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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는 환상일까 |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2025년 2월 7일
이 글은 지난 1월 20일(월) 저녁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에서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윤석열 퇴진 광장 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에서 연사로 초청된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의 발제문을 실은 것이다.
계엄령 당일의 기억
윤석열이 계엄령을 공포한 지난해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세계장애인의 날 전국결의대회를 하기 위해 모인 1천여 명의 대오와 함께 투쟁하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국회 본관 계단 앞에 모여 '장애인 권리약탈 STOP 긴급 촉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밤 늦게까지 투쟁보고 문화제를 마쳤다. 밤 10시. 국회의사당역 대합실 내에서 200여 명이 남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역 노숙을 준비하다가 계엄령 속보 소식을 들으면서 ‘하다하다 이제 계엄령 가짜뉴스까지 속보로 나는구나’라고 생각해 무시했다. '어이없음', '황당'의 감정이 '설마'로 이어졌고, 이내 악몽같은 두려움과 분노가 짧은 시간에 닥쳐왔다.
1979년 대학 1학년 때 전두환이가 계엄령을 발표했던 그때 그 시절. 경험과 악몽, 군대생활의 기억이 참혹했던 어둠이 담요처럼 덮쳐왔다. 그때 나는 '날라리'였다. 계엄이 발표됐을 때, 전국적으로 대학가에서 데모가 일어났고, 친구따라 돌맹이 몇 개 던졌던 기억이 있다.
광주 항쟁이 일어난 직후인 1980년 6월,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 경희대 다니는 형을 만나러 갔다 경희대를 지키던 계엄군에게 잡혀 들어가 1시간 이상 막무가내로 두들겨 맞고 기합받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계엄령은 잊혀졌고 비장애인 20대의 날라리로 지내다 군을 제대한 뒤 24살, 꽃다운 청춘이 묵사발되며 장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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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계엄과 2024년 계엄 사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은 많이 변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수호자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틀어쥔 자들의 탐욕정치는 모습만 카멜레온처럼 변색할뿐 본질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후퇴한 것도 있다. 자본주의 수호자인 권력자들이 치장한 교묘한 장치들은 더 단단해진 쇠사슬로 우리를 묶어놓았다. 우리는 검투사들의 죽고 죽이는 싸움을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원형경기장의 로마 시민들이거나 시민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 아닐까.
원형경기장은 법과 질서로 벽칠한 문명이었다. 그 원형경기장 안에서 우리가 말하려는 권리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죽어가는 검투사들의 고통과 두려움은 환호소리에 묻혀갔고, 내가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처럼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술 한잔의 유희로 잊혀져갔다. 우리는 더 파편화되고 각자도생으로 외롭게 남겨졌으며 더욱 고립되었다. 그리고 골 때리는 일이 너무 많아 골은 텅비어갔고 의지는 후퇴되었다. 이제 우리라는 테두리 내에 남은 사람은 돈키호테들 뿐인걸까. 고립감과 외로움은 깊어갔다.
1,982일 광화문 농성과 문재인 정권의 탄생
국회에 탄핵안을 가결하라고 여의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광화문에서 탄핵의 또다른 경험이 있다. 전장연은 빈곤사회연대와 함께 1,982일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폐지의 농성을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했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6개월 전에 시작한 농성이었다.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우리는 감히 대한민국 사회의 이열종대 선착순 복지 기준과 장애인을 식민지화하고 우생학을 숭상하여 시작한 장애인수용시설폐지를 건드려보고자 했다. 그래도 대선에서 공약이라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빌어먹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광화문 지하차도 농성장이 벌써 6개월이 지나는데 장기 농성의 두려움과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은 절망감 그리고 내부에서 패배감과 분열의 조짐은 이중삼중으로 겹쳐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1,982일을 견디게 했던 힘은 무엇일까. 지금도 궁금하고 놀랍다.
그 견뎌냄의 희망은 광화문광장에 촛불로 잠시 빛났다. 이제 긴 농성도 끝날 것 같은 것을 생각하니 신났다. 좋았다. 그리고 탄핵이 인용되고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그 어마어마했던 촛불의 희망과 힘은 문재인으로 몽땅(조금만 빼고)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갔고 그리고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총평을 전장연 입장에서 개인적 시각에서 한다면, 광화문에서 1,982일을 견뎌낸 전장연으로서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소통에 있어 친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장된 관계가 있었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폐지라는 의제의 연합투쟁은 약해졌으며 기대가 배신으로 뒤통수처럼 다가오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전장연에 남아있는 큰 상처가 있다. 여전히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일 뿐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문제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정치인들에게서 ‘좋아진 거 아니냐’는 동정처럼 던져진 깡통의 동전에 장애인들이 파묻혀 죽어가는 것.
