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하는 농업과 식량 이야기: 기업화된 식량망에 맞서 어떻게 대안적 밥상을 차릴 것인가?

우리가 알아야 하는 농업과 식량 이야기: 기업화된 식량망에 맞서 어떻게 대안적 밥상을 차릴 것인가?

플랫폼씨 5월 월례포럼은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을 초대해 현 농축산업의 실태 및 대안적 식량 시스템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3년 6월 1일

월례포럼, 농촌, 식량주권, 농민, 로컬푸드, 기후위기
월례포럼 현장
월례포럼 현장

오늘 내가 먹은 것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입 앞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지 않고 궁금해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음식, 맛집에 줄 서서 먹는 행위,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먹방’ 등 요식업과 먹는 행위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대부분의 재료에 대해 우리의 선택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5월 27일, 플랫폼C는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을 초청해 현재의 식량 시스템과 농업의 현실에 대해 듣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농업과 식량 이야기>라는 월례포럼을 진행했다. 아래는 월례포럼 발제 내용, 그리고 관련 질의응답을 요약한 것이다.

‘당’의 나라 한국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먹는 것은 쌀밥 말고도 다양하다. 특히 밀가루가 우리의 식생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빵, 면, 치킨 등 끼니로 먹는 많은 음식에 밀가루가 들어간다. 원래 밀은 정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지만,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미국에서 밀가루 원조가 들어오면서 한국도 밀가루로 음식을 해 먹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설탕, 식용유 등도 대중화되면서 이 셋은 5~60년 넘게 밥상의 주된 재료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밀가루, 설탕, 식용유는 해방 전후 한국의 대자본(일제에 협력했던 매판 자본을 포함한)에 의해 양산 식품으로 세상에 나오는데, ‘1세대 양산식품’으로 삼양라면, 새우깡, 보름달 빵, 누가바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대량 생산되는 음식에 익숙해져 있던 셈이다.

돌리고 돌려 먹는 당, 당, 당...
돌리고 돌려 먹는 당, 당, 당...

밀가루는 많은 요리에 쓸 수 있는 식재료라서 식품산업의 기반으로 삼기 좋은 소재다. 특히 밀가루는 대충 삼켜도 인체가 손쉽게 당으로 전환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밀가루, 설탕 등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쓰이는 당류이자 탄수화물이다. 에너지원으로서의 당의 특성상 ‘달달한 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있다고들 한다. 현재 한국의 음식은 상당히 달고 식품 판매자들은 서로 당도 경쟁을 해서 경쟁력을 높인다. 연구자들은 밀가루 도입 이후 음식들이 분식화 경향을 띠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당에 대한 끌림은 단순히 밀가루 베이스의 음식이 많은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돼지나 닭, 소 등 육류로 소비되는 가축을 기를 때에도 옥수수와 탈지대두분(콩에서 기름을 뽑아낸 것)을 섞어 주된 사료로 먹이는데, 이것은 살을 금방 오르게 하고 ‘풍미’를 좋게 한다. 옥수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 중 하나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당은 매우 안정적이고 저렴하다. 닭 1kg에는 3.5~4kg의 옥수수가 들어있어서, 우리가 육류를 먹으면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당이 고농축으로 뭉쳐져 있어서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빵도 간단히 생각하면 밀가루와 설탕의 조합이고, 라면은 밀가루와 식용유의 조합이다. 치킨은 밀가루와 옥수수 사료를 먹인 닭의 조합인 것이다. 이렇게 밀가루와 설탕, 식용유, 옥수수 등의 가공과 쓰임새가 용이한 특정 생산물들로 여러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전 세계 식생활의 기본 골조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푸드시스템, 번영의 길인가 착취의 길인가?

즉 우리의 식생활은 특정한 식품들이 대량 생산·유통·소비되는 과정으로 짜여 있다. 이를 글로벌 푸드 시스템(global food system)이라 하는데, 원재료부터 시작해서 음식이라는 상품의 생산 및 유통 공정이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초국적 농축산업 자본의 이윤과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기존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 관료들, 그리고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설계된다. 곡물 수출국은 소수의 나라(중국, 미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에 집중돼 있고, 국제 곡물 유통의 60% 이상은 소수의 초국적 농기업(ADM, Bunge, Cargil, LDC)이 지배하고 있다.

