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의당은 심상정 대표의 강한 드라이브에 의해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그 세부 내용을 정할 태스크포스까지 꾸린 상태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여름 당대표 선거 때부터 기존의 진성당원 직접투표제를 폐기하고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해왔다. 당원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선거인단에 참여해 총선 후보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 자는 것이다. 아직 전국위원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으니 확정된 건 아니지만, 심상정 대표 등은 이것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움직이며 전국위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유상진 대변인은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당원 중심으로 후보를 선출하다보니 정의당의 문턱이 높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이라며, “당원 100명을 통해 선출된 후보보다 당원과 지지자·일반국민 1만 명이 정하는 후보가 본선 경쟁력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주관적 인식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호도하고,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범주를 100 대 10000으로 대비해 언급한 것이다. 이런 식의 언급이 가져올 당내의 혼란을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섣부른 언행이다.
개방형 경선제가 도입되면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 심상정 대표가 목표로 삼는 ‘300만’ 지지자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일단 정의당의 지지율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이미 6%대로 찌그러졌다. 현재로서는 200만 득표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방형 경선제에 참여하는 ‘국민’은 어떤 ‘국민’일까? 본래 개방형 경선제는 말이 좋아 ‘개방’이지,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세를 모으는 사람들에 의해 선거인단이 조직된다. 예컨대 지난 시기 민주당과 다른 보수정당들의 선거인단 모집 과정은 무수한 불협화음을 빚었다. 정의당이라고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개입은 훨씬 만만할 것이다. 이를테면 선거인단을 조직하려는 세력 중에는 정의당의 여성주의적 혁신을 반기지 않는 상당수의 반여성주 의자들이 있을 수 있고, 지연과 학연을 동원한 줄투표에 기대 정치 출세를 꿈꾸는 지방 토호가 있을 수 있다.
얼룩진 집단 입당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심상정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양 등에서 3,800여명의 시민들이 집단 입당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는 포스팅을 게시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호남향우회 회원이라는 사실도 부끄러움 없이 덧붙였다. 문제는 입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시화됐다. 본인이 가입서를 쓴지도 모르는 이들, 기본적인 입당절차도 잘 인지하지 못한 이들 등 그저 동원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가입서가 상당수 있음이 밝혀졌고, 확인 과정에서 수많은 가입서가 폐기처분됐다.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누가 3,800명을 조직했을까? 정의당에서 그 정도 표만 모아오면 국회의원되기 쉽다고 판단한 장사꾼일 수도 있고, 호남향우회 출신 정치지망생일 수도 있겠다. 하물며 야심 있는 여혐 유튜버가 “정의당 페미니스트를 처단할 정의의 용자들 모여!”라고 외치기만 하면 얼마든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양대 기성정당에서 빈번하게 보이던 모습이다. 구태 정치인들은 학연·지연을 동원해 선거인단을 조직하고 후보 선출 과정에 개입해왔다. 이렇게 새롭게 동원된 명단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빠져나간다. 보수정당에는 자신이 당원인지도 모르는 당원들도 많다. 정의당에 이런 혼란을 피할 힘이 있는가?
개방형 경선제가 도입되면 이보다 더한 요란한 과정이 펼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선거법이 기존 패스트트랙안대로 개정되어 권역별 비례제가 실시된다고 했을 때 정의당은 피할 수 없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실주소지를 파악하는 건 원천 불가능하기 때문에 등록 과정에서 허위 주소를 적어두어도 얼마든 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니 비교적 정의당 당원수가 적은 권역에 선거인단을 몰아서 등록시키면, 당선 가능한 비례대표 번호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아닐 것이다. 특히 다른 기성정당 사례에서 볼 때, 돈 많은 자본가에게 훨씬 유리한 구조다.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개입이 성공한다면 정의당은 백래시와 호남향우회 임원의 정당으로 거듭날 위험도 안게 된다. 부정 선거 논란과 갈등이 펼쳐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정의당을 비정규직을 위한 정당, 청년과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을 위한 정당으로 호명할 수 있을까? 정의당의 자칭 현실론자들은 이런 비판을 “섣부른 우려”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눈을 가리고 앞으로만 질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아온 현실의 혼돈은 ‘통진당 사태’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기록해버릴 수도 있다.
섣부른 활용론으론 혁신할 수 없다
드러나는 형용모순과 진지한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 중에서 ‘개방형 경선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인다. 기존의 구태를 혁신하고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묻고 싶다. ‘개방경선’은 진보적이고, ‘진성당원제’는 보수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기만이다. 비판 의식을 뭉개고, 어영부영 따라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혁신’은 언어적 표현과 나이만이 아니라, 사상과 경로의존성을 극복하는 것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를 얼렁뚱땅 기성 정당들처럼 공천 방식을 바꿔 해결하겠다고 여기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구태’일 뿐이다. “어차피 될테니 뭐라도 개입하자”는 몽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기성정치의 형식을 마냥 따라하는 방식으론 곤란하다. 당면한 정의당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개방형 경선제’를 저지하고, 보다 대중적·사회운동적인 방식으로 총선 과정을 치룰 기획을 도출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의 정치·경제적 현실은 대안 세력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진보정당을 혁신해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은 한국의 사회운동 전반이 안고 있는 과제다. 정의당이 자신의 지지세를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기존의 상식 자체를 뒤엎어야 한다. 이를테면 기성정치가 흔히 ‘중도성향 부동층’이라 분류하는 사람들에 대한 규정은 정정되어야 한다. ‘부동층’ 혹은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이들은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는 매우 협소하다. 협소한 이해에서는 구태의연한 대안 밖에 나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