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관세 인상 협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맞설 것인가?
2025년 8월 3일
아메리칸 퍼스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압박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로 집약되는 트럼프주의는 이미 그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2016년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중국, 멕시코 등과의 무역 불균형을 강력히 비판하며, “불공정”한 계약을 재협상하고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 을 천명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등의 엄포를 놓았고, ‘신냉전’ 담론이 범람하듯 우리의 언어세계를 매웠다.
이듬해 대통령 취임 후 트럼프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하며,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특히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명령했고, 같은 해 8월엔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이후 이는 대중국 관세의 법적 근거가 된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세탁기·태양광 패널·철강·알루미늄에 관세가 부과되면서 보호무역 조치가 시작됐고, 2018년 중반부터 2019년 사이 중국과 보복 조치를 주고 받으며 무역분쟁을 격화시켰다.
이제는 더 이상 미-중 관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9년 유럽연합·일본·한국 등에 대해 자동차(부품)에 대한 추가 관세(무역확장법 232조) 부과를 경고하며 압박했고, 이것이 지렛대가 돼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과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타결됐다. 그러나 이 역시 전초전에 불과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미흡한 대응과 트럼프 본인의 극단적이고 분열적 리더십으로 인해 민주당에 패배했다. 하지만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대변자 조 바이든에겐 트럼프주의의 대안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듯, 트럼프 1기 이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가 부과한 대중국 관세를 대부분 유지했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국내 산업보호’와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초당적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관세’는 수단일 뿐이었다. 관세 인상 압박은 무역을 넘어 외교안보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됐고, 기존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흔들었다.
지난 1월 20일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존의 국제질서를 뒤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관세를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다. WTO를 통한 분쟁 해결 기제는 무시됐고, 중국을 향해선 막대한 관세를 부과했다. 한데 중국 정부가 꽤나 준비된 듯 차가운 대응으로 반격을 펼치자, 일시적으로 휴전하고 대신 다른 우방국 및 주요 무역 대상국들에 관세 인상 압박을 가하는 양상으로 변모했다.

충격과 공포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압도적인 경제력(달러 패권과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을 바탕으로 한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전략에 기반한다. 다른 국가들에게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뒤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여 대규모 투자나 구매 약속을 받아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미국은 상호 관세율의 최저선을 15%로 언급해왔는데, 대미 무역 흑자국이자 동맹국들과의 합의에서 실제로 이 수준이 적용되는 모습이다. (이 15%는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을 감안해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트럼프는 일본 및 유럽연합과의 협상 과정에서 25% 수준의 인상율을 예고해 ‘충격’을 선사하고, 협상 과정에서 관세율 인하의 대가로 막대한 규모의 투자와 구매를 약속받는 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는 5,500억 달러(약 758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보잉 항공기 100대, 80억 달러 상당의 농산물 구매(미국산 쌀 수입 75% 증대 포함)를, 유럽연합으로부터는 3년간 7,500억 달러(약 1,040조 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와 6,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받았다.
물론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디테일까지 합의하진 않아 모호성을 남겨두고 있기도 하다. 가령 EU의 에너지 구매는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대체 계획의 일부였기에, 실질적인 추가 부담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약속 역시 ‘즉시 이행’이 아니기에 수년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자국내에서 떵떵거리며 자랑할 액수 자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으름장은 꽤나 먹히는 모습이다.
요컨대 관세 부과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국으로부터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무역 적자 해소와 자국 제조업 생산 증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있다. 트럼프는 대규모의 투자 및 구매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자신이 위협했던 관세율을 낮추는 데 합의했고, 그 성과를 자국민들에 생색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국-미국 관세 협상의 쟁점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까지 관세 협상 타결에 다다르자, 지연되고 있던 한국의 관세협상에 대한 압력도 점차 높아졌다. 트럼프는 8월 1일(금)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한국에게 25%의 상호관세를 발효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한국 같은 경우, 기존 한미 FTA로 인해 자동차에 대한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었으므로, 15%의 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 소비시장에서 자동차산업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산 자동차 대비 가격 관세 우위가 사라진다. 미국 내 자동차 수요의 약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산 자동차 입장에서 가장 큰 수출시장이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결국 미국 소비자들은 소비를 미루거나 일본이나 유럽산 자동차를 구매할 것이다.
한국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있는 트럼프는 관세율 인하의 대가로 대규모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에너지 포함) 구매를 약속받으려 했다. 이를 알고 있는 한국 협상단은 기업들을 통한 1,000억 달러 이상의 대미 직접투자·수백억 달러 규모의 조선업 투자·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 등을 카드로 제시했다. 이를테면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에 착안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라는 이름의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7월 31일 아침(한국 시간),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한-미 간 관세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상호관세 15%로 일본 및 유럽연합과 동일.
- 자동차 품목관세는 15%로 일본·유럽과 동일. 단, 한국 자동차의 기존 세율이 0%였기 때문에, 2.5%에서 15%가 된 일본·유럽의 실질관세와 같아졌고, 기존의 관세 우위 상실.
