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집시 ‘바자우족’에게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바다 집시 ‘바자우족’에게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지난 6월 4일 사바주 당국이 “보안 강화와 국경 범죄 퇴치”를 명목으로 셈포르나 해양공원 내 바자우족 가옥들을 무자비하게 철거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무너지지 않았다.

2024년 7월 8일

[동아시아]말레이시아원주민, 말레이시아, 남중국해, 커먼즈

이 글은 지난 2024년 7월 6일자 <한겨레s>에 실린 '홍명교의 이상동몽' 칼럼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바주 해안가 일대에는 약 50만 명의 바자우족(Bajau Laut) 사람들이 산다. 바자우족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수영을 배우고, 성인이 되면 최대 8분까지 잠수를 할 정도로 바다와 친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 집시’ 혹은 ‘바다의 유목민’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바자우족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 일대에 약 130만 명이 흩어져 있는데, 말레이시아 정부는 무국적 신분인 바자우족 다수를 ‘불법 이민자’로 간주한다. 그러다보니 교육·의료 등 기초적인 복지혜택에서 동떨어져 있고, 최근에는 당국에 의해 추방되거나 구금될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바자우족은 말레이시아 건국 훨씬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왔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자우족은 9~13세기에 걸쳐 동남아시아 해안 일대(필리핀 남부 술루군도와 만다나오섬 일대, 보르네오섬과 술라웨시섬 해안지대, 말라카해협 등)에 정착했고, 이후 힌두 문화와 이슬람 문화, 화교 무역의 영향을 통해 지금의 생활양식을 갖추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건국 시기보다 훨씬 전부터 그곳에 살아왔던 원주민들인 셈이다. 그러니 어찌 이들을 ‘불법’이라 치부할 수 있겠는가.

파괴된 일상

지난 몇 년 사이 바자우족의 일상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는 바자우족의 생계수단인 풍부한 해산물을 고갈시켰다. 말레이시아 푸트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년 사이 말레이시아의 평균기온은 최소 1.75%에서 최대 2.69% 올랐는데, 이런 기온 변화는 해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온이 오르면서 산호초의 백화 현상을 야기했고, 이것이 주요 어류의 서식지를 무너뜨린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2012년 당시 하루 100톤의 어획량을 기록했던 사바주 툰무스타파 해양공원에서의 고기잡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예측했다. 2012년경 한 번에 30KG의 랍스터를 잡을 수 있었던 조호르해협 어민들은 10년 후 4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 어획량을 보며 한탄해야 했다.

2022년 생태과학자이자 인류학자 세리나 라만에 따르면, “과거에는 바람이 일정하게 불면 특정 어종이나 게가 들어왔”지만, “지금은 바람이 매일 바뀌거나 하루에 최대 세 번이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현지 바자우족 어민들이) 그물을 끌어올려 다른 곳에 던지”게 됐다.

5년 사이의 말레이시아 해안지대 산호초 파괴 양상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에 평균 살아있는 산호초는 48.11%였지만 2015년에는 45.95%로 떨어졌고, 그 후 몇 년간 감소세를 보였다. 결국 2019년 기준 180개 산호초 지대 데이터는 40.63%로 떨어졌다.

출처: 합동해양위원회 이니셔티브
출처: 합동해양위원회 이니셔티브

어획량이 줄어들자 바우족 인구 상당수가 육지로 이동해 일거리를 찾았다. 평생 바다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어디서든 ‘국외자’나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산재 빈도가 높은 위험작업이 그들에게 떠맡겨지기 일쑤였다. 말레이시아의 인종주의적 변화 속에서 바자우족은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는 필리핀 이민자”로 오해되곤 한다. 천년 전의 이주를 아직까지 딱지 붙이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많은 바우족 사람들은 체류허가증 없는 미등록 신분이라는 이유 하나로 수용소에 체포되어왔다. 육지에서 열악한 일터와 수용소 등을 떠돌아 다니다 바닷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을 맞는 것은 파괴된 수상가옥과 새로 들어선 고급 리조트 뿐이었다.

