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가 드러낸 왜곡된 노동자 고용구조와 열악한 일자리

아리셀 참사가 드러낸 왜곡된 노동자 고용구조와 열악한 일자리

산업단지의 불법적인 고용구조의 확산과 취약한 상황의 노동자들로 열악한 일자리가 채워지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우선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2025년 7월 21일

[읽을거리]노동노동안전, 불법파견, 일자리, 대형참사

2024년 6월 24일 아리셀 참사가 발생한 이후 어느새 1년이 흘렀다. 하지만 책임자들은 아직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으며, 참사의 원인이 되었던 왜곡된 고용 구조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4일, 김용균재단·민변 노동위원회·금속노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함께 “아리셀 참사로 본 제조업 근로자 공급사업과 불법파견 문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아리셀 참사로 본 제조업 근로자 공급사업과 불법파견 문제」 토론회는 두 명의 발제와 두 명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책임 회피를 위한 자회사 분리

첫 번째 발제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가 ‘아리셀 참사를 통해서 본 중소제조업에서의 불법적 인력공급’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는데, 토론회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뤘다.

지금까지 불법적이고 왜곡된 고용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주로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소송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아리셀 참사를 계기로 산업단지의 중소제조업 업체들에 만연해 있는 불법적 인력공급 형태의 고용구조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됐다.

아리셀 공장의 전체 노동자 103명 중 정직원은 50명이었다. 나머지 53명은 메이셀이라는 인력업체로부터 공급받은 이주노동자(외국인 노동자)였다. 아리셀은 인력업체를 통한 인원모집과 대량해고를 반복함으로써, 생산물량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드나드는 복잡한 소유지배 관계 속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아리셀은 2020년 5월 에스코넥의 전지사업부문 자회사로 설립됐다. 두 회사의 대표이사는 동일인이며, 그의 아들이 아리셀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리셀 지분의 96%를 소유하고 있는 에스코넥이 주요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고 있으며, 투자 유치와 운영자금도 에스코넥이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하나의 기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생산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함으로써 관리·통제 권한은 누리면서도 책임은 떠넘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중소제조업계에 이미 널리 퍼져있다.

꼬리 무는 불법 파견, 산업단지 숨겨진 그림자

한편, 에스코넥과 한신다이아, 그리고 아리셀과 메이셀의 관계는 산업단지에서의 불법적인 인력 공급사업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래 그림 참조)

고용노동부는 참사 이후 근로감독을 통해, 삼영피앤텍(에스코넥의 계열사로서 에스코넥의 1차 제조본부)과 에스코넥 안성사업장, 한신다이아 사이에는 “불법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에스코넥에 대해서는 1차 협력업체인 삼영피앤텍 및 에스코넥 안성 사업장의 인력 사용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이는 에스코넥과 삼영피앤텍, 안성사업장 3사 간 관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결과다. 고용노동부는 한신다이아 사무실이 에스코넥 안산사업장의 2층에 자리잡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관계조차도 간과했다. 결국, 원청이 중간에 협력업체를 끼워넣을 경우 불법적인 노동자 공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고용노동부가 용인해준 셈이 되었다.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하던 한신다이아는 2024년 5월 메이셀로 이름을 변경했고, 업종을 직업소개업이나 파견 대신, 전지 제조업으로 표기하였다. 이를 통해 에스코넥과 삼영피앤텍과 같이 도급 관계로 계약 관계를 위장함으로써, 불법 혐의를 벗어나려 했다. 고용노동부는 아리셀과 메이셀의 관계에 대해 도급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아리셀이 실질적인 업무 지시를 했으며 메이셀은 인건비와 수수료만 받는 ‘불법파견’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메이셀의 활동은 구인공고를 올리고 통근버스 인솔 등에 그쳐 파견으로서의 실체조차도 갖추지 못한 단순한 인력 공급사업에 그치고 있었다.