- 경제안보 분야 2000억 달러(약 279조원) 규모 대미투자펀드 조성. 이 규모는 작년 한국 국내총생산의 약 20% 수준. 그러나 실제 지분 투자금 외에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 및 보증 금액까지 모두 포함해 계산. 펀드 수익 90%는 미국에 재투자하며, 이런 성격은 일본의 대미투자와 동일.
-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에 걸친 1500억 달러(약 209조원) 규모 투자.
- 향후 3년 반 동안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1000억 달러(약 139조원) 구매.
- 쌀과 소고기는 추가 개방하지 않으며,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에 대해선 최혜국 대우.
이상의 협상 결과에 대한 언론과 시장의 반응은 ‘선방했다’는 평가와 ‘한탄’이 뒤섞여 있다. GDP 규모 대비 지나치게 많은 투자금액과 자동차품목 실질관세 등에 있어선 다소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많다. 트럼프는 협상 결과에 대해, “향후 2주 내에 이재명 대통령이 양자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할 때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단, 트럼프와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이 쌀시장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는 상이한 해석을 발표해, 향후 세부 협상 과정이나 협정 날인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이미 농축산물 시장의 99.7%가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0.3%에 대해 더 개방하는 것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협상 타결 전 일각에선 일본 및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트럼프식 협상 패턴’이 어느 정도 읽혔으므로 미국의 압박에 지나치게 주눅 들 필요가 없고, 계속 버티면서 실속 있는 협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점 역시 국내 자본을 위한 이익을 우선시할 뿐,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문제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관세가 오르면 당연히 해당 수입제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한국의 기업들은 대미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 가격을 낮추거나,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혹은, 기존의 습관대로 관세에 따른 부담을 협력업체에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이는 2·3차 벤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경제활동의 전반적인 둔화로 이어질 수 있고, 해외법인 수익이 거의 돌아오지 않아 환율 상승이나 내수 침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미국 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활동 둔화와 소비 위축은 ‘수요 감소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역사적으로도 보호무역이 심화될 때마다 장기적으로 성장을 둔화시키고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소비자들이 구매를 미루게 만든다. 이는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투자를 위축시키며 고용을 축소한다. 줄어든 소득과 일자리 불안은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물가가 하락하면 화폐의 실질 가치가 오르고, 이는 곧 기업과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을 뜻한다. 금융기관들의 위험 회피 경향이 강해지면 신용을 경색시키고(대출 감소), 기업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은 전 세계적인 수요 부족(과잉생산)을 심화하고 다른 국가들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확산시킬 수 있다.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국가부도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각국은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겠지만, 그럴수록 갈등은 훨씬 심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채가 많은 남반구 개발도상국에게 치명적이다. 궁극적으로 트럼프발 관세 인상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혼돈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7말8초 미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현상은 높은 관세율로 인한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부담이다. 2024년 6월 기준 미국 주요 도시의 감자칩 평균 가격은 4년 전 대비 약 29% 인상됐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와 우유, 치즈 등 유제품 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랐고, 인건비 상승도 마찬가지다.
일부 품목 관세가 조정되거나 면제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핵심적인 품목과 산업에 대한 고관세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철강, 알루미늄 등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분야에서는 일부 생산 증가와 고용 유지가 이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저렴한 수입품에 의존해왔던 중소기업들은 관세 폭탄을 맞고 도산 위기에 처하거나, 생산 비용 증가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대중국 관세는 미국 내 전자제품, 의류 등 소비재 수입업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며, 관련 유통 및 소매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특정 지역의 실업률 상승과 고용시장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친정부 성향 언론들은 "25% → 15%로 선방"했다는 협상단의 활약 서사를 쏟아내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투자규모가 너무 막대"한데다 "자동차를 못 지켰다"며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서로 반대편에서 평가하는 듯하지만, '국가/자본'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어떻게 봐야할까? 국가 간 무역분쟁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이며, 이때 우린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무역분쟁은 계급투쟁
오늘날 세계적 혼돈을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면 주류적이고 매번 예측이 어긋나는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역분쟁은 겉으로는 국가 간에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국적에 관계없이 노동자민중과 엘리트 간 갈등, 즉 계급투쟁에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무역 정책은 금융 부문과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무제한적인 자본의 이동과 해외투자에 대한 엄격한 보호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그 혜택을 자본가들의 이윤으로 연결했다. 글로벌 무역과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초국적 자본은 대외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형성하기 위해 로비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초과 착취’와 ‘규제 공백’에 기대 시장을 지배했다. 글로벌 가치사슬(GVC) 하에서 초국적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마음대로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하고, 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통해 노동자계급 내 분열을 자신들의 이윤 증대를 위해 악용한다. 이러한 초과 착취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선진국에서는 일자리 상실과 임금 정체를, 개발도상국에서는 불안정 노동의 고착화를 낳는다.