특히 초국적 농기업들은 전체 공급망에서 농작물의 과잉 생산으로 막대한 양의 음식 쓰레기를 배출하고 다량의 화학비료 투입으로 기후위기를 심화한다. 농산물이 전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40%를 담당하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는 약 75%가 가축 사료로 쓰인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0%에 달하는 양이 가축에게 주어진다.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들은 선진국 국민들의 식탁에 고기로 흘러 들어간다. 초국적 기업의 농업 시스템은 세계 식량의 20%를 생산하고 세계 농지의 70%를 사용한다. 하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에서 가족 농업이 식량 생산의 주요 형태이며, 가족 농민들은 가치 측면에서 세계 농지의 30%만을 사용해 세계 식량의 80% 이상을 생산한다고 밝힌 바 있다.

비아캄페시나의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 2023년 가이드 팜플렛에 따르면,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화된 농업이 자리 잡는 데는 농민들이 그들의 땅에서 스스로 나가거나 기업농이 되어 종속되는 방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폭력적 과정이 동반되었다.
비아캄페시나의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 2023년 가이드 팜플렛에 따르면,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화된 농업이 자리 잡는 데는 농민들이 그들의 땅에서 스스로 나가거나 기업농이 되어 종속되는 방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폭력적 과정이 동반되었다.

중요한 것은 식량을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정작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농민뿐만 아니라 먹는 사람들도 마음대로 먹거리를 정할 수 없다. 이러한 글로벌푸드시스템은 제도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맺은 협정이나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지탱되기도 하는데, 우루과이 라운드와 같은 다자무역체제나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외국 농산물이 싼값에 관세도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의 상품은 보호받지 못해 농민들에게 큰 손실이 따르게 된다. 이에 농민들은 FTA 반대 투쟁, 반세계화 투쟁, 비아캄페시나 운동 등 활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먹거리에 관한 자본의 권력을 통제하고 농민과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식량 주권’이란 개념이 탄생했다.

자본에 잠식된 닭

한국으로 범위를 좀 더 좁혀서, 가장 기업화된 사례로 한국의 닭 산업을 들여다보자. 한국에서 닭 한 마리라고 하면 보통 치킨을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닭도 치킨 만들기에 알맞게 길러지고 손질되는데, 한국인이 1년에 먹는 닭 8억~8억 5천만 마리 중에 70%는 치킨 시장으로 간다. 이 닭에 깊게 관여하는 기업이 하림과 치킨 프랜차이즈들이다. 닭을 기르는 사람, 즉 양계 생산자들은 하림에서 병아리와 사료 등을 제공받아 사육 후 팔면 하림에게서 사육 수수료(공인비)를 받는다. 이 생산자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350~400원이다. 닭을 출하할 때 받는 값이 2022년 기준 평균 1500~1600원인데, 여기서 병아리, 사료값 등을 빼면 남는 돈은 300원 남짓이다. 하림보다 사육 수수료를 더 주는 회사들이 있긴 하지만, 닭 사육장 지을 때 이미 기본 큰 금액의 대출(양계장 하나당 2억 원 정도)을 한 상황에서는 빚을 계속 갚으면서 생활을 해야 하므로 닭과 병아리를 많이 주는 대기업 하림이 더 낫다고 한다. 게다가 대형 도계장과 가공공장들은 하림 등의 거대 육계기업들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계열’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유통 단계별 닭 가격
유통 단계별 닭 가격

그렇다면 파는 사람, 즉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 점주들의 수익은 어떨까? 납품받는 닭, 소스, 포장비 등을 제외하면 마진율이 10% 정도 된다. 생닭 생산자도 마진율이 10% 정도 된다고 한다. 생산자와 판매자의 마진율이 이 정도 뿐인데, 내가 낸 치킨값 2만 원은 어디로 간 것인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폭리 문제, 배달업체 수수료, 생닭을 치킨으로 만드는 과정(염지, 치킨 재료값 등), 임대료 등의 요인이 있다. 하지만 역시 하림 같은 대형 육계기업을 빼놓을 수 없는데, 고기용 닭을 생산·가공하는 국내 육계시장은 수직계열화가 거의 100% 진행된 상태다. 이것은 기업이 닭을 키우고 잡아서 파는 전 과정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1980~90년대 기업의 수직계열화를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농가의 안정적 수입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장려했고, 이 과정에서 하림 같은 육계기업은 몸집이 커진 재벌 기업이 된다. 이런 거대 육계기업들은 농가에게도 사육 수수료를 매우 짜게 주는 ‘갑질’을 하지만, 동시에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들에게도 버거운 존재다. 닭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공정에 하림의 입김이 안 들어간 곳이 없어서 이런 거대 육계기업들이 아니면 생닭 공급처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킨업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육계기업의 수익은 늘어난다. 즉 육계기업은 닭을 최대한 더 많이 빨리 키워서 자본 회전율을 높이고,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여러 단계의 가공을 통해 최대한 부가가치-이윤을 뽑아내려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닭 산업은 하림 등의 특정 육계기업에게 종속되어 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것이다.