발제자는 불법파견·불법도급·불법적 근로자 공급사업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큰 실익이 없을지라도 (어떤 경우에도 어차피 불법적 고용형태라는 측면은 같기 때문이다) ‘불법적 근로자 공급사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재 산업단지에서 기본적 실체도 갖추지 못한 채 인력 공급 역할만을 하며 중간착취만 하는 업체들이 널리 퍼져있는 현실을 더 뚜렷이 드러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2025년 2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국 산업단지의 영세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종합컨설팅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87개소에서 불법파견 사례가 드러났고, 아리셀 사례와 같이 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 사례가 전국적으로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메이셀의 경우에서 봤듯, 최소한의 관리도 이뤄지지 않는 단순 인력공급인지, 에스코넥에 면죄부를 주었던 것처럼 원청의 책임성을 제대로 살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더 큰 문제는 근로감독관이 불법 정황을 적발하고도 위법하지 않은 계약 형태를 안내하거나, 업체들이 근로감독 전에 미리 컨설팅을 통해 대비하는 등의 사례 등이 보고됐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고용노동부가 불법사례를 조사하면서도, ‘제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고용구조들을 합법화하여 저임금의 유연한 고용 형태에 대한 제약을 완화하는 정책 방향을 시사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산업단지의 중소영세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말단에서 저부가가치 부품을 생산·납품하는 지위를 가지며, 낮은 수익성을 보인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때문에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원청업체의 주문에 생산 계획이 종속되므로 상시 인력 대신 유연한 인력 공급을 선호한다.

많은 영세사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채용된다고 해서 노동조건이 크게 좋아지지도 않기 때문에, 취약한 상황의 노동자들의 경우 파견과 같은 고용형태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조건이 ‘불법적인 인력공급사업’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직업소개업체들은 파견수수료, 중계수수료, 도급 비용과 같은 명목으로 중간착취를 하며(이들의 중간 착취는 각종 수수료 수취를 넘어 심지어 4대 보험 착복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시장 구조 자체도 변화했다.

이와 같은 불법적인 고용형태는 불안정노동과 때로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이 넘쳐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불법파견 혐의 및 퇴직금 지급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시로 폐업을 하면서 이름만 바꾸는 경우도 널리 퍼져있다. 불법 고용구조는 노동자들의 안전문제와도 직결된다. 잦은 이직은 노동자들의 숙련에 악영향을 미치고, 본인 업무의 위험성 파악을 어렵게 만들어 산재 가능성도 높인다.

인력공급업체와 생산업체 사이에서 안전관리 및 안전교육에 대한 책임성은 모호해지고 방기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파견 노동자들은 언제나 교체가 가능하므로 작업중지권 등 노동법상의 권리를 행사하기도 어렵다. 파견이나 불법적 인력공급방식의 노동이 안전에 미치는 악영향은 환경이 낯설고, 언어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경우 더욱 늘어난다.

이주노동의 문제

아리셀 사망자 23명 중 이주노동자는 18명에 이르렀다. 그 18명 중 12명이 재외동포비자(F-4)를 갖고 있었고, 여성은 17명이었다. 메이셀은 채용공고에서 저임금의 보상을 제시하면서도 "50세 이하"라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연령 조건까지 제시했고, 이 때문에 주로 중국동포 여성들이 구인에 응했다. 이는 산업단지의 열악한 일자리들이 중년층 이상의 여성-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현상을 드러낸다.

업체들은 물량의 변동성이 크고,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파견업체에 의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를 채용하기 어려운 원인은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며, 파견업체에 의존하는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 유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지일 뿐이다. 더구나 인력공급 사업의 확대는 중간착취의 몫을 더욱 늘리면서, 노동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뿐 아니라, 왜곡된 고용구조를 고착화시킨다. 결국 그 일자리들은 점점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로만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주노동문제는 주로 고용허가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뤄졌다. 아리셀 참사 이후 고용허가제 적용대상인 E-9 전문취업비자를 가진 31만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취업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는 영주(F-5)와 결혼이민(F-6) 체류자 33만 명, 그리고 대부분 업종에 취업이 가능한 방문취업제(H-2)와 외국 국적 동포(F-4)비자 64만 명을 포함하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더 넓은 범위의 이주노동자 풀의 존재와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논의가 늘어났다. 또, 파견업체를 통해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자가 없어 각종 권리가 더욱 심각하게 제약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발제자는 산업단지의 불법적인 고용구조의 확산과 취약한 상황의 노동자들로 열악한 일자리가 채워지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우선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우선, 정부가 불법파견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각종 불법적 고용구조의 합법화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 이어서, 불법 인력공급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해결책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는 경로가 지인이나 사설 업체 등을 통하게 되면서, 중간착취를 위한 인력공급사업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지적하며, 공공고용서비스 활성화를 주장했다.
  • 마지막으로는 정부의 중소제조업에 대한 각종 지원이 기업지원뿐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지원도 포함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리셀 참사 2주기를 맞아 걸린 현수막 뒤로 불탄 공장의 모습이 보인다
아리셀 참사 2주기를 맞아 걸린 현수막 뒤로 불탄 공장의 모습이 보인다