저렴한 노동력과 규제가 사라진 국가로의 생산기지 이전과 글로벌 공급망은 노동자민중에게는 임금 정체와 일자리 상실, 불안정 노동, 가계부채 증가로 돌아왔다. 불평등의 심화는 각국 내 계급투쟁을 부추겼고, 이는 다시 무역분쟁을 포함한 대외 경제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 런 점에서 미-중 무역분쟁은 “파멸적인 자본주의 체제” 내 “제국주의 강도들”이 벌인 투쟁이다. 표면상으로 이는 국가 간 경쟁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만성적 과잉생산과 미국의 ‘부채 문제 + 달러 패권 약화’의 지속불가능성 때문이다. 즉,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근원적 모순을 반영한다. 양국 정부는 자국의 밑바닥 민중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국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행동해왔다. 이는 한국의 거대 양당이 공유하는 신자유주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무역분쟁은 “각국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부유층과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국내 정치적 선택의 예상치 못한 결과”(Klein & Pettis)의 표현일 따름이다.
실제 신자유주의적 드라이브가 강화되던 시기 미국의 국내 정책은 기업의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에 집중해왔다. 정부는 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기업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생산 설비를 자동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투자하고, 노동 유연화와 경쟁 심화, 노조 탄압을 통해 임금을 억제한다. 이것이 높은 생산성과 소비력 둔화로 이어지자, ‘과잉생산’이 심화됐고,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이 오면 기업 구제나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반복됐다. 또,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땐 정부가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부실한 금융기관을 구제해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 부채는 급증하고, 이익은 사유화되며, 손실은 사회화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무능한지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지금 시기 트럼프의 무역분쟁은 미국의 지배계급이 자 기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관세 부과와 무역 우위, 리쇼어링을 통해 국내의 경제 압력을 완화하고, 대신 전 세계 민중의 생존권과 안정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웃 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은 무역분쟁이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이나 시장 접근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내 계급투쟁의 긴장을 관리하고, 자본주의 위기의 비용을 다른 국가들이나 세계 노동자민중의 특정 부문에 전가한다.
요컨대 무역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대립이 아니라, 각국 자본(대기업, 다국적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된 결과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는 특정 자국 산업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더 큰 이윤을 확보하려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무역분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생산 단가 상승, 시장 위축, 공급망 교란 등에 따른 비용은 결국 노동자민중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임금 삭감, 고용 불안정, 노동 조건 악화 등을 추진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갖고 전반적인 지출 감소를 통한 생활 위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호무역 조치로 혜택을 받는 특정 산업의 대기업이나 자국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자본은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단기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혜국대우’를 합의한 반도체업계의 경우 반사적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고, 이는 삼성전자 주가 상승이나 수익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 민중의 이익과는 무관하다.

중국·독일·일본 같은 ‘잉여 국가(과잉저축)’와 전 세계 과잉 생산물의 흡수자인 미국의 양상은 다르다. 잉여 국가들에서는 부유층과 그들이 지배하는 기업으로의 대규모 소득 이전이 발생하고,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매력을 박탈(저소비)한다. 잉여 국가들은 국내 투자를 위해 소비 억제 + 고저축 모델을 채택하는데, 자연스레 이는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나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화를 필요로 한다. 기업과 정부로의 부의 이전을 통해 기업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19세 영국, 20세기 소련, 전후 한국·중국·일본이 그 예다. 국내 소비가 억제되고 생산능력이 증폭됨에 따라, 이들의 잉여 생산물은 해외 수출의 확대를 꿈꾸고, 이는 지속적인 무역 흑자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 과잉생산물의 처리장이다. 미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갖는 특권은 역설적으로 미국에게 부담이기도 하다. 미국 외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은 통화 정책과 외환보유액 축적을 통해 자국 내 소비를 억제하면서, 자국 통화를 발행해 달러를 축적한다. 이는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상대적으로 늘리고,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달러 가치 하락은 미국의 수입 물가를 높이는데, 왜냐하면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미국 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제조업을 위축시키거나 주택 버블과 같은 부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미국 내 일부 일자리 손실과 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인 벤 버냉키(Ben Bernanke) 역시 아시아 신흥국과 산유국들의 높은 저축률과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으로 유입되어 장기 금리를 낮추고 미국 내 소비와 주택 버블을 부추겼다고 지적한 바 있다(글로벌 저축 과잉). 이때 경상수지 흑자는 해외로부터의 금융 유입을 야기하며, 정부의 예산 조정은 국내 부문 간 저축 배분에 영향을 미칠 뿐 전체 저축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국가 간의 양자 무역 적자 수치는 전체적인 국제수지 불균형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오해만 낳아왔다. 중요한 것은 개별 양자의 관계가 아니라, ‘전반적인 글로벌 불균형의 역학’, 특히 ‘금융 부문’을 주목하는 것에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실제 부가가치 창출이 일어난 곳이 아닌, 세금 부담이 낮은 조세 회피처(tax haven)에 자회사 형태로 법인을 설립하여 이윤을 보고한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의 아일랜드 자회사는 직원 급여 1달러당 8달러의 세전 이익을 보고하는 반면, 미국 내 본사는 급여 1달러당 40센트 미만의 이익을 보고하기도 한다. 이는 대부분의 가치 창출이 미국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은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는 조세 회피처 자회사에서 보고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