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누구나 활동가로서의 미래를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3년 7월 15일
2022년에 이뤄진 '활동가를 만나다 시리즈'의 열 한 번째 주인공은 미디어 노동자 운동을 하고 있는 진재연 활동가다. 그는 열악한 미디어 노동 환경의 실태를 고발하는 것부터 미군 기지 반대 투쟁까지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활동가로서의 성찰을 지속해왔다. 1편에서는 그가 몸 담고 있는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활동과 돌봄, 재충전 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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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노래
플씨 : 활동가로서의 신념이나 걸어온 길,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물어볼게요. 첫 질문은 운동과 관련된 나의 첫 경험이에요. 첫 집회 사회, 첫 발언, 첫 성명, 첫 휴가 등 키워드 하나를 뽑아서 에피소드 얘기 부탁드려요.
재연 : 집회에서 첫 노래, 춤이 생각납니다. 제가 노동조합과 사회진보연대에서 상근자로 일하다가 2006년에 평택 대추리에 들어가 1년 반 동안 지킴이로 마을에서 살게 됐어요. 평택 미군기지 투쟁에서 평화바람이 주최하던 축제를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아서, 대추리에 들어갔어요. 평택미군기지반대투쟁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당시에 빈 집을 청소하고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저는 어떤 집의 옥탑방을 청소해서 살았고, 대추초등학교 안의 솔부엉이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마을에서는 매일 저녁 8시에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촛불 들고 나와요. 마을지킴이들이 주민들과 매일 촛불 집회에서 노래 부르고 춤도 췄는데 그런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물론 결국 대추리를 지키지 못했고, 2007년 4월에 주민 들은 모두 쫓겨났죠. 몇천 명의 군인들이 들어와서 논을 짓밟고, 포크레인으로 학교와 집을 다 허물고, 그 와중에 몸싸움을 해서 군인을 막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는 그런 투쟁의 과정이 있었지만 공권력의 폭력을 막아내지는 못했어요.

마지막 촛불 집회했던 날이 기억나네요. 우리 모두가 이 마을을 나간다는 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촛불 집회를 했는데, 모두가 대성통곡을 했어요. 이런 아픈 기억들이 있지만 저의 삶에서 대추리에 살았던 시간들은 매우 소중했어요. 평택 미군기지 투쟁 자체가 큰 대중 투쟁이자 운동이었고, 그 안에 마을을 지키기 위한 일상적 투쟁과 새로운 마을 점거 운동이 있었죠. 제가 큰 도움은 안 되었겠지만, 힘든 시간에 주민들 곁에 있을수 있어서 감사했고요. 저에게는 소중한 공간이어서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불렀던 노래들이 생각나네요. 사랑의 밧줄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걸 개사해서 자주 불렀어요.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미군기지 꼼짝 못하게~’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이런 노골적인 사랑 고백의 노래를 주민들앞에 나가서 많이 불렀죠.
또 정태춘 씨가 만든 ‘대추리 도두리 지킴이’ 라는 노래가 있어요. 정태춘 씨가 고향이 도두리여서 자주 오셔서 같이 싸우시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노래도 많이 불렀고요. 문정현 신부님이 쓴 시에 맞춰 노래를 만든 건데, 공장에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라고 시작하는 내용의 가사예요. 이런 노래들에 맞춰서 춤을 췄죠. 촛불 집회할 때마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 준비했어요. 재밌게 놀기도 하고, 마을에서 같이 살던 지킴이들이 오늘은 뭘 할지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밌었어요. 그 때 불렀던 노래들이 많이 기억나네요.
플씨 : 첫 노래 잘 들었습니다. 듣다보니 어떻게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재연 : 학교 다닐 때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고, 졸업하고 나서도 당연히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졸업하고 나서 지하철에서 청소노동자를 조직하는 일을 했어요. 여성들의 노동에 관심이 많아서 들어간 노동조합이었는데, 여성조합원들의 숫자만 많을 뿐 여성주의적인 내용이나 조직 운영에 대해서 전혀 고민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물론 그게 어려운 일이고 좀 더 장기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겠지만, 저보다 앞서 오랜 시간 그 곳에서 활동했던 언니들도 너무 지쳐있었고 조직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1년만에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 때 활동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고, 제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을 했어요. 이후 사회진보연대 상근, 평택미군기지투쟁, 이랜드투쟁, 한국지엠지부에서 일을 했고 출산, 육아로 4년을 쉬고 2018년 한빛센터가 만들어질 때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한빛센터에 온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활동가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게 오게 되었어요. 쉬다가 다시 활동을 해 볼까 고민하던 때라 시기도 맞았고요.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저희 아버지가 KBS에서 기술직으로 30년 넘게 일하다 정년퇴직 하셨거든요. 1975년 KBS에 입사하신 아버지가 일 하던 시절은 ‘평생직장’ 개념이 있을 때였고, 방송사에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거의 없이 대부분 정규직이었죠. 왜 지금은 이렇게 복잡한 계약형태가 섞여 있고 불안정한 노동이 대부분인 현장이 되었을까 맥락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좀 더 흥미가 생겼던 거 같기도 해요. 방송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활동하고 싶은 영역입니다.

