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7기후정의행진 | 기후정의투쟁의 구심이자 가교임을 보여주다
2025년 9월 30일
9월 27일, 서울 광화문에 3만여 시민이 모여 927기후정의행진을 열었다. 올해 행진은 내란을 몰아낸 광장의 힘을 이어간다고 선언했다. 내란을 진압한 뒤에도 기후재난과 기후부정의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올해도 대규모 산불과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정부는 충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요구에 명확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 경제 성장 신화에 매달린 대규모 개발사업은 멈추지 않고, 화석연료와 핵발전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학살이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무기 수출을 여전히 ‘산업’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국제적 기후행진은 매해 9월 유엔총회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열렸고, 한국에서는 2019년부터 시작되었다. 2022년, 2023년, 2024년에는 각각 3만여 명이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올해 927 기후정의행진은 전국 664개 단체가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부산·대전·제주·청주·산청·완주 6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고, 경남·경북(안동·예천·포항)·대구 등에서도 9월 초부터 행진이 이어졌다. 서울 외 지역에서도 3천여 명이 모여 행진을 벌였으며, 서울 집회에는 지역 참가단들이 버스와 열차를 빌려 상경해 광장을 메웠다.
행사장에는 사전행사로 44개 단체가 운영하는 사전부스로 다양한 기후정의요구를 알렸고, 오픈마이크에서는 스무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야구가 기후악당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 ‘기후위기 시대의 안전과 생명’, ‘일본기후정의활동가들이 말하는 국제연대’, ‘기후정의광장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말하는 이유’, ‘기후위기 해결과 가난한 이들이 공존할 권리’, ‘차별금지법과 기후정의’, ‘‘기후정의와 성평등’, ‘생태 전환 및 기후위기 교육의 중요성’, ‘기후위기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생각’, ‘새,사람 행진단 소개 및 환경착취와 인간중심 개발 반대’ 등 풍부한 발언과 노래, 마당극 등의 공연을 이어갔다. 이번 행진에는 2천여 명이 개인 추진위원으로 참여했고, 언론 칼럼과 인터뷰 등 30건이 넘는 제안이 이어지며 기후정의의 목소리를 더욱 확산시켰다.

기후위기와 민주주의
다섯 번째를 맞은 올해 행진의 광장은, 기후위기와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든 현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본집회는 자원활동가들의 평등약속 낭독으로 시작해 기후정의투쟁이 곧 불평등에 맞서는 싸움임을 드러냈다. 황인철 927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위기는 여전합니다. AI, 반도체, 방위산업 등 성장을 앞세우며 기후정의 실현은 뒷전입니다. 핵발전, 신공항, 각종 개발사업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이어지고, 혐오의 극우정치는 번져갑니다”라고 지적하며, “반지하방과 쪽방촌, 폭염이 몰아치는 논밭과 노동현장,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 지역, 설악산, 새만금, 가덕도, 그리고 저 멀리 팔레스타인 가자까지—투쟁하는 모든 현장이 곧 우리의 광장”이라고 강조했다.
집행위원장의 발언처럼, 올해 행진은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라는 슬로건 아래 폭넓은 6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기후정의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전환 계획 수립, ▲탈핵·탈화석연료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 ▲반도체·AI 산업 육성 및 생태계 파괴 사업 재검토, ▲모든 생명의 존엄과 기본권 보장 및 사회공공성 강화, ▲농업·농민 지속가능성 보장과 먹거리 기본권 수립, ▲전쟁과 학살 종식,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수출 중단까지, 요구는 기후정의를 중심으로 촘촘히 엮였다.
기후재난의 현장의 목소리도 힘 있게 울려 퍼졌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농민들은 예측할 수 없는 기후재난에 노심초사하며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없는 세상에서 당당히 농사짓고 싶다”며 기후정의 실현이 “우리가 넘어야 할 또 다른 남태령”임을 말했다. 이윤정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 쿠팡CFS지부장은 “존엄한 삶은 안전한 일터에서 시작된다”며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을 규탄했고, 박치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HPS지부 부산지회장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며 정의로운 전환의 출발점으로 공공재생에너지를 강조했다.

