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성에서 찾은 길, 무력감 넘어 연대로 | 기후정의포럼
2025년 7월 22일
종종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를 들을 때면,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 늘 기저에 있었다. 행성 차원의 거대한 규모에서 기존 담론을 초과하는 힘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촉박한 마음을, 별안간 극도로 수동적인 개별 행위자가 된 마음을 느끼고는 했다. 죄책감이나 수동성을 떨치고 싶었으나 기후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넘어서는 무엇으로 느껴져, 내 어떤 행위도 불충분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더라도 당장 일상을 살아야 했다. 변화하는 날씨에 맞춰 옷이나 동선, 그밖의 여러 선택을 조율하고 대비하는 동안, 대항의 길을 찾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이 궁금했다.
더위가 점점 심해지던 2025년 7월 5일, 보라매 청소년센터에서 기후정의포럼이 열렸다. 기후위기라는 익숙한 문제설정 속에서,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요청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로부터 어떤 실천적 사유가 가능할지 듣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기후정의포럼의 제목은 “기후정의x공공성으로 체제전환 길찾기”로, 공공성과 체제전환이라는 두 키워드가 축이 되어 기후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별안간 새롭게 다가왔다. 이 마음에 응답하듯 ‘기후위기 시대, 공공성을 다시 묻다.’ 라는 제목으로 구준모 활동가가 발표를 맡은 1부가 진행됐다.
발제는 지난 6년간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부상한 기후정의운동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바탕으로 정세를 분석했다.
- (1) 온실가스 감축목표 문제-필요한 감축이 왜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환을 위해 무엇이 가능한지 토의해야 하는 상황.
- (2) 기후위기 속 자본과 주요국이 추구하는 것의 문제-자본과 기득권 세력이 지구적 차원의 통치성을 관리하면서, 기후위기를 새로운 이윤 창출과 권력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는 상황. 이는 시장과 민영화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는 ‘민영화를 통한 전환’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 (3) 극우정치 부상과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 ―그린 백래시와 극우정치가 확산하며, 기후위기의 책임과 비용의 부담을 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하는 약탈적 전환에 대한 대항이 상황. 즉,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화하는 것이 작금의 긴요한 정세다.
정세 분석과 함께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가 제시한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전략인 ‘저항, 탈환, 재구성’을 기후정의와 공공성을 위한 전략으로 제시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 (1) 저항-신자유주의 정책과 민영화에 맞서기. 이때 민영화는 공공기관을 매각하는 사유화만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국가(공공)의 역할(의존도)을 축소하거나 민간(시장)의 역할(의존도)을 증대하는 모든 시도”가 민영화다.
- (2) 탈환, 민영화되고 시장화된 기관과 권리를 우리의 것으로 되찾기. 반관-반민 기업을 완전히 공영화하고, 공공기관의 목표를 사회적 필요 충족에 맞춰 재조정해야 하기.
- (3) 재구성-각 영역에서 전체 시스템을 재구성하고 보편적 권리를 확보하기.
쉽게 고립될 위험과 한계가 있는 부분적인 탈환이 아니라, 보 편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이 전략들은 단계적으로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동시적 지향이다.
부정의한 구조의 존속이 아닌 체제전환으로의 길은 단지 정책·미디어 전술·입법 과제로만 완수되지 않는다. 이것이 '기후위기' 상황에서 공공성을 다시 전면화해야 하는 이유다.

2000년대 이후 사회운동에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민영화의 대항 개념으로만 제시되어 왔다면,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공공성은 민영화 반대뿐 아니라 대안적인 사회에서 달성되어야 할 가치를 담아낸다. 즉, 단지 정책 차원의 대안으로서 ‘공공성’이 아니라, 총체적인 체제 전환의 대안으로서 공공성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성을 다시 호명하는 이번 포럼의 시간에서 새삼 놀랐다. 관성적으로 인간/자연의 도식으로 환원해서 생각했던 기후위기 문제에서 ‘공공성’은 기존의 도식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연루감을 바탕으로 세계 만들기의 상상을 요청하고 있었다. 세계의 종말을 단언하는 것 외의 방안을 찾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마음으로, 공공성을 통한 전환의 경로에 크게 동감했다.
시장의 폐해에 대한 보완물로서 공공성 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제전환의 비전으로 공공성 개념을 재구성하기, 이때 실현될 대안적 풍요의 가능성에 대한 말 역시 큰 울림이었다.
“공공성으로 삶의 지지대가 마련되고 정의로운 전환의 경로가 열린다면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전환이 실현 가능한 미래로 부상한다면, 풍요는 더 나은 경제성장과 물질적 소비를 통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와 주변과 나의 삶의 안정감 확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이를 위한 동참으로 가능해진다. 공공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와 민중 계급 내부의, 세대 간의 사회와 자연 간의 새로운 관계, 즉 연대성을 창출할 수 있다.”
