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중앙일보의 ‘나는 저격한다’ 연재 기획에 첫 타자로 참여해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연재는 청년 세대 논객(?)이나 정치인이 86세대를 향해 저격하는 컨셉으로 기획됐다.
한국 노동운동 전체를 책임지는 조직인 민주노총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 비판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 대한 류 의원의 비판은 많은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필자는 류호정 의원과 같은 정의당의 청년당원으로서 비판에 대한 평가를 남기기 위해 ‘비판을 비판’하고자 한다.
당시에도 한국노총 소속의 정규직 노조에는 많은 청년 조합원이 있었습니다만, 한국노총은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강조하기 위해 청년을 내세우진 않았습니다. (…) 이번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모두 민주노총 소속입니다. 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걸 약속하고 당선했습니다. 실은 기득권 지키기였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는 뒤로 숨기고, 청년 조합원을 내세웠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지키기 위해 청년이 요구하는 ‘공정’을 방패막이로 삼았습니다.
꽤 온당한 비판이다. 작년 말 있던 제4대 건강보험노조(이하 건보노조) 임원선거에서 당선된 전무환-여연화 후보조는 비정규직과의 연대 대신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챙기겠다’는 공약을 들고 당선되었으며 현재도 역시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목표가 단순히 사업장의 이익 챙기기가 아니라 다양한 직종, 성별, 나이의 노동자계층 간 연대를 통한 계급투쟁의 활성화와 사회연대의 확장이라고 했을 때 지극히 폐쇄적이고 근시안적인 지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청년조합원 뒤에 숨어 ‘공정’을 방패막이삼아 자신들의 욕심을 지키고 있다’는 대목이다. 건보노조 현 집행부의 활동만 보면 그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그 뒤에 있는 맥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타 노조에 비해 건보노조의 가장 특이한 점은 조합원의 과반이 2030세대 조합원이라는 점이다. 무한경쟁과 시험으로 서로를 평가받는 사회에서 자란 이들의 세계관은 기존 조합원들과 차이가 있고, 힘겹게 노동조합을 만들어온 투쟁의 경험도 없다. 이런 세계관은 그리 쉽게 깨지지도 않는다.
현 집행부와 다른 경향을 갖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보노조의 간부 및 활동가들은 현재도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투쟁의 방향성을 선회해야 한다고 내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장에 있는 상당수 청년 조합원의 반대를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노동운동이 사회연대적 성격을 상실해 가는 문제가 단순히 기성세대 노조 활동가들의 청년층에 대한 ‘꼰대적 접근’의 문제라고, 노동운동이 사회적 담론을 적극적으로 선도하지 못한 문제라고 지적한다면,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30년간 관성적으로 쌓여 온 한국 노동운동의 구조를 뒤엎어야 하는 문제이지, “청년 조합원 뒤에 숨어 공정을 방패막이삼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공정’을 무기화하는 일부 청년 세대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세대 간 갈등을 부채질하는 꼴이 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민주노총 전체의 대표인 양경수 위원장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자칫 민주노조 운동 전체가 ‘청년 조합원들의 공정을 악용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으로 호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정치적 경향 혹은 전략·전술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 집행부는 신자유주의적 공정성 담론에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미조직전략실을 비롯해 공공운수노조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산별·연맹에서는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공정’을 내세운 반대들이 어떤 면에서 비논리적이며 배타적인지 알리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투쟁들은 건보공단, 서울교통공사, 아시아나케이오 등의 비정규직 사업장이다.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며 진행된 원주에서의 집회도 비정규직 투쟁의 일환이었다. 총연맹 지도부가 현장에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전술적으로 공정성 담론의 허점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당연히 제기할 수 있지만, 그런 비판은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대한 여론 호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사측에 편파적인 어용노조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비교하는 것이 전혀 온당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하나 더 있다. “민주노총의 목소리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류 의원의 평가는 일리 있는 지적이다. 논란이 된 지난 7월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코로나 시국 해고금지를 비롯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다양한 메시지를 내고자 했지만, 그것은 ‘불법집회’라는 한 마디에 모두 묻혀 버렸다. 노동자대회를 통해 내고자 했던 사회적 목소리가 ‘코로나 시국 집회시위의 자유’뿐이었다면 모르겠으나, 그 이외의 의제에 대해서는 실패한 셈이다. 노동조합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시대적 의제들이 있고, 그러한 의제들을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분명 더욱 참신하고 적절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집회 이외에 공정성 담론을 더욱 효과적으로 타격하는 방법, 기록적 폭염을 불러온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후파업, 코로나 시대 가장 취약한 계층인 이주노동자들의 전국적 공동행동 같은 것들을 고민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것이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으로서 민주노총의 역할이며 또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론의 프레임에 갇혀 정말로 내어야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내지 못하는 메시지 전달력의 문제다. 