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활동가 인터뷰 ② | 민주화운동의 득과 실, 그리고 정치 모순
2024년 5월 14일
팟캐스트 '아시아의 붉은별(RSOA)'팀은 2023년 말레이시아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의 앞부분은 100일 전인 지난 2024년 2월 6일에 게재됐다. 이 글은 이 인터뷰의 나머지 부분이다.
콕 힌(Kok Hin) : 말하자면 정당(UMNO,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역주)에 다인종적 설계를 도입한 것이죠. 그러나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당의 정치적 중심에 있는 인종이 여전히 말레이인이라는 겁니다. 말레이 반도의 정치에서 이것은 규정적으로 주어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말레이인이 핵심 리더십을 갖지 않는 모든 정당들은 소수민족 정당으로 간주되는 것이죠.
RSOA : 그렇군요. 즉 많든 적든 간에 모든 정당들이 인종적 기반을 두고 있고, 심지어는 다인종 정당 역시 종종 민족적 수사의 함정에 스스로 빠진다는 거죠. 저는 이 체계 속에서 계급이 어느 측면에서 개입되는지 혹은 개입되지 않는지가 궁금했는데, 우선 말씀대로라면 제가 이해하기로는 말레이시아의 이 소위 ‘민주화’가 민주화라는 데 별로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콕 힌 : 비록 중국이 홍콩에게 있어 공산주의의 망령이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공산주의의 위협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핵심 그룹(에 힘을 실음: 역주)을 통해 중국인 그룹을 견제했다는 거죠.
RSOA : 이주민에서 투표권이 있는 시민으로의 해방이라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죠. 제 생각엔 인종적, 민족적 정치를 통해 유권자들을 통제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요.
콕 힌 :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덧붙이고 싶습니다. 말레이시아 역사의 많은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민족에게 대규모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끝나지 않은 논쟁들이 있습니다. ‘국가에 충성하지 않거나 특정 언어를 할 수 없으면 시민권을 규제해야 한다’ 따위 담론을 아직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들을 환영해서도 안 되고, 그들은 여기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담론은 기본적으로 1950년대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고, 이런 면에서 역사는 여전히 과거가 아닙니다.
RSOA : 즉 말레이시아가 맞닥뜨린 인종적 곤경에 있어서, 국민연합의 조직 구성은 1957년 독립 이후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정의해 온 특수한 정치적 협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이라는 주요 인종 그룹의 엘리트 간 연합에 의해 권위가 창출되는 것이죠. 뉴내러티브(New Narrative)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협정에 대해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라고 칭하셨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2018년과 2022년 국민연합의 선거 패배가 어떻게 이 협정을 종식시켰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콕 힌 : 저도 프랜시스 후쿠야마처럼 제 말을 좀 수정하죠. 협의주의가 실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계시다고요. 그것은 마치 땅 속의 물이 뿌리로 스며들듯이, 단지 다른 형태로 우리의 정치적인 삶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합의는 다양한 인종 그룹의 정치 엘리트들을 관찰했던 네덜란드의 정치학자 L. Pard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엘리트들은 서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4개의 공동체 혹은 인종적 그룹이 있고 각 그룹의 엘리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엘리트들은 각 그룹의 대표자로 선출되고, 정치적인 여론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들끼리 협상이 이루어집니다. 민주주의에서 당신이 누구에게든 투표할 수 있음에도 말이죠.
