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와 기후위기 | 시장이 우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
2023년 11월 21일
이 글은 캐나다 몬트리올 티오티아케 기반의 연구자 다비드 벤트로네(Davide Ventrone)의 글 ESG and climate crisis: Why the market won’t save us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는 공공 정책·화폐·국제 체제의 계급 정치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기후 변화를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규모, 강도, 속도로 저탄소 에너지 대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사적 행위자들은 이러한 방향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 기반 ‘해결책’에 계속 의존하고 있다. 그중 ESG로 알려진 금융 제도가 가장 보편적이고 인기가 있다.
ESG는 환경, 사회, 거버넌스의 줄임말로 최근 유행하는 지속 가능한 투자 또는 ‘책임 있는’ 투자의 일종이다. ESG는 전문 금융 기관이 탄소 배출, 노동 관행, 기업 지배구조 등의 기준에 따라 조직(주로 기업)을 평가하고 점수를 부여하는 제도다.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 요소를 기반으로 평가된 조직에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투자자는 기업 운영의 잠재적 영향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시장 참여자는 이를 통해 ‘나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에 따라 투자를 어디에 할지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ESG의 핵심 전제는 윤리적으로 좋은 투자를 함으로써 재정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ESG는 생산 방식을 대대적으로 재편할 필요 없이, 시장을 통해 임박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쉬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산을 재구성하는 대신에, 기후 위기의 길로 우리를 계속 내모는 것이다. ESG는 말 그대로 우리의 생존을 무책임한 사적 기관의 손에 맡긴다. 따라서 기후 위기에 대한 주류 ‘해결책’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ESG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SG의 기원과 대유행
지난 10년 동안 ESG는 금융계에서 지배적인 사회적 책임 투자 전략이 되었다. 이 개념은 2004년 유엔 보고서 〈살피는 자가 이긴다: 변화하는 세계와 금융시장을 연결하기(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에 처음 등장했다. 이 보고서에서 유엔 사무총장은 “자산 운용에 [ESG] 이슈를 더 잘 통합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과 권고안을 개발”하기 위해 금융 기관의 공동 이니셔티브를 촉구했다. 따라서 ESG의 핵심 전제는 윤리적으로 좋은 투자를 함으로써 재정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ESG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투자자의 89%가 ESG 모델을 채택했다. 이는 2021년 84%에서 증가한 수치다. 202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53조 달러(전 세계 자산의 1/3 이상)의 자산이 ESG 펀드에 보유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운용사가 보유한 ESG 관련 자산이 약 18조 4,000억 달러에 달하며, 2026년에는 33조 9,0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자산 운용사의 94%가 책임 있는 투자 전략으로 ESG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자산 규모가 3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온타리오주 공무원연금, 온타리오 교사연금, 퀘벡 연금, 앨버타 교사연금, 캐나다 국민연금 등 거의 모든 캐나다 주요 연금이 ESG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ESG가 인기를 끄는 이유
ESG가 금융 주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람들에게 자본으로 사 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ESG는 의도가 진심이 아니더라도 투자자가 투자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둘째, ESG 지지자들에 따르면 ESG 영역 중 하나에서 저조한 성과는 투자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투자자에게 이는 기업에 투자하거나 특정 자산을 구매할 때 수익이 불확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리스크 평가와 사회적 영향을 종합하는 것이 ESG의 핵심이다. 즉, 사회적 영향과 리스크 프로파일의 상관관계에 따라 자산을 ‘클래스’로 그룹화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 및 기관 투자자는 리스크 프로파일이 낮은 녹색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녹색 자산 클래스의 생산은 국가나 다른 형태의 정치적 개입 없이 기후 변화를 완화하려는 글로벌 금융의 핵심적인 기획이다.
지지자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ESG는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위험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ESG가 근본적으로 금융 투자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보다, 기후 위기가 금융 수익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ESG 모델의 목적은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202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ESG를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 개선(65%)과 위험 완화(43%)며, 사회적 또는 환경적 영향은 20%로 거의 최하위였다. 캐나다 투자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 패시브 ESG 펀드의 9.3%만이 파리 기후 협약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두 번째 문제는 ESG가 처음부터 사 회적 변수에 대해 잘 정의된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수많은 기업이 ESG 데이터와 지수를 제공하지만 E, S, G를 구성하거나 정의하는 널리 합의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등급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다. 100개 이상의 조직이 ESG 데이터를 수집하고, 500개 이상의 조직이 ESG 등급을 산출하며, 170개의 ESG 지수, 100개 이상의 ESG 수상, 120개의 자발적 ESG 표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ESG의 핵심 요소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기본적인 정의도 확립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기관의 ESG 등급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현실에서 ESG 포트폴리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가장 친환경적인’ ESG 펀드는 친환경 기술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술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테슬라나 애플과 같이 이러한 펀드가 많이 투자하는 기업의 노동권에 대한 끔찍한 기록을 무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것이 최악은 아니다. 예를 들어, 뷸러와 헤이스(Buller and Hayes)에 따르면 영국에서 명시적으로 기후를 내세운 33개의 펀드를 분석하니, 펀드 3개 중 1개가 엑손(Exxon)이 지분을 보유한 석유 및 가스 생산 회사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여전히 전체 자산의 9.08%인 1,748억 2,000만 달러를 화석 연료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상장 기업이 화석 연료 기반 기업에서 투자 철회를 하더라도 사모펀드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10대 사모펀드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80%를 화석 연료에 투자하고 있으며, “지난해 대형 은행이 화석 연료에 투자한 금액과 맞먹는 2,160억 달러의 화석 연료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ESG의 위험성
ESG 비판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전 지속가능성 책임자였던 타리크 팬시(Tariq Fancy)는 2021년 퇴임 후 금융계와 ESG 지지자들에게 악명을 떨치면서 ESG 모델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후 변화의 위험으로부터 포트폴리오를 보호하는 것과 기후 변화의 발생을 막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특히 팬시는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연구를 수행한 후 ESG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연구는 ESG 모델이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심각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정부가 필요한 규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실제로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타리크 팬시는 ESG 정책이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블랙록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세계를 위험한 신기루로 이끌고 있다”고 주장한다.
ESG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미국에서 우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플로리다 주지사 디샌티스(DeSantis)가 주장한 것처럼 우파는 ESG가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몇몇 공화당 주에서는 공공 투자(주로 연기금)에서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반(反)ESG 법안을 통과시켰다. ESG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반유대주의적 음모, 트랜스혐오, 인종차별, 기후 부정 수사를 표방하는 완전히 새로운 우파 연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는 모두 ‘워크 반대(anti-woke)’ 정치의 기치 아래 이루어졌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COP26과 COP27 기후 회의는 국가 규제 당국과 금융가들의 대화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행위자들은 투자 흐름은 근본적으로 금융가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후 변화를 막고자 하는 사람들은 ESG가 사기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ESG는 자본가 계급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위기를 완화하려는 사례 중 하나다. ESG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기후 위기의 근원을 다루지 않고, 사회 문제를 자본 축적에 대한 위험으로 제시하고, 해결하는 ‘시늉만’ 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지구에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경제를 통제하고 편협한 이윤 추구를 없애야 한다. 기관 투자자의 보고서 뒤에 있는 몇 가지 무의미한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글로벌 생산 조직의 급진적인 정치적 변혁을 통해서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
글 : 다비드 벤트로네(Davide Ventrone)
번역 : 구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