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문제는 어떻게?…미얀마인들이 답해야 한다” | 로힝야 출신 이주민 인터뷰

“로힝야 문제는 어떻게?…미얀마인들이 답해야 한다” | 로힝야 출신 이주민 인터뷰

“군부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로힝야를 탄압하고 있다. 미얀마의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이 뭉쳐서 정권에 반대하면 곤란하니, 분열시키려고 한다.”

2024년 10월 19일

[동아시아]미얀마난민, 이주민, 미얀마, 인종주의, 방글라데시, 로힝야

미얀마에서 로힝야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탄압받았나. 그들은 누구이고, 어떤 갈등이 있었을까? 국내에 거주하는 로힝야 출신 난민 파티마 이삭 씨를 만나 직접 들었다. 로힝야 문제를 망각하지 않고, 환기하는 것은 미얀마의 버마족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얀마 땅에서 살아가며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를 일구길 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로힝야 탄압은 망각해선 안 되는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미얀마 라카인주에 살며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들은 미얀마 정부가 공식 인정한 에스닉 공동체💬 135개에 속하지 않는 민족, 즉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다. 모순되게도 정부는 이 ‘비국민’의 삶을 구석구석 통제한다. 로힝야는 아이를 두 명까지만 낳을 수 있고, 국가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으며,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도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일상 곳곳에서 기본권을 박탈당했다. 정부는 ‘외국인’과 ‘불법 이주자’를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1978년, 1991~1992년 두 차례에 걸쳐 수많은 로힝야를 미얀마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 💬'소수민족'이라고 칭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군부의 이런 구분은 중화권의 민계(民系, subgroup of an ethnic group) 개념에 가까다.

이 같은 차별과 탄압은 마침내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2012년에는 무슬림 남성 3명이 불교도 여성을 강간한 뒤 살해했다는 이유로💬, 2017년에는 로힝야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이 군경 초소를 공격했다는 명목으로 제노사이드가 자행됐다. 특히 2017년 학살에서는 2만 2,000명 이상💬이 살해당했고, 인접한 방글라데시로 떠난 이들만 해도 80만 명에 가깝다. 전체 난민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다. UN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난민 사태”라고 했다.

  • 💬 당시 가해자가 로힝야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Rohingya vision>은 2019년 보도에서 가해자가 캄만 무슬림(라카인주의 소수 무슬림 커뮤니티)이었다고 주장했다. 설령 가해자가 로힝야라 해도 140명이 사망하고 14만 명이 쫓겨난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 💬 2017년 학살 당시 희생자 수는 조사단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2만 2,000~2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2만 2,000~2만 5,000명, 캐나다 시민단체인 온타리오 국제개발기구는 2만 4,000~2만 5,000명, 국가범죄국제연구소는 로힝야 무장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이 군경 초소 30여 곳을 공격한 2017년 8월 25일 이후 사망자를 약 2만 2,000명으로 보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로힝야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부와 라카인족(불교를 믿는 라카인주의 주류 민족) 무장단체인 아라칸군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라카인주에 남아 있던 로힝야 중 최소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로힝야 출신으로 한국에 사는 파티마 이삭을 만나 로힝야 탄압의 실상과 2017년 학살 이후의 상황, 그리고 로힝야의 평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플랫폼씨(이하 플씨)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파티마 이삭(이하 파티마) | 나는 라카인주 주도인 시트웨에서 살았는데 위험한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대학에 다녔는데 교수 앞에서 무슬림 학생을 칼로 찌르기도 하고, 무슬림 학생이 폭행당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 번은 폭행 현장을 목격하고 카페에 숨어 있었는데, 라카인족 친구와 카페 직원이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들이 1~2년에 한 번씩은 있었다. 내가 아는 교수님이 “여기는 미래가 안 보여. 갈 수 있으면 떠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2004년 양곤(미얀마 최대 도시)을 거쳐 2007년에 한국에 정착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플씨 | 로힝야는 왜 이렇게 탄압받나. 많은 언론에서 종교 갈등, 즉 불교를 믿는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의 갈등으로 설명하는데.

파티마 | 군부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로힝야를 탄압하고 있다. 미얀마의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이 뭉쳐서 정권에 반대하면 곤란하니, 분열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정부가 돈을 주고 이런 사건을 사주해 갈등을 부추긴다. 하필 로힝야가 타깃인 이유는 주류인 불교가 아니라 이슬람이라서 그런 것일 뿐, 종교 문제가 핵심은 아니다.💬

  • 💬 오랫동안 로힝야 문제를 취재한 국제분쟁전문기자 이유경은 군사정권이 로힝야 탄압이 가능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배계급의 분열 정책은 생뚱한 이슈를 파고드는 게 아니다. 다수 대중이 동의하는 세계와 가치를 잘 버무려 선동할 때 분열 정책은 완벽하게 작동한다.”(『로힝야 제노사이드』, 54쪽)

플씨 | 한국에서의 삶은 어떤가.