각 정당들이 다수 인종 그룹을 대표해왔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의 독립 이후 첫 수십 년은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즉 중국인들을 대표하는 중국당(MCA), 인도인들을 대표하는 인도당(MIC), 말레이인을 대표하는 말레이당이 있었고, 각 그룹의 엘리트들은 협의하고 협동하는 것이죠. 그러나 경쟁이 (각 인종 공동체의: 역주) 내부로 향했기 때문에 이 모델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동일 그룹 내의 정치적 반대파가 존재하는 경우 그들 각자는 소위 ‘알파 메일’이 되고자 더욱 노력할 겁니다. 내가 너희 당보다 더 말레이인이다, 나는 저 중국인 정당보다 더 중국인다운 정당이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람들의 ‘권리’를 팔아 자신만이 이 공동체의 정당한 보호자임을 역설하죠. 매사가 이런 식이 되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이고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비슷한 에피소드를 하나만 고르자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2004년에 UMNO가 단독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뒤에 많은 사람들이 오만해졌습니다. 이후 UMNO를 둘러싼 내부 역학관계는 스스로에게 독이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다인종주의적이던: 역주) 당 의장이 과거의 당 지도자들과 기층 조직 지도자들에 의해 탄핵된 것이 그 예시입니다. 이건 UMNO의 협력자들을 약화시켰는데, UMNO가 더욱 ‘알파메일’스럽게 (폐쇄적) 공동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UMNO와 협력해 온 중국계 소수 정당은 2008년의 다음 선거에서 큰 패배를 당했고 이후 이들은 생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힘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협의주의는 모두가 동등한 교섭력을 갖고 있는 경우에만 작동합니다. 한 당사자가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면 권력이 없는 다른 당사자가 왜 필요하겠어요? 하지만 소수 정당이 지지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이 스스로를 중도화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별 볼일없는 정당에 신경을 쓰겠어요? 그럴 때 더 강한 다른 곳에 구애를 하겠죠. 이것이 기본적으로 2004년부터 2018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2022년 이후에 발생한 더 복잡한 일들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1969년 이후 말레이시아가 ‘협의주의적’이었다는 명제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69년의 인종 폭동 이후 의회는 잠시 정지되었습니다. 계엄령이 떨어졌고, 이후 UMNO는 주도적이고 지배적인 정 치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즉 세 주요 정당(UMNO, MCA, MIC: 역주)이 일종의 동등한 파트너 관계였던 1969년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1969년 이후에는 그들이 어떤 수사를 사용하더라도 더 이상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UMNO만이 운전석을 지켜 왔으니까요.
물론 지금 정부에 있는 정당들은 그런 종류의 당이 아니지 않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총리가 이끄는 인민정의당(PKR)은 다인종 정당이고 민주행동당(DAP)도 다인종 정당입니다. 물론 저는 독립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말레이시아의 정당 대다수가 실제로는 여전히 인종 기반 정당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학적 의미에서 인종 기반 정당은 해당 정당 스스로가 특정 인종 집단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걸 뜻하고 BERSATU(말레이시아 통일원주민당)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한편 PAS(말레이시아 이슬람당)는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이 악질적으로 얽혀 있는 이슬람 정당입니다.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과 사바에도 지역 정당들이 있고, 다른 인종들을 대표하는 정당도 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조화로운 다인종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거죠. DAP는 다인종 정당이지만 다수가 말레이인이 아닌 정당입니다. 그 당의 대표단 중 90%는 중국인이거나 인도인입니다. 반면 PKR은 실제로 조금 더 다인종적인 정당이기는 합니다.
모두가 특정한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처럼, 다인종 정당 자체도 특정 인종 집단에 어필하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는 민족적 수사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은 다양한 인종주의적 시위에서 등장하는 수사도 일부 받아들입니다.
RSOA : 말레이시아에서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의 비율은 10% 미만,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은 2% 미만입니다. 한편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21년 14.2%, 단체협약은 약 15%의 노동자에게 적용됩니다. (말레이시아의) 이런 취약함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는 인종에 기반한 정치적 헤게모니가 정치를 주도한다는 것이 계급 기반의 정치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콕 힌 : 네, 저는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체성 정치는 항상 좌파에게 있어서 도전이었다 생각합니다. 당에서든 운동에서든 항상 일부 사람들은 “계급투쟁 이외의 다른 것이 주의를 흐린다”고 말하곤 하죠. 반면 어떤 사람들은 좌파가 정체성 정치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지지를 잃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이죠.
말레이시아의 경우에 저는 두세 가지 요인이 떠오르는데요, 말씀하신 노조 조직률 외에 우리의 동료 오디 알리(Audi Ali)가 쓴 노동조합 조직가들과 좌파 단체들에 대한 탄압 관련 기사를 청취자 분들께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기사에는 계급 기반 조직이 말레이시아에서 동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료로는 '센터'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싱크탱크의 작업을 언급하려 합니다. 비록 일러스트에 간단한 설명을 더해 출판된 정도의 자료긴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노동조합 운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왜 조직률이 낮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노조 지도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등. 제 의견을 말하기 전에 이 두 자료를 여러분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우선 두 개의 벡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하나는 물론 앞서 말한 영국인입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 그저 평화와 민주주의를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교과서와는 달리 우리가 비교적 평화적인 독립을 얻어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았어도 제국주의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죠. 하지만 앞서 노조 조직가와 좌파 활동가에 대한 탄압에 대해 언급했는데,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백색테러와 재판 없는 구금이 포함됩니다.
