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한미 협상 결과, 노동자들에겐 파국적이다
2026년 1월 2일
이 글은 금속노조 경남지부 소식지에 기고한 것으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번 관세 협상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다.
2025년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압박이 거세게 몰아친 한 해였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는 이미 그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2016년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중국, 멕시코 등과의 무역 불균형을 강력히 비판하며, “불공정”한 계약을 재협상하고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을 천명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등의 엄포를 놓았고, ‘신냉전’ 담론이 범람하듯 우리의 언어세계를 매웠다.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8년,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하며, 중국에 대해 세탁기·태양광 패널·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 공세는 그리 성공적이라고 평가되지 않는다. 관세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상승했지만, 중국 수출업 기업들이 가격을 낮추기보다 미국 수입업체와 소비자가 인상된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또, 일종의 무역 전환 효과가 발생해 베트남이나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수입되는 상품들이 많아졌고, 트럼프가 원하는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만큼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순히 중국산 제품을 막는다고 해서 미국 내 생산이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 2기의 관세 무역 분쟁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새로 업데이트한 전술에 따라 발생했다. 트럼프는 기존의 동맹국/적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입품에 대해 일률적으로 10~20%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기본 관세를 얹은 것이다. 이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이전 생산시설을 본국으로 되돌리는 것)을 꾀하려 했던 거다. 나아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선 최소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여 가격 경쟁력을 무력화하고, 최혜국 대우(MFN)를 철회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이나 멕시코 등을 위협하며 우회 경로를 차단하려 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단절)을 통해 중국이 더 크게 부상하려는 것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상대국이 미국의 이런 관세 인상에 대응해 관세를 올린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규모 관세 패키지를 발표했다.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50%의 관세를 적용하겠다며, 특히 한국을 포함한 미국에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들은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별도 언급했다. 이 여파로 인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 관세 압박 대상이 됐고, 2025년 5월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전년 대비 약 -27% 감소했다.
트럼프는 왜 관세를 문제 삼았나
트럼프는 왜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삼았을까. 무역적자에 대응하고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게 그 첫번째 명분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오랫동안 무역에서 손해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관세를 통해 수입품을 억제하고 미국 내 제조업 지원을 구상했다. 그러면서 관세를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국제관계·외교의 압박수단으로 활용했다. 관세를 지렛대 삼아 타국을 위협해 협상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관세를 통해 해외에 흩어진 공급망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거나, 해외 의존을 줄이려 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다.
한데 기존의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체제는 미국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중국, 멕시코 등에서 만든 저렴한 상품을 수입함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은 소득 수준 대비 훨씬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가령 애플은 고부가가치 영역인 제품 설계나 디자인, 마케팅만 맡고, 저부가가치 영역인 조립과 생산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하청공장으로 넘긴 체계로 성장해왔다. 이를 통해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은 전례 없는 이윤을 거뒀고, 미국 주식 시장을 부양했다. 즉, 미국이 무역 적자를 본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한다는 뜻이다. 다른 제조업 국가들이 수출로 번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저금리로 막대한 빚을 내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과잉공급과 막대한 정부 부채 규모에 따라 미국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리쇼어링은 노동을 국가 내부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경쟁 구도를 강화한다. 국제 분업체제에 존재하는 노동자계급 간 연대 가능성을 해체하고, 저임금 국가 노동자들을 “적”으로 만든다. 자본주의 체제의 글로벌 착취구조를 은폐하고, 그 위기를 노동의 분할과 경쟁으로 위장한다. 또한 리쇼어링은 국가가 자국 산업을 보호·유치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보조금·세제 혜택·공공투자를 특정 대기업에 집중시킨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가자본주의적 형태의 금융·산업 독점을 강화하며, 노동자나 중소기업의 자율적 생산 기반보다는 국가-대자본 복합체를 낳고, 자본의 손실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트럼프의 의도대로 전개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관세로 인해 기업 수입비용이 올라가고, 이 비용 일부가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되고 있다. 기업이 먼저 비용을 흡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관세 인상에 따른 추가 비용의 약 55%를 미국 소비자가 부담할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The Fed) 역시 여러 데이터를 통해 관세가 최근 물가상승에 기여하고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무역 마찰과 보복관세가 확산된다는 점도 미국으로서 부정적 요소 중 하나다.