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서울시는 물가심의위원회를 열어 대중교통 요금안을 결정했다. 올 10월부터 지하철은 요금 150원 인상(추후 150원 재인상), 버스요금은 8월 12일부터 시내버스는 300원(1200원→1500원), 마을버스 300원(900원→1200원), 광역버스는 700원, 심야버스는 350원을 올리기로 했다.
반면 내년 최저임금은 9,860원으로 확정되었다. 물가인상률은 3.4%인데, 최저임금 인상률은 2.5%로 고작 240원이 올라 사실상 임금이 삭감된 것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공공요금만 오르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요금인상의 이유를 대중 교통요금 적자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적자때문에 요금인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정부 예산이 부족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처럼 들린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는 이미 국가예산으로 책정되어 있는 지하철 PSO(Public Service Obligation공익서비스 제공 의무)* 지원 예산을 거부했으며, 서울시 역시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며 지자체 정책으로 발생하는 PSO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 이동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한편 버스의 경우는 현재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서울시는 적자 폭이 크다고 말하면서 정작 민간 버스회사 사업자들의 이윤은 모두 보전해주고 있어 '준'공영제가 아니라 사유제라 할 만하다. 즉,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이는 결국 국가예산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 *PSO(Public Service Obligation) : 정부가 국민의 복지나 기본적인 이동권의 보장 등 복지차원과 특수업무 등을 위하여 공익서비스를 민간 또는 공공기관에 시행하도록 하고, 이후 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하여 시행자에게 보상하는 제도.
- **버스 준공영제: 버스 회사의 수익금을 업체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부족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버스 운영체계의 공익성을 강화한 제도. 버스 운행 및 차량·노무 관리는 각 버스회사가 맡고, 의사결정 및 책임은 지자체가 담당.
작년부터 급격한 물가인상과 난방비, 전기요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심화되는 가운데, 대중교통 요금까지 올린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여러 시민 사회 단체들이 모였다. 지난 3월 공동 대응을 위한 <모두의 교통을 위한 운동본부>가 구성되었고, 여기에는 공공교통네트워크,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 서울환경연합, 1만원교통패스연대, 기후정의동맹, 은평민들레당, 플랫폼C와 개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 ,또, 민주노총 서울본부, 너머서울, 빈곤사회연대,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노동당 서울시당, 녹색당 서울시당, 정의당 서울시당, 진보당 서울시당도 함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행동을 진행해 왔다.
일방적으로 공공요금인상을 진행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요로 단위들은 <서울특별시 시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시민공청회를 열어 교통비 인상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시민의 의견을 들을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된 단위들이 함께 공청회 개최 요구 서명운동을 벌였고, 총 6,358명의 시민이 서명에 참여했다. 플랫폼C도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민 6,358명의 공청회 청구에 대해 2주 동안이나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이 이어졌고, 7월 14일 서울시는 공문 한 장을 보내 청구를 거절했다. 지난 2월 공청회를 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2월의 공청회는 교통요금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열었던 것이었다.
시민의 요구가 있다면 공청회를 여러 번 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울시민을 위한다던 오세훈의 시민은 대체 누구인가? 서울시는 6,358명의 시민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지금 당장 사과하고, 제대로 된 시민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요금인상은 불가피한가?
앞서 지적했듯이 서울시는 적자를 이유로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적자를 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버스의 경우부터 살펴보면, 앞서 언급했듯 ‘준공영제’라는 이름 하에 ‘공적’ 세금을 버스회사와 소수의 주주들에게 ‘사적’ 보전해 주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사모 펀드*까지 진출해 민간버스회사들을 사들여 다시 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남겨 이윤을 챙기고 있다.
- *사모펀드: 49인 이하 소수의 고액투자자로부터 사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조성되는 펀드로 비상장주식 등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비공개 펀드.주식, 채권,부동산 등 모든 자산을 대상으로 전문투자만 하는 헤지펀드와 경영까지 개입해 구조조정 하고 되파는 경영참여형이 있.
한겨레신문은 사모펀드 운용사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그리니치프라이빗에쿼티 등이 버스 준공영제 시행지 서울, 인천, 대전의 시내버스 회사만을 무더기로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사모펀드가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배당 △차고지 등 핵심 자산 개발 및 매각 △정비인력·부품 쥐어짜기 등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뒤 다시 파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버스회사들이 노선 유지 대가로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모펀드가 대기업과 금융회사로부터 수천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버스 사업에 뛰어든 점"을 지적했다.
지하철은 어떨까? 버스회사를 사들인 사모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설립자인 차종현 대표이사와 공동대표 김주원, 김석원 등은 맥쿼리인프라 출신이다. 맥쿼리인프라는 호주의 맥쿼리그룹과 한국의 신한금융지주의 합작회사로 알려져있다.
