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단체 메신저 방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페미니즘이 당당한 청주 만들 것.” 기사를 클릭하니 7명의 젊은 여성 후보들이 빨간색과 보라색 옷을 입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기성 정당 소속이 아닌,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건, 후보 전원이 2-30대 여성인 무소속 연대. 한국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나? 궁금하다, 만나고 싶다! 무작정 인터 뷰 요청을 하니 돌아오는 일요일에 여성가족부 폐지에 항의하는 2차 마녀행진을 진행한다며 ‘와보라’고 했다.
4월 24일, 충북노동자교육공간 동동에서 김현정, 정송희, 이성지, 조영은, 유진영, 현슬기, 김영우 7명의 후보들 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중 노동당 유진영 후보를 제외하면 전원 무소속이며 선거구는 모두 다르다. 페미니스트 연대로 출마하게 된 배경, 각자가 힘쓰는 공약, 후보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 들었다. 이 인터뷰를 둘로 나누어 소개한다.
플랫폼C | 기성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페미니스트 연대’로 선거에 대응한 것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어떤 논의 과정을 통해서 출마하시게 되었는지 먼저 듣고 싶어요.
유진영 |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는 작년 11월에 출범했어요. ‘걔네’는 청주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이고요, 저희 모토는 ‘싸우고 배우고 신나게 논다’입니다. 네트워크 안에 여러 팀이 있는데요, 여성주의 영화를 보는 팀, 여성주의 달력 만들기 팀, 그리고 백래시 대응하는 팀도 있어요.
백래시 대응팀 ‘활기찬 걔네’에서 대선 전후로 정치권의 혐오 정치 관련해서 공동의 대응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요. 대선 전인 2월에 수다회도 열고, 여가부 폐지에 맞선 마녀행진도 했거든요. 근데 백래시 대응팀에서 이걸로 끝내지 말고 예비후보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죠. 거기에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후보로 나서게 됐습니다. 청년과 여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기득권 정치에서는 이용만 하고, 또 여성이 자기 권리를 말하는 것을 젠더 갈등으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우리 정치를 얘기해보자’ 이런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저희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출마를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책도 후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논의해서 만들어냈는데 그게 되게 많이 남더라고요. 운동적으로도 그렇고, 저한테도요. 이런 활동은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잖아요. 지역에서는 드문 일이고 저희가 처음이라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역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플랫폼C | 플랫폼C 페미니즘 모임에서 작년에 <우리가 배후다>를 읽었어요. 그래서 소식을 듣고 지역에서 이 사건에 공동대응하면서 이런 흐름으로까지 연결됐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배후다>는 충북‧청주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 지지 모임이 2021년에 발간한 책이다. 충북‧청주 경실련 사무처 활동가들이 성희롱 사건에 대해 문제 제기하자, 경실련은 활동가들을 해고하고 충북‧청주지부를 사고지부로 지정했다. ‘사실상의 직장폐쇄’였다. 이에 맞서 지역 활동가들이 지지 모임을 구성해 활동했다. 현재도 충북‧청주 경실련은 사고지부인 상태이며, 피해자들은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슬기 | 이 운동에 함께 하는 여러 활동가들이 그 지지모임을 통해 만나긴 했어요. 그 활동을 하면서 저희는 시민단체가 때로는 대의라는 명목 아래 더 많은 폭력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특히 저희는 경실련이 청년과 여성을 ‘함께 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획을 실행시키는 도구’로 여겼다는 데 큰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이 고민은 ‘걔네’가 네트워킹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우리(청년 여성 활동가들)가 수단화되는 것에 반대하고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운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서 ‘걔네’를 만들게 된 것도 있어요. 이를 위해 민주적인 절차와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이런 조직 문화가 무엇인지 매일같이 만나 박 터지게 토론하고 (웃음) 굉장히 어려운 역경의 시간을 보내다가 만든 거죠. 지금 이 선거운동도 ‘걔네’의 주체성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의 표심으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자, 우리의 페미니즘 정치를 우리의 손으로 이루자, 이런 모토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플랫폼C |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만들려고 역경의 시간을 거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특히 어려웠고 어떻게 해결했나요?
