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 이후 열두 명의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었다
2025년 8월 25일
오는 8월 27일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다.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기 위해서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로 인해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었고, 정부는 해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7년 뒤 같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 김충현이 숨졌다. 김용균 이후, 김충현을 포함해 12명의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해결된 것은 무엇인가.
문제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올해 12월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이루어지는 석탄화력발전소 연쇄 폐쇄는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다. 폐쇄 예정이라는 이유로 발전소 및 협력업체들이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발전소 노동자들이 끝없이 일터의 위험과 고용 불안으로 내몰리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없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 계속된 투쟁에 나선 이유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 24일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안전 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위험의 외주화
첫 발제는 법무법인 두율의 김하나 변호사가 맡았다. 3년 전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인 한전KPS를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걸었다. 얼마 뒤인 8월 28일 1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8월 21일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중단 직접고용 쟁취”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첫 발제에서는 한전KPS가 ‘불법파견’을 자행한 근거들을 중점적으로 담았다.
태안화력발전소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정비업무를 하도급하였고, 그중 일부를 한전KPS는 다시 한국파워O&M, 삼신 등 협력업체에 재하도급하였다. 화력발전소는 고위험 작업이 상시 이뤄지는데, 다단계 하청구조 속 더 아래 하청 노동자일수록 더 위험하다. 원∙하청 간에 안전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져서 결국 어떤 사용자도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원래 명확해야 할 안전관리 주체가 모호해지는 원인은 “불법파견”이다. 한전KPS와 그의 하청인 협력업체는 형식 상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파견’ 관계를 형성했다. 만약 원청과 하청이 맺은 계약이 도급이라면, 하청업체는 원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원청업체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 등을 한다면 노동자파견 관계가 된다.
우선 한전KPS로부터 협력업체는 독립적이지 않았기에, ‘도급’계약 위반이다. 협력업체가 빈번히 변해도 노동자의 고용은 유지되었고, 한전KPS가 하청 노동자에게 장비와 도구를 제공했으며, 한전KPS의 필요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은 수시로 도급계약 범위를 벗어난 일을 해야 했다. 고(故) 김충현 노동자가 수행한 선반업무도 계약 범위 이외의 일이었다.

더하여 한전KPS와 하청업체는 ‘노동자파견’ 관계다. 그 여부를 판가름하는 4가지 기준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첫째, 문자와 카카오톡 등 한전KPS는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상 상당한 지휘나 명령을 했다. 둘째, 한전KPS 노동자들과 하청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뤄 업무를 수행했다. 셋째, 한전KPS가 실질적으로 인사와 노무에 권한을 행사했다. 약 14차례 넘게 협력업체는 변경되었는데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 계약은 유지되었다. 넷째, 협력업체가 특정 전문성이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전KPS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으며 동일하게 일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임금은 낮고 업무 위험도는 높았다. 한편 불법파견으로 원청업체인 한전KPS는 비용을 절감하고, 하청업체는 중간착취로 돈을 벌며 이득을 얻었다.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한전KPS는 법적으로 하청 노동자 정규직 고용할 의무가 있다. 최대한 빨리 이행하는 게 지금까지 기형적으로 이뤄졌던 도급 계약을 바로잡는 길이다.
“불법파견”은 이번 산재사망에서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사업장에서 수많은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왜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청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에,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은 다단계 하청구조의 근본적 한계이며, 화력발전소에서 반복 되는 산재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한전KPS는 하청노동자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왜 발전소는 여전히 위험한가
두 번째 발제는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이 맡았다. 2018년 김용균의 죽음 이후 다단계 하청 구조의 문제, 위험의 외주화, 중간착취 등은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국무총리가 나서서 훈령을 발표하며 모든 문제가 곧 해결될 거라는 기대도 컸다. 그런데 왜, 화력발전소는 여전히 위험한가. 김용균이 사망한 뒤 화력발전소에서 11명이 사고사망하고, 발전소 폐쇄를 비관하며 1명이 자살했으며, 원청 갑질에 항의하며 1명이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가 실현되지 않은 점을 짚는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이행은 정부의 몫”이라며 김용균 특조위를 이행점검 기구에서 배제했다. 노동안전을 위한 정규직화, 한전 KPS 2차 하청 참여, 하청의 노무비 착복 금지 등 중요한 권고들이 시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용균 3주기인 2021년 이행점검은 종료되었다. 그러는 사이 발전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목숨을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터의 차별과 위 험은 더 커졌다.