현재 1MDB 금융 스캔들로 인해 감옥에 있는 나집 라작 당시 총리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말레이시아에는 내부 보안법인 ISA(Internal Security Act)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ISA가 사라진 공로가 나집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모든 활동가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억압에 맞선 계급투쟁이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그건 바로 탈식민화를 통해 국가기구를 계승한 구 식민지 국가가 (식민 당국의: 역주) 국가폭력을 함께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내부 보안법은 국가적인 위협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고 우리는 이것이 노조 조직가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이미 자주 보아 왔습니다. 즉 왜 조직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처벌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물론 신자유주의일 겁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말레이시아의 개발에 매우 집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매우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었다고 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대에 말레이시아가 개발과 산업화의 궤도에 올랐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국적 기업에 구애한 동시에 지역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과 부미푸트라 정책(말레이인 우대정책: 역주)을 함께 펼쳤고, 기업가들의 번영을 위해 노력한 친자본주의자였습니다. 당신이 기업의 노동착취를 막고 노동자의 편에서 싸운다면 그는 분명히 당신 편에 서지 않을 겁니다. 즉 그의 첫 임기 22년 동안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그리 좋은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레이시아 사회당(PSM)이 표를 얻지 못하고 선거에서 패하는 것을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든 역사적인 외부 과제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RSOA : 음, 저는 민주화와 노동자 투쟁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공식적인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인 1987년 한국의 경우, 무더운 여름 와중에 전국 곳곳에서 강력한 파업이 벌어지고 사무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에 동참해 이듬해 직선제 대선을 치르도록 군부를 이끌어냈죠.
이전에 말레이시아의 노동 정치에 대해 읽어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시도에 대한 제한과 탄압은 매우 잔인하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종의 기회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노동문제 연구원에 해야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직된 노동자와 노동자들이 현재 말레이시아 민주화에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어떤 운동적 경향이 열리고 있다 보시는지?
콕 힌 : 네. 우선 ISA(보안법)가 폐지되고 사회당이 등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등록하는 데만 10년이 걸렸습니다. 또한 현 정부는 개혁을 약속했기 때문에 적어도 투표에 참여함에 있어 억압적으로 보여지는 것을 꺼려하고, 그런 면에서 조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Gabungan Kiri(좌파연합) 등의 좌파 단체 연합이 있어 왔고, 그들은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포함하여 다양한 전선에서 조직을 이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 그룹은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그룹입니다. 그들은 병원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불안정 노동에 직면한, 10년 동안 같은 병원에서 일했음에도 월급은 그대로인 노동자들을 조직합니다.
이처럼 이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조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는 이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권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행동하는 민주주의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당들은 이런 것들이 말레이시아의 선거 제도 하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비례대표제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연합에 속하거나 혹은 (지역구에서) 다득표를 얻지 않으면 제도권에 진출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동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Khoo Boo Teik이라는 학자가 쓴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 Khoo Boo Teik은 마하티르주의와 그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담아 첫 번째 책을 썼고, 마하티르주의의 역설에 대한 두 번째 책을 썼습니다. 모든 청취자 분들께 이 두 권의 책을 꼭 추천드리고 싶네요.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말레이시아에서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구분이 명확해졌습니다. 공공 부문은 말레이시아 주류 민족들로 이루어진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의미합니다. 즉 한국과 달리 고용주와 자본가에 맞서 조직한다는 게 더욱 어렵다는 것이죠. 비말레이인 소수 인종 노동자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고용주에게 쉽게 맞설 수 있을까요? 국가는 일반적으로 고용주의 편을 들기에, 쉽게 (인종적) 공동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주류 인종 그룹들이 노동자 조직화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것은 이들 중 다수가 이미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스콧이 <약자의 무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농을 이용하려는 자본가와 부농에 맞서 마을 차원에서 소규모의 저항을 조직화한 사례도 많습니다. 자주 보고되지는 않지만 작은 단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투쟁의 사례들이죠.