민주노총이 그들만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억지를 부리고 있다거나 정규직 노동자만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보수언론과 우익의 프레임이다. 류호정 의원의 글은 물론 그런 의도에서 쓰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한 비난에 충분히 악용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더군다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현 정권의 억압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한국 자본가 계급의 대표인 이재용을 석방한 정부는 한국 노동자 계급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양경수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체포하고자 하고 있으며, 상술했듯이 코로나 시국임을 내세워 민주노총이 이야기하는 모든 사회적 의제들을 ‘불법집회’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단 한 명의 확진자도 전국노동자대회와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을 ‘방역을 방해하는 귀족노조’로 악마화하고, 벼랑에 몰린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역시도 민주노총이 이야기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이기적 요구’로만 치부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 언론의 공격에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쓴 글이 동원되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 때부터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은 항상 상보적인 관계에 위치해 왔다. 상보적 관계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가 아니기에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의 방향성이나 방식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그 반대도 역시 가능하지만, 보수 언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중앙일보의 기획에 참여하여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꼰대’와 등치시키고 민주노총이 갇혀 있는 사회적 프레임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방향의 비판은 최소한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할 비판은 아니다. 현 청년 세대가 가진 집단적 분노를 무언가를 ‘저격’하는 방식으로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해야 할 역할은 그 저격에 그저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저격의 방향성을 사회적 계급의 문제로 돌려놓고 수많은 계층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민주노총이 어려움에 처해 있고, 민주노조운동의 존폐가 걸려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진보정당이 민주노총과의 연합전선을 더욱 강고하게 하고 사회적 메시지와 그것을 내는 방식을 함께 조율해나가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중앙일보의 연재 기획 자체에 대해서도 평가가 필요하다. ‘저격’ 기획에 류호정 의원과 함께 참여하는 필진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하다. 현 국민의힘 대표인 이준석, 정의당 내에서 반페미니즘 성향을 보여온 의견그룹 ‘진보너머’의 전 대표 박가분, 마초이스트 우파 유튜버 ‘크로커다일’ 등이다. 이들은 그간 페미니즘을 ‘기득권’으로 상정하고 ‘역차별’을 말하며 ‘공정’을 이야기하는 일군의 20대 남성들을 위한 컨텐츠를 생산해 왔고, 그렇기에 이들이 ‘저격’할 대상은 굳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보수언론의 모든 것을 보이콧하고 비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언론은 항상 양날의 칼이기에, 진보정치가 보수언론의 기획에 참여하고자 할 때 그 기획이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류호정 의원은 그동안 여성들의 삶의 문제로써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공정에 맞선 사회연대를 말하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해당 기획을 보는 사람들은 ‘기득권 노조 민주노총의 위원장을 저격하는 류호정’을 ‘정체성 정치를 저격하는 박가분’, ‘페미니스트를 저격하는 이준석’과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후 류호정 의원은 미디어오늘에 “본인이(본인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중앙일보를 이용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류호정 의원의 글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보았을 때 그 전략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철저하게 실패했다.
민주노총은 성역이 아니고, 비판에 성역은 없다. 하지만 그 비판은 온당하고 적절해야만 한다. 과거 진보신당의 부대표를 맡았던 박용진 의원은 지난 24일 전태일 열사의 생가를 찾아 “민주노총이 전태일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비판은 보수 언론의 그것과 똑같은 맥락을 지닐뿐더러, 최소한 법인세와 소득세의 감세를 통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주장하는 박용진 의원이 할 비판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내는 메시지가 그것과 유사하게 들려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류호정 의원에게 사회운동과 함께하는 진보정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지금 정말로 내야 하는 메시지를, 당과 함께 더욱 명확하게 조율한 좋은 메시지를 기대하고 싶다. 그것이 류호정 의원이 진보정당 정치인으로 서기 위한 옳은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도영 (청년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 플랫폼c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