우선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1인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정규직화가 실행되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권고였다. 고용과 안전은 상호 연관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이 외부화될 때 위험도 외부화되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안전 대책으로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2019년 정부는 권고1에 동의한다면서도, “민간정비사의 파산 및 상장회사의 주주 반발”을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2021년 정규직화가 아닌 3년 계약 기간을 6년 늘리는 방안으로 고용안전대책이 수정되었다. 정부는 실질적 고용대책은 배제한 채 기술적 안전조치만 강화해 온 셈이다.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실은 정부 방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특조위 권고 이행에서 한전 KPS 2차 하청 노동자들이 배제됐다. 2021년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1년 이하 단위로 쪼개기 계약, 노무비 착복 문제 등이 드러났다. 하지만 발전노동자의 고용안전과 처우개선을 위한 노사전 협의체가 2차 하청 노동자 대표의 참여 없이 이루어졌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 가장 취약한 2차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위험과 중간착취는 더 악화되었고, 발전소 폐쇄 시에는 맨 먼저 해고되었다.
더구나 특조위의 ‘노무비 착복 금지 권고’는 이행 과정에서 왜곡됐다. 특조위는 노동자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낙찰이 아닌 직접 제공을 권고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발전소 업무량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기준은 미세먼지와 주말 가동 정지를 공량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다. 사실 이는 원청의 사정이기 때문에 노무비 삭감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기준에 따라 공량이 줄어들어 노무비가 삭감되었다. 이로 인해 1차 하청은 안전을 위한 인력을, 2차 하청은 실질임금을 줄였다.
두 번째 발제를 마치며, 전주희 연구원은 이재명 정부와 김충현 협의체의 과제를 세 가지 제시했다. 첫째,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를 다시 되살려야 한다. 안전을 위한 직접고용 정규직화 실현이 필요하다. 둘째, 2차 하청노동자들의 고용과 안전 대책 마련이 우선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발전소 폐쇄에 앞서 2차 하청 노동자 고용대책이 시급한 마련이 중요하다. 셋째, ‘김충현 협의체’의 이행은 ‘김용균 특조위’의 이행과 달라야 한다. 권고안에 대한 기계적이고 협소한 이행이 아닌, 포괄적인 협의와 해결이 이뤄져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세 번째 발제는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 맡았다. 올해 12월부터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이뤄지는 전국 석탄발전소 연쇄 폐쇄를 구실로 삼아, 발전사 및 협력업체들은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았다. 이는 고 김충현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나아가 폐쇄가 진행되면 현재 각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 상실 위협은 더 크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거나 희생되지 않도록 하자는 요구다. 그러나 현재 예정된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해 발전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 불안하고 위험해졌다. 세 번째 발제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석탄화력에서 해상풍력 발전으로 일자리 전환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가스나 태양광보다 일자리 창출 수가 크다. 그렇기에 석탄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 대책 모색 시 해상풍력을 우선적으로 주목 가능하다. 해상풍력에 의한 고용은 계획/관리, 제작, 건설/설치, 운영/관리, 해체 부문에 나눠서 창출된다. 이때 제작 및 건설/설치 분야가 가장 많은 고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운영/관리도 상당한 고용을 필요로 하기에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
석탄발전소에서 해상풍력 사업으로 ‘고용전환’ 시나리오를 크게 두 가지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1은 탐라해상풍력의 경험에 기초한다. 2028년 120명의 인력을 필요로 하기 시작해서, 2032년까지 2,458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될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1998명으로 추정되는 것과 비교하면,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된다. 오히려 신규 일자리가 460개 더 만들어진다.
시나리오2는 해외 연구에 기초한다. 2028년 78명의 인력을 필요로 하기 시작해서, 2030년까지 1601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자리를 잃게 될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보다 적다. 부족한 일자리 수는 397개이기에 추가적인 해상풍력단지 개발과 같은 대책이 요청된다. 2036년 이후 추가적으로 폐쇄될 나머지 석탄발전소에서 일자리를 잃을 발전노동자를 고려하면 더욱 필요한 대책이다.
한재각 기후동맹 집행위원은 5가지 제안으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첫째, 최소한 10GW 규모의 해상풍력사업을 조속히 추가 계획하여 추진해야 한다. 둘째, 2031년 말까지의 ‘시간적 불일치’ 시기는 2년 간의 교육훈련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셋째, 본격적인 해상풍력사업 확대에 필요한 인력의 확보 및 교육훈련 대책이 필요하다. 넷째, 재생에너지 사업 전환 시 발전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자. 다섯째,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세 발제를 마친 뒤 토론이 이어졌다.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 지회장은 불평등 해소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안전과 고용을 연관성을 밝히며, 한전KPS 노동자의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되어야 함을 명확히 했다. 마지막으로 여형범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상풍력 발전소가 어떤 일자리인지, 일자리 전환의 요구가 현실성 있는지 등 구체적인 질문들 을 던졌다.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직후에는 태안에서 추모제를 이어갔고, 7월부터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매주 목요일 집회를 여는 등 상경투쟁을 지속했다. 또 앞서 말했듯 8월 21일부터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농성 중이다. 8월 27일에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에 돌입한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싸우고 있지만, 이 투쟁은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다. 누구나 쓰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이제는 멈추기 위한 싸움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라는 외침이다. 심화되는 기후위기 속 노동자의 희생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라는 요구다.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한다.
글 : 하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