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날 맞이 ③ 대전에서도 성평등의 외침을!
2023년 3월 24일
‘빵의 도시’ 대전은 지금
매년 돌아오는 3.8 여성의날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전 사 회적으로 거세지는 백래시와 중앙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에 저항해 많은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근시일 내에 성평등 사회가 실현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조금은 지치는 2023년 3월이었습니다.
정부의 반성평등 움직임 못지 않게 지방자치단체의 반 성평등 움직임도 각 지역마다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전에서는 민선 7기에 추진되었던 성인지 담당부서를 폐지하고 복지여성담당관으로 해당 업무를 이관하는 등 성평등 추진체계의 후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조례에 근거해 설립한 대전광역시 인권센터를 보수 기독교 계열인 ‘한국정직운동본부’에 위탁하였고, 센터장으로 ‘바른군인권연구소’라는 자칭 군인권단체 김영길 소장이라는 사람이 선임되었습니다. ‘한국정직운동본부’는 교회 목사가 대표로 있는 단체로 “차별금지법은 사탄의 전략”,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며, 선거 국면에서는 현 시장인 국민의힘 이장우 후보를 공개 지지한 바 있습니다. 또 신임 인권센터 센터장은 “법 위에 인권이 있고, 인권위에 신앙이 있다”는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 나가는 반인권적인 행보를 지속한 인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전시는 ‘대전광역시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넥스트 클럽’이라는 곳에 위탁을 주었는데요. 이곳은 ‘성품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성인지’단어가 남성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보수 기독교 계열 협동조합입니다. 성폭력 피해 방지를 위해 여성이 몸가짐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을 교육시간에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위‧수탁 과정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는 점에서도 의문투성이의 평등문화 전반의 후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전은 이런 상황에서 3.8 여성의날을 맞았습니다.
관성적 기자회견을 넘어
대전에서는 대전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매년 ‘여성의날 대전공동행동’을 구성하여 활동해왔습니다. 대전공동행동은 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대전여성성폭력방지상담소 시설협의회,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이 함께해왔습니다. 저는 2년 전부터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전까지는 주로 서울 집중집회에 참석하고 지역에서는 오전 시청 앞 기자회견과 행진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시간 특성상 참석자들의 다수는 단체 활동가 혹은 임원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참가단체에 고루 발언자를 배분하고, 발언 내용이 다양해지다 보니 기자회견만 한 시간 반을 진행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올해는 매년 진행하는 방식으로 오전 기자회견과 행진을 진행하는 안과,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의견이 교차하며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전 2023년 여성의날은 3월 8일 당일 기자회견 뿐 아니라 저녁 집회를 열자고 결정했습니다. 근 10년 내에는 3.8 여성의날 집회가 지역에서 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서울 외 지역에서 상징성 있는 날에 집회를 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서울 집중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활동가 개인에게는 일정이 늘어나는 부분도 있고, 저녁 집회를 한다는 것은 또 동시에 낮에만 참여 가능한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무대나 음향 등 재정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대전에서 여성의날 집회를 계획하면서 기존 활동가들이 우려한 것은 “사람들이 집회에 올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오전 기자회견은 기존 연대 단체들의 활동가들과 임원들로 참석자가 예상할 수 있는 데 반해 저녁집회는 인원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지요. 3.8 여성의날 집회인데 사람이 적으면 오히려 모인 사람들이 기운이 빠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두 차례 회의 끝에 30명, 50명이 오더라도 집회를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행된 3.8 여성의날 대전공동행동은 3월 8일 당일 기자회견과 집회, 그리고 1주일간 민주노총 대전본부에서 진행하는 ‘다음 소회’ 상영회 일정으로 진행했습니다. 참석인원이 적을까 우려했던 집회는 ‘우리 모두의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는 슬로건으로 25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해 대전에서는 꽤 규모 있는 모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백화점 앞에서 열리는 집회
집회는 3월 8일 오후 7시 대전 서구 은하수 네거리(타임월드 백화점 건너편)에서 열렸습니다. 대전은 집회를 하기에 적합한 상징적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대전역 광장을 주로 이용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공사와 시계탑 설치로 광장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대전시청 근처는 저녁 시간대는 유동인구가 없는 동네가 됩니다. 소규모 캠페인은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에서 하지만 집회를 하기에 편리한 공간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지난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때, 가장 번화가이자 대로변인 서구 둔산동 타임월드 백화점 인근이 집회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대전은 참 집회하기 어려운 동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요즘 대전에서는 광장 아닌 광장이 되어버린 백화점 앞 사거리에서 다양한 의제의 집회가 열립니다.