활동가의 경력 단절
플씨 : 쉬다가 일하게 되었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14년부터 17년까지 육아를 하셨어요. 운동을 하다가 출산과 육아를 위해서 활동을 쉬기까지의 고민과 결정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느끼신 바가 궁금합니다.
재연 : 사실 육아 때문에 그만뒀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는데요. 제가 2012년부터 13년까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에서 노동조합 소식지(노보)를 만드는 일을 2년 동안 했어요. 당시 한국지엠지부 집행부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제안을 받아서 갔던 거였어요. 2년 임기를 채우고, 그 다음 새로 선출된 집행부가 저와 지향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던 거였고요. 그렇게 그만두면서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된 거죠.
사실 이 질문을 받으면서 일반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나의 경험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이 들지는 않았거든요. 다만 활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활동의 단절로 인해 운동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지 못하고 육아에만 매몰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제가 하는 일, 제가 하는 고민과 맞닿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내 아이만 바라보며 육아를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런 걱정과 고민들을 어느 정도 해소한 곳이 지금 제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인데, 마포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이에요. 어린이집에서 사회적 보육을 고민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에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무엇보다 제가 수다 떨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처음 갔을 때 원장 선생님이셨던 분은 공공운수노조 보육분회 분회장을 하셨던 분이었는데, 지금도 좋아하는 분입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그 공간 자체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같이 행동하는 경험을 해보니까 좋더라고요. 지난번 924기후정의행진에 어린이집 이름으로 나가서 노래와 발언하고 그랬거든요. 일과 육아가 반복되는, 어느 때는 조금 답답한 일상 속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들이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저에게 경력 단절은 직업적인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활동가로서 생각했던 고민들이 끊겨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통해 그 끈들의 부재를 조금 보충할 수 있었죠.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가 굉장히 심하잖아요. 그래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저도 그렇게 될까봐 많이 걱정했어요. 육아라는 게 개인적인 경험에만 머물면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게 된단 말이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을 때 내 아이도 행복 하다는 기본적 전제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육아하는 기쁨이 있었어요. 그런 경험과 감각이 저에게 너무나 소중했어요.
부모가 되고 나서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관심이 많아졌고 팬이 되었는데요. 그 분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여러 다른 가족 형태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아이가 사회적 소수자라는 것을 인지하며 더 넓은 연대를 고민하는 활동을 하시는 모습들이 되게 멋지더라고요. 만약 제 아이가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다면 저는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부모들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플씨 : 다 같이 뭔가를 꾸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육아하는 와중에 부천원종사회복지관 임신직원 성차별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거나 연대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어떻게 소식을 접하고 연대를 하게 되었는지, 어떤 연대활동을 했었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여전히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 보이는데 최근 상황은 어떤지도 궁금해요.
재연 : 이 사건은 부천에 있는 원종종합사회복지관 소속의 사회복지사 한 명이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상사가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한다“고 말했고 당사자와 동료 한 분이 문제제기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의 피해자가 제 남동생의 아내였어요. 이 싸움이 생각보다 커졌던 거죠. 정말 슬펐던 점은 저희 올케가 온갖 상처만 다 받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복지관에서 나온 거예요. 다른 한 분은 당사자도 아닌데 올케를 도와주시면서 문제 제기 하다가 계약 해지되셨어요. 그 분은 그걸로 몇 년 간의 힘겨운 싸움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기관이 내부 직원들에게 보여줬던 악랄한 모습이 너무 화가 나죠. 당사자들이 상처를 받고 끝났다는 게 너무 속상한 사건 중에 하나예요. 또 그 때 함께 했던 부천과 인천의 여러 활동가들은 복지관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서 오랜 시간 고통받았어요.
돌봄의 ‘사적’과 ‘공적’ 경계를 넘어
플씨 : 아이들이 어린데 육아하는 것이 활동과 어떻게 병행하는지, 돌봄노동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공성식 동지와 어떻게 분업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공성식 동지가 비슷한 질문에 대해 ‘욕을 많이 먹는다’는 답변을 해서, 이 사안에 대한 발언권은 진재연 동지에게 있다고 느꼈는데요. 사실 공성식 동지 왓츠 인 마이 백에서 노조 조끼 말고 장바구니도 있었거든요.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재연 : 원래 가방 안에 있는 것 중 장바구니를 어필하고 싶었는데, 노조 조끼가 선택되어서 좀 실망스러웠다고 얘기하더군요. (웃음) 육아와 가사분담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공성식 동지는 집안일을 잘 하고,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재밌는 아빠에요. 특히 정리를 잘 해요. 저는 정리를 못하거든요. 기본적인 가사노동과 돌봄 분담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봐요. 근데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대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한 활동가인데, 안 그 러면 안 되죠. 하지만 절대적인 육아와 돌봄 시간은 제가 훨씬 많습니다. 그게 화가 날 때가 있긴 하죠. (웃음) 저희는 육아를 하면서 다른 가족, 예를 들면 조부모님등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둘이서 했어요. 그렇다보니 정신없이 살았던 거 같은데 그래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아이들이 동네에서 다양한 어른들을 접촉하면서 살았던 것도 육아에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활동가로서 책임감 있게 활동하는 것과 육아, 가사노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고, 계속 고민해야 할 지점이네요.
