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투쟁을 겪으며 느꼈던 점 |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남태령 투쟁을 겪으며 느꼈던 점 |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남태령에서 시작된 그 불꽃이 혜화역, 한남동으로 번졌고, 부산으로, 거제로, 무안으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희망을 느꼈습니다. 현장에서 그 연대를 거듭 느끼고 평등함이 주는 평온함, 자유, 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오롯이 존재하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약하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런 동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몸을 통과하면서 현실이 되고 그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2025년 2월 9일

[활동]월례포럼전농, 농민, 남태령, 여성, 트위터,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이 글은 지난 1월 20일(월) 저녁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에서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윤석열 퇴진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에서 연사로 초청된 트위터 유저이자 활동가 향연의 발제문을 실은 것이다.

“여러분을 동지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물음에 그동안 집회, 시위에도 많이 참여했었고, 총학생회, 여성운동, 인권운동, 농어민단체, 정당 활동까지.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의제에 관한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냈던 소위 ‘민주시민’으로서 나름 자부심이 있는 편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검열과 타자화는 내 안에서 항상 작동 중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 정도 못 되는데.”, “그 분들은 워낙 잘 하시니까.”, “내가 뭐라고.”, “아직 거기는 아니야.”, “난 개량이야.” 등등. 별 생각 없이 했던 생각들, 말들, 자의적으로 그었던 선들, 행동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들. 그리고 수동적인 태도. 판 깔리면 나가야지.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나의 운동은 그렇게 습관으로, 혹은 비일상적인 이벤트의 일환으로 흘러왔습니다.

이번 계엄 때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세 번 정도 크게 느낀 사건들이 있습니다. 우선 쿠데타 당일.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괴리감, 충격 때문에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오보인가?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계엄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었기에 역사책 속에 나왔던 계엄군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아득해졌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몰락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체감하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으며 이 시간 이전으로 내가 돌아갈 수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친위 쿠데타가 진압된 그 다음 날, 예정되어 있던 농어민위원회 국회일정은 원안대로 진행됐습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고요한 국회의 풍경과 묘하게 경직되어 있기도 하고 들떠있는 것 같기도 한 분위기 속에 미래를 낙관한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긴 싸움이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여의도로 뛰쳐나간 첫 대규모 집회에서 내란 잔당이 투표를 거부하고 국회를 빠져나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수십만명의 피가 동시에 식는 싸늘한 느낌을 느끼며 이번 국면은 뭔가 다르게 돌아가겠구나 또 다시 예감했습니다. 이번 쿠데타는 정쟁이나 진영싸움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상황이고 내 실존이 걸린 절박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그리고 남태령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이제와서는 웃으며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새벽에 분주히 움직이는, 한눈에 헤아릴 수도 없는 경찰 기동대들이 결국 농민들과 시민들을 진압하려는 조짐을 보일 때 저는 또 다시 느낍니다. 권력은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포악해지며, 우리는 이 국가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제는 거짓말같은 주문을 외우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두렵지만 이 폭력과 탄압에서 버텨내고 살아남고 결국엔 차를 빼고 이기는 방법 말고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엄동설한의 한해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을 뜨겁게 지새웠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기가 받아왔던 국가폭력, 혐오, 차별, 소외, 부당함을 증언하며 농민들의 아픔에 공감한 동지들. 그 발언들을 들으며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껴안아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농민 동지들. 라이브 영상을 켜놓고 마음 졸이는 수만 명의 동지들. 그 곳에 이내 평화롭고 아름다운 태초의 형태와 가까운, 기획되지 않은, 날 것의, 직접 민주주의 공론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그 때, 그 곳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농민들은 시민들의 말을, 시민들은 농민들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몰라왔던 농민들의 아픔을 돌아보겠다는 외침에, 농민들은 동지라 불러도 되겠냐는 물음과 감동어린 눈물로 화답했습니다. 여성농민들은 여성들이 농촌에서 겪는 성차별을 소리높여 외쳤고, 청년여성들은 연대를 약속하는 공감의 함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 같아 보였던 두 세계가 그날 밤 “다시 만난 세계”로 거듭났습니다. 인즉천, 사람이 곧 하늘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동학농민운동의 기조, 민주주의의 절대가치가 대동세상이 되어 남태령에서 빛났습니다. 차별과 혐오는 시민연대라는 거대한 불꽃에 흔적 없이 녹아 무력화되었습니다.

