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스캠 단지의 역사적 모순과 식인 자본주의

캄보디아 스캠 단지의 역사적 모순과 식인 자본주의

오늘날의 스캠 단지는 단순한 범죄 조직의 일탈이 아니라, 식민 수탈의 역사와 독재 정권의 '약탈적 개발'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비극이다.

2025년 12월 23일

[동아시아]캄보디아강제노동, 캄보디아, 식민주의, 제국주의, 베트남, 미얀마, 역사

지난 10월, 캄보디아 스캠 단지에서의 한국인 납치 및 인신매매 문제가 국내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엄청난 규모의 조직 범죄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졌는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납치되거나 연루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론 지면에 널리 보도됐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들이 제기됐지만, 언론의 논의는 대체로 “부패한 국가 캄보디아 특유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인 전체에 대한 비난이나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도 여지없이 감지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범죄는 캄보디아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이 사태가 마주하고 있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을 살펴보고자 한다.

식민주의가 낳은 모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전역을 자신의 식민지로 삼던 19세기, 캄보디아 역시 그 거대한 폭력의 파도를 피해갈 순 없었다. 1887년 프랑스는 베트남 전역과 캄보디아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Union Indochinoise)로 편입시켰고, 1953년 독립할 때까지 식민 통치는 지속됐다.

이 시기 프랑스는 캄보디아를 쌀·고무·목재 등 1차 상품 공급지로 활용했다. 인프라 투자는 베트남에 집중시켰고, 캄보디아는 철도·도로·항만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상태로 남았다. 식민지 정부는 세금과 토지의 원활한 수탈을 위해 중앙의 엘리트들과 결탁했고, 비옥한 토지를 고무 농장으로 개조하고, 쌀과 고무를 헐값에 수탈했다. 농민들에게 소금세, 알코올세 등 가혹한 세금을 부과해 자본 축적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다 보니 수도 바깥 농촌 마을에선 극단적인 빈곤 구조가 심화됐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극심한 빈곤은 프랑스의 식민통치가 배태한 모순인 셈이다.

인도차이나 및 아프리카 무역��연합에서 제작한 1928년 지도
인도차이나 및 아프리카 무역연합에서 제작한 1928년 지도

이후 전개된 노로돔 시아누크 왕자의 중립외교 노선 시기와 미국 닉슨 행정부의 기습 폭격, 크메르루즈의 끔찍한 대량 학살, 1978년 베트남의 침공과 훈 센의 집권 등은 바람 잘 날 없던 캄보디아 현대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비극의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캄보디아 민중에게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 식민 수탈 → 미군 폭격 → 킬링필드 → 내전과 장기 독재로 이어진 30여 년 동안, 토지와 자원은 민중에게 재분배되지 않았고, 극소수 권력층이 독점했다. 그리고 이는 경제 시스템과 공동체의 안정화를 가로막았다.

1998년, 권력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훈 센이 총선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표면적인 캄보디아 정세가 점차 안정됐다. 그러나 캄보디아 민중에게 이는 또 다른 약탈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광범위한 토지 약탈

훈 센과 캄보디아 지배엘리트들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밑단에서 일종의 ‘착취형 발전’ 전략을 택했다. 이는 자국의 자연·토지 자원을 약탈하고 개발하여 국가 발전 자본을 신속히 축적하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불평등의 고통을 야기하고 말았다.

캄보디아 정부는 토지의 상업적 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쫓아내는 등 국가폭력을 자행해왔다. 이를 통해 막대한 토지가 엘리트들의 손에 집중됐다. 2013년 캄보디아 인권센터(Cambodian Center for Human Rights) 보고서 「Land in Conflict: An Overview of the Land Situation」(분쟁 속의 토지: 캄보디아 토지 현황 개요)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3년 사이 7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 민중이 소유하던 300만 헥타르 이상의 토지(전체 국토의 16.6%)가 ELC(경제적 토지 양허, Economic Land Concessions) 명목으로 자본가들과 정치 엘리트들에게 매각됐다. 참고로 ELC는 캄보디아 정부가 2001년 제정된 토지법(Land Law)에 근거하여, 국가 소유의 사유지(State Private Land)를 민간 기업(국내 및 외국 기업)에 장기 임대해 주는 제도다. 기업 비즈니스를 위해 장기 임대되며, 임대 기간은 최대 99년이다. 이 중 약 20%의 양허된 땅이 5명의 캄보디아인민당(CPP) 리더들의 손에 장악됐다.