파견법과 제조업 불법파견

두 번째 발제자 하태승(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은 앞선 발제에서 다룬 중소 제조업체 불법파견의 문제를 파견법 관련 논의를 통해 밝혔다.

한국의 노동관계법령은 ‘정상적인’ 고용관계를 간접고용 관계가 아닌 직접고용 관계로 국한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1998년 노사정 대타협을 명목으로 근로자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직업안정에서 엄격히 규율하고 있는 근로자 공급사업을 근로자 파견계약의 형태로 상당부분 허용하게 됐다. 이 중 제조업 분야는 직접생산공정이라는 이유로 파견을 금지했지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등에는 ‘6개월’을 한도로 근로자 파견계약이 허용됐다. 따라서 제조업 분야의 불법파견은 ①무허가 파견업체(사내하도급 업체, 인력업체)가 도급 계약을 참칭하며 실질적으로 파견계약을 체결한 유형과 ②일시·간헐적 인력 확보 사유가 부재함에도 장기간 근로자 파견계약을 체결하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불법파견은 고용구조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게 된다.

중소 제조업체들의 공정 중 일시·간헐적 업무 영역이 늘어나고, 저부가가치 공정을 외주 받는 소규모 제조 경영이 확대되는 경향이 인력 공급 산업의 기반을 넓히고 있다는 앞선 발제의 지적이 다시 한번 강조됐다. 이 과정에서 파견관계의 불법성은 더욱 고도화됐다.

구체적으로는 ① 지역내 파견업체가 인근 제조업체의 인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인근 파견업체로부터 노동자를 빌려오는 ‘이중파견’의 형태로 계약을 맺는 경우 ② 제조업 사용주가 개별 파견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시도하자 파견사업주가 수수료 수익 감소를 이유로 해당 파견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방해하는 이른바 “빼돌리기” 현상 ③ 지역 내 파견업체 간의 위계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파견노동력에 대한 준독점화 양상 등을 들 수 있었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자료는 불법 사례에 대한 통계이므로 구하기 어렵지만,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의 연구에 의하면 지역 평균은 물론 파견허용 업무 노동자들의 임금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 및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문제에 대한 지적 역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는 역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 불법파견에 대한 제제 강화,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파견법을 폐지하고 근로자 공급 사업을 엄격히 규제하는 직업안정법 제33조를 통한 규율을 제시하였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금속노조의 조대경 전략조직부장이 지역·현장에서의 불법파견 사례 및 금속노조의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그리고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장혜진 노무사가 이주노동자 불법공급 사업의 현실에 대한 각종 사실들을 정리해 이야기했다.

청중들의 질의 및 의견제시 과정에서 7건 중 6건이 이주노동 관련 활동가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오늘날 영세 제조 사업장의 불법적 고용 문제가 첫 번째 발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 특히 이주노동자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드러나고 있음을 다시 상기시켰다. 청중들로부터 각자 활동 과정에서 겪었던 실제 사례들 혹은 법적용 과정에서의 난점들(불법적 근로자 공급을 강조하면 오히려 원청의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지므로 결국 파견법 폐지를 지향하면서도 파견법 상 ‘불법파견’이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 근로감독관이 책임을 회피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라는 식으로 불성실하게 대응했던 사례 등)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글 : 온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