플씨 : 가사와 돌봄 노동에 대한 개인적 실천이 첫 번째 질문이라면, 두 번째는 공적 영역에서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예컨대 소속 단체 플랫폼 시에서 지원해드릴 수 있는 게 있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재연 :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게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일과 돌봄에 대해 구조적으로 고민되지 않으면 개별 단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년 플랫폼씨 상평하계 때 플씨에서 돌봄 공간을 마련해 돌봄을 했던 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플씨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제대로 참여를 못하거나, 아이들이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들이 있다 보니 데려가기 힘들었던 거 같아요.
플씨 : 미국의 경우에는 행사가 있을 때 돌봄 서비스를 단체 차원에서 계속 지원하더라고요.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돌봄 교사를 불러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그게 어느 정도 조직의 규모가 확보 되어야 가능한 부분이기는 해요. 저는 거기서 인상이 깊었던 장면이, 사회주의 페미니즘 토론회를 할 때,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뛰어놀고 소리 지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진행을 하시더라고요. 라이브 스트리밍에 애들 소리가 들려도 굉장히 자연스럽고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는 거예요.
재연 : 예전에 플랫폼씨에서 세미나를 할 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해도 다들 좋게 얘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상근 활동가 동지가 했던 말이 너무 기억에 남고 고마웠어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에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정확히는 생각이 안 나는데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플씨 : 똑같은 맥락에서 저도 플랫폼씨의 그런 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세미나 할 때 공성식 동지가 발제하고 있을 때, 서연이가 와서 놀아달라고 해서 발제하는 와중에 조금 있다가 다시 와서 발제하고, 서연이는 여성 휴게실에서 소리 지르면서 열심히 놀고 이런 풍경이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행사시 돌봄 문제를 플랫폼씨 내에서 논의하고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거 같습니다.
재연 : 행사 시 돌봄 공간 마련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플씨 행사나 세미나에 참여하고 자주 참여하고 싶거든요.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이 언제 끝나냐고 옆에서 잔소리를 할 때가 많죠. 아빠보다는 저를 찾을 때가 많기도 하고요. 그 래서 항상 아이들에게 엄마를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해줘야 된다는 얘기를 하죠 (웃음) 제가 밤에 동네 친구들이랑 술 먹으러 나가려고 하면 붙잡으니까, 엄마를 사랑한다면 보내줘라.

활동가의 자질과 재충전
플씨 : 다음 질문입니다.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나요? 활동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을까요? 서로 다른 자질을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수 있나요?
재연 : 많은 단체들의 활동가가 너무 소수고, 소수가 모든 일을 해야 되는 시스템 속에 있다 보니, 경험이 없으면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활동가도 훈련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도 20대 때 학생운동, 단체 활동을 겪으면서 훈련되어 왔던 거 같아요.
사회운동은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활동가로서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현장에서 꽤 오랫동안 일하신 분이 한빛센터에 채용되었던 적이 있는데 너무 생소하다고, 일 하기 어렵겠다고 하루 만에 그만 두신 적이 있었어요. 일반적인 직장과 많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같이 하다보면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긴 했죠.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활동가로 사는 건 다르긴 하죠. 활동가라는 것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있어요. 저희 아이들의 학교에서 나눠준 가정통신문에 부모 직업 쓰는 칸이 있는데 뭘 써야할지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회단체 활동가라고 쓰긴 하는데 아이도 엄마가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지 않을까. 활동가로 살아가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나의 직업군이라도 생각 되고, 사람들이 활동가라는 직업,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다고 생각되게요. 그러면서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겠죠. 안타까운 게 대다수 사회단체들이 급여가 많지 않고, 내부 민주주의 문제가 있는 곳도 많이 있죠.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플씨 : 잘 들었습니다. 평소에 취미 생활은 어떤 걸 하시나요?
재연 : 윤영은 기분 전환할 때 집회간다고 그랬잖아요. 그거 보고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고요. (웃음) 저는 딱히 하는 게 없네요. 요즘엔 집회도 못가고요. 원래는 새벽 6시 반 수영을 끊어서 최근까지 계속 다녔어요. 근데 바빠져서 한두 달을 안 갔어요. 수영을 좋아하고 물속에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아마추어 수영대회 나가는 게 꿈입니다.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마포지역주민 수영대회 이런 데 나가보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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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현빈, 보리
인터뷰이 : 진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