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장기 독재에 맞선 사회운동의 오늘
2023년 9월 15일
캄보디아는 1986년부터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 People’s Party)의 훈센(Hun Sen) 총리가 37년간 장기집권했다. 지난 8월 22일 그는 드디어 기나긴 임기를 마치고 아들인 훈 마넷(Hun Manet)에게 지위를 세습했다.
이러한 장기 독재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총선에서 훈센과 인민당은 2당으로 추락해 잠시 입지가 흔들렸다. 하지만 1997년 쿠데타로 공동총리 라나리드를 축출하고 다시 권력을 독차지했다.
두번째 위기는 21세기에 찾아왓다. 2012년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이 등장하면서 훈센의 절대권력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구국당은 노인연금 지급, 최저임금 인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상의료,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기회의 균등화 등 공약을 내걸고, 캄보디아의 민주화를 약속했다. 구국당의 ‘적폐 청산’과 서민 친화적 공약은 캄보디아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2013년 7월 총선과 2017년 6월 총선에서 구국당이 약진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훈센 정권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온갖 탄압으로 이러한 변화를 무마하려 했다. 구국당의 대표 삼랭시(Sam Rainsy)는 2015년 정부에 대한 비방죄로 고소당해 의원직을 박탈당했고, 결국 2017년에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2017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구국당이 44%의 득표율로 지난 총선 의석수의 12배에 달하는 지방의회 의석수를 달성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자, 훈센 정권은 새 구국당 대표인 켐 소카(Kem Sokha)에게 ‘미국의 지원을 받고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하여 가택연금시켰다. 결국 구국당 소속 국회의원 55명 중 절반 가까이가 훈센 정권의 연이은 탄압에 해외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결국 그 해 11월 16일 대법원은 구국 당을 정당법 위반으로 해산하고 구국당 소속 정치인 118명의 정치활동 역시 5년간 금지한다. 이후 총선에서 인민당은 다시 여당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그렇다고 훈센 정권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멈춘 것은 아니다. 해외로 망명한 활동가들은 투표 보이콧 등 방식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캄보디아 현지의 비판적 언론들도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 대응할 방법이 없어 훈센 총리를 위시한 인민당의 집권을 막기 힘든 실정이다.
훈센 정부는 올해 VOD(Voice of Democracy) 등을 포함해 16개의 비판적 언론들을 폐쇄하는 등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젊은 세대를 포섭하기 위한 선심성 공약과 투표 독려 등으로 장기집권의 명분과 토대 역시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캄보디아 민중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캄보디아계 미국인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새어리 생(Theary Seng)은 2020년 11월 이후 반역 혐의로 기소된 100명의 활동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구국당 당원은 아니였지만, 정부의 구국당 탄압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2022년 1월 체포됐다. 그는 재판에 자유의 여신상을 모방한 옷을 입고 출석하는 것으로 자신의 저항정신을 드러내 주목을 받았다. 해당 의상은 녹색 페인트, 삭발한 머리 위 왕관에 쓰여진 "자유", 그리고 몸 전체에 드리워진 커다란 체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는 신체와 옷을 통해 과장된 표현을 함으로써 자신이 국가반역자로 기소된 상황이 정치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어리 생은 그해 6월 60명의 야당 지지자들과 함께 반역죄로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기소 문서에는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한 그 어떠한 세부적인 서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한 증거 정보를 검찰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2022년 12월 30일에는 수백 명의 활동가들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거리에 모여 캄보디아 *나가월드 호텔 카지노 노동쟁의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을 포함한 정치범들의 석방, 사법부의 독립을 요구했다. 시위자 중 한 명인 프룸 찬타(prum chantha)는 야당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된 남편 칵 콤페아(kak komphear)의 석방을 요구했다. 시위자들은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프놈펜시 법원으로 행진했으나, 수십 명의 보안 요원들에 의해 들어가는 길이 봉쇄됐다. 찬타와 캄보디아 노동조합연맹(Cambodian Confederation of Unions)의 룽춘(Rong Chhun) 위원장은 총리실로 걸어가려다가 저지당하여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시위 직후, 프놈펜시 당국은 캄보디아 독립교사협회(Cambodian Independent Teacher Association, CITA) 회장인 오우크 차야비(Ouk Chhayavy)와 CITA 운영위원회에 경고 서한을 보내 협회가 지자체의 허가 없이 또 다른 시위를 조직할 경우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시 당국은 시위 진행 전 CITA의 대표들을 소환해 시위의 주제를 모든 정치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것에서 "감금된 교사들의 석방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는데, 해당 요구를 수용한 이후에도 시청은 CITA의 요구를 거부했다. 캄보디아 법은 집회를 시청에 미리 신고해야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진행하기 위한 허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차야비는 해당 사건과 나가월드 호텔 카지노 노동쟁의에 대한 당국의 탄압을 예로 들며, 캄보디아 민중의 집회시위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월드 호텔 카지노의 일방적 정리해고에 저항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했던 여성 노동자 크힘 시타르(Chhim Sithar)를 비롯한 7명의 노동자들은 파업 선동 혐의로 체포됐다. 2023년 5월 캄보디아 사법부는 노조 활동가들에게 ‘사회 안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2023년 7월 총선에서 인민당은 약 66%의 높은 득표율 을 보였다. 여기에는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치적 대안 세력이 부재한 게 크게 작용했다. 야당의 정치인들 대부분이 탄압으로 인해 수감되거나 해외로 망명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대중과 직접 만나기보다는 소셜미디어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펼쳐 일반 유권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활동가들이 추진한 투표 보이콧의 경우, 투표권 행사 유무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환경에서 거부권 행사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훈센과 인민당 정권의 유지에는 국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요인 역시 존재한다.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메콩강 댐 건설 등 캄보디아에 이권이 얽혀있는 중국의 경우, 자신의 아들인 훈 마넷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으로 권위주의 일당 지배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훈센의 행동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 역시 캄보디아에 관심이 많다. 훈센과 인민당 정권은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국내 요인과 국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상황에서, 캄보디아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가월드 호텔 카지노 노동쟁의에서 알 수 있는 노동자들의 불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캄보디아 내외부 저항의 목소리, 그리고 대중들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포착하는 것으로부터 지배 체제에 대한 균열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저항들을 어떻게 하나로 잇는지에 캄보디아 사회운동의 미래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훈센 부자의 장기독재에 맞서는 캄보디아 민중들의 투쟁으로부터 한국 사회 역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1997년 한국과 캄보디아가 수교한 이후, 양국 정부는 한국 자본의 캄보디아 진출을 적극 지원해 왔다. 그렇게 캄보디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 상당수는 당국과 결탁해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억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3년에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군경에 총선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유혈진압하도록 사주했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에 의해 폭로돼 캄보디아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016년에는 한국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고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연대투쟁에 대해 주한캄보디아대사관이 사보타주를 시도했다는 <오마이뉴스> 보도도 있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국제연대의 정신에 기반해 캄보디아 민중의 이러한 투쟁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글 : 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