인클로저

기후위기 이외에 바자우족의 일상을 공격하는 또 다른 위협은 정부와 자본의 울타리치기(인클로저)이다.

지난 6월 4일 사바주 당국이 “보안 강화와 국경 범죄 퇴치”를 명목으로 셈포르나 해양공원 내 바자우족 가옥들을 무자비하게 철거했다. 이 지역 7개 섬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강제철거로 인해 200여 채 이상의 집들과 138개의 구조물이 파괴됐고, 500여 명이 평생 살던 집을 잃어버렸다. 또, 해안가에 재배하던 농작물도 마구 짓밟혔다.

강제철거 중인 바자우족 가옥
강제철거 중인 바자우족 가옥

현지 사회운동단체 보르네오 콤라드(Borneo Komrad)의 무크민 난탕(Mukmin Nantang) 활동가에 따르면, 상당수 수상가옥은 대형 선박에 의해 파괴됐고, 나머지는 고의로 불태워졌다. 보르네오 콤라드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업로드된 영상에는 불타는 수상가옥, 군복을 입은 철거단원에 의해 부숴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무크민 활동가는 로히터와의 인터뷰에서 “바자우족은 국경이 생기기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며, “이번 강제철거는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반차별 NGO ‘푸사트 코마스’의 활동가 제럴드 조셉은 이번 퇴거 조치에 대해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을을 부수는 것만이 정부의 유일한 대책이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보르네오 콤라드는 무국적 공동체 원주민들에게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회운동 단체다.

셈포르나 해양단지의 한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아흐마드 카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부 마을에선 퇴거 전 통지를 받았지만 통지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 채 철거당했다”고 폭로했다. “바자우족은 현지 법률에 대해 모릅니다. 안다고 한들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0년 5월 이후 불법 이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여 지금까지 4만5000명의 미등록 주민을 구금했다.

이와 같은 강제철거와 추방, 체포의 과정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디디의 『커먼즈란 무엇인가』(빨간소금)에 따르면, 수백년 전 영국에서 ‘커먼즈(commons)’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개방된 땅” 혹은 “보통 사람들”이란 의미를 가졌다. 이들에게 숲과 농지는 삶의 기반이었는데, 귀족과 신흥부르주아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조상 대대로 모두의 것으로 존재하던 땅과 숲을 무자비하게 강탈하고 사유화했다. 이런 탈-커머닝(de-commoning)의 결과, 17세기 말에는 잉글랜드 토지의 4분의1, 스코틀랜드 토지의 대부분이 공유지였지만, 200여 년 후 공유지는 불과 5% 밖에 남지 않게 됐다. 바자우족에 행해지는 잔혹한 퇴거 과정 역시 지난 수백년 동안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해온 과정과 다르지 않다.

윌리엄1세가 잉글랜드의 드넓은 숲을 ‘왕의 숲’으로 선포할 때 그곳에 수백년 간 살던 평민들에게 동의여부를 물어본 적 없었듯, 과거 일제가 농지를 국유화하고 강탈할 때 제멋대로 했듯,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바자우족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향을 무너뜨릴 권한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칼 마르크스는 이처럼 체제에 포섭되지 않았던 생산자 공동체(바자우족)를 기존의 생산수단(바다)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국가폭력을 ‘시초축적’이라고 규정했다. 강제철거와 노예화, 정복, 대량학살, 강탈, 살인…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폭력의 역사가 인류를 짓눌렀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그랬듯, 이제 말레이시아의 자본가들은 아주 저렴하게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tching by George Cruikshank of “London Going out of Town, or the March of Bricks and Mortar” (1829)
Etching by George Cruikshank of “London Going out of Town, or the March of Bricks and Mortar” (1829)