이 회사가 2008년 이명박정부 때부터 서울지하철 9호선 사업에 투자해 최소운영수입조건에 따라 매년 서울시로부터 수백억 씩을 챙긴 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서울시장 역시 오세훈이었다. 맥쿼리인프라가 24.5%의 지분을 가진 9호선 운영업체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은 이때 서울시로부터 운임보조금으로 362억을 받고도 당기순손실 466억을 기록했다. 맥쿼리인프라와 신한은행에 이자비용으로만 461억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반면 법인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맥쿼리인프라는 2012년 9호선 기본요금인상까지 추진하려다 실패했고, 2013년 10월 사업을 철수하면서 주식 매매 차액으로 284억 원을 챙겼다. 이들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민자도로 사업에도 진출해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챙긴 바 있다.
현재 서울지하철은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지만, 자회사를 만들고 재정 및 운영 등을 분리해 민간 위탁하는 방식으로 사유화를 확대해 왔다. 이 과정에서 맥쿼리인프라 같은 기업들이 진출해 '합법적으로' 정부예산을 이윤으로 챙겨간 것이다. 대중교통요금 인상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예산을 사실상 약탈해 가는 사적 이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채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다시 털어 가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대중교통을 시민들이 내는 요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많은 국가들은 대중교통을 시민요금만으로 운영하지 않으며 상당한 예산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 대도시의 운영비용 대비 요금수입 비중은 최저가 휴스턴 (12.9%), 최고가 토론토 (69.6%)이다. 즉, 이들 도시는 대중교통에 대한 국가지원이 보편적이라는 말이다.
반면 한국은 서울교통공사의 운임회수율(지하철 운영시 운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9년 기준 80%를 넘어섰다. 코로나 시기 60% 정도 대로 떨어졌지만 작년부터 다시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지하철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 확대가 없었기 때문에 수송인원 감소로 인한 부채증가가 적자로 이어졌던 것이다.
외국 주요 도시들에 비해 여전히 월등하게 높은 서울지하철의 운임회수율은 현재 요금적자의 문제가 국가지원의 부족임을 뒷받침해 준다. 즉, 정부와 서울시는 적자 해소를 위한 국가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시민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모두의 이동권
대중교통은 필수공공재의 성질을 가지므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필수공공재의 예산 편성에는 인색하면서 엉뚱하게 노인 무임승차를 적자의 원인으로 드는 등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한다. 현재 35세 미만 청년들의 대중교통 부담액은 83,515원, 여성은 90,599원으로 전체 평균보다도 꽤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인상이 청년과 여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인무임승차 탓이라고 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도 운송 횟수와 열차 편성 수에는 변함이 없기에 실질적인 운영비용은 증가하지 않는다. 교통연구원은 무임승차로 노인의 이동권이 보장되면 노인의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이 유지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노인 삶의 질 향상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또, 노인복지의 문제는 청년세대의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청년 세대가 ‘요금을 더 부담하자’거나, ‘노인도 요금을 내게 하자’는 세대 갈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대중교통이 공공필수재임을 확실히 하고 국가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지하철 뿐 아니라 버스도 무상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7월 26일, 장마 종료가 선언되었다. 이 기간 집중호우와 산사태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47명에 이른다.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과 가뭄으로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지원의 확대가 절실하다. 이미 물가인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에게 국가지원 확대는커녕 최저임금 인상액보다도 높은 공공요금 인상은 크나큰 부담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당장 요금인상을 철회해야 한다.
또, 대중교통 이용확대는 개인이동수단을 대체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정책이기도 하다. 요금동결에서 더 나아가 1만원 교통패스 도입같은 요금인하 정책까지 고민해야 할 때다. 414기후정의파업의 요구처럼 20조가 넘는 신공항 건설 계획을 폐기하고 공공교통을 확대한다면 요금인하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와 서울시는 부자증세와 예산확대로 대중교통 등 공공필수재에 대한 국가 지원을 당장 늘려야 한다.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은 노인이나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민간기업과 사모펀드다. 국가 세금으로 이들의 이윤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의 완전한 공영화와 교통 적자 해소에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모두의 이동권을 위한 첫걸음이다.
참고 자료
- 서울 대중교통 요금 8년여 만에 인상...지하철 150원↑ , 차유정, yTN, 2023. 07.12
- “사모펀드, 시민 세금으로 돈 잔 치 벌여…버스 공영제로 전환해야”, 장필수, 한겨레, 2023. 06.29
- 노인 무임승차가 적자 원인?..."비경제적 가치 고려해야" , 박정현, YTNscience, 2023.03.02
- “세계에서 정부 지원 가장 적은 서울지하철”, 남윤희, 매일노동뉴스, 2023.02.06
- 대중교통요금인상 시민부담 전가반대 보도자료,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2023.02.03
- '고수익 무세금'의 맥쿼리에 분노하는 이유, 서정성, 오마이뉴스, 2012,10,23
글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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