쌀의 현실이 농촌의 현실

그렇다면 자본의 이윤을 위한 식량이 아닌 자급의 식량은 한국에 있을까? 현재 한국의 쌀 자급률은 2020년 기준 92.8% 정도다. 쌀은 한국의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소다. 쌀을 제외하면 곡물 자급률은 급격히 내려간다. 그러나 쌀 자급률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데, 2021년 쌀 자급률은 84.6%였다. 그런데도 쌀이 시중에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수입산 쌀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막걸리, 쌀과자 같은 수많은 가공 영역에서 수입산 쌀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쌀은 우리의 주식으로서도 중요하지만 농민들에겐 삶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농촌 사회에서 쌀은 핵심적 역할을 차지한다. 현재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100만 농가, 즉 약 200만~230만명 정도가 한국의 농업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농민들의 평균 연령대는 6~70대로 고령화되어 있다. 10년 뒤에 현재의 농민들이 농사를 똑같이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2가지 대안이 있다. 하나는 귀농 귀촌인을 받아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후계농이 탄탄해져서 이후에 계속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귀농귀촌인은 농지와 기술이 없고, 후계농은 전국에서 1만 명 이하로 극소수다. 10년 뒤에는 농민이 생산한 국산 쌀을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제는 농업·농촌과 관련된 융자·보조금 등을 지원받으려는 농업경영체가 자율적으로 농업경영정보를 등록하는 제도로, 농업인은 농업경영체 등록을 근거로 농업인확인서를 발급받아 각종 보조금 신청, 농·축협 조합원 가입, 세제 혜택 등의 증명서로 사용할 수 있다.

도시의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지면 시골을 생각하곤 한다. 귀촌 의사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은 40% 정도로 꽤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 속의 삶과 농촌은 거리가 멀다. 지역 발전이랍시고 무작정 개발을 해서 난개발 문제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외부의 투자 유치나 고용 창출에만 급급해서 관광단지나 주상복합 건설 등 도시처럼 개발을 통해 지역을 ‘부흥’시키려는 시도가 많다. 지역 사회의 특성이나 거주민의 욕구에 대한 고려 없이 농촌을 도시의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된 개발 계획들은 주로 지역 관료나 토호, 개발에 참여한 건설사에겐 이익이지만 지역에는 치명적이다. 특히 농촌에 들어오는 산업단지들은 실질적인 인프라 증진보다는 도시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산업의 비율이 높다. 도시의 쓰레기를 농촌이 치우는 상황인 것이다. 인구는 도시로 몰려 있기에 농촌의 환경이 지켜질 수 있을 만큼의 인력과 자원도 부족한 상태다. 또한 고령화된 농촌에서 돌봄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지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농촌에서는 누가 일하나? 이주노동자들이 농촌의 많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특히 세계화와 함께 30~40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농축산어업에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노동강도가 높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일자리부터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는 것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작물 재배업은 91%, 축산업은 44.2%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식재료를 싼값에 살 수 있는 것은 농민과 이주노동자들이 싼값에 노동하고 싼값에 생산물을 팔아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우리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 기반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의 고용주들을 단순히 인권 탄압의 주체로서만 보기보다는 다면적으로 봐야 한다. 30년 전과 현재의 생산물 값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생산에 드는 비용은 훨씬 올랐고 국내 노동력 유입은 꿈꾸기 힘든 상황이다. 농민 대 이주노동자라는 을과 을의 싸움이 아닌, 농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멸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더디더라도 농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초록빛 ‘아름다움’을 멸시하지 않는 것