2020년 1월 13일, 프놈펜에서 시위대가 정부 당국의 토지 권리 분쟁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2020년 1월 13일, 프놈펜에서 시위대가 정부 당국의 토지 권리 분쟁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2000년대 캄보디아 정부가 내세운 ELC의 공식 목표는 낙후된 농업의 현대화와 경제 부흥이었다. 영세 농가에서 벗어나 대규모 플랜테이션(고무, 사탕수수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농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빈곤을 감소시키겠다는 거다. 국가주도의 인클로저를 시행하려는 것이니 빈곤 감축보단 막대한 도시 빈곤층의 양산에 가까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한데 ELC는 본래의 목적에서도 한참 멀어졌고, "토지 약탈의 합법적 도구"로 변질됐다. 불하 규모는 법적으로 ‘1만 헥타르’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약 200만 헥타르 이상의 토지가 불하됐다. 이는 캄보디아 전체 경작 가능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다. 자연보호구역이나 원주민 공동체 토지까지 무분별하게 기업에 넘어갔다.

특히, 농민이나 원주민들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토지 사용권이 넘어갔다. 기업들은 불도저로 숲과 마을을 밀어버리고, 군인이나 경찰을 동원해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쫓아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농민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했다. ELC의 혜택은 지역 주민이 아닌 집권 엘리트들과 결탁한 소수의 자본가나 중국계 기업에 돌아갔다.

세계은행 보고서 「Cambodia: Sustaining strong growth for the benefit of all」(캄보디아: 모두를 위한 강력한 성장 지속)에 따르면, 2011년부터 캄보디아의 경제 성장률은 7% 이상을 유지해 왔으며, 의류 제조업과 부동산 산업 덕분에 급속히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성과 뒤에는 산림 파괴, 토지 강탈, 온라인 사기, 마약 및 총기 매매 등이 도사리고 있다. 캄보디아는 4년 연속 동남아시아에서 청렴 지수가 가장 낮은 국가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간 산림 훼손율이 가장 심각한 국가이기도 하다. 대량의 원시림이 벌목으로 인해 파괴됐다.

토지 강탈에 저항하는 주민들
토지 강탈에 저항하는 주민들

스캠 단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약탈된 땅 중 '관광 개발' 명목으로 불하된 대규모 ELC와 경제특구(SEZ : Special economic zone) 지역들은 오늘날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사이버 도박'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범죄 소굴이 됐다. 지난 2022년 알자지라 방송이 공개한 다큐멘터리 <사기를 강요당하다>에 따르면, 푸르사트(Pursat)주에 위치한 경제특구가 실상은 온라인 스캠 단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단지는 기업 사무실 형태로 운영되며, 온라인 도박 회사들에 임대되어 임대료와 관리비를 받는다. 이때 ‘관리비’는 전문 관리업체가 수취하며, 이들은 단지 관리인으로도 불린다. 이 관리비는 토지 소유자가 해당 기업들에게 정치적 보호처를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보호비다.

코콩(Koh Kong)주에 위치한 ‘다라 사코(Dara Sakor) 프로젝트’는 중국 기업(UDG)에 무려 45,000헥타르(서울 면적의 약 3/4)가 99년짜리 ELC로 넘어갔다. 이들 중국 자본은 울창했던 원시림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호화 리조트와 호텔을 지으면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높은 담장과 감시탑을 세웠다. ELC가 보장하는 사유재산권과 개발독점권 때문에 경찰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치외법권 지대가 형성됐다.

이렇게 확보된 땅에는 우선적으로 카지노와 온라인 도박장이 들어섰다. 도박 사업을 위해 고속 인터넷망, 대규모 기숙사, 사무실, 발전 시설이 완비됐는데, 이는 훗날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기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다. 중국계 범죄 조직이 운영권을 장악하고, 캄보디아 고위 관료(군 장성, 재벌)에게 뇌물을 주며 보호막을 형성했다. 더구나 이들의 언어로 인해 피해 대상도 중화권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코콩 개발 프로젝트에 항의하기 위해 정부 기관을 찾은 주민들
코콩 개발 프로젝트에 항의하기 위해 정부 기관을 찾은 주민들

결정적 전환점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 이뤄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는 온라인 사기와 해외 도박 단속을 강화했다. 중국은 2021년 형법 개정을 통해 해외 도박 조직과 참여자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도입했으며, 대만도 유사한 강경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규제와 경찰의 압박은 사기단의 이동을 촉발했다.

한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규제 공백, 느슨한 법 집행, 부패한 지역 권력자,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인터넷 인프라 등으로 인해 이곳에 집결할 요인을 제공했다. 그 전부터 온라인 도박 산업이 발달해 있던 캄보디아와 필리핀은 외국어 능력이 있는 중국인 인력 공급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사기 조직이 정착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다.

초기에는 아파트나 호텔 객실에 은밀하게 자리한 소규모 사기팀이 대부분이었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이 산업은 대규모 단지로 "기업화"되고 복잡한 공급망을 갖춘 체인망으로 변모했다. 지시하는 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고, 인력 모집·잠재 고객 정보·자금 세탁 등은 외부의 공급망을 통해 조달됐다.

