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협박과 입장 번복이 장애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2023년 1월 10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나치(Nazi) 치하 독일의 한 초등학교 수학시간, 오른쪽 팔의 일부가 없는 장애인 학생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고, 교사는 이상한 문제를 낸다.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가 5.5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 ℛℳ; 1924년부터 1948년 6월 10일까지 쓰인 독일 통화)인데, 유전병 환자 1명의 하루 생활비와 치료비가 12ℛℳ라면, 독일 국민이 잃은 가 치는 얼마가 될까?”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어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교실 제일 뒤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이 빠르고 단호하게 말한다.
“장애인들을 죽여야지!”
얼마 전 공개된 애슐리 이킨의 2022년작 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Forgive Us Our Trespasses>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T4 작전(Aktion T4)이란 이름의 장애인 학살 기획을 시행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1939년 10월, 나치는 장애인과 정신질환 환자를 ‘열등인간(Untermensch)’으로 간주하고, 학살 작업을 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아리아 민족’의 우생학적 ‘건강성’을 제고하고, 단기적으로는 식량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T4는 이 계획의 실행을 주도했던 본부 건물의 주소인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가 4번지에서 유래한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는 불치병과 정신질환자 장애인 같은 “보호 및 치료 시설의 유지 비용은 낭비”이며, 왜 ‘안락사’가 자비로운 일인지 곳곳에서 선전했다. 이와 같은 장애인 학살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아동에서 성인으로 확산됐고, 학살 생체실험이 병행됐다. 이후 나치는 그 기술을 홀로코스트에 적용했다.
T4는 1941년 8월 18일 공식적으로는 종료됐다. 나치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교회가 반발했고, 전쟁을 지속하고자 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입장에서 기독교 사회의 원성은 부담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독일 정부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이 장애인 학살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 방기
한국의 등록 장애인 수는 총 263만 명으로 전체인구 대비 5%가 넘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하철, 버스, 지역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직접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 가입국들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의 1.9% 정도를 장애인복지에 사용하지만, 한국은 0.61% 정도만을 장애인 복지 예산으로 사용한다. 장애인들의 삶이 비용과 효율의 논리로만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발달장애인의 가족이 자녀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수년 간 시설 속에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동안, 사회안전망은 그들의 곁에 있지 않았다.
장애인들은 해마다 돌아오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장애인 활동지원, 탈시설 지원,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지원 등 필요한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그 증액 요구안을 수렴해, 수정 요구안을 제출한다. 그러나 예결위 계수조정위원회에서 증감액 심사를 거치고 나면, 장애인 단체에서 요구한 증액 요구안은 본래 제출했던 액수보다 크게 삭감된 채 되돌아온다.
이런 양상은 2022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라는 이름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1년 지속하면서, 장애인 권리예산을 1조3044억원 증액을 요구하였다. 2022년 12월 24일, 국회 상임위원회는 전장연 요구액의 약 51%(665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여야 최종 합의안에는 요구액의 0.8%(106억8000만원)만 담겼다. 근로지원인 예산 말고는 증액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장연은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자 일시적으로 멈추었던 지하철 시위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전장연은 지난 1월 2일 253차 지하철 선전전과 우동민 열사 추모제를 치르고, 1박2일 농성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 공권력으로부터 열차 탑승 자체를 저지당하면서 결의대회와 선전전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날 경찰들은 휠체어 컨트롤러를 꺼버리거나 훼손하였고, 심지어 휠체어에서 활동가들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지하철 보안관의 폭행으로 인해 한 전장연 활동가는 얼굴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경찰과 대치가 이뤄지는 아비규환 속에서 전장연의 이형숙 활동가는 아래와 같이 외치면서, 이 시위가 시민들의 보편적 권리와 존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상 기시켰다. “오늘 우리 투쟁을 조롱하고 짓밟은 경찰,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직원들. 여러분 모두 나중에 나이들고 약해져서, 혹은 장애를 갖게 되면 꼭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십시오. 꼭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십시오. 절대 시설 가지말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온 우리를 짓밟고 모욕한 오늘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날의 폭거는 지난해 12월 19일에 있었던 법원의 조정안(“전장연이 열차 운행을 5분 넘게 지연시키는 행위를 할 경우 5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전장연이 수용하면서, 5분 이내의 마찰 없는 시위를 하겠다고 약속한 다음 이루어진 것이었다. 공권력은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단 1분도 기다려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13시간 동안 이어진 대치와 경찰의 폭거는 국가 폭력의 현장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그 시간 서울시민들은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는 내용의 ‘안전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안전’이라는 말이 실로 무색해졌다. 법원 조정안을 수용하고, 커다란 시계를 들고 지하철을 기다렸던 것이 어느새 “불법 시위”로 둔갑해버렸다. 당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던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의원실에 찾아와 무정차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구구절절 늘어놓던 며칠 전이 생각납니다. 시민을 지키는 무정차 통과는 그렇게도 어렵더니 시민을 억압하는 무정차 통과는 어찌 이리 쉽습니까?”
