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는 수도 사업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97년, 다국적 기업인 영국 템스워터(Thames Water)와 프랑스 수에즈 리옹네즈 데 아우(Suez Lyonnaise des Eaux)에 자카르타의 상수도 운영권을 25년 동안 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영국·프랑스 기업은 22%의 수익을 보장받는 대신, 46%인 상수도 보급률을 2008년까지 75%, 계약 만료인 2023년까지 100%로 끌어올리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으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가 급락하며 자카르타 상수도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해당 기업들은 수도 설치비용을 기존의 10배나 청구하고, 수도요금은 2001년, 2003년, 2004년 30-40%씩 인상하면서도 투자에는 인색했다. 주민들은 물을 써야하는 곳이면 어디든 돈을 내야 했고, 가난한 지역일수록 상하수도 시설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생활 오수가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되었다. 깨끗했던 지하수도 하천 오염으로 식수 사용이 힘들어졌다.
결국 2006년 템스워터는 사업 지분 전체를, 수에즈는 절반을 인도네시아인 투자자에게 경영권을 넘겼으나, 자카르타시의 상수도 보급률은 2017년까지도 60% 수준을 넘지 못했다.
열악한 상하수도 시설과 물 부족의 역사는 1600년대까지 올라간다. 인도네시아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겪었다. 네덜란드인들은 본국으로 자카르타 지역의 물품을 운송하기 위해 운하를 팠다. 문제는 네덜란드인들이 운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운하는 오폐수가 뒤섞여 악취를 풍겼고, 질병의 온상이 되었다. 더러운 운하를 피해 네덜란드 지배층은 거주지를 내륙 깊숙이 옮겼다. 예전에는 생활용수를 운하에서 얻었지만 운하가 닿지 않은 지역으로 이전하고 보니 깨끗한 물 확보가 큰일이었기에, 곳곳에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파이프를 설치하여 해결했다.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던 자카르타 원주민에게 식수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오염되기 전까지 운하의 물을 사용했지만 물이 오염되면서 지하수를 멀리에서 가져오거나 우물을 파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1949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지만 특권층이 독점하던 상하수도 시스템은 여전히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혜였고, 절대 다수 주민은 우물을 깊이 파서 식수를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큰 투자없이 이윤만 남긴 다국적 업체들의 개입으로 자카르타의 물 관리 문제는 자카르타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인도네시아 민간 투자자에게 관리가 넘어간 후에도 큰 개선은 없었다.
자카르타 주민들과 인도네시아 부패 감시단(Indonesian Corruption Watch)은 자카르타의 국영 수도 회사인 팜 자야( PAM Jaya)와 다국적 기업 템스 워터, 수에즈를 부패 근절위원회 (KPK)에 고발해 관련된 부패 혐의를 밝혀 냈다. 이 부패 사건에 연루된 금액은 5610억 IDR(인도네시아 루피아) ( 4320만 달러, 약 400억)에 이 른다. 이 사건을 조사한 템포 매거진(Tempo Magazine)은 이 부패 사건과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기도 했다.
멜버른 대학의 헤니 쿠르니아시(Heni Kurniasih)는 세계 은행과 IMF가 팜 자야(PAM Jaya)에 수도 기반 시설 개선을 위한 9200만 달러(약 1200억)의 대출을 제공하는 대신 인도네시아 정부에 물 관리 사업을 민영화할 것을 요구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2015년 기사에 따르면 세계은행의 민간 부문인 국제금융공사는 1995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물과 위생 프로젝트를 위해 750억 달러(약 97조) 이상을 대출했다. 세계 최대 다국적 기업의 상당수는 전 세계의 물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다우 케미컬 컴퍼니의 CEO인 앤드류 리버리스(Andrew Liveris)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물은 21세기의 기름이다. 알리안츠 글로벌 투자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물시장은 2020년까지 12조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를 민영기업이 운영하는 것에 대한 주민 저항은 줄곧 있었지만 2011년에 결성된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자카르타 주민 연합(KMMSAJ)’ 의 활동으로 큰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2012년부터 몇 년 간 지속된 법정 공방 끝에 승소했다. 2017년 1월 대법원은 자카르타 주민 연합 (KMMSAJ)의 항소를 승인하고 민영 회사의 손을 들어줬던 고등법원의 2016년 판결을 무효화했다. 판결문에서 민영기업이 수도의 품질, 양 및 연속성 측면에서 물 공급 서비스를 개선하지 못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재무부가 다시 이의를 제기해 2018년 승소하는 등 물 관리를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었다.
2019 년 2 월 11 일 자카르타 주지사인 애니 바스웨단(Anies Baswedan)은 정부가 민간 기업으로부터 물 관리 사업을 인수 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정수,급수 등 일부는 기존 민간 업체에 계속 맡기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22년 3월 22일 자카르타 주민 연합은 자카르타 시청 앞에서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동을 개최했다. 그들은 자카르타 주지사 애니 바스웨단에게 다시 한번 물 관리 사업을 완전히 공영화할 것을 요구하며 항의했다.
주민들은 물 관리 주체의 전환 과정에 대중 참여를 보장할 것과 물 품질에 특히 영향을 받는 빈곤층 등 취약 계층의 권리 회복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UN의 세계 물 개발 보고서는 2030년까지 세계 인구의 40%가 물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유엔 사막화 방지 협약은 2025년이면 전 세계 인구 중 18억 명이 절대적 물 부족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필수 공공재인 물에 대한 권리는 이윤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이면 누 구나 누려야 하는 생존권이다. 자카르타 주민들은 그 권리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참고 자료
- 어설픈 민영화의 저주…인니 상수도 20년만에 재공영화 결정, 연합뉴스
- DAVID HUTT, Getting the water right, Southeastasia Globe
- Water Remunicipalization Tracker, Tap into Resilience
- 자카르타 시청에서 물 민영화를 거부하는 행동, 이로운넷
-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단비뉴스
글 : 김지혜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
교열 : 박근영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