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 팔레스타인과 연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세 여성
2025년 7월 16일
최근 싱가포르에서 모삼마드 소비쿤 나하르(26세), 아미라 모하메드 아스로리(30세), 아나말라이 코킬라 파르바티(36세) 등 ‘Students for Palestine Singapore’ 소속 여성 활동가 셋이 허가 없이 싱가포르 대통령 집무실 ‘이스타나’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행진을 조직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세 활동가들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나, 판결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세 활동가는 지난 2024년 2월 2일 정부당국의 허가 없이 대통령 집무실 건물 인근에서 행진을 조직하고, 수박무늬(팔레스타인 연대의 의미) 우산을 든 약 70명의 시민들을 이끌고 행진했다는 혐의로 싱가포르의 공공질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오후 2시, 70 여 명의 시민들은 오차드 로드에 모여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행진했다. 열흘 후 싱가포르 경찰은 이 행진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수사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기소한 사건은 또 있다. 같은날 저녁 7시30분 열린 비공개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라고 외치자, 다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Palestine will be free)라고 외쳤는데, 이렇게 외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유포했다는 것을 혐의로 두고 기소했다. 이 구호가 “이스라엘 국가 파괴를 촉구”하는 내용이며, “싱가포르 사회에 인종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어 “형법 298A조에 따라 처벌된다”는 것이다. 터무니 없지만, 싱가포르에는 이런 수준의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읽기: 정치적 자유를 위한 싱가포르인들의 외침
싱가포르에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없다. 단, 예외적으로 홍림공원(Hong Lim Park) 내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에서는 특정 조건 하에 집회 및 시위를 허용하고 있다. 본래는 공개 연설만 허용됐으나, 2004년부터는 공연 및 전시가 허용됐고, 2008년에는 싱가포르 시민이 주최하는 시위도 경찰 허가 없이 가능하도록 규제가 완화됐다. 단, 시민권을 가진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고, 외국인은 참여가 불가능하다. 이를 어길 시 비자나 노동 허가증 취소 등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더구나 모든 것은 이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 연대 행진을 둘러싼 이번 재판은 매우 의미있다.

사실 이날 행진에 함께 한 70여 명의 참가자들은 단지 우산을 들고 행진만 한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를 향해 5개의 요구를 내걸었다.
- 1. 이스라엘산 무기 구매를 중단하라!
- 2.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기관의 협력을 중단하라!
- 3. 이스라엘과의 모든 외교 관계를 중단하라!
- 4. 미국이 주도하는 홍해 공격 참여를 중단하라!
- 5.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를 중단하라!
법정 투쟁은 지난해(2024년) 가을부터 본격화됐다. 9월 18일 열린 법원 심리에서 모삼마드 등 세 활동가들은 기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이 재판에서 활동가들이 패소하고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모삼마드와 아미라는 각각 최대 1만 달러의 벌금 또는 최대 6개월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재판은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2025년 7월 1일에 시작됐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싱가포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7월 2일부터 4일, 7일부터 10일까지 지속된 재판 심리에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재판이 열린 날의 기록을 세세하게 기록해 공개했다. 또, 변호사 비용과 벌금에 대한 모금도 진행하고 있다.

변호인 수리안 시다바람은 증인으로 나선 경찰 수 사관에게 ‘팔레스타인을 위한 편지’란 이름의 행사 참가자들이 대통령 집무실에 직접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무리 지어 걸어가는 것이 어떻게 위법이 될 수 있는지 추궁했다. ‘위법 행위’를 경고하는 표지판도 없고, 3주 전인 1월 11일에도 17명의 사람들이 같은 경로를 통해 총리실에 직접 편지를 전달했음에도 이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판사는 1월 11일 사건 증거를 현 재판에 제출하겠다는 피고측 변호인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존 응 판사는 이전에도 유사한 혐의로 활동가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2009년, 응 판사는 싱가포르 민주당 지도자들에게 기타 범죄법 5조에 따라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그들은 수감 중이던 치 순 후안 박사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지금 당장 민주주의”와 “지금 당장 자유”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스피커스 코너’에서 대통령 집무실를 지나 행진했다. 같은 해 싱가포르 의회는 ‘집회 및 행진’에 대한 추가 규정을 규정하는 공공질서법을 제정했다.

경찰당국은 ‘편지 전달’이 대중에게 공개된 이벤트였고, 이 행렬에 여러 사람이 참여했으며,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진’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특히 수박무늬 우산, 검정+하양(쿠피예), 녹색+빨간색(팔레스타인 국기 상징)을 보고 “공동의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Transformative Justice Collective와 Global Voices, Civicus Monitor 등 사회운동단체들은 싱가포르 정부가 평화로운 시위에 참여한 세 명의 주최자를 공공질서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해당 법이 평화로운 집회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혹한 제한”이라고 주장하며, 평화로운 시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단체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을 실천한 시민들을 향해 정부가 가하는 조치가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시위가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가 이루어진 점을 지적하며, 이는 싱가포르 시민들에게 중요한 권리들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을에 있을 판결 결과가 싱가포르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전체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싱가포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운동의 기세가 꺾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내년(2026년) 2월 싱가포르 에어쇼를 앞두고 “이스라엘 국영 군수 제조업체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모든 회사들의 에어쇼 참가를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더읽기: 죽음의 장사치들… 방위산업 종식을 위한 아덱스 저항행동

글 :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