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깡통전세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2023년 6월 1일
“00아파트 대표 김00입니다”
“(박수를 치며 다 같이)김00님~”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회의 앞머리에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기소개 후 다시 서로의 이름을 박수치며 부 르는 이 시간은 끔찍한 피해를 입은 이들의 모임이라기엔 정답게만 보인다. 처음부터 이런 시간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책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피해자가 지난 2월 28일 사망한 이후 이들은 그를 이름 대신 아파트 명으로 불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면서도 이름을 몰랐다니, 피해자로 만난 이웃들은 그날 이후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려고 한다.
첫 희생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전국의 피해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49재 즈음한 4월 18일에 맞춰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발족을 준비하던 중 4월 14일, 17일에 두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정부와 국회는 다급히 특별법 논의를 시작했다. 5월 8일부터 대책위원회는 국회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5월 25일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피해자들은 이번 대책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성토한다. 피해자들의 숫자만큼 피해 유형이 다양한데 이를 충분히 포괄하는 정의(定義)도,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주택의 금융화가 세입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다
미추홀구 사람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60대 건축업자 남모씨 일당이다. 미추홀구에만 3천채에 이르는 집을 구입하고 감정평가사, 공인중개사, 관리업체까지 한패가 되어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을 눈속임했다.
미추홀구처럼 조직적인 범죄가 아니더라도 전세제도는 집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확대한 전세대출 제도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빚내서 집 사라’, ‘빚내서 세살라’는 정책은 정부와 은행, 임대사업자들에게 퍽 이로웠다. 정부는 지출 없이 집을 공급할 수 있었고 은행은 가계 대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임대사업자는 세입자의 대출을 통해 새로운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전국 주택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2020년에 65.1%, 2021년에 75.8%, 2022년 90.6%가 됐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그 값에 살 사람들이 많아서 오르는 것만은 아니다. 세입자가 일군 평생의 노동에 미래의 신용까지 당겨 낸 전세보증금, 혹은 이들이 감당하는 월세에 대한 기대를 함께 품고 오른다. 문제는 주택 가격의 상승은 소유자가 독식하고, 하락에 따른 피해는 세입자와 사회로 전가되도록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호황기에 자본은 마치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을 피해자들의 파괴된 삶이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무책임
여기엔 정부의 정책 실패가 있다. 주거권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이지만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모두의 주거권 보장이라는 가치 실현보다 부를 증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집을 강화해왔다. 민간을 중심으로 한 주택 공급 역사, 2년에 불과한 임대차 계약 기간과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마다 제한 없이 인상할 수 있는 전월세 가격 같은 것들은 임대인의 이윤추구를 보장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부터 이 문제를 부정했다. 금리 인상과 함께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예견됐지만 2022년 7월 정부는 전세사기만을 문제로 정의하고 사법적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대책만 내놓았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한 깡통전세는 통상적인 사인(私人) 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 정의의 실패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이어졌다. 피해자들의 연이은 사망으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할 때도 정부는 경매중지조차 할 수 없다고 강변하다가 ‘경매중지 필요하다’는 대통령 한 마디에 즉시 경매를 중지했다. 피해주택을 공공이 매입한 뒤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이나 경매절차에 돌입했을 때 우선 매수권을 세입자에게 부여하는 방안도 정부가 아니라 세입자들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마지막까지 포함되지 않은 구제책도 있다. 보증금 채권매입과 사각지대 없는 최우선변제금 보장이다.
- 보증금 채권매입은 정부가 일정 비용에 보증금 채권을 인수해 피해자가 입은 피해 일부를 회복해주고, 피해자들이 경매와 민사소송에 일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이 과정을 정부가 대리하는 방안이다. 최우선 변제 제도는 주택이 경매되더라도 소액보증금의 경우 보증금 중 일정액을 다른 권리자보다 우선해 돌려받을 수 있우는 제도인데, 현재는 세입자의 계약 시점이 아닌 선순위 채권자의 근저당시점을 기준으로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세입자의 보증금에 대해서는 최우선 변제금만큼이라도 사각지대 없이 돌려주자며 ‘최우선 변제금보장’을 요구했다(주택임대차보호법에 소액임차인의 범위는 지역마다 다르며, 서울시의 경우 1억6천500만원이 상한선이다. 우선변제금액은 서울시의 경우 보증금 중 5500만원 이하이다. 단, 우선변제금액이 주택가액의 2분의1을 초과할 때는 주택가액 금액의 2분의 1에 한해 돌려준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금융기관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죽어가는 세입자들의 채권매입은 절대 불가하다는 정부는 올해도 부동산PF대출 부실채권 매입을 위해서는 1조에 달하는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우선 변제금을 모든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금융기관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한다. 최우선 변제금조차 받을 수 없는 세입자들에게 정부는 또다시 대출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끝까지 불수용한 두 가지 대책은 이 정부의 마지노선을 상징한다. 누구의 손해를 사회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이번 특별법은 세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보다 기존 관행과 금융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졌다. 정부는 은행과 기업의 실패는 사회가 떠안지만, 무너지는 개인의 삶은 알아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결코 환영할 수 없는 특별법이지만 피해자들은 특별법 통과를 전면 반대할 수도 없었다. 이 작은 대안이라도 당장 필요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합의로 포장된 반쪽짜리 특별법을 들고 뿌듯함을 느끼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반면, 피해자들은 최우선 변제금조차 받지 못하게 되자 삶을 포기했던 이웃을 떠올리며 허망함과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다. 지금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같은 피해자들이 발생할 것이며, 이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져도 우리 사회는 아무런 해결책을 갖기 어려우리라는 경고다. 현재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하는 일은 앞으로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을 주택가격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것, 임대인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 세입자과 임대인 사이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근본적으로는 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권을 확보하고 집으로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막는 사회제도를 확립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암담하다. 농성을 시작했던 5월 8일에는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전전하던 피해자가 과로로 사망했고, 특별법 통과를 하루 앞둔 5월 24일,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숨졌다. 한편에서는 특별법으로 피해자들에게 저리의 전세대출을 시행한다고 하니 피해자들을 세입자로 받는 것을 새로운 ‘투자 팁’으로 공유한다. 일부 임대인들은 임대인에게 대출을 더 확대하는 것이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의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 문제 해결의 시작점
경매절차에 돌입한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집 앞에는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라는 피켓이 붙어있다. 당신이 실현하려는 시세차익에는 누군가의파괴당한 삶이 담겨있다고 알려주는 이 피켓은 전세 사기 피해주택이 아니라 어느 건물에 걸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43%의 은퇴자가 소득절벽에 부딪혀 ‘노인 빈곤층’이 되는 사회에서 집을 구입하는 것은 자구적인 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집에 관한 우리 사회 구조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합리, 비효율적인 결과로 이어지거나 타인을 착취하게끔 만들고 있다.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세입자들의 주거권은 늘 불안정했다. 위험한 계약을 감당하지 않으면 비싼 월세로 내몰렸고, 월세를 낮추려면 물새는 집이든 곰팡이 가득한 벽이든 수용해야만 했다. 공공임대주택은 항상 부족했고, 2년에 한 번씩 계약 종료를 염려하며 살았다. 한국의 부동산 위기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내일을 꿈꾸어야 할까.
정부는 현재 피해자들이 겪는 일을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 세입자들이 겪은 일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결과이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놓인 보통의 함정이다. 개인이 피할 도리도, 감당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선언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편에 서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실천이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이름이 있는 한명 한명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