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만난 세계 | 시민발언을 통해 본 삶, 투쟁, 미래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시민발언을 통해 본 삶, 투쟁, 미래

윤석열 퇴진 투쟁은 시민 자유발언이 주축이 된 공간이었다. 시민들의 말에는 '정권 퇴진' 요구를 넘어, 민주주의와 법, 평등, 연대, 노동, 생명과 안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 발언문 1,233건을 분석했다.

2025년 5월 30일

[활동]월례포럼윤석열퇴진, 사회운동, 민주주의,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123일. 계엄에서 파면까지 걸린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겨울을 났다. 그 거리를 채운 것은 깃발이었고 응원봉이었고 노랫소리였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들의 목소리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했던 ‘말’, 즉 시민발언에는 무엇이 담겨있었는지를 돌아보는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시민발언을 통해 본 삶, 투쟁, 미래> 월례포럼이 4월 29일 플랫폼C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 글은 이날 월례포럼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광장의 말들

'자유발언' 혹은 '시민발언'은 특별한 직책이나 소속이 없는 시민들의 발언 형태를 의미한다. 이런 자유발언은 지난 윤석열 퇴진 투쟁 이전에도 있었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 당시에도 전국 각지에서 자유발언이 진행됐다. 하지만 당시엔 사전에 섭외한 발언이 훨씬 많았고, 몇몇 중요한 발언들이 회자됐지만 촘촘하게 기록되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백서에 실린 “기억에 남는 연설 모음”에는 9건의 발언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2024~25년 윤석열 퇴진 투쟁은 대부분 시민들의 자유발언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은 매 집회 마지막에 이뤄진 비상행동 대표 발언 1~2건을 제외한 나머지 발언(최소 5건~10건)을 모두 시민자유발언으로 채웠다. 또한 2024년 12월 말 남태령 대첩, 1월 초 한남대로 대첩 등 투쟁은 연속 수십시간의 집회였기 때문에 발언 건수가 크게 늘었다.

광장 발언 다수는 아카이빙됐는데, 이는 비상행동이 사전에 발언신청을 받아 무대에 오를 발언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처 무대에 오르지 못한 발언까지 기록으로 남았다는 점도 특징이다. 비상행동 사회대개혁특별위원회는 시민발언문에 등장한 사회변화의 열망을 사회대개혁 요구에 반영하기 위해 발언문 분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탁받은 연구자들은 12월 4일부터 4월 4일까지 진행된 발언 중 총 1,233건의 발언을 통계적 방법과 질적 방법 양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지난 4월 플랫폼c 월례포럼은 이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고 힘모은 광장

발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우리’였고 다음은 ‘윤석열’이었다. 퇴진 광장에서 ‘우리’는 윤석열에 맞서는 주체이면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때 광장은, “우리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갔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내란에 분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무대에 선 이들은 정치와 일상을 분리한 채 평온하게 살아왔던 자신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협받은 것이 아닐까 부끄러워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종종 표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로지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별, 나이, 지역, 직업, 취미 등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성을 드러내고,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자신의 노동현실과 투쟁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상황을 알리고, 학생인권의 문제와 교사의 정치참여 제한 등 교육현장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상이 계엄이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은 파면에서 끝나지 않으며 퇴진투쟁이 사회대개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발언을 통해 배우고 느꼈다.

광장의 세계상

광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를 그려냈다. 연구진은 이를 네 가지 주제로 분류했는데 연대와 성평등, 민주주의, 노동, 생명안전과 평화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2024~25년의 광장이 이전의 광장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은 무엇보다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다양성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이는 관련된 발언문의 수와 연결망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집회 참가자들은 가정폭력 경험, 정신질환 병력 등 쉬이 꺼내기 어려운 자신의 취약성을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과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광장이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발언은 서로 다른 ‘우리’를 드러냄으로써, 평등을 지향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했다. 소수자성 드러내기는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발언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백래시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성찰하는 것으로, 또 연대의 직접 체험을 증언하는 것으로 응답했고 이러한 발언은 퇴진운동 내내 이어졌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법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왜 법률가의 자격을 가진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계엄을 옹호하는가. 윤석열의 구속 취소가 어떻게 법적으로 가능했는가.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왜 이렇게 한없이 길어지는가. 시민들은 왜 상식이 법의 승인을 기다려야 하는지, 어떻게 법이 상식에 응답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서로의 말로 서로에게 배운 시민들은 자신들의 말에 힘을 실어, 윤석열과 내란동조세력, 좌고우면하는 재판관들에게 ‘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되었다. 광장의 언어가 법의 언어를 이끌었고,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국민주권, 법치주의, 삼권분립보다 훨씬 더 나아간 의미로 썼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존엄하다고 믿는 것”이 광장이 말하는 민주주의였다.

