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착한 자본주의? 『가난을 팝니다』로 본 NGO와 여성의 현실

서평 | 착한 자본주의? 『가난을 팝니다』로 본 NGO와 여성의 현실

책 『가난을 팝니다』는 방글라데시의 여성과 빈곤, NGO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착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읽고, 그 현실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닮아 있는지 함께 성찰한다.

2025년 5월 29일

[활동]페미니즘 공부모임방글라데시, 여성, 페미니즘, 서평, 책읽기모임, 시민운동

이 글은 2025년 5월 14일 저녁 진행된 『가난을 팝니다』 페미니즘 공부모임에 참가한 회원의 서평이다. 방글라데시의 소액금융은 빈곤 퇴치의 해법일까, 착한 자본주의의 신화일까? 5월 페미니즘 공부모임에서 함께 토론하며 책 속의 방글라데시 현실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고, 한국 사회에서의 유사한 억압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공통 감각을 나눌 수 있었다. 착한 자본주의라는 환상 너머,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난을 팝니다』는 방글라데시의 신자유주의, 소액 금융 NGO, 젠더에 관한 민족지 연구이다. 한국에서는 절판이 된 책이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표지와 목차를 읽고 난 후 방글라데시의 배경과 마이크로파이낸스라는 개념들이 낯선 탓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빈곤 문제와 그에 엮인 NGO 단체의 모순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종교·문화·정치와 같은 국가 정세를 이용하여 농노 빈민들을 착취하는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착한 자본주의의 환상에 대해 고발한다.

서구의 발전 담론에서 등장한 소액 금융

저자는 서문에서 서구의 발전 담론이 방글라데시라는 ‘제3세계’ 국가를 조망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한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NGO 분야를 가진 나라로 소액 금융(마이크로파이낸스)의 성지이다. 소액금융은 빈민들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적은 금액을 빌려주는 소액 대출의 확장된 형태이다. 방글라데시가 소액 금융의 성지가 된 데에는 방글라데시의 빈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대출 환급률이 98%를 기록하며, 국제사회에서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놀라운 기업가정신”이라며 소액금융을 일제히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라민은행과 설립자 유누스 교수, 2006년 노벨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는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인 패키지 코퍼레이션 리미티드에 950만 루피의 불법 대출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라민은행과 설립자 유누스 교수, 2006년 노벨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는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인 패키지 코퍼레이션 리미티드에 950만 루피의 불법 대출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NGO는 공동체자원구축회(Resources Across Communitee; BRAC), 쁘로쉬까, ASA, 그라민은행 등 네 곳이다. 유엔은 2005년을 국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로 재정하고, 2006년 노벨위원회가 그라민은행과 설립자 유누스 교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기로 결정한다. 그라민 은행 주도로 “소액 금융 혁명”이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성공적인 프로젝트인 소액 금융을 세가지 방향으로 비판적으로 연구한다. 첫째, 방글라데시의 NGO가 어떻게 그림자 정부로 기능하고, 국가 기능을 사유화했는가. 둘째, 문화적 통치성을 위해 농촌의 명예와 수치 관례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마지막으로 NGO 연구의 발전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그림자 정부 NGO

방글라데시의 빈민 여성을 상대로 진행된 소액 금융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한편에는 친족의무 때문에 대출금을 남자 친척에게 내주어야 하는 여성 대출자가 있다. 다른 쪽에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이윤을 추구해야 하며, 여성 대출자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라고 여기는 은행 관리자가 있다. 98% 환급률이라는 놀라운 수치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빈곤 퇴치라는 목표와는 무관하게 만들어진다.

방글라데시에서 국가와 NGO는 모두 서구 원조기구에 의존하는 기생적인 구조로 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원조금의 피라미드 구조로 인해 대형 NGO에 대부분의 원조금이 흘러간다. 원조기구의 강력한 지원으로 이들은 수천만에 이르는 방글라데시인들에게 대출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로서 역할하며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게 된다. 이러한 소액 금융 분야 NGO는 1990년 95곳이었지만, NGO 붐이 발생하면서 2006년에는 2,000곳으로 늘어났다.

이슬람 문화와 방글라데시 여성의 억압

1975년에서 1990년 사이 방글라데시를 집권한 군사정권은 서구 원조기구가 장려하는 사유화를 진행하는 한편 중동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했다. 1대 독재자인 지아 우르 라만 장군은 1975년 원조 정책에서 젠더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운 유엔의 ‘여성을 위한 10개년’과 시기를 같이하며, 국제사회의 승인과 원조를 확보하기 위해 발전 계획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아가 암살된 후 집권한 2대 독재자 무함마드 엘샤드 장군은 군사정권을 정당화하고 다양한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해 이슬람 계율의 문화적 적용을 시도한다.

국제 원조는 1970년대 중반, 빈곤층 지원을 위한 토착 NGO가 급증하는 배경이 되었다. 1970년대 NGO가 발전하면서 빈곤을 설명하는 두 가지 다른 입장이 등장했는데, 결핍 이론과 구조주의 이론이다. 결핍 이론은 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이유는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구조주의 이론은 빈곤은 체제 안에서 불평등을 유지‧재생산하는 위계적 권력관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빈민에 대한 ‘의식화 교육’을 통해 권력에 맞서는 주체를 형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의식화 교육을 진행했던 NGO들조차 1980년대 후반부터 소액 금융 모델을 받아들이게 된다. 방글라데시농민농업노동자연맹 지도자였던 바드루딘 우마르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NGO는 일자리를 주지만 일자리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 NGO의 목표는 산업발전이 아니라 신용대출의 확대에요. 이런 방식으로 정치적 전망은 사라져버렸어요.”라 말한다.

