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시대 역행하는 반도체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

기후재난 시대 역행하는 반도체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의힘의 반도체특별법안에 동조하려 나서자, 노동자들은 아연실색이다.

2025년 2월 15일

[읽을거리]정치노동시간, 기후정의운동, 노동법, 에너지, 기후정의운동

이 글은 지난 2월 15일 배포된 『평등으로』 8호에 실렸다. 『평등으로』는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가 만들고 전국 각지에 배포하는 주간 신문이다. ‘네트워크’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기후정의동맹 등 사회운동 연대체와 그에 소속된 다양한 단체 및 개인,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새로운노동자정치 추진모임, 평등의길 등 노동운동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의힘의 반도체특별법안에 동조하려 나서자, 노동자들은 아연실색이다. 지난 월요일(2월 1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반올림, 김용균재단, 금속노조 등 72개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반도체 연구개발 직군의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에 따른 노동시간 유연화가 노동강도 심화의 물꼬를 틀 것임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연설에 나선 이재명 대표는 “AI와 신기술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대신, 노동의 역할과 몫의 축소는 필연”이라면서, “첨단기술분야에서 장시간 노동과 노동착취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유연성 확대’가 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 시기 내내 자주 듣던 레퍼토리가 이재명의 입으로 나오고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가는 직행열차

이재명 대표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을 뿐더러,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노동유연성 확대란 사장과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노동 투입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노동이 유연해지면 노동자들은 자기 일에 대한 통제력을 훨씬 더 상실하게 된다. 하루 11~15시간 야근이 밥먹듯 이뤄질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반도체 공장의 연구개발직 노동자들이 증언하듯, 이미 일터에서는 우리의 건강을 망치는 야근이 밥먹듯 이뤄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 언급해 큰 논란이 됐던 “주 69시간 근무”의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둘째, 일부 옹호론자들은 이 법안이 고액연봉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니 문제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일터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나 다름없다. 강한 노조가 없는 일터에서 관리자의 야근 지시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이는 노조도 없고 노동권이 취약한 중소·영세·하청 기업에서는 훨씬 심하다.

셋째, 반도체 연구개발직에 한정될 뿐인가? 매일 나오는 뉴스만 봐도 현실은 반대로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소식을 듣고 벌써 조선업과 건설업, IT업계의 기업들이 ‘우리도 풀어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한 번 풀린 고삐는 댐이 넘쳐 흐르듯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 대기업에서 풀린 작은 친기업 규제가 2·3차 하청에서는 지옥으로 이어진다. ‘예외’라는 수문이 한 번 열리면 다른 산업으로의 확대는 시간문제다.

노동자가 살기 어려워진 진짜 이유

1990년대 중반 이래 노동자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은 인공지능 기술이나 자동화 때문이 아니다. 기술개선을 통한 생산효율의 대가가 일자리를 늘리거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으로만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 30년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제조업 자본의 평균소득 증가율과 노동자들의 중위소득 증가율 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지는데 재벌 총수나 고위 임원들의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불평등을 막을 수단은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펴는 것 뿐이다.

한데 민주당은 적어도 재분배 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국민의힘과 다른 길이 아니라, 국민의힘과 더불어 퇴행하고 있다. 시민들이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연일 광장을 채우며 윤석열 탄핵을 외치던 지난 12월,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했는데, 이는 여지 없이 부자감세 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12월 23일 민주당이 내놓은 고소득자 세부담 감소 방안 역시 다르지 않다. 부자증세를 통해 사회복지 재정을 확충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가면서 노동유연성만 확대한다는 것은, 불황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법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횡행하는 고정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법이 아닐까?

반도체특별법, 완전히 폐기해야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2024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15.1도로, 산업화 이전에 비해 1.6도 상승했다.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마지노선을 이미 초과한 것이다. 기후재난 시대에 우리는 생태적인 한계에서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을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공공재생 에너지로 신속히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한데 반도체 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5%를 차지하고, 반도체 생산의 팽창이 전자제품 생산·소비의 증가로 직결된다. 2030년, 세계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7%에 다다를 전자산업 배출을 고려할 때 반도체특별법은 그 자체로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법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인 1명이 배출하는 연 온실가스량은 12톤으로, 일본·독일·영국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더구나 반도체 생산은 방대한 양의 물을 사용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하루 평균 31만톤의 물을 사용하는데, 2050년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완성되면 하루 76만톤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매년 3.5억톤의 물이 부족해지고, 그 피해는 온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극우세력의 발호는 불평등을 배경으로 한다. 윤석열 퇴진 이후 우리는 다른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이유에서건 반도체특별법은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 ▲

[보론] 해상풍력특별법은 재생에너지 공공성만 훼손한다

현 정부와 국민의힘·민주당은 합심해서 해상풍력특별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법은 사실상 해상풍력 민영화법인데, 결과적으로 이는 난개발을 조장하고,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해상풍력 사업의 추진을 정부가 주도해서 조성하는 계획입지 내에서 이뤄지도록 변경하겠다고 한다. 계획입지는 바다의 선점과 난개발을 제어할 수 있으나, 입지 조성 후 본사업은 경쟁입찰을 통해 민간사업자에게 부여하게 되고, 이는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더욱 촉진한다. 가뜩이나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금융자본과 대자본의 진출이 지속되고 있는데, 2024년 12월 기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사업의 전체 용량 대비 93%가 민간사업자의 소유로 알려져 있고, 48개 사업·용량 63%가 외국기업 소유다. 민간자본은 단기적 이익을 추종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민영화는 에너지 요금의 인상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민간 공급업체들이 모두 실패하자,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공공 소유로 다시 가져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민주당의 해상풍력특별법은 현실과는 무관한 친자본 가짜 대안일 뿐이다. ▲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기후정의동맹 등 사회운동 연대체와 그에 소속된 다양한 단체 및 개인,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새로운노동자정치 추진모임, 평등의길 등 노동운동단체들이 함께 하는 네트워크입니다. 『평등으로』는 ‘네트워크’가 만들고 전국 각지에 배포하는 주간 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