온라인 도박은 초기부터 스캠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도박 플랫폼은 본래 불법적 요소와 사이버 갈취, 돈세탁, 사기 등이 만연했으며, 중국의 엄격한 도박 금지 정책과 달리 캄보디아·필리핀 등은 도박 허가를 통해 세수를 확보했다. 이러한 산업적 기반이 스캠 단지의 활동 기반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2019년, 캄보디아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도박을 금지했을 때, 소규모 사업자들은 폐업했지만 대규모 단지와 카지노는 내부 공간을 사기·불법 도박용으로 개조하면서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코로나19로 관광이 중단되자 많은 카지노와 호텔이 온라인 도박·사기 업체에 공간을 임대하거나 자체적으로 온라인 운영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추가적 공간과 인력을 확보한 사기단들은 단지 내에서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며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실직한 젊은이들이 해외 취업을 시도하면서, 허위 구인 광고에 속아 단지로 끌려오는 사례도 급증하였다.

2021년 3월 나가월드 카지노 노동자 파업
2021년 3월 나가월드 카지노 노동자 파업

국제 투기꾼들의 놀이터, 스캠 단지

글로벌 이니셔티브(GI‑TOC) 보고서는 스캠 단지를 "호텔·카지노·빌라를 개조한 건물이나 신축된 기숙사형 건물에 수백~수천 명의 인력을 수용하여 온라인 사기, 가상자산 투자사기, 로맨스 사기 등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대부분 외부와 차단되는 높은 담, 철조망, 경비원으로 둘러싸여 있어 노동자들의 탈출을 차단하며, 사무실·기숙사·감금실·VIP 룸·도박장 등 모든 시설이 단지 내부에 갖춰져 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인들이 동남아시아 기반 온라인 사기로 잃은 금액은 100억 달러 이상이었다. 이는 전년(2023년) 대비 66% 증가한 수치다. 같은 해 유엔은 캄보디아에서 약 10만 명, 미얀마에서 12만 명 이상이 스캠 단지에서 강제로 노동하고 있으며, 태국·라오스·필리핀 등에서도 수만 명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추산했다. 2025년 7월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캄보디아 전국에 50개 이상의 스캠 단지가 존재하고 있으며, 국내 경찰과 중국계 단지 운영자 사이의 공모로 인해 노예 노동·고문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방치되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경찰이 전국적인 단속에 나서 수천 명을 체포했지만, 관찰자들은 이러한 단속이 일부 하위 관리와 피해자만을 겨냥하고 있을 뿐 단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은 거의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동남아시아 각국은 투자 유치와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특별경제구역(SEZ)을 도입해왔다. 그러나 규제 완화나 사업에 대한 감시의 빈틈은 곧 왕성한 범죄로 이어졌다. 국제 조직범죄 방지 이니셔티브(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톰다 SEZ, 라오스의 골든트라이앵글 SEZ, 필리핀 클락 자유무역지대 등 경제특구들에서 마약·야생동물 밀수·불법 도박·사기가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2021년 기준 동남아시아 SEZ 내에는 340여 개의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돈세탁과 사이버 사기의 기반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라오스·태국·미얀마 국경이 만나는 동남아시아 대륙부 북부의 골든트라이앵글은 2014년경부터 중국계 사업가 자오웨이가 개발해 대규모 카지노 도시로 변모했고, 온라인 도박과 스캠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2024년 라오스 정부는 700명 이상의 외국인을 체포하고 스캠 단지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SEZ를 관리하는 업체가 법과 치안을 장악한 구조에서는 지방정부 공무원조차 단지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일부 단지는 중국의 '일대일로(BRI)' 사업과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예컨대 미얀마 셰콕코의 야타이 뉴시티 개발업체는 이곳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홍보했지만, 중국 대사관은 “공식 BRI와 무관하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프로젝트들은 중국 국영기업이 단지 건설에 참여하는 등 현실적인 연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관리·감독이 부재해 조직범죄의 온상으로 악용됐다.

결과적으로 일대일로 사업은 캄보디아에 중국 자본을 유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매매·도박·마약 비즈니스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였다. 이것들은 일대일로 개발 프로젝트에는 포함되진 않지만,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수많은 투기꾼들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201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 중국 정부의 매춘 및 조직범죄 단속 강화로 인해 이러한 산업들은 필리핀 마닐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미얀마 미야와디 등 동남아시아로 꾸준히 이전했다.

이런 스캠 단지에서 일하는 많은 현지인들은 자발적 혹은 강제적 노동을 하고 있고 "자발적" 노동자조차 감금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처음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임금 체불이나 협박 등 수단을 통해 스캠 단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니 중국이나 대만, 한국에서 온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강제 노동 상태에서 일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시아누크빌 스캠 단지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저널리스트 가오위(高游)는 “자발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지, 무력감, 두려움, 그리고 개인적 욕망이 뒤섞인 모습을 동시에 목격했다”고 회고한다.