3.8 여성의날 집회는 여성노동자 발언, 참가자 발언, 반성폭력 활동가, 반성매매 활동가의 발언들로 채워졌습니다. 적은 재정 때문에 손피켓은 서울 집회에 참석했던 활동가들이 서울 집회 손피켓을 한가득 안고 대전으로 복귀해 활용했습니다. 소소한 재활용이었죠. 집회를 많이 다녀본 활동가들은 발언 위주의 집회가 참여자들에게 지루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긴 했지만, 일부 단체 활동가들을 제외한 참여자들 대다수가 지역에 살면서 집회를 참여해본 경험이 적다는 점에서 우려했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기획단계부터 관례적으로 발언했던 단체 대표자들보다는 새롭게 성장하는 페미니즘 운동 단체, 여성 노동 당사자 발언, 개별 활동가들의 발언을 듣기로 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같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각 사안과 성평등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하는 발언들은 어떻게 보면 매우 전형적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방식의 임파워링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집회의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려나요?
차별의 벽과 다시 만난 세계
집회의 마지막은 차별의 벽을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로폼에 양면테이프를 그 위에 풍선을 붙인 다음, 풍선에 부수고 싶은 것을 쓴 차별의 벽을 만들어서 풍선을 터트리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유리천장, 성폭력, 채용성차별, 성별임금격차 같은 단어들이 써내려져 갔고, 중간에 윤석열도 쓰자는 말에 권성동도 쓰고 이장우도 썼습니다. 우스개소리로 고소당하면 어쩌냐는 기획팀의 질문에 윤셕열, 권성둉, 이쟝우로 쓰자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집회 마지막에 참석자들 중 차별의 벽을 터트리고 싶은 사람들은 줄을 서달라는 요청을 했고, 머뭇거리던 참여자들 중 일부가 신나게 풍선을 터트리자 이어서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풍선은 윤석열 풍선이긴 했습니다.
참여자들이 신나게 풍선을 터트리는 와중에 배경음악으로는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묘한 신구의 조합같은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대전 여성의날 집회, 그 형식은 힙하지 않았습니다. 그 규모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공감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달성한 것 같습니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내년에도 꼭 하자는 말이 나왔다면 대성공 아닐까요?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 남성에게 솔과 장갑을!
마지막으로 남성 참가자로서의 후기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대전(이하 대전 남함페)’ 모임도 함께하고 있어서 남성들이 3.8 여성의날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간단한 기획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대전 남함페는 16명 정도가 모여있는 작은 모임인데요. 대전 남함페는 이번 3.8 여성의날 집회 참여 슬로건으로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 남성에게 (청소)솔과 (고무)장갑을!”로 정하고 남성참여자와 남성 행인들에게 고무장갑을 나눠주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샵을 통해 친환경 고무장갑 100여 장을 구매해서 나눠주는 기획이었습니다. “남성 여러분, 지난 명절 설거지는 하셨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했습니다.
맨 처음 기획단 계에서는 공짜로 나눠주는 고무장갑인데 잘 받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가부장제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일까요? 당연하게도 집회 참가자들은 아주 반갑게 고무장갑을 받았습니다. 두 개 줄 수 없냐는 사람도 있었지요. 물론 그분이 받은 고무장갑을 집에 가서 같이 사는 여성에게 주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집회참가자들의 다수의 남성은 지난 명절 설거지를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집회 통제를 하는 경찰과 정보관들에게도 고무장갑을 나눠주었습니다. 머뭇머뭇 하면서 받아가더라고요.
문제는 지나가는 행인들이었습니다. 전문적인 활동가들이 아니기에 아주 적극적으로 행인들에게 말을 걸고 고무장갑을 적극적으로 나눠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노력한 모임 구성원들이 일관되게 하는 말은 “공짜로 줘도 안 받아 간다”는 겁니다. 여성의날 집회라는 현수막만 보고 안 받아가는 남성, 설명을 다 듣고도 안 받아 가는 남성, 나눠주는 것이 고무장갑인 것을 알고 거절하는 남성 등 다양한 남성이 있었고, 우리의 생각보다 남성들이 고무장갑을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른 것보다 우선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 되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실천이었지만 3.8 여성의날에 단순한 연대자가 아니라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목소리로 함께해본 경험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에서만 만날 줄 알았던 플랫폼C 회원분들을 만난 것도 반가웠습니다. 지역 간 지역, 영역과 영역이 서로 교차하고 연대할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김재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가, 플랫폼c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