아나스(Anas) : 콕 힌의 관점에 조금 더 덧붙이자면, 좀 더 계급 기반의 접근법으로 조직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본 것들은 봉기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쟁의행위였습니다. 예컨대 JPKK(공공노동자네트워크) 가맹 노조의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임금 수준 개선을 위해 조직화를 시도했던 예시라던가, 계약직 의사들과 배달 라이더들의 경우 모두 강력한 파업이 있었지만 조직적인 지원은 전혀 받지 못했죠.
그래서 저는 억압적인 법들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 외에 말레이시아의 쟁의행위나 노동운동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물은 조직 역량의 부족에서도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자체는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말레이시아의 역사에 걸쳐 있어 왔고 현재도 존재하는 노조 탄압의 결과물이고, 그래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러나 민주화의 진척에 따라 우리는 이 부분에서의 발전을 좀 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콕 힌 : 말씀하신 내용은 흥미롭네요.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장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저희 아버지가 산업자유무역지대(FTZ)에서 일하실 때 제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런 일들이 가끔씩 일어나곤 합니다. 대규모 해고 같은 일이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항의하는 경우가 있지만 자원이나 능력의 부재로 보통 지속가능하지 않고 산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아시 다시피 심지어는 미국에도 파업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자생적인 파업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술적이지 않고, 변호사도, 자금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일들을 하나로 묶는 데 도움을 줄 외부의 조직자가 필요합니다. 말레이시아에는 최근까지 그런 요소들이 부재했고, 그래서 JPKK 같은 곳이 생겨나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업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파업을 하며 자식들을 먹여살릴 수 있느냐의 문제니까요. 이런 것들은 어떻게 말하든 간에 지식인의 책임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실제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문제인 것 같아요.
RSOA :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제 베르시 유스Bersih(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동맹: 역주)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아나스 : 베르시는 말레이시아 민주주의 담론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가령 베르시는 여러 번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아까 2010년대 내내 5번의 집회가 있었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집회에 참여하여 민주적 개혁과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해 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말레이시아 역사상 가장 큰 시위 중 하나였고, 역사적 분수령이 된 운동을 대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조직이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현장에서 상황 이 좀 변했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떤 제도적 변화가 있었나요?
콕 힌 : 한 질문 안에 여러 질문들이 있네요. (웃음)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변화가 있었냐는 말씀이시죠? 네, 저는 요즘 사람들이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심지어는 출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지네요.
비유를 하나 떠올려 본다면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을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고, 네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죠.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식들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좋은 비유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여전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혹은 카페에서 냉소하면서도, 이제 조용한 밤이 오면 지난 25년 간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꽤 멀리 왔다는 걸 깨닫죠. 정부는 더 이상 밤에 영장 없이 사람들을 체포할 수 없습니다. ISA, 정말 큰 승리였죠. 제가 왜 계속 이런 얘기들을 반복하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총리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 정부 하에서는요. 물론 여전히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래픽 디자이너 파미 레자(Fahmi Reza)가 말했듯이 정부가 여러 번 바뀐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죠. 말레이시아에는 바뀌지 않는 정권 하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일반적인 총리는 더 이상 무적도 아니고, ‘봉건 군벌’도 아닙니다.
콕 힌 : 우리에게는 이제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 역시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베르시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의 일부였죠.
조직은 말하자면 NGO류에 더 가까운 별개의 실체일 겁니다. 그러나 베르시 운동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위험이나 직업상의 위험 등의 큰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했습니다. 이 운동에는 집단적 주인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내가 직접행동을 하거나 효과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많은 민주적 환경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변화에는 1mdb 재판에 연루된 전 총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포함됩니다. 여기엔 당신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강력하더라도 언젠가는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끔 하는 것이 내포되어 있죠. 심지어 여기에는 운동 참여자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거리 시위는 우리의 문화가 아니”라고 말하던 사람들까지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이제 시민으로서 불만을 표출하는 합법적 수단으로 거리 시위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나스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2018년 이후 말레이시아에도 극우 보수 단체가 생겼는데 그들은 거리를 점거하고 말레이시아 정부에 국제인권협약 비준 거부를 요구하며 차별대우 종식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이건 변화 여부를 포착할 수 있는 사례겠죠.
