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비례후보 선출선거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 통과 후, 정의당은 국회의석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의 어깃장으로 상당히 후퇴했으나 일보전진이라 평할 수 있다. 정당지지율 10~15%, 지역구 1~2석 당선의 범위로 의석수를 계산하면 최소 14석에서 최대 22석까지도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돈다. 이런 기회를 맞아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이 40여 명 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경쟁 명부가 10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수준이다.
반면, 지역구 사정은 처참하다. 모든 지역이 험지인 정의당 지역구 출마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지역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석패율제마저 고꾸라져 낙선을 감수하고 당을 위해 희생하는 선거를 치르게 됐다. 오로지 당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던져 선거를 치렀던 과거 진보정당의 젊고 열정 많은 출마자들은 이제 50대가 됐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불모지였던 지역구에 ‘진보정치’가 차츰 뿌리를 내렸지만,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낙선을 거듭하면서 후보도 후보와 함께 지역을 일궈왔던 활동 당원들도 지쳐버렸다.
중앙 집중적 사업의 폐해
중앙은 흥하나 지역은 힘겨운 이중적인 정치 공간에서 정의당은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할까? 정의당은 추진력 있는 사업 집행을 위해 대표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당의 기틀을 빠르게 확립하는 데 유용했다. 취약한 지역기반을 당장 보완하기 힘든 구조에서 당을 빠르게 알리고 당면한 선거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당은 당대표를 중심으로 중앙에 자원을 집중하여 각종 캠페인과 홍보, 퍼포먼스로 당을 알렸다.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많은 청취자를 입당케 했다. 또한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원내 활동에 관심과 자원이 집중됐다. 심상정과 더불어 이정미, 김종대 등 스타정치인을 배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앙 집중적 사업 방식은 여러 폐해를 낳기도 했다. 하향식 사업 집행만 관행이 됐고, 지역의 사업을 중앙 사업으로 받아 안는 상향식 사업집행을 거의 하지 못했다. 대표단은 바쁜 중앙 스케줄에 매몰되어 지역의 상황을 잘 돌보지 못했다. 긴 안목으로 당의 발전을 고민하기보다서울에서 발생한 긴급한 현안에 대응하기 급급했다.
당 대표의 개인기와 중앙 집중적 사업으로 당세를 확장했지만, 그 성과가 지역에 담기지 않았다. 꾸준히 이어갈 만한 사업이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 쉽게 흔들리기도 했다. 당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비상구(비정규노동 상담창구)는 ‘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좋은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 유의미한 성과를 보면서 이를 지역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대안이 나왔지만, 지도부 교체 이후 전망 도출을 미루고 있다.
양적 성장이 질적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진보의 가치가 흔들리고 이곳저곳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다. 제주 난민 문제에 대한 중앙당의 소극적 대응, 사회운동 흐름과 괴리돼 후퇴된 법안을 도출한 낙태죄 폐지법안, 톨게이트노동자 투쟁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그러하다.
요컨대 정의당은 지역기반 구축전략, 지역사회와 진보정치가 함께하는 운동전략 없이 중앙정치를 통한 외연확장에만 주력했다. 당 중앙 집중화의 중심에 있는 심상정대표는 이번 총선에서도 당의 비례후보를 통한 원내 교섭단체라는 중앙 집중 전략만 고집했다. 비례 과몰입 현상을 보며 지역구출마자는 허탈감을, 많은 지역당원은 우려와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장기적인 지역 성장 전략이 없다
총선 후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금보다 많은 의석수를 확보할 것만은 분명하다. 낙관적으로 전망해 15석의 의석을 얻는다고 가정하면, 전체 의석 300석의 5퍼센트다. 하지만 지방의석 확보율은 지방의 전체 의석수와 비교할 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정의당의 지방의석 수는 광역의원 824석 중 11석(1.33%), 기초의원 2,927석 중 25석(0.85%)에 불과하다.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은 단 1석도 없다.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비례 의석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의당의 이름으로 나왔을 때 당선권에 들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다. 중앙 5퍼센트, 광역 1.3퍼센트, 기초 0.85퍼센트. 안타깝지만 이 숫자가 정의당의 현실이고, 지역의 현 상황이다.
정의당은 중앙 집중적 사업 관행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무게추를 옮겨야 한다. 아랫돌 괴어 윗돌 쌓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과 지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맞추자는 말이다.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지역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활동에 대해서는 지역 활동의 모범 사례를 전당적으로 공유·학습하기, 상무위원회의 주요 의제로 지역 사안을 비중있게 다루기, 특별한 지역현안의 경우 국회 정론관으로 마이크를 끌어올려 지역의제를 전국화 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창당된 지역위원회 130여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어느 지역부터 어떻게 창당할지 광역시도당과 협의하며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지방선거에 있어서 3인선거구 또는 전략선거구를 정하고 공략방안을 만들어보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지역 현안에 주목하고 이를 사회운동의 큰 흐름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길에 당이 함께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현안들을 한데 엮어 이슈화·전국화시키는 방식으로 힘을 키울 때 진보정치의 설자리도 늘어난다. 당이 지역의 사회운동과 함께할 때, 지역에서 신뢰받고 사회운동 세력으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지역에서 승부해야
지역은 당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지역 없는 비례정당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센바람이 한번불면 금방 날아가 버리고 만다. 중앙의 정치적 이슈에 당이 쉽게 흔들린다. 당 안에서 유명정치인, 국회의원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고 당원의 자발적 활동이 축소된다. 지역이 없으면 단기적인 ‘여의도 정치’는 할 수 있으나 비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지속성·확장성을 잃어버린다. 지역의 사안, 현안에 개입할 수 없으니 주민의 고충과 상황을 모르게 되고 결국 민생과도 멀어진다. 지역 없이는 비례정당도, 진보정치도 불가능하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당 지지율 상승도 지역구 출마 없이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 “비례는 정의당”이 아니라, “지역엔 정의당”을 외쳐야 할 때다. 인기 많은 미국의 젊은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의 돌풍도 견고한 풀뿌리 조직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에 기반이 잡히고 지역정치가 활발해지면 당에 위기가 찾아와도 지역사회와 맺은 신뢰를 기반삼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지역에 단단히 뿌리박고 진보의 가치를 잘 견지하면서 긴 호흡으로 풀뿌리 지역기반을 꾸준히 만들어가야 민심을 얻고 결국에는 집권도 할 수 있다.
취임 당시 심상정 대표는 “비례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보집권의 지역토대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약속은 지금껏 지켜진 바 없다. 취임 초기의 결심을 잊지 말고 지금이라도 지역 강화에 힘쓰기 바란다.
글 : 이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