선동죄 남용

사회운동에 대한 공격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27일, 바자우족의 권리를 위해 캠페인을 벌여온 무크민 난탕 활동가는 페이스북에 강제철거 영상을 업로드했다는 이유로 이것이 ‘선동죄’에 해당될 수 있다며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지역 활동가들은 “소외된 공동체에 대한 인정을 촉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또, 말레이시아의 선동죄가 1948년 식민주의에 맞선 해방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악법이라며,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규탄했다. 이 법의 남용은 최근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 8월에는 벤츠 알리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토코 부쿠 라캬드(Toko Buku Rakyat)’를 급습해 선동죄 명목으로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을 압수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중인 서점
압수수색 중인 서점

현지 인권운동단체 수아라 라캇 말레이시아(Suara Rakat Malaysia)는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셈포르나 지역경찰이 선동죄 명목으로 보르네오 코마드 창립자 무크민 난탕을 조사한 것은 이 오래된 법률이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단속하는 데 처음으로 악용된 사례다. 이것은 정부 책임성 개선에 대한 공약과 연방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반선동법의 이러한 노골적인 남용은 또한 3월에 연립 정부가 입법을 개정하기로 한 공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지난 7월 4일 말레이시아의 35개 사회운동단체들은 반란법 폐지를 촉구하는 대의회 성명을 발표했다. 이튿날 5개 단체들은 말레이시아 정부를 향해 유엔 인권이사회 권고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정부 결정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바자우족이 자연과 공생하며 지켜온 아름다운 해안가에는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관광 리조트들이 즐비해질 것이다. 쫓겨난 바자우족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지 사회운동은 아래로부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르네오 콤라드는 7월 8일, 바자우족 주민 대안교육을 위한 ‘대안대학’ 입학식을 거행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하루 온종일 진행되는 이날 행사는 학생들의 연설과 시 낭독, 공연, 코코넛 씨앗 심기, 영화 관람, ‘모두를 위한 교육’ 노래 합창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이뤄져 있었다. 착취와 인클로저에 맞선 가장 능동적이고 희망적인 몸짓은 투쟁과 조직화, 교육이 뒤섞인 아래로부터의 운동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보르네오 콤라드가 운영하는 셈포르나 대안학교
보르네오 콤라드가 운영하는 셈포르나 대안학교

참고 자료

  • R. Loheswar and Julia Chan, 「Bajau Laut tribe’s conflict with the Sabah govt: It’s about more than just houses」, MalayMail, 2024. 6. 29.
  • Lynn Gail, 「Indonesia’s Bajau people: the free-diving sea gypsies who have evolved for a life at sea」, South China Morning Post, 2019. 5. 2.
  • Ben Blackledge, 「Sustainable tourism key to Malaysian marine park’s ambitious plans」, South China Morning Post, 2018. 6. 12.
  • RASHVINJEET S. BEDI, 「Report: Health of coral reefs in Malaysia slowly declining in last five years」, The Star, 2020. 2. 17.
  • Ushar Daniele, 「Malaysia’s artisanal fishermen suffer net losses as climate change hits livelihoods」, South China Morning Post, 2022. 8. 20.
  • Sophie Lemière, 「Will Malaysia’s Johor polls herald the start of a new opposition front?」, South China Morning Post, 2022. 3. 10.
  • 「Cut adrift: why Moken sea gypsies' nomadic way of life seems doomed」, GDN, 2012. 10. 7.
  • 「Malaysia evicts 500 Bajau Laut from offshore Borneo homes in migrant crackdown, activists say」, Reuters, 2024. 6. 6.
  • 「Malaysia questions Bajau Laut activist under sedition law, raising concerns under PM Anwar」, Reuters, 2024. 6. 27.
  • Joseph Sipalan, 「Stateless in Sabah: Malaysia’s Bajau Laut eviction sparks rights issues as protest march looms」, South China Morning Post, 2024. 7. 1.
  • Borneo Komrad의 페이스북 페이지
  • Sama-Bajau 페이지, Wikipedia (검색일: 2024. 7. 3.)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