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람 최옥란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 최옥란은 2001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낮은 최저생계비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한 ‘첫 사람’이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청계천 변에서 노점을 하던 최옥란은 2000년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후 수급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최저생계비로 책정된 금액 약 28만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에 터무니없는 수준이었고, 이에 분노한 최옥란은 국무총리에게 생계비를 반납하고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숙농성을 전개했다.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기초법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한때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수급권을 반납하고 노점을 다시 시작하려고도 했는데,
한 번 반납한 노점자리를 다시 얻기란 불가능했습니다.
(…)
비록 지금은 저 혼자 텐트농성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 최옥란, 2001년 12월 명동성당 농성 결의 발언 中
👉출처 링크
2002년 3월, 미리 작성해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첫 사람 최옥란. 그로부터 스무해가 지난 지금, 턱없이 낮은 생계비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내린 싸움의 뿌리는 현재로 이어지며 더욱 넓고 단단해져 더 많은 이들이 수급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며 싸우고 있다.
2022년 수급가구 가계부 조사 결과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수급자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기준중위소득의 30%, 2022년 1인 가구 기준으로 약 58만원이다. 식료품비와 의복비뿐 아니라 통신비와 교통비 그리고 수도 광열비와 관리비를 비롯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출이 포함되어있는 금액이다.
중위소득은 전체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법에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에 필요한 비용을 급여로 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전체 국민 소득 중위값의 30%가 그것에 부합하는 금액일 리 없지만, 그렇게 정해져 있다.
더욱이 현재의 기준중위소득은 실제 통계자료에 나타나는 중위값과 격차가 크다. 2022년 1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 194만원은 3년 전 통계자료인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나는 1인 가구 소득의 중위값 254만원보다 60만원 낮다. 현실의 삶이 아니라 예산에 맞춰 낮게 결정되어 온 기준중위소득으로 인해 실제 수급자들은 중위값의 30%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한 달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생계비가 침해하고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를 당사자의 삶으로부터 드러내고 급여 현실화를 요구하기 위해,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간 전국에 있는 수급가구 25가구의 가계부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1인 가구의 외식비를 포함한 월평균 식비는 258,556원으로 하루 평균 8,618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금액은 고정지출에 사용되기에 부족한 식비를 충당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식료품값이 오르면 더 아껴 먹거나 굶거나 라면이나 무료급식을 이용했다. 가계부 조사 기간 두 달 동안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총 183끼가 나온다. 이중 A씨는 32번, B씨는 26번, C씨는 24번의 식사를 라면으로 해결했다. 라면 선택의 기준은 입맛에 맞는 제품이 아니라 1+1행사를 하거나 할인하는 가장 저렴한 제품이었다. D씨는 한번 장을 보는데 3만보를 넘게 걸었고 E씨 역시 필요한 식료품이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다. 해당 식품들은 흔히 이야기하는 가성비 제품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좋지 않은 제품들이었다.
부족한 급여는 건강한 식생활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 갑작스러운 의료비 지출이 부담되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반복하게 해 건강을 악화되게 만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냉난방 비용을 극도로 줄이고, 사람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지출이 부담되어 사회적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게 만들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만들어낸 현실은 수급자들의 총체적인 권리 박탈의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통하지만 또 새삼스럽지 않은 결과다. 4년 전인 2018년 가계부 조사 그리고 21년 전 최옥란이 작성했던 가계부에서 드러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은 현재 급여수준에 대해 “죽지 않고 생을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E씨는 부족한 급여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하는데 이것이 마치 “관 속에서 살고있는 느낌”이라며, 또 “그 금액에 맞게 살고있나 관속에 설치된 CCTV가 24시간을 감시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숫자가 아니라 삶에 주목해야
7월 1일 국회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의 한국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하루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오전에는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수급가구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글을 전시한 사진전 개막을 시작으로 최옥란열사 20주기 영상 상영회를 진행했다. 오후에는 수급신청 과정에서의 과도한 서류제출 요구를 비롯한 부양의무자기준 등의 문제에 대해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증언대회와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가 참석한 가운데 가계부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한 연구원은 이번 가계부조사에 나타나는 항목별 지출 분포가 기존에 정부가 실시한 조사결과와 비슷하게 나타났다며, “충실한 조사”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패널은 인상률 결정에 참고하는 통계지표 상의 수치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안심하라는 듯 이야기했다. 수급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숫자에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예산 증가를 동반하는 복지정책의 변화를 논의 결정하는 과정에서 숫자는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건 다 안다. 하지만 그 숫자에 천착해온 결과 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목적이 가려졌다. 2022년 기준중위소득이 3년 전 통계자료와 비교했을 때 60만원의 격차가 있음에도 ‘역대 최대 인상률’이라며 자찬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할 수 있는 것도, 하루 식비를 8,618원으로 살아가는 삶이 용인되는 것도, 결정권자들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숫자와 수치로 만들어진 좁은 세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계부 조사 결과는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 이례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물가의 영향이 컸다. 절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한 달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급격한 물가 인상은 당연히 거대한 영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하지만 언론들의 시각 역시 함정에 빠져 있었다. 물가가 지금처럼 급등하기 전에도 약간의 인상된 식료품은 포기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언론사 기자들은 급등한 물가 상황에서 위기를 더 깊게 만든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가난하여 힘든 상태를 증언해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짧게 붙을 해결책을 말할 기회는 소위 전문가들에게 돌아갈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발언 기회와 제도개선에 의견을 개진할 마이크를 빼앗긴 상태다. 가계부 조사를 진행하며 마지막으로 중생보위 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참여자들이 비슷한 답변을 했다. “내가 뭘 알아야지”, “나 같이 힘없고 무식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해”.
모든 문제의 답은 수치가 아니라 삶에 있다. 수급비 현실화 논의는 단순히 수치의 증가가 아니라,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 논의의 장에는 수급자 또는 수급자를 대변할 사람도 없거니와 회의록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내년 기중중위소득도 현실과 동떨어진 수준으로 결정될지 모른다. 이제 마이크가 다가가야 할 곳은 수급자들 앞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걸고 목소리 내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목소리를 주목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만큼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아래 최옥란 열사 20주기 영상 <첫사람, 최옥란>과 <2022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영상>을 꼭 함께 보길, 널리 공유해주길 부탁드린다. 🍀
글 :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