제도적 변화를 언급하셨는데요, 이번에 말레이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선출직 의원에 대한 당적 변경 금지법이 도입되었습니다. 특정 정당에서 당선된 의원들 은 이제 함부로 타 정당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유권자들은 보통 후보자가 아닌 해당 정당에 투표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지지를 함부로 이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것이 여러분이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베르시가 지지하고 있는(사법)개혁안이 있습니다. 법무장관과 검사를 겸직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정부에 조언을 제공하는 법무장관과 총리를 상대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총리를 기소하는 검사는 최소한 분리되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또 의회의 더 큰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부패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우리가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주요한 공공기관들입니다. 사소한 개혁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현 정부가 공약했던 주요 개혁들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번에는 때를 놓치지 않길 바라고 있는데요, 지난 총선 이후 개혁이 충분한 속도로 이뤄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그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이번에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나스 : 개인적으로 이전에 최소 몇 년 동안 [베르시에서] 조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제 일화나 경험과 연관지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14살 때 3회 베르시에 참여했고, “문제를 일으키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습니다. 그 당시의 경험을 최근 조직화에서의 제 경험과 비교해 보자면 두려움은 더 이상 무작위 체포나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것 같은 직접적인 형태의 억압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 것 같네요. 물론 지금도 우리는 시위가 끝날 때마다 경찰서에 불려가지만, 현재는 최소한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억압의 방식은 직접적인 방식에서 더 다양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참가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겁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콕 힌 : 당신을 지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겠고요.
아나스 : 그렇네요.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시위를 대하는 방식을 보며, 정부가 이전 경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변화의 경향성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제도적으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관점이라는 면에서요.
콕 힌 : 말씀을 해 주셨으니 말인데, 그런 측면에서 경의를 표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Syed Husin이, Ali Kua Kia Soong이 되었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들은 정치적 구금을 겪고 회고록을 쓴 정치 운동가들입니다. 그들은 한밤중에 갑자기 정치범으로 체포되었고, 경찰은 그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들은 기본적으로 12년 이상 재판 없이 구금되었죠. 이들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시절은 조직화하기 훨씬 어려운 시절이었죠. 지금 모든 것이 장밋빛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시절이 힘들었다는 건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국가폭력에 대한 신진 연구자의 중요한 작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교토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Boon Kia Meng의 연구인데요, 어쩌면 다음 회차에 그를 초대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는 Fahmi(앞에서 언급한 그래픽 디자이너)와 함께 Occupy Dataran의 주최자였고, 말씀해 주신 경찰의 폭력을 비롯한 국가폭력 경험자들을 조사해서 논문을 썼습니다. 저도 내용을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출간을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멋진 연구라고 생각해요.
RSOA :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 덕에 균형 잡힌 이해가 가능해졌고, 무엇이 더 나아졌고 무엇이 이런 것들을 규정하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 것 같네요. 말레이시아를 단순히 경찰국가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했고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 인터뷰의 기본적인 목적은 특정한 (말레이시아 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는 것이었고, 그에 관련된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초반에 잠시 언급됐던 이슬람 정당에 대해서는 아직 더 궁금한 점들이 있습니다.
아나스 : 네. 저는 콕 힌과 함께 최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와 선거 강화에 대한 원탁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회의의 마지막 세션에서는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보수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놓고 매우 흥미로운 패널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청년층에서의 득표는) 소위 ‘녹색 물결’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슬람 정당이 승리를 거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녹색 물결은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보수적인 종교정치에 경도되고 있음을 의미할까요?
콕 힌 : 우선 청취자들에게 이게 왜 ‘녹색 물결’이라고 불리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아나스 : 그렇네요. 녹색 물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슬람 정당의 전통적인 색상이 녹색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은 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3개 주의 주총리(수석장관)를 차지했고, 그런 관계로 녹색 물결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죠. 그렇다면 이 녹색 물결이 청년들의 보수적인 종교 정치로의 경향성 전환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단지 과거 지배 세력이던 국민연합(BN)에서 현재 야당인 국민동맹(PN: PAS가 속해 있음)으로 표심을 바꾼 것뿐인가요?