이어진 공연에서는 9월 기후정의행진을 기념해 9개 합창단이 모여 이룬 99인의 기후정의합창단이 무대에 섰다. 합창단은 광장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듯한 <다시 만난 세계>와, “세상이 어둡고 너무나 아프고 답답해도, 나는 눈을 감지 않고 마주할 거야. 내 평범한 하루로 세상을 바꿀래”라는 가사로 참가자들의 마음을 울린 <우리의 하루>를 열창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전쟁과 기후위기
2부에서, 이이자희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활동가는 “케이블카, 산악열차, 리조트, 소형공항까지 법과 절차를 바꿔가며 정부가 국립공원에 대규모 개발을 허가하고 있다”며 국립공원 파괴를 강하게 규탄했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은 매년 50만 톤이 넘는 유해화학물질을 쓰고 수천 톤의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며, “반도체 산업이 약속해야 할 것은 이윤이 아니라 기후정의”라고 말하며 대기업 중심 산업 육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나 팔레스타인긴급행동 활동가는 2년 간 가자지구에서 인간에 대한 대규모 집단학살이 이어진 데 더해 “동물을 살해하고, 수천 년 된 올리브 나무들을 뿌리째 뽑고 불태우고, 토양과 공기를 폭탄으로 오염”시키는 ‘생태학살’까지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의 주범들이 기후 파괴 주범들과 완전히 같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기후정의를 함께 이루자”고 외쳤다.
이날 시민투표로 뽑은 ‘올해의 기후정의 걸림돌’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국토교통부, 오세훈 서울시장, GMO 기업 몬산토, 이스라엘 정부였다. 특히 가자지구 불법점령과 학살, 기후파괴를 동시에 자행하는 기후악당 이스라엘 정부는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3부에서는 기후정책을 둘러싼 쟁점도 제기되었다. 한수연 플랜1.5 활동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 65% 감축하는 목표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며 “끝까지 요구하고, 끝까지 이뤄내자”고 촉구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는 핵발전이 윤석열 불법 계엄 선포의 이유가 되기도 했음을 상기시키며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도, 신규 건설도, 돈만 잡아먹는 SMR도 멈춰야 한다. 그것이 진짜 실용이고 민주주의이며 기후정의”라고 발언했다.
차별에 맞선 목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가 있거나 아픈 몸들에게 재난의 위협은 익숙하게 일어난다”며, “느린 몸은 성장과 속도, 자본주의 사회와 불화한다. 이 불화의 감각이야말로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와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서로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행진하자”고 호소했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행진을 앞두고 노동계·지역·대학 등 다양한 단체와 33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그 결과 6대 핵심 요구와 관련한 기자회견과 행동이 사전에 전국 곳곳에서 14회 이상 진행됐고, 당일에도 6개 이상의 사전 집회가 열렸다. 이러한 준비가 본집회 발언을 풍성하 게 한 힘이었다.
본집회를 마무리하며 발표된 선언문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는 청년·청소년, 이주민, 지역민, 여성, 종교인 등 기후위기 당사자 12명이 함께 낭독했다.이어 참여자들은 가수 ‘느린’과 함께 “기후위기와 민주주의, 불평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2025 기후정의송〉을 부르며 행진을 시작했다. 거리 행진은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출발해 종각역–을지로입구역–서울시청을 거쳐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진행되었고, 곳곳 여섯 개 거점에서는 6대 요구를 드러내는 단체들의 행동과 기후정의 요구를 상징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
행진을 마무리하고 동십자각 광장으로 돌아와 열린 정리집회는 우리가 지향하는 광장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는 “기후정의는 이 가장 취약해 보이는 존재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활동가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우리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기후정의의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은혜 927 기후정의행진 공동 집행위원장은 “우리의 기후정의는 집, 에너지, 먹거리, 교육, 의료, 교통—삶의 최소 조건을 모두의 권리로 만드는 투쟁에서 시작한다”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사람들, 흔하디 흔한 존재들을 위해 싸우는 바로 우리, 우리가 광장”이라고 선언했다.
927 기후정의행진은 노동과 생존, 민주주의와 평등, 공공성과 국제연대, 그리고 취약한 존재들의 존엄을 잇는 기후정의투쟁의 구심이자 가교로써의 역할을 보여주는 활력 있고 진중한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