1분도 멈출 수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서울교통공사, 장애인들을 지하철에 태우지 않기 위한 무정차 조치…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탄압은 ‘T4’를 상기시킨다.
협박과 번복
지난 1년의 지하철 타기 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시위 사실 안내’, ‘삼각지역 무정차 이후 비장애인을 상대로 운영되는 무료 셔틀버스’뿐이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탈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명제조차 비장애인들의 편의를 감히 박탈하고 소란을 피운 불청객의 이름으로만 남을 뿐이다. 시위 과정에서 전장연 활동가들이 목에 감아 사용한 사다리와 쇠사슬은 은유가 아닌 현실로 드러났다.
처음부터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을 진압해야 할 적대적 관계로 설정했다. “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하철 행동을 국회 예산 이후로 미룰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휴전 제안 하루만에 4∼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전장연을 협박했다.
1월 5일, 오세훈 시장은 페이스북에 ‘전장연을 만나지 않을 이유 없다’는 이전의 호언장담을 뒤엎는 게시물을 작성한다. ‘만남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어야 하며,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선전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불법을 행하여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거래를 하려는 태도’를 지적하는 그의 기만적인 글은 오히려 스스로를 향한 글 같았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은 불법을 행한 것은 바로 서울시였으며, 이로 인해 장애인 시민의 불편은 늘 장애인 당사자들이 감수해왔던 것이었다. 이 불편을 볼모로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그의 태도는 오랫동안 서울시의 수치로 남을 것이다.
시위에 대한 서울시의 폭거는 최근 내세운 자체 선전 문구와 달라 더욱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위 사진은 서울시가 서울의 지하철과 시내버스 등 공공교통수단 내부에 부착한 광고다. “이동약자가 가는 길에 서울이 함께 갑니다”라는 문구 아래에 ‘1역사 1동선 확보’, ‘저상버스 확대’, ‘장애인 콜택시 운행 개선’ 등 전장연이 20년째 요구했으나 번번이 좌절된 요구들이 적혀있다. 서울시는 2001년 1월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 수 차례 반복되어온 리프트 참사에 대해 반쪽짜리 사과만을 되풀이했을 뿐, 추후 이동권 보장으로 사고를 막겠다는 실질적 의지를 내비친 적 없다.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서울시 장애인이동권보장 종합대책’을 통해 2004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 100% 설치와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 등을 약속했지만, 이는 파기됐다. 박원순 전 시장도 2015년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선언’에서 2022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승강장과 열차 간 바퀴 빠짐 방지 등을 약속한 바 있으나, 이 약속도 이내 파기됐다. 두 번의 불명예스러운 약속 파기에도 서울시는 장애인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 역시 2017년 신길역 사망 참사 희생자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에도 제대로 된 사과는 없었다.
저항과 연대
“(전장연이 지하철에) 5분 내 탑승하고, 지키지 않으면 5백만 원을 낼 것”을 결정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정안을 가장 먼저 거부한 것은 다름아닌 오세훈 시장이다. 서울시는 ‘이동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위선적인 문구로 서울시를 포장하기 전에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직시하고, 자신의 무능부터 반성해야 한다.
서울시와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시가 그토록 내세우는 이미지인 ‘교통약자와 함께하는 서울’로 진정 거듭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서울시가 2004년부터 18년간 미뤄왔던 약속을 지금이라도 이행하고, 장애인 유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사과하며,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멈추고 전장연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시위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다.
약자에 대한 폭거가 더없이 심각한 이런 어려운 시간일수록 절실해지는 것은 바로 동료 시민으로서의 연대의 필요성이다. 보편적 시민권의 확장을 위해서는 차별에 맞선 저항과 연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는 연대에 참여할 수 있다.
전장연은 1월 19일까지 혜화역에서 매일 오전 8시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20일에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 행동 지하철 탑승 투쟁을 할 예정이다. 장애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내용을 공유하거나, 주변에 알리 대자보를 쓰자. 교통공사와 서울시에 민원을 넣고, 선전전과 시위에 결합하는 등 각자의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전장연에 연대하자. ✋
글 : 희주 (서강대 인권소모임 노고지리)
교열 : 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