파티마 | 처음에는 적응을 못 했다. 일주일 정도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서 ‘나 지금 어디 있지’ 하다가 ‘그렇지, 여기 우리 동네 아니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여기서도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로 차별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처음 5년은 집에 있었다.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었고 2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왔었고, 여전히 그러고 싶다. 나의 땅, 내가 태어난 곳, 내가 행복했고 제일 좋아했던 곳에 눌러살고 싶다. 가족들을 못 보는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다.

그리고 한국에 사는 미얀마인들 중에도 로힝야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제가 마트에서 일할 때, 동료 직원이 미얀마인 손님에게 “너희 나라는 왜 무슬림을 이렇게 탄압하냐”라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 손님이 로힝야를 계속 비난하길래 제가 따라가서 물어봤다. “로힝야가 그러는 거 봤어요?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요? 모르면서 왜 그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말을 바꿨다. 한국에서 있는 미얀마인 가운데도 로힝야는 소수다 보니, 그런 일이 가끔 있다.

플씨 | 가족과 친척들은 어떻게 지내나.

파티마 | 제가 미얀마를 떠난 뒤 얼마 안 돼 가족들도 미얀마를 떠났다. 엄마, 남동생들, 여동생은 방글라데시를 거쳐 사우디에 들어갔고, 양곤에도 몇 명 있다. 방글라데시를 거쳐 가짜 여권을 만들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간 로힝야족이 많고, 내 가족과 친척들도 그렇다.

플씨 | 2017년 이후 지금의 라카인주 상황이 궁금하다. 특히 지난 연말부터 미얀마 군부와 아라칸군 간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로힝야가 표적이 돼 양쪽에서 공격받아 죽기도 하고, 난민이 급증했다고 하던데.

파티마 | 최근에 저희 삼촌 가족들이 시트웨에 있다가 라카인주의 시골 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먹을 것도 없고, 먹을 걸 찾으러 가지도 못한다. 2017년부터 로힝야의 재산을 뺏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일들은 계속 있었지만, 최근에 더 심해졌다.

그런데 예전부터 라카인주에 살던 라카인족들은 좀 다르다. 그들도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나쁜 일에 가담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니까 대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 주기도 하고, 우리를 죽이지 말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부는 또 ‘너희는 왜 로힝야 편을 드냐’는 식으로 나온다.

플씨 | 라카인주를 떠난 로힝야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삶은 어떤가.

파티마 | 사우디아라비아는 난민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데, 살 수는 있다. 제 삼촌과 고모들도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 그런데 임금 격차가 심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 미얀마 사람보다 돈을 2~3배 번다. 허리 부러지게 일해도 풍족하게 살 수가 없다.

플씨 | 방글라데시 상황도 궁금하다. 로힝야 난민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의료 시설이나 위생 상태가 굉장히 열악하고 방글라데시 정부에서는 계속 난민을 더 안 받겠다고 말해왔다.

파티마 | 방글라데시는 2017년 이전에도 로힝야가 많이 건너가서 로힝야 난민이 많다. 제 이모도 지금 난민 캠프에 있는데, 캠프 안에서 우리가 로힝야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미얀마 정부 사주를 받은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로힝야 중에도 정부 사주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곤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게 해준다든가 하는 특혜도 주고, 돈도 주니까, 포섭당한 거다. 캠프 안에 UN이 들어와 있지만, 그런 일들이 있다.

플씨 | 2017년 학살 이후 7년이 지났지만, 로힝야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같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파티마 | 그 질문은 우리가 아니라 미얀마인들에게 해야 한다. ‘너희는 로힝야를 어떻게 할 거냐’라고.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인들이 로힝야와 똑같이 당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로힝야에게 했던 일을 반성하지 않는 미얀마인들이 많다. 우리가 맞을 때는 ‘너희는 맞아야 한다’고 했던 이들이 이제는 자기가 당하니까 도와 달라고 한다. 군부 쿠데타 이후 반성한 이들도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로힝야 이야기를 하기 싫어한다. 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로힝야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참고 자료

  • Aman Ullah, <Myanmar: The Real Reason Behind 2012-13 Anti-Muslim Violence>, Rohingya vision, 2019.05.25
  • 정리나, <로힝야 학살·대탈출 7주기…100만 로힝야 난민 “안전한 귀향” 호소>, 아시아투데이, 2024. 08. 26.
  • 서현욱, <실천승가회 등 로힝야 학살 7주기 미얀마 군부 규탄>, 불교닷컴, 2024.08.30
  • 박예슬,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 증가>, 가톨릭평화신문, 2024.09.04.
  • 이유경, 『로힝야 제노사이드』, 정한책방, 2024

인터뷰어 및 정리 : 김경훈

인터뷰이 : 파티마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