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냉방 시설 없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옥외 노동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심화되는 기후재앙 속에, 지난 6월, <해와 바람은 모두의 것! 공공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월례포럼(발제: 기후정의동맹 한재각 집행위원)이 열렸다. 참여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 대응을 넘어 삶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전략이라는 점을 함께 확인했다.
전기의 사유화
한국 정부는 주요한 기관 산업의 사회기반시설들을 민영화해왔다. 전기민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력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발전소의 건설을 죄다 민간 자본에 넘겼다. 한편, 발전소 노동자들은 정부가 발전 공기업들을 분할해서 민간에 매각하려는 것에 맞서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다 해 투쟁해왔다.
오늘날 발전 산업은 민영화를 우회적으로 진행 중이다. 대부분 신규 발전소는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고 있으며, 이미 재생에너지 설비의 90%가 민간 소유다. 해상풍력의 경우에는 '허가권'의 60% 이상이 해외 자본에 넘아간 상황이다. 해상풍력사업이 집중된 전남과 울산 지역과 인천, 충남, 경남 지역 대부분이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호주, 독일, 싱가폴 등 해외 자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 아무런 변화 없이 진행된다면, 앞으로 민영화는 물론 해외 기업과 자본에 의해 에너지에 대한 민중의 권리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전력 산업이 민영화되면,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고 이는 곧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실제 영국에선 전력 민영화 이후 난방비가 2배 가까이 올랐고, 저소득층의 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서 한국도 전반적인 전력 생산 비용이 올랐고,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경우 40조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도 민간 발전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정부정책이 전력 생산-구매-판매 영역 중 적자 발생 부분은 한전에, 흑자 발생 부분은 사기업인 민간 발전사들에게 팔아넘긴 결과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지금 그대로 유지된다면, 전력 산업의 민영화와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앞선 두 경우는 민영화된 전력산업 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우리에게 먼저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과 발전 노동자 해고를 막기 위해
현 상태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더라도 (대부분 사기업에 넘어가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일방적인 요금 인상을 감당할 수밖에 없고, 에너지 취약계층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명목으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있지만, 석탄발전을 LNG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해 약 2만 명의 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흔들리게 된다.
LNG 발전은 생산과정에서 자동화가 더 많이 적용되기 때문에 석탄발전 대비 인력이 절반만 필요하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해고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기를 생산해 온 이들의 삶을 그대로 내팽겨칠 것인가? 기후위기에 맞선 운동은 "발전소 폐쇄"만 외치는 게 아니라, 폐쇄 이후 그 전기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말해야 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인 실현 방법은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단순히 "친환경 에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핵심은 공적 소유, 공적 투자, 공적 통제와 협력이다. 현재 석탄, 원자력, LNG 등은 공공 이 운영하고 있지만, 문제적 에너지원이다. 이에 반해 재생에너지의 90%는 민간 소유로, 이윤 중심의 운영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에겐 공공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 공공재생에너지는 공공부문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개발·운영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이다.
탄소소득세와 재생에너지 투자은행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절반은 부유한 북반구 나라의 상위 10%에게서 나온다. 최하위 빈곤층 50%가 배출하는 탄소는 8%에 불과하다. 영국 리즈대학(University of Leeds)의 앤드류 패닝(A. Fanning)과 런던정경대학(LSE)의 제이슨 히켈(J. Hickel)의 연구에 따르면, 북반구 선진국들은 기후 부채를 갚기 위해 약 170조 달러의 보상금을 남반구 국가에 지불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산업화 이후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을 방기해선 안 된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자본이 제시하는 돈벌이를 위한 신기술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기술을 만드는 과정 자체, 즉 이윤을 뽑아내는 과정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2050년 한국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는 연간 20조 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2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첫 번째는 가장 많이 탄소를 배출하는 부유층에게 탄소소득세로 정의로운 부담을 지우는 방법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책임을 묻는 행위뿐만 아니라, 소비를 줄이게 만들어 기후위기 부채질을 그만두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탄소소득세로 만들어진 공적 자금으로 재생에너지 투자은행을 설립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재생에너지 투자은행은 민간 투자 대비 이자율이 낮고, 수익 중심 운영에 얽매이지 않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공기업은 민간기업들과 다르게 높은 수익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저렴하게(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반대로, 민간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경우에는 막대한 ‘민영화 비용’이 발생한다. 예컨데 해상풍력 1GW(기가와트)를 민간기업이 개발하였을 경우, 공기업과 달리 연간 1,920억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공공재생에너지
재생에너지를 공공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재생에너지를 체계적으로 빠르게 늘리는 방법인 동시에,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존과 새로운 녹색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은 은행이나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방식 대신, 우리 가 합리적인 전기요금에 에너지를 일상 생활에서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이익을 모두에게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무분별한 지역 난개발도 막을 수 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설비 제조·설치·운영·유지보수에 인력이 필요하다. 2038년까지 풍력만으로도 약 1만 2천여 개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폐쇄될 발전소 노동자들의 전환교육과 생계 보장 계획 등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공공 인프라 투자로 봐야 한다.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는 공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법·제도 역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후정의운동에서는 두 가지의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공공재생에너지법으로, 기후위기와 민영화를 막음으로써 모두를 위한 저렴한 전기, 그리고 발전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새로운 녹색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다. 공공재생에너지법은 2030년까지 확대하기로 했던 재생에너지 확대량 중 절반을 공공이 해야한다고 정하고 있다. 둘째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으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동시에 전력 사용량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면서 지역 사회를 보호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올해 3월, 기후정의운동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정의로운 전환과 발전노동자 총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연대기구인 공공재생에너지연대 를 결성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공공재생에너지연대에서는 현재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위한 청원 서명을 받고 있다. 발의된다고 하더라도 심의 안 되고 끝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중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발전 노동자들은 올해 하반기에 파업을 준비하고 있고, 기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시민들 역시 기후정의행진으로 모이고 있다.
2011년 제주도는 풍력 발전을 공유화하고, 이를 지역 주민의 권리로 인식하는 조례인 <제주특별자치도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 지정등에 관한 조례>를 도입했다. 2023년 미국 뉴욕주 정부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법안을 개정해 공공투자 확대의 길을 열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클러스트를 만들어 전력량이 증가하고 화석 연료 사용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입법 추진과 함께, 전력을 많이 쓸 시기에 발전노동자들의 파업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엄호할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불평등에 맞서
공공재생에너지 문제를 다룬 이번 월례포럼에서는, 청중 토론 시간에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질의응답과 토론 과정에서 언급된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 첫째, 발전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전환 배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석탄발전소 폐쇄 후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재배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재배치 과정에서 교육훈련 기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생계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 둘째, 공공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했다. 협동조합 같은 민간 모델의 위치를 설정하고, 에너지 계획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눴다.
- 셋째, 단지 공공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 소비 감축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야기됐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대기업과 산업용 전기 소비의 비중 조정, 전력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 마지막으로, 전기 민영화는 기업과 정치의 결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기후위기는 이윤중심주의적인 사회 운영의 결과다. 공공재생에너지는 단순한 기술적 전환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전환의 전략적 수단이다. 우리에겐 민영화된 전력체계를 넘어 공공이 책임지는 재생에너지 체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책임자에게 비용을 묻고, 그 재원으로 모두의 삶을 지키는 에너지 체계로 나아가자!

글 : 세윤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