시아누크빌의 교외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시아누크빌의 교외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식민 자본주의와 사기 산업

스캠(scam, 사기) 단지가 밀집된 곳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다. 부패와 권력 남용이 만연한 정치적 환경은 위험을 무릅쓰는 투기꾼들을 끌어들인다.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와 원치 않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기반을 상실한 나라들은 어떻게든 자원을 활용해 국가적 부를 축적하려 애쓴다. 가령 몇 년 전 필리핀 정부는 “국민의 생계 유지”를 이유로 중국 정부의 온라인 도박 허가 폐지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중국이 원조해준다는 약속을 해주고서야 도박을 금지했다. 이들 정부들은 ‘우리나라엔 불법 도박 업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캠 단지는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팬데믹 시기 캄보디아에선 관광산업 악화와 도박 금지령의 여파로 실업률이 급증했었다. 그로 인해 캄보디아 당국은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의 현지인 고용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현지의 많은 인력사무소들이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조직범죄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 당국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다보니 오히려 스캠 조직들은 인신매매와 노동자 학대를 더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현지 정부 관료들은 ‘제보’를 받으면 해당 정보를 파견업체 등에 되팔고, 업체들은 피해자들을 다른 업체에 팔아넘겨 구조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가히 ‘노예노동의 산업화’라 할 만하다.

스캠 산업은 괴물처럼 사람과 돈을 흡수하고, 이윤을 벌어들인다. 국제 자금 세탁 조직들은 이들을 위해 자금을 이체하고, 정보 거래업자들은 전 세계에서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끊임없이 팔아넘긴다. 전 세계 인신매매 조직들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비밀리에 보내고, 여행사는 비자와 항공권 예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심지어 현지의 평범한 슈퍼마켓조차 이 사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공급망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든 구성원이 되어 순식간에 범죄 네트워크에 빨려들어갈 수 있다.

온라인 사기가 계속해서 확산되는 상황에서 비난받아야 할 것은 가난이나 낙후, 혹은 개발 추구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개인도 아니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 만연한 권력 남용, 그리고 제지받지 않는 범죄조직 그 자체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권의 최소 기준을 끊임없이 위협하며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집과 존엄성, 심지어 목숨까지 잃고 있다.

지난 가을 이래 많은 한국인들이 이 스캠 단지에 연루되어 고통받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는 가해자가 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겐 뚜렷한 경향성이 보이는데, 바로 ‘경제적 돌파구가 절실한 2030 남성’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성을 갖고 있어 소셜미디어를 통한 구인 광고에 빈번하게 노출되며, 취업난이나 코인/주식 투자 실패로 인한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는 개별화된 욕망이 아니라, 극심한 청년실업과 빈곤, 사회적 고립을 배경으로 한다.

사건이 국내적으로 크게 이슈화되고 나서 얼마 후 여론은 이들을 피해자로 보기보다는 가해자로 규정하고 비난 공세를 퍼붓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 중 일부가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상당하지만, 개인들의 도덕적 결함이나 무지를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들은 체제의 취약성에 노출돼 있으며, 누군가는 이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착취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공권력의 보호와 외교적 해결책도 시급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여기에는 식민주의 역사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긴축 시대의 고통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 우리는 못난 개인들의 고통으로 가득한 잘못에 도덕주의적인 비난의 말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이 끔찍한 식인 자본주의에 맞선 이해와 저항으로 나아가야 한다.

캄보디아 스캠 단지에서 강제 혹은 자발적으로 가담하다가 국내로 이송된 한국 국적 시민들
캄보디아 스캠 단지에서 강제 혹은 자발적으로 가담하다가 국내로 이송된 한국 국적 시민들

참고 자료

  • 「2022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U.S. Department of State, 2022.
  • 「Forced to Scam: Cambodia’s Cyber Slaves」, Al Jazeera, 2022. 7. 15.
  • 「Cambodia: Land in Conflict:An Overview of the Land Situation」, Cambodian Center for Human Rights, 2013.
  • 「Cambodia: Scamming crisis survivors must be protected amid police crackdown」, Amnesty International, 2025. 7. 18.
  • 「Cambodia: Sustaining strong growth for the benefit of all」, World Bank, 2017. 5. 9.
  • 「Compound crime: Cyber scam operations in Southeast Asia」,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2025. 5. 1.
  • Mark Bo, Ivan Franceschini and Ling Li, 『Scam: Inside Southeast Asia's Cybercrime Compounds』, Verso, 2025.
  • 高游, 「柬埔寨網絡詐騙:一條賭博、詐騙、綁架的不歸路?」, 端傳媒, 2022. 8. 23.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