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탄의 일생”이 끝난 후에도 발전소 노동자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2025년 9월 25일
그는 18년 차 화력발전소 노동자이다. 고향 삼천포에서 발전소 노동자였던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레 같은 길을 선택했다. 일하면서 수차례 죽을 뻔한 위험을 겪은 적도 있지만, 늘 전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품고 일했다. 그가 일하는 하동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탑을 타고 전국으로 흐른다. 전기를 안 쓸 일은 없을 테니, 당연히 평생직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하동발전소는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내년 폐쇄를 앞두고 있고, 그의 일터는 곧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발전 HPS 노동조합 박규석 지부장의 이야기다.
기후정의행진을 닷새 앞둔 월요일 저녁, 플랫폼c 사무실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석탄의 일생> 공동체 상영회가 열렸다. 한때 석탄 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국가사업이었다. 광부들에게는 ‘산업 역군’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히 따라붙었다. 그러나 낮은 경제성을 이유로 주 에너지원이 석유로 대체되고,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탄광은 사양 산업이 되었다. 결국 지난 6월, 도계산업소가 폐광하면서 국내 모든 국·공영 탄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탄광은 사라졌지만, 석탄의 일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는 석탄화력발전소 61기가 여전히 가동 중이며, 최근 삼척블루파워 2호기까지 새로 문을 열었다. 한국은 석탄 발전 부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G20 국가 중 상위 2위를 기록할 만큼, 석탄은 여전히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시민 사회는 발전소의 신속한 폐쇄를 원한다. 정부 역시 오는 12월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1기 중 37기를 2038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신규 가동되는 발전소는 정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의 모순을 보여준다. 평생을 석탄과 함께 해온 노동자들은 발전소 폐쇄와 해고의 위기 앞에 당황스럽다. 발전소 노동자들에게는 내일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한 발전노조 조합원은 녹색연합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발전소 폐쇄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당시, 노동자인 자신들이 졸지에 사라져야 할 악당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상했다고. 생각해 보면 충분히 공감 가는 말이다. 발전소는 필수 공익 사업장이라 파업을 해도 최소한의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가 발전소에 의존했고 그곳 노동자들에게 의존했다. 그러나 발전소 폐쇄 이후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미흡한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기후 ‘정의’란 과연 무엇일까. 단지 발전소 스위치를 내리는 것으로 기후 정의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큐를 함께 만든 황인철 927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이자 녹색연합 활동가 또한 기획 초기에는 석탄에 집중했지만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기 위해서는 발전소 노동자의 목소리가 핵심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대체 에너지로 관심을 돌리고 있지만, 발전소를 지역에 집중시키고 수도권이 전력을 소비하는 구조, 그리고 발전소 내부의 비정규직 노동 안전 문제 등 부정의의 모습은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
영화는 녹색연합 이다예 활동가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석탄이 자꾸 힘이 없는 지역들을 파고드는 것처럼 다른 에너지원도 그럴 수 있다고, 결국 이런 불평등 자체가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무엇도 우리가 기후 정의를 향해 나아가면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내일 9월 26일, 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에 들어간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총고용 보장이 이들의 주요 요구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27일, ‘927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기후정의행진이 어느덧 4년째를 맞았다. 기후정의는 단순한 기후 위기 해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후 위기는 불평등의 고리를 타고 흘러 약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공공성 강화를 전제로 한 탈탄소 정책이 시급하다. 기후정의행진의 6대 요구안 중 두 번째가 바로 석탄발전소 폐쇄와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후 위기 앞에서 자주 의문에 빠지곤 한다. 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영화를 보고, 발전소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고친다. 일터를 잃을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 삶의 터전이 훼손되는 지역 주민들, 그리고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선 많은 이들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와 맞서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요구에 동참하는 것. 그것이 기후정의를 향한 길이고 기후정의행진에서 우리가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

글 : 성지언 (플랫폼c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