이러한 사업으로 역설적으로 이슬람 문화 내에서 억압되던 여성들이 가시화되고 정치적 참여가 수월해지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비춰지도록 만들어진 지식은 실상과의 큰 격차가 존재한다.

NGO의 기업화와 수치의 경제

NGO는 소액 금융 모델을 통해 공공을 위한 활동이 아닌 이윤을 중시하는 단체로 변질되었다. 사업의 대상 또한 빈곤층이 아닌 안정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중산층을 타겟 하면서 정작 빈곤층은 빚과 사회적 비난을 떠안게 되었다. 한 모임 참가자는 NGO의 활동이 방글라데시 주민들을 향한 사기극이라며, 마치 다단계적인 수법 같다는 후기를 남겼다.

책에서는 그라민 다논 요거트와 그라민 폴리 폰의 사례를 통해 그라민 은행이 어떻게 공공을 위한 사업이라 포장하며 주민들에게 사업의 부담을 넘기는지 서술한다. 먼저 다논 요거트는 빈민을 대상으로 공급에 실패한 상품이다. 빈민에게 요거트를 사 먹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도시 중산층 중심으로 영업하며 매출을 올려야 했다. 폴리 폰은 빈곤층의 여성들이 통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잠재된 사업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기술을 독점한 사업의 초창기에만 그라민 은행의 수익을 올리고, 이후에 저렴한 전화기가 보급되며, 정작 여성들은 큰 흑자 없이 사업을 그만두게 된다. ‘공공을 위한 사업’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런 사업들은 근본적인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지만,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법적 믿음에 의존해 지속된다.

또한 주목할 점은 NGO가 높은 상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 공동체의 수치 담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문화에서 여성에게 ‘공적으로 망신 주기’는 오랫동안 사회적 통제의 도구로 기능해 왔다. 언어폭력, 태형, 오물 끼얹기, 정수리 머리 밀기, 성적 규제, 침 뱉기 등 공적 망신은 방글라데시 여성에게 그 무엇보다 대출을 기간 내에 갚게 만드는 공포의 요인이다.

이처럼 여성들이 이러한 소액 금융의 주요 대상이 된 것에는 국제적인 원조기금을 받기 위한 것 외에도, 사회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에게 대출 상환을 강제하기 쉽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고정적인 노동 시간으로 제약받는 남성들에 비해 활동이 자유로우며, 신부 지참금 문화도 여성을 더욱 대출을 받기 쉬운 통로로 만들었다. 여성들은 쉽게 대출받으며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맺게 되고, 필요하다면 채무를 갚지 못한 이웃의 집을 불태울 것을 종용받는다. 대부분의 여성은 소액 대출 이후 전보다 더 못 먹고 못 입었으며, 대출과 거의 동시에 생긴 상환의 의무 때문에 수중에 가진 것을 죄다 팔아넘겨야 하는 극도로 압박감 높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퇴색된 NGO의 활동에 직원들이 윤리적 딜레마를 겪게 되는 데에도 NGO의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는 방글라데시의 농촌 사회의 불안정성과 국가의 부재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것이 부재하고, 대부분의 농민은 경작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소작농을 통해 일하기 때문이다. NGO에서 일하는 것은 농촌 사회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 직원들은 채무자가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해 대출 상환 시기를 맞추지 않아 실적을 달성하지 못할까봐, 남성 직원들보다 더욱 엄격하게 집행하기도 한다.방글라데시의 발전 담론과 권력/ 지식

방글라데시의 발전 담론과 권력·지식

저자는 발전 담론이 탈식민화라는 환경 속에서 제3세계에 대한 1세계의 담론권력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여성의 역량 강화 담론에서 대출 프로그램은 다른 사회적 관계 및 친족의 의무, 시장의 불확정성이 중첩되는 것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가난한 여성이 가구 단위에서 자원에 접근하고 자원을 조직하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NGO의 연구들은 자기지시적인데, 국제적인 학계에서 NGO 연구를 후원하는 발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예전에 한 연구를 인용하며 서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일원인 그라민 은행의 유누스 교수는 조국에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민족주의 담론의 일부가 되어,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내부의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보수적이고 피상적인 담론 속에서 지역 연구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담론안에 머물며 어떠한 기득권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착한 자본주의'라는 대안

이런 NGO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모임에서는 NGO를 견제하는 또 다른 단체를 만들거나 NGO내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만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책의 결론에서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착취의 새로운 방식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민들의 사회운동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고착된 시선과 담론을 넘어서는 일종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책의 해제는 “자본주의가 착하냐 악하냐, 혹은 착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냐는 물음은 공허”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넘어서자는 해제에 모임 참가자들은 공감했다.

책을 읽고 모임을 하며, 방글라데시의 문제들이 한국의 문제와 연결된 점이 있다고 느꼈다. 생산 효율이 줄면 공개적으로 모욕받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모습은 통제받고 자율성이 없는 한국의 노동자들과 겹친다. 여성들의 온전한 사회적 진출을 가로막는 문화와 관습은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에도 존재한다. 종교와 정치의 탈을 쓴 권력이 구체적인 민생이 아닌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싸운다는 점도 같다. 책을 읽으며 느낀 기시감은 우리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 감각으로 나아간다. 자본과 기술이 빈민 여성을 해방할 것이라 기대하는 나태한 이론은 현실과의 간극을 낳는다. 문제를 자신과 상관없는 것 혹은 맹목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경계하고, 각자의 삶에서 상상력을 실천하는 일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월의 모임은 이러한 상상력의 동력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낙관이 필요하다는 대화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글 :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