콕 힌 : 양쪽 다 조금씩 맞는 것 같아요. 인종-종교적 민족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이 증가하고 있는 걸 부정하기는 어렵겠죠. 특히 전국에 분포된 몇몇 도시들에서,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권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생활방식(라마단: 역주)을 선호합니다. 일 년 중 특정한 날짜와 시간에는 음식을 팔 수 없습니다. 일 년 중 특정한 날짜와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먹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SNS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더 많아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특정한 형태의 이슬람주의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불어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도 맞는데요, 말레이시아 정당정치에 대해 연구해 온 일본 학자인 와시다 히데쿠니의 논문에 따르면 이번 총선 여론조사에서 투표일 전날 마지막 순간에 유권자들의 지지가 국민연합(BN)에서 국민동맹(PN), 즉 PAS/BERSATU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그건 어떤 종교적인 이유로 그랬다기보다는 단지 반감이 가장 적은 곳을 골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전에 UMNO에 투표했었지만, 총리가 부패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에게 투표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익숙한 정당에서 이념적으로 너무 멀리 가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말레이 정당에 투표하겠어. 이런 것이죠. 그렇다면 PN은 실제로 더 많은 이슬람주의를 바라는 걸까요? 사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말레이시아에서 그런 실험이 이뤄진 적도 없고요.
심지어 이건 UMNO에 반대하는 항의 투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국민동맹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UMNO와 국민연합에 대한 투표입니다. 비슷한 맥락에 대입해 보자면 1999년 총선에 대해서 ‘녹색 물결’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오늘 일어났다면 몇몇 평론가들은 그렇다고 하겠지만요. 당시엔 UMNO의 마하티르가 안와르 이브라힘을 해임한 후 많은 유권자들이 Fadzil Noor의 PAS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UMNO가 졌기 때문에 당시 PAS는 최대 야당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게 녹색 물결이었나요? 우리가 그 때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말해 주듯이 그것은 녹색 물결이 아니었습니다. 2004년에는 PAS가 승리하지 못했고, PAS의 승리는 일회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PAS가 UMNO에의 항의 투표를 PAS에 대한 투표로 바꿔낼 수 있을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겁니다.
RSOA : 알겠습니다. 콕 힌이 오늘 저희와 함께 많은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최대한 직접적으로 말레이시아 민주화의 득과 실, 모순에 대해 여쭤봤는데 아주 잘 준비된 답변을 해 주셔서 그 미묘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콕 힌, 마지막으로 꼭 하실 핵심적 말씀이 있으신가요?
콕 힌 : 글쎄요,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끔 말레이시아의 정치는 다른 곳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 이후의 정치적 발전에 있어 식민주의의 유산이 영향을 끼치는 것 역시 다른 곳과 비슷합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승리하기도, 때로는 패배하기도, 어떤 개혁은 다시 돌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혁을 위한 로비의 기회 역시 있습니다. 베르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원했던 일부 개혁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당적 변경 금지법으로 더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되었지만, 지금의 선거는 훨씬 더 경쟁적인 선거가 되었고 저희가 할 일도 더 많아졌습니 다. 하지만 저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동의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이 거리에 나가 대중운동의 일부가 되었던 경험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엘리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국가의 공정성을 결정한 경험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베르시는 Pusat Sejarah Rakyat(인민역사센터) 및 청소년 그룹인 Imagine Malaysia와 함께 지난 15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시위의 역사를 구술 채보하여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협력할 예정입니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5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모든 시위에 대한 목격자이자 참여자, 주최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계속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공동작업자들에게 출연요청을 드릴 수도 있을 테고, 이 작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RSOA : 웹페이지나 책, 혹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볼 수 있을까요?
콕 힌 : 네, 돈이 더 많으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네요. 하지만 우선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터뷰 내용을 녹음한 후 책을 내고자 합니다. 하지만 물론 책 한 권 이상의 콘텐츠가 나올 테니 SNS로의 결과물 발표도 있을 테고요.
RSOA : 좋습니다. 오늘 에피소드는 주로 아나스가 기획했고, 우리 두 한국인은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로 지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더 긴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말레이시아 정치와 역사의 발자취를 짚을 수 있었던 좋은 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밤 우리와 함께 해주신 콕 힌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방송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콕 힌 : 오늘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 : RSOA 보리, 연우
번역·정리 : 이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