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1년 한 해 동안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돋움활동가로 일했다. 책 『활동가들』(2023, 빨간소금)은 당시 같이 활동가로 활동했던 보리, 그리고 2022년 일을 시작한 현빈 두 사람과 함께 플랫폼c 돋움활동가들의 전담사업으로 진행한 활동가 인터뷰 시리즈를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노동, 정보공개, 반빈곤, 여성, 퀴어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11명의 활동가들을 직업인의 관점에서, 또 생활인의 관점에서 인터뷰했다. 처음 기획은 ‘직업으로서의 사회운동가’로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을 더 많이 생기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었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나온 지금은 그에 더해서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누구나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더 많은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활동가들』이 기획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인터뷰의 핵심 질문 중 하나인 ‘나에게 활동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해 나 자신의 답을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다.
『활동가들』이 엮여 나오기까지
먼저 ‘플랫폼c’와 ‘돋움활동가’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들에 대한 소개가 『활동가들』을 엮게 된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에 인터뷰이로 등장한 박상은 활동가의 말을 빌려 소개하자면 플랫폼c는 “사회운동 활동가 재생산 구조를 고민하면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비영리 사회운동 교육단체”(p.138)이다. 기후위기, 불안정노동 등 사회운동의 연대를 주된 목표로 삼고, 더 크게는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국제연대를 꿈꾸고 있다. 플랫폼c에는 ‘돋움활동가’라는 직책이 있다. 진로이자 직업으로서 활동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주1일 상당의 보수를 받고 플랫폼씨에서 함께 다른 상근활동가들과 일할 수 있는 자리이다. 돋움활동가는 단순히 보수를 받고 활동을 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닌, 플랫폼c가 고민하는 하나의 새로운 활동가 재생산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활동가 재생산 구조를 고민하는 사회운동단체, 그리고 그 고 민이 실체화된 돋움활동가라는 직책. 어쩌면 ‘활동가들’에 대해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생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은 환경이 만들어 준 필연적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 기획했던 사업은 사실 활동가 인터뷰의 형태가 아니었다. 2021년 플랫폼c에서 돋움활동가로근무하던 나와 보리는 각자 활동가 취업 이외에도 대학원 진학 등 여러 갈래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돋움활동가로서 수많은 직업활동가들을 만나면서도 여전히 활동가라는 직업은 추상적인 관념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처음 던졌던 질문은 무엇이 ‘좋은’ 혹은 ‘바람직한 ‘활동가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활동가로 첫발을 내딛는, 혹은 내딛으려는 사람들이 읽고 좋은 활동가가 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처음의 기획이었다.
여기에는 학생운동을 거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새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곁에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활동을 가르쳐 주고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좋은 선배 모델 역할을 맡아줄 사람은 줄어들고 있었다는 배경 고민도 작용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과거의 활동가 양성은 주로 학생운동, 특히 학생운동 내에 각 조직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 조직의 이념적 지향에서부터 회원 간의 관계에 대한 수칙, 세미나의 운영방식까지 문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미나들은 공식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개인간의 대화를 통해, 여러 뒤풀이와 모임자리를 통해 암묵지로 공유되는 ‘활동가론’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고 한다. 각 조직마다 각자의 이상적인 활동가 모델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런 활동가가 되기 위한 조언, 충고, 경구 따위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학생운동이 쇠퇴하고 학생운동조직이 만날 수 있는 학생 풀도 좁아지면서 과거와 같은 경로를 거쳐 활동가가 될 수 있는 이들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첫 기획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활동가가 되기 위한 암묵지들을 구전형태에서 문서로 남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c 기획회의에 위와 같은 구상을 들고 갔을 때 받았던 피드백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예상했던 반응은 선배 활동가들이 각자 자신 시기의 활동 경험을 좀 더 전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받았던 피드백은 ‘단일하고 이상적인 활동가상을 그린 뒤, 사람들을 거기에 맞출 수는 없다’,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서 내가 있는 공간에서 사회운동을 어떻게 꾸려갈 지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등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시대가 변화했으면 그에 맞추어 활동가를 육성하는 방식과, 요구되는 활동가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과거의 활동가상에 갇혀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기획은 활동가 인터뷰로 바뀌었다. ‘지금 살아서 열심히 잘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당시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물었다. 즉 활동가 지망생이거나 처음 사회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사회운동을 했었는데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법한 고민을 묻고 그들이 활동을 통해 각자 찾아온 답변을 모은 것이다. ‘활동가’라는 단어에 흔히 결부되어 있는 숭고하고 치열한 투사, 혹은 격무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직장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들을 넘어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신념들, 각자가 걸어온 삶의 경로와 지향을 담고자 했다.