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해 다른 국가들이 보복관세나 무역제재로 대응하면서 국제 무역환경이 크게 불안정해졌다. 미-EU, 미-중, 미-멕시코, 미-캐나다 등 상호 보복관세가 이어지고, 무역긴장 심화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수요·공급의 문제를 넘어 국제무역 규범 신뢰성을 약화시킨다. 다수 국가가 즉시 대응하니 “미국이 언제든지 관세를 올릴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시장에 퍼지고 있다. 공급망이 국가별로 나뉘어져 있고 다국적 기업들이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 인상과 보복은 비용 상승·공급지연·재고쌓기 등 연쇄 충격 현상이 보이고 있다.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고 수출 기회가 줄어드는 등의 현상도 나타난다. 한 국가가 보복조치를 취하면 또 다른 국가가 이에 대응하는 구조 형성된 것이다. 이는 결국 글로벌 무역량 감소와 각국 성장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관세가 단기적 압박수단으로는 작동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수입품 가격 상승, 공급망 혼란, 소비 위축 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보호를 명목으로 관세를 쓰지만, 물가 상승이나 기업 비용 증가가 미국의 노동자 및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관세 협상의 핵심 쟁점
한국은 트럼프로부터 조치 대상국으로 지목돼 약 25% 상호관세율의 위협을 받았다.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핵심 품목(25%에서 50%로 인상)에 대해서도 관세율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가 병행됐다. 2024년 기준 한국은 미국과의 상품교역에서 약 660억 달러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보복 협상은 하지 않고, 협상을 우선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7월 30일 한-미 무역합의 발표했다. 그 결과,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에 위협했던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고, 한국은 미국에 미국산 에너지 제품 구매 및 대미 투자(약 3,500억 달러의 제조업 투자와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10월 말 트럼프가 경주에 와서 이룬 최종 합의는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7월 협상 이후 한미 간 쟁점이 도드라졌다. 공개석상에서 트럼프는 3,500억 달러는 “선납이며 현금으로 받는다”고 주장하며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현금 일시 투입은 객관적으로·현실적으로 감당 불가”라며, “일시에 현금 3,500억 달러를 내라는 식이면 외환·금융 안정이 무너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투자는 ‘대출·보증’, 직접투자는 제한적(점진·분할 집행)이어야 한다고 공식화했다. 외환시장 충격을 피하려면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협상 지렛대로 삼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 막대한 현금을 일시 투입하면 국내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소진되고, 이는 원화 급 락·금융불안을 유발하게 된다. 또, 공적·연기금 자금의 대규모 해외 현금 이전은 거시경제에 큰 리스크가 된다. 무엇보다 상업성이 불분명한 정치적 성격의 일시 집행은 정당화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트럼프의 ‘선호’가 투자 기준이기 때문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표명했다.
그러자 미국은 초기에 가졌던 ‘선납+일괄’이라는 기조를 꺾고, ‘구조 설계’ 논의로 초점을 이동했다. 이로 인해 통화스와프보다 구조 문제에 쟁점이 모아졌다. 또, 양측은 환율을 경쟁수단으로 쓰지 않기로 확인했다(10월 1일). APEC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경주를 찾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미 그가 경주에 오기 전에 합의 내용은 결정됐다. 11월 14일 최종 발표된 최종 합의 결과, 한미 양국은 자동차에 대해 기존 무관세 또는 저율 관세에서 상호 관세 15%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또, 3,500억 달러(약 510조 원)를 미국 제조업에 투자한다는 점도 바뀌지 않았다.
3,500억 달러는 첨단 산업 및 제조업 기반 재건에 투자할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투자 1,500억 달러 두 트랙으로 나뉜다. 여기서 첨단 산업 및 제조업이란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핵심 광물’ 등을 아우른다. 이재명 정부가 대단히 큰 성과라는 듯 이야기한 ‘성과’는 이 2,000억 달러를 연간 최대 200억 달러(약 28조 원)로 제한해 상납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막대한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만든 일종의 ‘안전장치’다. 또,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 한국투자공사 같은 국부펀드가 보유한 해외 자산의 운용 수익이나 외화표시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점도 상세히 밝혔다. 다시 말해,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달러(미국 주식, 채권)를 팔아 다른 미국 자산(공장 등)으로 갈아타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급등’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율 상승(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이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일단 한국투자공사가 해외 투자를 통해 번 수익금(배당금, 이자 등)은 본래 한국으로 들여와 원화로 환전될 가능성이 있는 자금이다. 이 돈이 들어오면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이 돈을 미국 재투자에 써버리면, 한국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던 달러가 사라지게 된다. 더구나 한국투자공사의 자산은 엄밀히 말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과는 구분되지만, 국가 전체의 대외 지급 능력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 자산이 유동성이 높은 주식이나 채권에서 유동성이 낮은 실물 투자로 묶이게 되면, 방어막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된다. 금융시장은 이를 ‘대외 건전성 약화’로 해석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투기 심리’인데, 3,500억 달러라는 거액이 어쨌든 미국으로 유출된다는 신호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심리 기제로 작동한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이탈을 부추기거나, 원화 투자를 꺼리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재명 정부가 무엇에 대해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충격’이 아니라 ‘만성질환’을 택했을 뿐이며, 달러 유출을 받아들인 이상,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일 뿐이다. 실제 지난 6월 말 이후 원화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인데, 한미 협상 결과는 그 중대 요인 중 하나다. 환율이 이렇게 오르면 식료품 가격, 휘발유 가격, 전기요금 및 난방비 요금 등 노동자의 삶에 미칠 악영향이 매우 크다. 즉, 대기업 자본가들에겐 그리 나쁠 것 없는 이번 협상 결과가 노동자들에겐 민생 파탄을 의미한다.
