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2022년 2월 7일
최근 몇 년, 한국 사회 청년의 암울한 현실이 반영된 신조어 ‘n포세대’나 ‘4B세대’ 같은 용어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두 단어가 지칭하는 현상은 보 편적인 삶의 궤도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가, 혹은 ‘적극적으로 거부하는가’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른 현상을 지칭한다. ‘4B’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단순히 ‘현상’이기보다는 ‘운동’에 가깝다.
n포세대에서 ‘n포’란 연애나 결혼, 출산, 취업, 내집마련, 건강·외모관리, 인간관계나 삶 등을 포기한 세대를 뜻한다. 4B세대에서 ‘B’는 한자 ‘非’의 음차로,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네 가지를 가리킨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젠더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성관계의 경우를 보자. 2021년 상반기 서울 거주 만 19세 이상 남녀 2천 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36%는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답했다. 성관계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여성은 4명 중 1명꼴(24%)로 “흥미가 없어서”라고 답했고, 남성은 “관심은 있지만,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15%)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2020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30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생각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하고 싶지 않거나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24.4%였다. 이때 남성의 경우 18.8%가 부정적으로 답한 반면, 여성의 경우 30.0%가 부정적으로 답함으로써 여성이 남성보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비율이 높았다. 남성의 51.1%는 “현실적으로 결혼을 위한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서”라는 게 이유였지만, 여성의 경우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25.3%)와 “양성 불평등 등의 문화 때문에”(24.7%)라는 답변을 하는 비중이 높았다.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역시 상이한 것이다.
한편, 2017년 인구포럼에서 한 연구원은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컨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런 컨텐츠를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보도자료 링크) 한국 혼인율 하락의 원인으로 여성의 고학력과 고소득을 제기한 것이 논란이 되자 발표 이틀만에 보직 해임되었다.
이를 한 연구원만의 일탈적 언사라고 할 수 있을까? 2021년 충청남도는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을 제시하며 임대료 감면을 위한 정책 대상을 “(예비)신혼부부”로 제한하고 그마저 입주 후 자녀를 출산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여성운동으로부터 비판받았다. 전자는 여성의 몸을 출산도구로 보고 있고, 후자 역시 출산도구로 보게끔 종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2021년에 번역된 크리스틴 고드시(Kristen R. Ghodsee)의 저작 『왜 여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는 여러 시사점을 준다. 고드시는 동유럽 사회주의 여성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풀어내어 오늘날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도발적인 질문에 비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어 평등할수록 구성원들은 더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산권 국가들의 여성정책을 참조하는 것이 아직 어려운 문제라면 반공주의의 선두였던 미국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에 스푸트니크 우주선을 쏘아 올리자 과학격차의 원인이 소련의 여성 과학자 등용에 있다고 본 미국은 1961년 대통령 직속 여성지위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몇 차례 소련을 방문한 후 제출한 1966년 보고서를 통해 “우리 여성의 힘을 더 잘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량을 잘 활용하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련의 흥미로운 경험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전후 경제·사회·문화적 구성이 비슷한 독일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었다. 따라서 당시 서독과 동독을 비교해보면 국가 간 기조와 사회 정책의 차이가 여성의 경험에 얼마나 현저한 차이를 낳는지 알 수 있다. 고드시에 따르면 전후 서독의 여성은 미국 여성과 마찬가지로 “아이(Kinder), 부엌(Kuche), 교회(Kirche)”에 갇혀 남편에게 의존해야 했다. 여성이 직장에 출근해 일하려면 남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이 1957년까지 존재했으며, 가족법 상 기혼 여성의 직업이 가정을 책임지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조문이 1977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 학교 일정이나 방과후 돌봄의 부족으로 인해 여성의 풀타임 노동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일하더라도 동독에 비해 임금격차가 더 큰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반면 전후 동독은 여성을 노동인구로 동원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를 적극 지원하는 동시에, 어머니가 되는 것 또한 장려했다. 하지만 출산을 위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고, 비혼모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이 학업과 병행하며 육아할 수 있도록 24시간 언제든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주거와 식품, 양육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서독에서 전체 출산에서 혼외 출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임에 비해 동독에서는 34%를 차지했다.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빈곤 때문에 혼외출산율이 2.3%인 한국(2019년 기준)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고드시는 소련,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동독 등 사례에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개인적 관계가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문화를 실현”한다고 결론내린다.
강력한 사회보장 정책을 지닌 소련이 붕괴한 이후 남녀 간의 성관계를 둘러싼 서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저자가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소련 후기에는 “서로에게 애정과 존중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성관계가 이용되는 ‘우정 각본’이 등장했다면, 자유시장이 도입된 이후 “성애화된 여성성이 수익을 내면서 물질적 이익으로 교환될 수 있다”고 여기는 ‘도구적 각본’이 널리 퍼졌다고 분석한다. 사회안전망이 해체되면서 자유시장과 가부장제가 전면적으로 복귀한 것이다.
고드시가 현실사회주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루마니아와 알바니아, 스탈린 시기 소련에서는 임신 중지에 대한 권리가 산아제한 목적으로 동원되었다. 그밖에도 구공산권 국가들은 성희롱, 가정폭력, 강간에 대한 논의를 억압했다. 또, 남성의 가사 및 양육 참여를 독려했지만, 남성들은 전통적인 젠더 역할에 대한 도전에 크게 저항했다. 그 때문에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의무적인 정식 고용과 가사 노동이라는 이중의 부담으로 고통받았다. 결론적으로 여성의 개성이나 자아실현을 지원하기 위한 기획으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성이 국가의 집단적인 삶에 더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노동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지원했던 것이다.
가령 불가리아는 학교졸업 후 의무적으로 국가를 위해 일정 기간 일을 할 것이라고 동의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3차 교육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들이 대학 졸업 후 투입된 곳은 육아휴직으로 공백이 생긴 자리였다. 대졸자는 인턴으로 일하며 직장을 체험해볼 수 있었고, 부모는 휴가 이후에도 일자리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보증을 받고 쉴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에선 청년 실업이 점증하고, 다른 한편에선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로 육아휴직을 꺼리는 한국 사회에서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저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니 샌더스 지지자임을 밝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젊은 독자들에게 정치이론을 공부하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호소한다. 저자 자신이 소개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교훈을 도출하면서도 비판적 거리를 잘 유지한다. 플랫폼C 책읽기모임에서도 “적절한 줄다리기를 절묘하게 잘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급진정치를 제안하며 고드시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의 모습은 북유럽 복지국가로 제한된다. 저자는 북유럽 사민주의가 서구와 구공산권의 ‘중도’를 실현했다고 본다. 전자로부터는 정치적 자유를, 후자로부터는 사회보장 정책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는 시장의 대립항으로 파악되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시장의 과잉을 견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로 인해 대중의 정치 참여나, 집단적인 실천을 통해 대중 자신의 존재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고려는 누락된다. 왜 생략됐을까? 저자의 연구 대상이 ‘권위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정책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