나에게 운동이란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여러 공통 질문들이 준비되었다. 나의 첫 집회경험, 사회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 활동가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등등… 그 중에서도 항상 가장 마지막에 두었고 항상 공통적으로 물어봤던 질문은 '나에게 운동이란' 이었다. 답도 여러가지였다. '혁명의 연속'같은 답변부터 '그냥 하는 것', '재미있는 일', '연결', '정성'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밍갱 활동가를 인터뷰할 때였다. 밍갱 활동가에게 이 질문을 할 차례가 되자 밍갱 활동가는 도리어 인터뷰어인 나와 보리에게 운동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인터뷰이들에게 대여섯번을 물어보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 나에게 운동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물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했던 답은 '책임감'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답을 할 것이다. 사실 책임감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누군가에게는 책임감과 의무로만 운동하는, 그런 지치는 이미지가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 내 주변 사람에 대한, 2. 내 앞선 사람들, 그리고 뒤에 올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3.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런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이 곧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결국 서로에 대한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라 하면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일 수도 있겠다. 책임감 있게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어진 일을 하는 것? 그러면 주어진 일이 무엇일까? 자신의 직업이나 공부도 있겠지만, 그 관계 속에서 서로가 동등한 존재로 존재하는가? 그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할 테지만, 물질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물질적 조건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을 갖추는 것을 넘어 물질적 관계를 이유로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까지 포괄한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관계를 맺고,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이 바로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내 앞선 사람들 그리고 뒤에 올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앞선 사람들은 역시 선배들인 것 같다. 내가 잠시 활동했던 학생운동 조직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은 '역사적 좌파'라는 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운동의 흐름도 결코 과거와 단절된 단편적인 운동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다. 한반도에서도 오늘날부터 구한말까지 거슬러가며 끊임없는 노동자, 여성, 빈민들의 운동이 존재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다시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서구 사회주의의 흐름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권리들, 운동에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과 교훈은 그들이 앞서 만들어놓았기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조차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걸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이걸 어떻게 잘 지키고 더 확장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누린 것들을 나의 후배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 선배들이 각자의 시대 속에서 고민하고 싸운 결과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권리라면 우리 또한 우리의 시대 속에서 고민하고 싸우자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그러한 결의에서 나오는 책임감은 사회운동에 있어 하나의 구심점 혹은 동력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 그렇지만 가장 개인적인 조건에서 나온 이야기다. 내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또 교육받으면서 수혜를 많이 받은 축에 속한다는 고민을 자주 한다. 내가 중고등학생때 책과 신문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들어온 대학교와 학과가 동아리가 학생운동의 마지막 발자국이라도 따라 밟아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서울에 살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그리고 여러 단체들에서 그렇게 활동을 해 볼 수 있었을까? 인격형성기라는 20대 초반에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거치면서 지금의 나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삶의 다른 지점에서 일터에서 혹은 다른 계기를 통해서 언젠가는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과 참여를 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점과 방식은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지점에서, 사회운동이 나와 주변사람과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더욱 널리 알리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지식을 사회에 다시 풀어내는 방법이 결국에 사회운동적 실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운동의 최고의 홍보수단은 사회운동인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내가 먼저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 기회를 사회적으로 더 넓히기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말하고 실천하며 사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사회운동을
결국, '나에게 운동이란'에 대한 질문은 비단 활동가만이 아닌 누구라도 다 답변을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과 연결, 그리고 사회 제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 함께 사는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려는 노력 중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모두가 각자의 배경과 조건에 기반한 고민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 책의 기획의도로 돌아가며 글을 맺는다. 경제침체와 신냉전과 기후위기의 시대에, 각자도생이 격화되고 사람들 간의 단절이 깊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그리고 사회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과 절망 속에 침전하기보다는 늘 자신을 바꾸자 하고, 자신 주변 사람을 바꾸고자 하고, 그렇게 함께 바꾸어 가는 과정에서 끝까지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과정은 사회운동일 수밖에 없다.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전업 직업활동가로서 사회운동에 일할 수도, 생활인으로서 여가시간을 쪼개어 자신이 관심있는 사회운동단체의 활동에 참여할 수도, 때로는 후원으로 보탬이 되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이 바꾸고 싶은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할 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활동가들』에 등장하는 직업활동가들의 일과 고민에 대해 점점 더 깊이 공감해 가게 되리라 믿는다.
- * 이 글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에 실린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ACT!에 감사드립니다.
글: 임현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