치열했던 밤이 지나 10중의 경찰 차벽이 열리고 그제서야 시작된 행진, 마지막 트랙터가 한강진을 떠나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소진되어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남태령을 호명하고 남태령을 기억하자며 소리치는 현장들을 마주한 뒤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침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거 큰일이다… 1221 남태령대첩은 정말 오랜만의 큰 승리였고 역사책에 남을만한 민주주의 시민사회 연대의식의 르네상스가 될 일이구나’

남태령 대첩의 환상같은 승리 이후에 엄습했던 무게감과 정체 모를 슬픔은 그 아름다운 승리가 우연에 의한 한 번의 신기루로 빛났을 뿐, 끝내는 현실이 변하지 않을까봐 느낀, 이 불꽃이 금새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울감이였습니다. 하지만 남태령에서 시작된 그 불꽃이 안국 혜화 한남동으로 번졌고, 부산으로, 거제로, 무안으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희망을 느꼈습니다. 현장에서 그 연대를 거듭 느끼고 평등함이 주는 평온함, 자유, 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오롯이 존재하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약하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런 동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몸을 통과하면서 현실이 되고 그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진심어린 연대와 저항의 경험을 하고 나면 이게 민주주의구나 라고 돈오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게 민주주의구나!”라는 깨달음은 단순한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 경탄이 결코 아닙니다. 그 형식은 오히려 지독한 의심이고 환멸이고 자학적인 분노입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복잡한지, 지리멸렬한지, 힘든지, 허술하고 위험한지, 어쩌면 이다지도 연약한지. 반민주주의는 얼마나 정교하고 구조적이고 그 작동이 용이한지, 인류가 수천년을 고안해 낸 정치와 민주주의의 개념들, 법체계가 악의를 가진 소수의 반민주주의 위정자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현실 속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란 어찌나 아름답고 강력한지, 지켜졌을 때 우리에게 어떤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이 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지, 그 누구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가시밭길에 몸을 던지게 하는 이 절대적인 양심의 명령, 불꽃은 도대체 무엇인지 경이로움 또한 강렬합니다. 이에 대해 한강 작가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고 물었습니다. 세계는 원래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시작됩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인류는 민주주의만큼 위대하고, 민주주의만큼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나면 그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나도 깜짝 놀랄만한 내 악행과 무서운 생각들, 내가 저질러온 실수와 거친 언어들, 그와 또 다르게 존재하는 열정과 호기심, 사랑, 관용, 신뢰, 양심 같은 선한 덕목들.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나라는 한 실체 안에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궁금해하고 그 답을 찾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경험할 뿐입니다.

왜 인간이 수천년 동안 피흘리고 눈물흘리며 여기까지 온 것인지, 왜 역사는 반복되는지, 왜 싸움은 끝나지 않고, 학살당했던 자들이 왜 다시 학살을 저지르는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해도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없을만큼 오염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계속 싸우기로 결심하고 삶을 꾸려나가며,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시지프스처럼 그 돌이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떨어진 돌을 또 내 살과 뼈를 갈아가며 꼭대기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체로 발현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뜨거운 현장인 집회와 결사, 연대와 투쟁의 현장에서 내게 주어진 삶이란 짧은 시간 속에서 속성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다시 돌아갑시다. 처음으로. 우리가 고통받던 그 때, 그 곳, 그리고 이내 이어진 투쟁의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낸 것들로. 우리의 진심어린 강력한 연대와 민주주의의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이 몸과 나만의 고유한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깨달음 속에 있습니다.

글 :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