설상가상 3,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는 국내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본가들은 미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 항변하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기존 산업구조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다. 가령 미국 텍사스, 조지아에 짓는 반도체·전기차 공장은 본래라면 한국 평택, 울산, 화성에 지어졌어야 할 공장들이다. 대기업은 자본력이 있어 미국으로 갈 수 있지만, 2·3차 협력업체들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며 미국으로 따라갈 여력이 없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미국산 부품 사용'을 강제하고 있고, 결국 결국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은 한국 중소기업 부품 대신 미국 현지 부품을 써야 한다.
평화와 생존을 위협하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와의 공개 대화 도중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해줄 것과 핵연료 공급에 협력해달라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이 발언이 즉흥적이고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양국 정상간 대화는 모두 사전조율 하에서만 이뤄진다. 군비 증강론자들은 ‘핵잠수함 보유’가 한국의 숙원 사업이라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오히려 미국이 원하는 바다. 기본적으로 핵추진 잠수함은 단순한 방어 무기가 아니다. 장거리 원정 작전이 가능한 ‘공세적 무기’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도 비용을 줄이고 싶어하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의 재무장과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을 승인한 이유는 남중국해나 대만 해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 해군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한국이 미중 충돌에 자동 개입하게 할 위험을 높인다. 트럼프는 바보가 아니고,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은 그의 양보도 아니다.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자극하여 동북아 군비 경쟁을 고조시킨다. 더구나 핵추진 잠수함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은 핵무장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이는 국제 비확산 체제를 흔들고, 북한의 핵무장 명분을 강화해줄 뿐이다.
핵잠수함 건조 및 유지에 투여될 막대한 세금이면 공공의료나 돌봄, 교육 시스템을 살리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다. 민중의 생존을 희생해 전쟁 무기를 사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로 이득을 보는 것은 미국에 투자할 자본이 있는 재벌들과 잠수함을 건조할 방산 기업들뿐이다. 막대한 국방 예산 증액은 필연적으로 다른 공공 예산의 삭감이나 서민 증세로 이어지며, 이는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 안전망을 약화시킨다.
민주노조는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나
이번 한미 협상 결과는 '안보와 통상의 빅딜'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속에 감춰진 재벌과 미국의 기만적인 야합이자, 한국 경제의 미래를 팔아넘긴 것에 불과하다.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국부가 미국으로 유출된다는 것은 곧 한국 제조업의 뿌리가 뽑히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제조업 공동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자본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미국 시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국내 설비 투자가 정체된 상황에서의 막대한 자본 유출은 필연적으로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공장 몇 개가 이전하는 문제를 넘어, 국내 산업 생태계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 부품사들의 공급망 붕괴와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즉, 이재명 정부의 한미 무역 합의는 겉으론 안보와 실리를 내세웠지만 국내 산업 기반을 구조적으로 희생시켰다.
이번 합의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편익의 분배는 철저히 왜곡되어 있다. 재벌 자본은 미국 시장 진출과 현지 보조금을 통해 수익을 보전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을 수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과 관세 부담, 그리고 국내 투자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영세기업과 노동자, 서민에게 전가된다. '국부 유출'을 통해 얻은 이익은 재벌 총수 일가와 주주에게 귀속되는 반면, 환율 변동성과 고용 불안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국민 전체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협상 철회’ 구호를 넘어, 자본의 이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산업 전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치밀한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분별한 해외 투자가 국내 고용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규제할 법적 장치를 요구하는 동시에, 미국으로의 자본 이전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도록 '해외 투자액에 상응하는 국내 설비 투자 의무화'와 같은 실질적인 안전장치를 관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현 정세에 대한 인식이 필요 할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착취 구조에 맞서, 노동자 국제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글 : 홍명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