현슬기 | 대표를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쟁점이 있었어요. 저희는 기획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게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둘을 동일하게 하자는 것에 다들 동의했어요. 그런데 대표를 둘 거냐 말 거냐를 두고는 한 달 정도 싸 운 것 같아요. 대표라는 게 우리가 보기엔 하나도 안 중요한 것 같은데 막상 대외적으로는 중요해요. 근데 대표가 생겨버리면 그 사람이 어쨌든 내부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테고, 그러니까 우리는 대표가 없는 체제로 가자고 결정했죠. 저는 이것은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한 달 동안 밀어붙였고 제가 이겼습니다. (웃음)
조영은 | 그래서 저희가 ‘전체회의 체계’를 밀어붙였어요. 보통 집행단위와 결정단위가 따로 있잖아요. 그런 중간 단계를 갖지 말고 모든 회원이 참석할 수 있는 전체 회의로 의사결정을 하자고 했는데, 많은 염려의 시선이 있었어요. 그래도 일단 해보겠다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전체회의하는 걸로 결정했죠.
결정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을 일치시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항상 어려움에 부딪히는 일이다. 회원이 늘어날수록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현재 ‘걔네’는 후원회원과 활동회원으로 나뉘어 있다. 작년 11월 출범 때 30여 명이었던 활동회원이 지금은 60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플랫폼C | ‘걔네’는 어떻게 구성됐나요? 청주 지역 페미니즘 운동의 지형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조영은 | 사실 ‘페미니즘 운동의 지형’이라고 까지 소개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선 오랫동안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여성 단체들이 있어요. 그런 여성 단체는 여성연대로 묶여 있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강남역 사건 계기로 지역에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좀 만들어졌어요. 그게 ‘페미니즘 043’이라고 공부하는 모임이죠. 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게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거든요. 거기는 활동을 중심으로 해요. 중년 여성들을 기반으로 한 공부모임 ‘페미니줌’도 있어요. 그런 동아리들이 한 4~5년 동안 자기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했는데, 바깥으로 많이 활동이 드러나거나 연결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경실련 사건이 이런 개별적인 주체들이 만나는 계기가 된 거죠. 그렇게 만난 뒤에 함께 한 경험들을 기반으로 네트워크 출범을 고민하게 됐어요. 사실 ‘걔네’도 6개월 됐는데요. 몇 개월 안 되어서 어떤 지형을 얘기하기에는 이제 시작일 뿐이죠. 좀 더 다양한 운동들이 만들어지고 운동이 성숙되면 ‘지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플랫폼C | 모범 사례로 널리 퍼뜨리고 싶은 이야기네요. 강남역 사건 이후에 곳곳에 소모임이 만들어졌다가 이게 공동행동을 계기로 모였다는 점에서요. 정말 고무적이네요.
유진영 | 소모임들을 모으려고 ‘페미니즘 043’이랑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가 만나서 팀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보자는 논의도 한 번 있었어요. 그때는 잘 진행이 되지 않더라고요.
조영은 | 동아리별로 지향이나 성격, 활동 스타일이 다 달라요. 어떻게, 얼마나 활동할 수 있는지 내용도 다르고요. 뭔가 접점이 잘 생성이 안 됐죠. 그래서 개별 페미니스트들을 묶어서 그냥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만들자고 하니까 좀 더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결이 된 것 같아요.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가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들으니 달력만들기 팀은 ‘행복력’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이 해방된 세계를 상상한 그림들로 2022년 달력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걔네’에 관해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런 속도로는 영영 인터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안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jfn1101/
플랫폼C |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사실 여가부는 중요한 보루지만, 여성과 가족이 붙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계도 많은 부처잖아요. 여가부 폐지 움직임 속에서 하고 계신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요.