부분적이고 실용적인 조치가 아니라, 포괄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이 더 현실적이라는 구준모 활동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착취에 기반한 부가 아니라, 대안적 풍요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관계성을 상상한다. 억압적인 총체성이 아닌 살만한 삶에 대한 확장된 조건을 기반으로 한 공통 감각이 우리의 보편적 세계가 되는 것을 기쁘게 전망하게 된다. 비참과 슬픔, 적대와 울분 사이에서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놓치지 말자는 다짐,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가는 시간에서 우리가 두려움 없이 기쁨을 말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발표 후 이어진 1부 토론에서는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의 정진영 활동가가 ‘경남의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운동’ 분석과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위한 전략을, 참세상연구소 홍석만 활동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복지로서 기후정의에 대한 중요성과 기후정의세 및 조세개혁 과제 분석을 발표했다. 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호림 활동가는 경제·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항 담론의 영역에서의 공공성뿐 아니라, 공공을 구성하는 다양 한 시민들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논의의 상대적 부재를 지적했다. 공공성을 시민들의 일상적 가치와 삶의 문제로 번역할 수 있는 고민의 공유를, 노동해방마중 남영란 활동가는 공공성의 근거지를 만들고 그 도약을 상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으로 ‘누가 / 어디서 / 어떻게’라는 세분된 분류를 바탕으로 공공성 논의의 실천적 확장 모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2부 라운드 테이블은 ‘체제전환-우리의 현장 잇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체제전환의 경로로서 기후정의운동의 과제를 구체화하고자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각자의 삶과 운동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빈곤사회연대 재임 활동가는 “에너지 불평등은 모두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반빈곤 운동과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애여성공감의 조경미 활동가는 “취약함을 차별하지 않게, 상호돌봄으로 공공성을 두텁게‘라는 제목으로 사회적 돌봄과 젠더·반차별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고,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전진한 활동가는 ”공공성이 기후정의, “이윤보다 생명을”이란 제목으로 토론에 함께 했다. 음성노동센터 박성우 활동가는 "지역에서 고민하는 기후정의와 공공성"을 제목으로 지역이 당면한 기후위기와 공공성을 주제로 토론에 참여했다. 이번 라운드 테이블은 정책에 국한된 공공성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서 기후정의운동이 어떠한 구체적인 실천하고 있고 어떻게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높은 밀도로 이루어졌다.
이어서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공공성” 주제 토론에는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의 김영훈 지회장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불참했다. 한전KPS는 지난 6월 2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산재 사망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다. 고 김충현 산재사망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정신적 충격을 겪은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치유프로그램이 진행중인데, 7월 4일 한전KPS 태안사업는 하청업체를 통해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들에게 기습적으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방조했다. 트라우마 치료는 아직 진행 중이며, 복귀 시점은 충분한 심리 회복 이후 결정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아무런 조치 없이 책임을 외면했다. 이에 김영훈 지회장은 동료들과 함께 고용노동부 서산출장소에서 농성해야 했다.
포럼 시작 전 김 지회장은 영상 통화를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업무복귀 명령 철회, 치유 기간 중 작업중지와 임금 보장, 치료비 전액 지원, 복귀 일정 협의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고용노동부가 ’사측의 하수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규탄했다.
문득 좋아하는 만화에서 “꿈이 뭐냐?”는 물음에, 주인공이 “누군가를 엄청시리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열심히 해보라”고 답하자, 주인공은 “보통 정신 차리고 내 집 마련할 생각이나 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대답해준 사람은 처음”이라며 웃는다. 이에 상대가 대꾸한다.
“내 집 마련은 무슨, 누군가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지 않냐”
“부분적이고 실용적인 조치가 아니라, 포괄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이 더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거듭 곱씹게 된다. 포럼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니, 여전히 날은 뜨거웠다. 햇볕이 살갗을 구타하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만화의 말처럼) 주거를 비롯해 삶을 지속하게 하는 기본적인 제도들을 확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일상화된 삶에서, 부를 획득하는 것 만이 그 불안을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답변이 오히려 현실감각을 상실한 허구적 강박이 아닌지 질문해본다.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류장 앞에서, 넷플릭스에서 크게 인기를 끈 드라마의 3편 광고를 붙인 버스가 사람들을 내려 보내고 다시 지나간다. 삶의 취약성에 고통받는 몇백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중 한명에게만 부에 기반한 삶을 허용하자는 생각은 해결책이기는커녕 농담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언제까지 웃기지도 않은 말들에게 자리를 줘야 하는 것일까. 대신 다른 이야기,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의 곁에 더 많은 이야기가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공성’을 둘러싼 논의는 갈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지금의 우리에게, 위기 앞에서 혼미해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절실하다. 내내 거들먹거리던 공정 담론이 착취를 강화하는 쪽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도, 피부로 체감되는 불평등의 강도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말은 이제 효력도 효용도 없다. 오직 나만이 잘되는 세상 같 은 건 없다.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린 이미 한참 전에 인정했다. 대신에 이어가야 할 질문이란 잘 사는 삶이 무엇인지, 잘 살고 싶은 이 마음들을 어떻게 다루고 또 느껴야 할지에 대한 문제다. 공공성은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제안이다.
이제껏 상상하지 않은 풍요로움을 당연스럽게 삶이라고 불러보자는 제안,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속 계속 좁히고, 그 좁은 곳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을 그만 두자는 제안, 대신 우리의 에너지를 삶의 가능성을 계속 계속 넓히는 일에 사용해보자는 제안. 이 제안을 여기의 현실의 자리로 불러내자. 잘 살고 싶은 마음들의 자리는 착취적인 세계가 아니라 공공성이 열어내는 세계 속에 있다.

글 : 권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