그래도 조금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2001년부터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이후로 24년을 외치고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시민들 발목잡고 늘어지면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시대를 외쳤는데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닌지 후회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냥 동전이나마 더 받아먹을 깡통 숫자나 늘릴 걸 잘못했을지 모른다는 자책감이었다.

T4농성장에 이어진 연대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역과 이룸센터 앞에서 전장연은 1,406일째(1월 19일 기준) T4 철폐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정권 탄핵 때 촛불행동보다 윤석열 내란수괴로 점화된 지금의 상황은 ‘탄핵’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그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전장연이 그때보다 조금 더 유명해져 있는 것? 그렇다면 그건 또 왜일까. 전장연 투쟁에 실질적으로 젊은 층의 연대자들이 트윗 등을 통해 조직되고 실제로 투쟁 현장에 찾아오더라. 도대체 왜 찾아오는 걸까. 전장연이 제기하는 의제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있더라. 왜일까. 뭔가 뭉치는 느낌이 더 크다,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것도 있지만, 따로 각자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면서 연결되는 흩어질 것 같지만 단단하게 묶여지는 느낌이다. 말과 행동이 동시에 연결되고 묶여지는 놀라움이 있다.
승리를 위한 제안
승리는 무엇일까. 무엇을 승리라고 생각할까. 윤석열이 내란수괴로 감방 가면 승리일까?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하고 나면 그러면 승리일까?
우리 중 많은 사람은 그것도 승리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시작이라는 말을 함께 쓰면서 포괄적으로 친절함을 보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전장연이 겪었던 심한 탄압 이후 친절하게 다가온 권력자의 악수를 내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연은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에 무력하게 물러났고, 부양의무자기준폐지는 약간의 전진 이외에 본질적으로 빈곤을 철폐하는 길은 잘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거주시설폐지 요구는 지금에 와서는 장애인권리약탈자들에 의해 후퇴해버렸다. 연약했던 정책과 예산에 기다리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또 빠져들어 버렸다.
한 술에 어떻게 모든 것을 해결할까. ‘천천히 가자’는 내부 상황에서 일시적인 광장의 분위기에 취해 나갈 수 있지만, 승리를 향한 길은 결국 승리가 어디에 있는가, 승리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에 따라 속도는 다를 것이다. 똑같은 KTX 속도로는 갈 수 없지 않는가.
내가 생각하는 승리의 개념들은 이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현장에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만드는 투쟁이 계속되면, 승리라고 하고 싶다. 가만히 보니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이후로 24년을 지하철을 떠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승리하는 중이다.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에서 투쟁전술을 익혔다. 투쟁전술은 중증장애인당사자들이 직접행동으로 계속 했다. 이 또한 승리다.
권리중심노동자 400명이 오세훈에 의해 해고되고 서울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폐지되었지만 전국적으로 12개 지자체에서 1200명이 넘는 최중증 장애인 노동자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통해 노동하고 있다. 그 규모를 확대시켰다. 이것은 절반쯤 승리라고 치고 싶다.
- 매일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에 연대하는 동지들이 늘고 있다. (매일 매일 승리하고 있다)
- A4용지 2장으로 정리해 달라고 요구받았는데 벌써 A4용지 3장을 넘기려 한다. (새벽의 승리)
이번 대선에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과 경찰들이 매일 강제퇴거 시키는 혜화역 승강장에 2천명이 모여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대선 기간에 한 번이라도 하면 승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한번 그렇게 싸우고 싶다. 조직할 수 있을까.
승리는 서로 다른 각도와 관점이 있기에. 전장연은 1939년 독일나치에 의해 30만 명이 생체실험당하고 40만 명이 불임당한 역사적 범죄인 T4가 잊혀져 버렸듯이 지하철에서의 외치는 정당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승리를 토대로 볼륨을 높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는 탈시설장애인당當으로 모두 뭉쳐서 대선을 돌파하면 꼭 승리할 것 같다. 그리고 탈시설장애인당當 집권을 해서 내각을 같이 꾸려보자. 비장애중심주의, 식민지화된 영토에서 당장 힘들면 망명정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망명정부 헌법에 전장연의 정관도 반영되면 좋겠다.
글 : 박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