김현정 | 여가부가 했던 모든 일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에요. 비판적 논의들도 알고요. 여가부에서 만드는 여성 일자리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인 경우도 많고요. 사실 여가부 예산 중 여성과 성평등 체계에 대한 예산은 7퍼센트 밖에 안 돼요. 그러니 까 모든 게 복지·아동·보육·가족 관련한 것들인데 그런 것도 비판 지점이죠. 그런데 지금의 여가부 폐지 논의는 여가부를 좀 더 성평등 체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 했으니 해체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전제조건은 절대 찬성할 수 없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여가부의 권한을 늘리고 여성 정책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을 잘 하는 거잖아요. 여가부가 유지가 됐을 때 여가부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더 해야 하고, 어떤 일의 비중을 더 높여야 될 것인지는 분명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는 입장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여가부 장관을 임명하자 청주 지역에서는 여가부 폐지에 함께 맞서 싸우던 여성단체들의 투쟁이 잠시 이완됐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 여성가족부 폐지가 빠지면서 일부에서 ‘공약 미이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국민의힘은 지난 5월 6일 급히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여성들은 더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여성들의 절박함은 다시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표출되기도 한다.
플랫폼C | 최근에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어떤 절박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대선에서 페미니스트들의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많이 가기도 했죠. 지금은 이른바 ‘개딸’ 흐름이 등장했고요. 이런 것도 어떤 절박함을 보여주지만, 한계도 있잖아요. 기존 정치가 아니라 좀 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으로써 이 흐름을 드러내려면 페미니즘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영우 | 거대 양당 구조에서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최악을 면하기 위해서는 차악을 뽑아야 해’라는 전략을 세워왔어요. 박근혜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그랬죠.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한테 사실 5년 동안 속지 않았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당론’을 중시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외치면서, 재임 기간 내내 차별금지법도 발의하지 않았어요. 국가보안법도 수정하지 않았고, 혐오 정치가 확대되도록 방관한 당사자죠.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에게 대통령 문재인이란 이름으로 화환만 보내는 정치적 행위를 보면서 기만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도 ‘개딸’이라는 현상이 등장하는 이유는 결국 엄청난 권력을 갖는 대통령이 단 한 번의 선거로 뽑히는 선거제도에서 투표의 도구로 이용된 사례죠.
사실 가부장제 내에서 청년 여성이 그동안 정치 주체로 서지 못했잖아요. 언어를 얻은 행위 자체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언어를 얻은 방식이 누군가의 딸, 개혁의 딸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딸 혹은 조카라는 방식으로 발현된 방식이 유감스러워요. ‘페미니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혐오 정치에 대한 불만, 그리고 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에 있어서는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도정치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비장애인·엘리트·부자·수도권·남성 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양성을 갖고 있는 당사자들이 진짜로 말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인지 질문이 필요해요. 저희도 7명이 출마하면서 재정과 행정, 정책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정당이 없는 청년이 과연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묻게 됐죠. 이게 진짜 민주주의일까요? 4~5년에 한 번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간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다양한 계층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지 묻는 게 필요해요. 그렇게 우리 스스로 묻다보면 페미니즘 정치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될 것 같아요.
평범한 젊은 여성 후보들에게는 예비후보 등록비용과 명함 제작, 선거운동용 옷을 맞추는 비용 등 70여 만원도 부담스러웠다. 후보자들은 대부분의 선거 사무도 스스로 했는데, 선관위에서 요구하는 문서와 자료들을 구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7명의 후보들이 과연 ‘페미니스트 연대’로 선거에 나갈 수 있느냐였다.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수차례 문의한 끝에 ‘선거구가 겹치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그렇게 ‘무소속 연대’라는 틀로 공동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②부에서 계속됩니다.
인터뷰 : 박상은
인터뷰이 : 청주페미니스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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