현재 농촌이 처한 문제는 한 마디로 압축하면 농촌이라는 공간이 재생산될 수 없는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확장해서 보면 자본과 국가가 구축한 세계식량망, 현 식량 시스템을 어떻게 재편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농촌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우리와 농촌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대안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우선 농축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농촌 구성원들이 을과 을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농촌이라는 공간을 바꾸고 농업이 고립되는 걸 막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특히 학교 급식은 1990년대 여성 농민들과 시민운동의 투쟁으로 일군 결실로, 학교 급식을 통해 농민들도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고 고등학생까지의 청소년들도 돈 걱정 없이 밥을 해결할 수 있는, 공공성을 확장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학교 급식은 친환경 로컬 농업의 수요처 중 60%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끼리 모여 같이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는 프로그램, 여성 농민들에게 좀 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시골 언니 프로젝트 등 농촌을 더 안전하고 ‘살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실천들도 있다. 현재 농촌의 주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결혼 이주 여성들도, 전농 및 전여농 등 농민 단체와의 연결을 통해 함께 농업을 일궈나가는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더 나은 농촌을 향한 다양한 길을 상상할 수 있다. 농촌은 도시의 곳간이자 창고로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삶의 현장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은 농촌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고찰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고찰은 농촌의 ‘아름다움’을 멸시하지 않는 것, 농민의 손을 만지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따라오는 물음표들

생소한 주제였지만 강사인 정은정님이 우리와 가까운 문제인 먹거리에 대해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주었기에 사람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아마 우리의 식탁의 원류가 어디서 오는 건지, 도시와 시골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상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발제자인 정은정 님은 질의응답 시간에 현재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양곡관리법은 쌀이 많이 남거나 쌀 가격이 과거보다 낮아졌을 때 정부가 그걸 매입하는 제도로, 농민들의 생계에 대한 사회안전망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지만 여당 국민의 힘과 윤석열 정부의 반대로 분열이 생겼다. 영남-호남 구도의 지역 간 갈라치기, 농업계 내부 갈라치기, 소비자 대 농민으로 여론 갈라치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쌀을 통한 식량자급률이 사라지면 글로벌푸드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우리의 밥상에 대한 선택권은 더욱 좁아질 텐데, 이러한 문제와 농민들의 생존은 윤 정권의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발제자는 양곡관리법을 쌀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농업과 농촌을 둘러싼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고 말하며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질문으로는 농촌과 사회운동이 맺는 관계와 대안적 식량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기후위기에 농업과 농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왜 하필 ‘닭’을 연구했는지, 개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적은데 어떤 실천을 해야 할지, 농민과 농협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이 나왔다. 그는 답변으로 농협을 불가피하게 이용해야 하는 농민의 처지와 농협조합장의 무소불위 권력 등을 지적하면서, 급식이나 지역 단위의 로컬푸드 플랜을 통해 지역의 먹거리 공공성을 보장하는 계획, 농민 기본 수당 등을 대안의 한 예로써 제시하고, 스마트팜을 둘러싼 논의와 기후위기 대응에 농촌이 주체로서 논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가 닭을 연구해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이유는 닭 생산, 가공, 유통이 이미 수직계열화, 즉 기업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이었는데, 현재 돼지와 소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이 경향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이 남는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 복잡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함께 고민하면 우리의 밥상을 ‘해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도시와 시골의 이분법을 벗어난 더 나은 공간을 재편하고, 현재의 기후위기를 타파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른 여러 사회운동의 주체들과 함께 갈 때 쟁취할 수 있다.

참고자료

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따비, 2014

LA VIA CAMPESINA, PEASANT RIGHTS AND FOOD PRODUCTION THEMATIC BOOKLET(2022)

“Food Sovereignty: the struggle for a fair global food system”, War on Want, 2021.04.16

조소진, “1578원 생닭이 2만원 치킨으로… '마진'의 연속이었다”, 『한국일보』, 2022.02.17.

조소진, "치킨 2만원? 닭 키우는 인건비 10년 넘게 마리당 180원" 육계농가의 한탄, 『한국일보』, 2022.02.17.

엄진영,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 『농촌경제』 제44권 제2호, 2021

길윤형,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해 4년 동안 땀과 눈물을 흘린 시민들… 행정 권력의 횡포와 국회의 외면으로 표류하다 식중독 터지자 바로 통과“, 『한겨레21 제617호』, 2006.07.06.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팀, “왜 ‘시골형’ 말고 ‘시골언니’ 프로젝트여야 했냐고요?”, 『경향신문』, 2022.11.30.

유룡, “우린, 지금처럼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20.11.03.

윤병선, “세계화된 농식품체계 지속 가능하지 않아… 식량주권 확보로 우리 먹거리 지켜내야”, 『나라경제』 2022년 9월호

원재정, “전농, 반세계화 운동 선봉에 서다”, 『농정신문』, 2020.09.13

글 : 김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