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농성 투쟁 | 차가운 길 위에서 마주친 희망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농성 투쟁 | 차가운 길 위에서 마주친 희망

65일간의 노숙 농성 끝에 우리는 협의체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한전KPS의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경상정비 전체 노동자로 범위를 넓혔고 확정했습니다.

2026년 1월 23일

[읽을거리]노동노동조합, 에너지, 기후정의운동, 사회운동, 비정규직

[편집주] 65일간의 노숙 농성을 마무리하며,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김영훈 지부장이 플랫폼C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차가운 길 위에서 함께 싸운 시간과 연대의 의미,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결의를 담은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동료를 잃고, 65일간 용산과 청와대 앞 차가운 길 위에서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싸웠던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입니다.

​지난 2025년 6월 2일,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이던 월요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충현 동지에게는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범용선반 앞에서 홀로 작업하던 그의 팔이 차가운 기계 속으로 말려 들어갔을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인 1조 작업수칙은 종잇조각에 불과했고, 방호장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다단계 하도급과 쪼개기 계약이라는 거대한 위계질서가 만들어낸 '구조적 살인' 이었습니다.

​우리는 김충현 동지의 영정을 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살기 위해, 그리고 더이상 죽지 않기 위해 시작한 농성이 어느덧 65일을 넘겼습니다. 이제 우리는 농성장을 정리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농성장을 정리하며 느낀 소회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전합니다.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시작된 농성장 모습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시작된 농성장 모습

이번 투쟁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한 정부의 모습은 참으로 이중적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후진적 산재공화국의 원인이라 지목하며 강도 높은 근절을 지시했습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를 언급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으라고 당부할 때는, 우리도 잠시나마 '이번에는 정말 세상이 바뀌려나'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협의체 테이블에서 마주한 정부 측 위원들의 모습은 대통령의 말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공직자가 아니라, 마치 한전KPS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펌 변호사 같았습니다. 법원과 고용노동부가 이미 '불법파견'이라 판결하고 직접 고용을 명령했음에도 한전KPS는 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직접 고용을 반대하였고, 그 사이에서 정부는 노동자의 목소리보다 손익계산을 먼저 살폈습니다.

말로는 노동 존중을 외치면서 실무에서는 기득권의 논리를 대변하는 행태, 우리는 이를 기만이라 부릅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그저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과 안전 보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정부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지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투쟁할 것입니다.

​농성 기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칠 때가 많았습니다. 발전소가 폐쇄되면 해고될 것이라는 협박, 원청의 갑질, 그리고 우리를 소모품 취급하는 시선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곁을 지켜준 수많은 연대자 중에서도 특히 '플랫폼C' 활동가와 회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플랫폼C 동지들의 연대는 우리에게 연대 그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투쟁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며 보내주신 응원은 우리에게 가장 따뜻한 밥 한 끼였고,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세련되면서도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준 덕분에 우리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이 보여준 그 열렬한 연대는 노동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플랫폼C가 보여준 연대의 온기를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6년 1월 1일 연대한마당
2026년 1월 1일 연대한마당

​농성장을 접는 것은 끝이 아니라, 진짜 싸움의 시작입니다. 65일간의 노숙 농성 끝에 우리는 협의체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한전KPS의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경상정비 전체 노동자로 범위를 넓혔고 확정했습니다. 구체적인 전환 시한도 명시했습니다. 노사전협의체 구성에서 노동자 4명, 원청 4명, 전문가 4명 등 총 13명 참여하여 대등한 위치에서 논의할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지 여러분,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한전KPS라는 거대 공기업과의 2차전이 남아있습니다. 종이 위의 합의가 현장의 상식이 되기까지는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청와대 앞 농성장을 걷고, 발전소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아직 노동조합의 손을 잡지 못한 동료들을 만나고, 김용균, 김충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일터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 것입니다.

농성을 마치고 "고생했상"을 수상한 발전KPS지부의 김영훈, 정철희, 국현웅 동지
농성을 마치고 "고생했상"을 수상한 발전KPS지부의 김영훈, 정철희, 국현웅 동지

​​이 글을 읽고 계신 동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해주신 플랫폼C 동지 여러분,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대책을 마련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이 길에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주십시오. 우리는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현장에서, 그리고 또 다른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납시다. 투쟁!

글 :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