성들에게 기초문법과 맞춤법 등 한글 쓰기를 가르쳐주고, 이주민과 관련한 통번역을 도맡기도 하면서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지역언론 기자로서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를 집필할 때 저자 한인정은 옥천신문의 기자였다. 기자로서 옥천 곳곳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기록하며 일한 그는 서울에서 온 ‘페미니스트’다. 이주여성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과 말을 담으려 했다. 물론 그에게도 이주민을 향한 편견이 있고, 또 이주민들에게도 일정한 편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주여성의 생각을 그대로를 기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구자로서의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구술' 서사의 힘을 포기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을 공부할 때 기존의 언어와 경험을 탈피해 새롭고 날것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사회적 맥락에 의해 굴절된 다양한 행위들을 구술 방식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책을 '베트남어로 된 서문'으로 시작한 것은 언어가 가진 권력, 낯선 것과 익숙함에 대한 재고의 의미였다. 낯선 베트남어를 듣는 순간 우리는 낯선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한국에 온 이주민 역시 한국이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곳,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다면적인 모습을 갖게 되지 않는가. 그런 경험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인정은 주로 "가난한 집의 맏딸"로 대표되는 이주여성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자국의 산업화와 맞물려, 고강도·장시간·저임금 노동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려 왔다고 말한다. 억압적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자 이주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체류권을 위해 1천만원이 넘는 고비용을 들여 이주노동을 선택할 수도 없던 여성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 밖에 없었다. 즉, 이주여성이 국제결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 때문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이 남반구 민중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 개발도상국의 적은 일자리, 열악한 노동조건, 불합리한 이주정책 때문인 것이다.
한인정은 옥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르면서도 같은’ 사람으로서의 연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일상을 함께 보내며 부티탄화와 더 가까워졌다. 취재원이 아 닌 ‘언니’라고 부르고 맥주 한잔도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됐다. 이주여성들과 이토록 가까워진 한인정은 주류 미디어의 흔한 서사를 거부한다. 그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통’이 아니"며, "고통을 용감하게 겪어낸 이주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이주여성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문제는 정작 이주민 당사자들이 이주민 정책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인정은 '부티탄화 언니'처럼 더 많은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들이나 정부기관에 ‘부탁’하는 게 아니라, 당당한 권리자로서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여성의 현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 사이의 결혼은 2000년대 이후 급증했다. 2006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결혼에는 상업적 국제결혼 중개업같은 인위적 요인이 작동하는데, ‘남성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체계 유지’가 국제결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될 것이다. 한국 국적의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지에 따라,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체류와 귀화 과정의 진행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결혼이민 비자는 세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다. 한데 결혼 이주여성이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이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혼을 원하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인 배우자에게 혼인을 끝낼 귀책사유’가 있고 이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인 배우자는 그 귀책사유로 위자료, 법적책임 등을 질수 있기 때문에 합의이혼을 꺼린다.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 체류와 이혼을 동시에 원할 경우, 재판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재판 절차를 모르고, 재판이혼의 결과 체류자격이 연장되지 않아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등록체류 신분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했다가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이주여성이 연간 약 1천명에 달하고, 원치 않게 한국을 떠나는 결혼 이주여성도 매년 56~79명 수준이다. 결혼 이주여성이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주민에게 매우 불리하게 적용되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
질의응답 시간에 적지 않은 질문들이 나왔다. 옥천이주여성협의회가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부티탄화는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고,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한국 사회에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 자체가 즐겁고, 이주여성들도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꾸준한 활동 덕분에 옥천이주여성협의회는 지자체의 표창과 '생산적 일손봉사 특별상' 등을 받기도 했다.
옥천이주여성협의회의 회원들은 6개국에서 왔다고 한다. 이들 역시 모국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통의 어려움은 이주여성 중 통역이 가능한 사람들의 무료통역으로 극복한다. 한데 이는 제한적인 해결책에 불과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주민들이 소통하기 어려운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각 언어별 통역가가 꼭 필요하다.
젠더와 소수자, 질적 연구방법론을 연구해온 이희영 교수(대구대 사회학과)는 <경계를 횡단하는 여성들: 분단과 이주의 생애사 연구>(푸른길)에서 여성들의 이주가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사회의 위계와 가족체제 그리고 계급, 계층적 조건을 배경으로 한다고 진단한다. 이 책에서 그는 1960년대 분단된 서독으로 이주했던 남한의 간호여성들과 90년대 이후 중국을 거쳐 남한과 유럽으로 이주한 북한 여성들의 생애 경험을 재구성해 분석한다. 이주는 단순한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구성의 과정 속에서 선택하게 되는 복합적인 집단적 활동, 즉 가난하고 억압적인 국가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함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주민을 포함한 난민의 존재는 그 자체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근대 주권의 허구성을 드러내며, ‘시민(국민)이 될 수 없는 인간들’을 끊임없이 정의하는 과정은 국가란 무엇인지를 묻고, 국가의 경계선 자체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AI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과 노동과정의 자동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오늘,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모국을 떠나는 이주민은 점증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찾고자 고향을 떠나는 모순 속에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노동이주의 시대, 주권의 허구성과 국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이주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주민이 겪는 차별과 혐오는 국민국가 내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적인 틀 안에서 이주민을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 경계짓고 타자화한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 역시 이런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라난다.
‘시혜’와 ‘동정’은 이주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될 수는 있지만, 그들을 우리와 같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니 시혜 역시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타자화하는 것에 그친다.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을 밝히고, 그들이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야 하는 이유다.
이날 월례포럼에서 한인정이 말하듯, 구조적 차별을 머리로 아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우리는 이주민들을 더 잘 알기 위해, 그들과 진정으로 맞닿아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응시해야 할 것 같아요".
이주민과 차별적 제도 때문에 본국으로 귀환한 이주민을 위해 관련 행정과 법률의 개선, 제도적 지원의 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를 넘어서고, 또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옥천 이주여성들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이번 월례포럼이 이주민들과의 연대로 나아가는 작은 시작이 되었길 희망한다. 😃
글 : 김지혜
교열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