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의 화려한 네온사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가르는 바다인 빅토리아 하버와 명품 거리. 밤새 켜져 있는 서울의 불빛들과 한강의 야경. 오늘날의 동아시아 도시들은 성공적인 도시화의 모델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층 빌딩, 빠른 지하철, 국제적 자본의 흐름 속에 도시의 외형은 세련되고 화려해져 간다. 그런데 이윤을 위해 폭주하는 도시 속 화려함의 이면에는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에서 내쫓기는 홈리스들
홍콩 거리에서 홈리스들은 나무판자로 거처를 마련해 두고 산다. 겨울엔 판자의 틈을 꼼꼼히 메우고 여름에는 환기가 되도록 창문을 만든다. 간이침대를 가져다 두거나 냉장고, 선풍기 등 가전을 가져다 놓는 일도 있다. 청소한다는 공문이 붙으면 홈리스들은 자신의 집을 철거하고 하루 이틀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주일에 걸쳐 다시 집을 만든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짐을 치운 자리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다시는 그곳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홍콩의 홈리스 육쿠엔은 “바리케이드는 홈리스들에게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말한다. 그곳은 공공공간이라 모든 시민이 사용할 수 있음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속절없이 내쫓긴다.
2019년 진압경찰과 청소부가 개인 소지품을 버린 사건에 대해 홈리스 14명과 활동가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판사는 노숙자들이 해당 물품의 소유권을 주장할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결해 당사자들은 겨우 17,000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다. 약 3년의 재판 동안 14명 중 2명은 사망하고 4명은 연락이 끊겼다. 2019년 홍콩 항쟁 이후 2020년 국가보안법이 통과되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의 목소리가 탄압당하고 있는 지금, 무자비한 권력과 맞서 싸우기는 더 힘들어졌다.

거리가 아니어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홍콩 신분증이 있는 거리 홈리스들은 원한다면 최대 체류 기간이 6개월인 호스텔로 갈 수 있다. 한 공간에 2층 침대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호스텔에서 머물다가 자리가 나면 2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도시 외곽 지역의 임시주택으로 이동한다. 임시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들어가면 가장 좋겠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공공임대주택의 대기자로 들어갈 수 없다면 속절없이 다시 거리로 돌아오게 된다. 임시주택은 작은 원룸처럼 생긴 방인데, 그곳에 입주한 홈리스 중 30%가 다시 거리로 나온다. 당사자들의 중요한 사회적 네트워크는 도심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임시주택에 입주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고, 음식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마련된 적정한 집이 필요하다.
거리에서 생활하지 않더라도 환경이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홍콩에는 대표적으로 3가지 비적정 주거가 있다. 하나는 한국의 쪽방과 비슷하게 기존의 방을 임시 벽을 세워 나눠놓은 것이다. 한국은 쪽방이 쪽방촌으로 모여있는 데에 반해, 홍콩에서는 쪽방이 흔한 저렴 주거지로 인식된다. 다른 하나는 관짝집으로,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가 전부인 방이다. 침대만 한 크기의 방이 2층으로 쌓여, 한 공간에 11개 정도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또 하나는 철창집이다. 관짝집은 벽이 가벽이지만, 철창집은 엉성하게 벽을 철창으로 나눠놓은 것이 특징이다. 감옥보다도 열악한 집이지만, 심각한 주택난으로 인해 0.295평 크기의 관짝집 평균 침실 비용은 44만 1천원에 달한다.
기득권의 입맛에 맞추는 홍콩 정부
홍콩의 집값은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홍콩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화 기준 월 325만원 이상의 임대료를 내고 있는데, 이는 가구당 평균소득의 70% 이상이다. 또 홍콩 인구의 5분의 1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이 심각한 불평등은 공공복지보다 기득권에 맞춘 정책에서 비롯된다. 홍콩 정부는 자유방임주의에 기반한 경제 운영 방식을 고수하며,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사회지출 축소 등을 통해 금융 및 부동산 산업에 부를 집중시키고, 계층 간 격차를 심화시켜 왔다. 홍콩 정부가 공공복지에 쓰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6% 뿐이다.
작년 말 홍콩 존 리 행정장관이 정책연설에서 2.42평 미만인 쪽방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방에 창문과 화장실을 갖추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공식 자료에 따르면 홍콩에는 10만 8,200세대의 쪽방이 존재한다. 겉보기에는 적정 주거를 마련하는 좋은 법안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임대료 규제나 재정착 계획이 전무하다. 쪽방을 리모델링하면서 자연스레 비싸지는 임대료도 거주민이 감당해야 한다.
법안을 발표한 존 리 행정장관은 “우리는 단지 규제를 통해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수준의 아파트가 공급되도록 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집을 그저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만 보는 정부의 작태를 증명하는 발언이다. 이에 홍콩의 한 쪽방주민협회는 초기 임대료 상한선, 재정착 임대료 보조금, 그리고 공공주택에 대기하지 않는 사람과 홍콩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을 포함한 포괄적 재정착 계획을 요구했다.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있을수록 함께 생존할 수 있다. 도시 외곽의 임시주택이나 쪽방 규제보다 더 필요한 것은 원래 살던 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과 적정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공공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이다. 서울역 옆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주택사업의 추진을 촉구하면서 요구하는 것과 아주 맞닿아있다.
동아시아 반빈곤 연대 운동 단체들끼리 교류하는 행사들이 간혹 있다. 어느 대만 홈리스 당사자 단체에서 홍콩의 단체와 한국의 아랫마을에 천으로 된 포스터를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으니 이 도시는 우리에게 더 친절해야 한다.’
이 도시를 일궈오고 관계를 맺고 다져온 것은 부자들도 아니고 권력을 쥔 정부도, 홈리스의 소지품을 몽땅 들고 가버릴 힘이 있는 공무원도 아닌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이니, 우리를 밀어내며 폭주하는 이 체제에 저항하자.
이경희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