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데자뷔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2022년 11월 16일
후진국형 사고?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길은 경사가 있는 좁은 골목으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될 수 밖에 없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긴 경사면, 양방향 통행 등은 압사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긴 경사면은 아래 쪽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강하게 만들고, 양방향 통행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힘의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골목은 참사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공연, 운동경기, 축제, 집회 등 대규모 행사는 우리 일상의 중요한 한 측면이며, 압사사고는 이런 대규모 밀집 행사에서 인파의 흐름을 관리하지 못했을 때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가까이는 2005년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MBC가요콘서트 행사에서 11명이 사망하고 162명이 다친 압사사고가 있었고, 이듬해인 2006년 서울 롯데월드 무료 개방행사에서도 35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있었다. 해외 사례도 적지 않다. 1989년 영국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96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고, 2010년 독일 러브 퍼레이드에서도 축제장으로 가기 위한 터널로 향하는 경사로에서 21명이 사망하는 압사사고가 발생했으며, 2021년 미국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에서도 1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후, ‘후진국형 사고’라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압사사고는 후진국형이라는 인식에는 ‘후진국은 선진국보다 무질서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당 국가의 군중 관리 역량과 시민의식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위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압사사고는 특정 국가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재난도 마찬가지지만, 압사사고는 특히 사전 예방 계획이 중요하다. 압사사고의 골든타임(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은 짧은데 비해, 현장에의 접근이 쉽지 않은 것 자체가 특징이기 때문이다. (압력으로 인한 호흡곤란은 바로 심정지로 이어지고, 심정지 발생 후 4분 내 CPR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참사 당일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인파를 관리할 사전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112전화로 위험 신고가 들어왔을 때 대응을 시작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압사’라는 말이 언급되거나 해당 위험이 언급된 신호가 참사 발생 전 11건 있었지만, 경찰은 이중 일부 신고에 대해서만 대처를 했다.
사전 계획의 부재와 112신고 대응의 실패, 이 각각의 책임 주체는 1차적으로 지자체와 경찰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용산구청과 서울시, 용산경찰서와 경찰청으로 향하게 되었다. 용산구청, 서울시가 책임의 한 라인을, 용산경찰서, 서울청, 경찰청, 행정안전부가 책임의 또 다른 라인으로 드러났다.
책임 전가와 희생양 찾기
사람들이 저 책임의 라인에 기대한 것은 ‘어떻게 했어야 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인력과 자원을 어디에 배치할지 판단하고 실행할 권한이 있는 이들이 제대로 된 답을 가져야, 이 다음이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위에서 언급된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너무나 빠르게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고,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 시작했다. 성찰은 없었다. 지자체와 경찰의 첫 번째 변명은 ‘주최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핼러윈 축제는 매뉴얼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 배치로 해결되었을 문제가 아니”라며 바로 책임을 회피했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가 있냐며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두 번째는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채 ‘밀어’라고 말했던 축제 참가자들을 수사하는 것이었다. 참사 이튿날부터 ‘밀어 밀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부각하는 언론 기사들이 쏟아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이 ‘고의’로 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 쟁점이라고 보도했으며, 과실치사상죄는 물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도 적용가능하다는 변호사의 멘트를 내보낸 언론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미는 것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깔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토끼 머리띠’ 남성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수사본부는 유튜브 등에서 가해자로 언급된 특정인을 또 다시 수사하는 등 책임을 축제 참가자로부터 찾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세 번째는 앞서 언급한 책임의 라인 중 가장 하층에 책임을 돌리는 시도다. 참사 3일 뒤, 압사 위험이 있다는 신고 전화가 참사 4시간 전부터 최소 11차례 걸려온 것이 발표되었다. 관련자들은 일제히 사과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스스로 신고전화 녹취록을 발표하면서, 고강도 감찰과 수사를 할 것을, 즉 112 신고 전화에 대응할 의무가 있었던 이태원 파출소의 일선 경찰들에게 집중적 으로 책임을 물을 것을 예고했다. 11월 9일에는 최일선에서 구조에 나선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정부나 언론의 입장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선도 여전하다. “젊은 것들이 외국 귀신 축제에 갔기 때문이다” 류의 피해자 비난이 인터넷 상에서는 여전하며, 왜 술 마시러 놀러 갔던 사람들에게 우리 세금으로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원해줘야 하냐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은 “언론이 괜찮다고 선전하니 여자들이 다 몰려갔다”는 정치인의 공적 발언으로 다시 발화된다.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
책임 회피와 책임 전가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경찰이 시민의 안전을 소홀히 하게 된 여러 원인들이 점차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책임이 더 상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정부 기조로 인해 마약 단속이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용산서의 업무 중심이 대통령 경호로 바뀌고, 일선 경찰들의 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경찰력을 집회 통제에 다수 배치하면서 이태원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정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국가는 없었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책임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많은 동료시민들을 잃은 데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과제 앞에, 어려움이 없지 않다. 우선 ‘정치적 책임’을 겉치레용 사과로만 끝낸 선례가 적지 않다. 탄핵된 전대통령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한 이후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다. 문재인 전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해 사과한 것은 전향적 조치였지만, 피해자들은 그 뒤로도 구체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위기 모면용 겉치레나 말로만 그치지 않는, 시민의 안전이 우선순위로 올라오는 사회로의 실질적 변화를 위한 약속과 구체적 계획이 포함된 사과가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왜곡하고, 맥락을 단순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어려움이다. 이 참사의 원인을 조사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를 정부여당은 정치화로 매도하고, 수사 결과만을 기다리라고 한다. 한편 야당 지지자들은 이를 쉽게 정쟁에 활용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나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일도 벌어졌다. 정쟁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제1목표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드러내는데 집중하다 참사 자체에 대한 논의는 상대화하기 쉽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재난을 둘러싼 복잡한 인과는 단순해지고, 몇몇 악당들의 책임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몇몇 고위 공직자들의 눈에 띄는 행위가 전적으로 이 참사의 원인이 된 관행과 조직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참사의 원인이 된 오랜 역사와 제도까지 살펴봐야 한다.
재난은 사회시스템의 실패이며, 이 실패를 통해 우리는 대중을 향해 천명된 원칙과 실제 운영되어 온 관행 사이의 커다란 괴리를 경험하게 된다. 정부에게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이 지역 구석구석 작동할 수 있도록 기초 지자체부터 중앙 정부까지의 역할을 법과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의 임무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며, ‘혼잡경비’는 경찰학 개론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혼잡경비’는 (한덕수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이념으로 인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집회에 주로 적용되었고, 기초 지자체의 안전 의무 역시 주최 측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부 축제에만 적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왜 국가의 기본적인 이념과 원칙은 구현되지 못하는가. 우리가 8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이태원 참사에서 다시 꺼내든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참사에 관한 국가 책임의 근본적 형태는 스스로 계속 선언해왔던,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구현되지 않았던 이 이념과 원칙을 구현해나가는 것이다. 재난도 반복되지만, 재난에 대해 국가 책임을 묻는 흐름도 반복된다. 데자뷔 같은 현실을 지금부터는 다르게 써 나갈 방안을 고민하자.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마지막 시간을 복원하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초석으로 삼자. 국가의 책임은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자의 공직 사퇴와 더불어, 축제와 자유와 양립하는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로 변할 때 완성된다고 말하자. 우리의 애도가 오랜 기간 쌓여온 잘못을 정정하는 근본적 변화로 연결되도록 힘을 모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