비상행동 집회에서 발언 중인 플랫폼c 활동가
비상행동 집회에서 발언 중인 플랫폼c 활동가

노동조합이 광장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번 투쟁의 특징이다. 광장에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가 전면에 가시화되면서, 노동자들 또한 사회적 소수자의 일부로 함께 호명되었다. 또 사회대개혁이라는 지향이 공론화되면서, 윤석열 파면 후에도 일상 곳곳에서 싸움을 할 주체로 등장했다. “노동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광장에 모인 “여러분이 지지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민주노총은 데모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발언은 널리 회자되며 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계엄 직후 여의도 집회에서 민주노총이 시민들을 위해 길을 열었다는 사실도 끊임없이 언급되었고, 민주노총으로 조직화된 권력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공감도 확산되었다.

생명안전과 평화의 문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국지전 유발 계획까지 포함된 계엄 선포는 군인과 접경지역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군대 내의 인권과 안전에 대한 언급도 적지 않았다. 채상병 사망의 문제점은 물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군의 오랜 폐단”이 지적되었다. 군의 자원을 병사의 생명과 안전보다 권력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이 오랜 폐단은 지속된다. 사실 군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로 밀려 있다. 퇴진투쟁이 한창이던 12월 29일에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시민 하나하나가 사람됨을 아는 세계”, “참사 없이 안전한 세계”를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간절히 바랐다.

4월 월례포럼 |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시민발언을 통해 본 삶, 투쟁, 미래
4월 월례포럼 |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시민발언을 통해 본 삶, 투쟁, 미래

광장의 말에 담긴 우리의 미래

포럼 참가자들도 여러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퇴진투쟁 과정의 여러 집회에서 발언을 했다는 한 참가자는, 자신의 발언을 돌아보며 경험을 나눠주었다. 12월에 처음 광장이 열렸을 때 그는 그동안 다른 곳에서 하지 못하던 말을 했다. 3월에는 자신이 경험한 연대에 감사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헌재의 선고기일 전날에는 권력자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2016~17년 퇴진광장과 2024~25년의 광장은 다르지만, 그 다름은 결국은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6~17 퇴진광장에 대한 반동으로 ‘친박’ 극우집회가 자리를 잡았고 혐오가 거리로 나왔다는 인식 속에 반차별 운동 네트워크가 건설되었다. 그 이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지역 네트워크 속에서 성소수자 대중을 만나온 경험이 결국은 2024~25년 광장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남태령의 발언을 모으고 연구하는 한 참여자는 발언이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점이 한계가 아니냐는 질문을 다른 곳에서 받았다며, 이에 대한 연구진의 생각을 물었다. 발언 신청자들은 자신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비상행동이 설정한 기준인 2분, 750자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아마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들은 10분도, 1시간도, 하루종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많은 말을 고르고 골라 ‘준비되고’ ‘정제된’ 이 발언들은 즉흥성은 떨어지지만 퇴진 광장에서 표현하고자 한 언명, 절박함, 희망을 압축했다는 의미가 있다.

광장 발언문의 기록은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과정에서의 준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어휘 목록을 제공한다. 광장의 언어가 제도 정치의 경계에만 머무르면 일시적이고 주변적인 언어로 휘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경계에 닿으면 미래상을 구체화한 언어이자 광장에서 힘을 보여줬던 언어로 지속될 수도 있다. “나의 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소감을 밝힌 포럼의 최연소 참가자 어린이의 말처럼, 광장의 말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광장에서 만난 세계를 우리의 미래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광장의 말들을 계속 곱씹어야 할 것이다.

* 월례포럼 발제의 내용은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경제와 사회』 146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내용을 인용하고자 하실 경우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