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물리적 근거로 만들어온 장애인이동권

희망의 물리적 근거로 만들어온 장애인이동권

2022년 4월 20일

[읽을거리]사회운동사회운동, 장애인, 서울

2022년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 20주년을 맞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둘러싼 이슈를 돌아보고자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 선전전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 지 4개월을 넘어가고 있다. 2021년 12월 6일, 전장연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며 혜화역 출근 선전전을 시작했다. 12월 13일에는 「장애인평생교육법」·「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연내 제정 촉구 선전전이 시작됐다. 출근 시간대에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의 선전전에 더해 지하철에 직접 전동차와 휠체어로 탑승해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선전전을 펼쳤다.

출근길 초만원 지하철이 연착되고 나서야 비로소 ‘장애인의 권리’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느냐’는 즉자적 반응은 물론, 전장연 사무실에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이도 있었다. 장애인 혐오를 부추기는 유투버들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가세했다. 이준석 대표는 연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전장연과 다른 장애인을 갈라치고, 강북권 서민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했다.

다른 한편에는 전장연의 투쟁에 연대한 이들도 서 있다. 21년 전인 2001년 1월 22일 일어난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부터 이어지는 절박한 투쟁의 외침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멈춘 전철 안에서도 박수를 쳐 주는 승객들, 서울교통공사와 기획재정부에 민원을 넣는 사람들, SNS에 후원금 인증샷을 올리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플랫폼c도 올해 들어 매달 장애인 권리 투쟁에 연대하는 기획을 이어오고 있다. 1월 22일 오이도역 참사 21주기에는 대학로 들다방에서 박종필추모사업회와 함께 「버스를 타자」 시네토크를 공동 개최했다. 2월 11일에는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에 연대했다. 4월 1일에는 경복궁역 삭발투쟁에 연대하고, 혜화역까지 전철을 함께 탔다.

올해로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 20주년을 맞았다. 올해 초 <버스를 타자> 상영회부터 최근 선전전까지 플랫폼c가 올해 연대해온 장면을 상기하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둘러싼 이슈를 돌아보고자 한다.

1월 22일 ‘버스를 타자’ 시네토크 with 박경석

2022년 1월 22일은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2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플랫폼c는 대학로에서 故 박종필 감독의 2002년작 다큐멘터리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의 상영회를 열고, 박경석 대표와 이동권 투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버스를 타자」는 오이도역 참사 이후 1년여간 이어진 이동권투쟁의 경과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내게 인상적인 장면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 장면은 한 휠체어 장애인이 전철 역사의 장애인리프트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5분10초부터 약 3분간 이어지는 이 장면에서 휠체어에 탄 이는 끊임없이 ‘주의’ 알람이 울리는 가운데, 위태롭게 안전바를 붙잡고 계단을 올라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내려가는 리프트가 고장 나, 역무원도 손볼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에 지나가던 이들이 함께 그 휠체어를 들고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박종필 감독은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거나 빨리감기 하지 않고 배치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3분 동안만이라도 오랜 시간 기다리며 리프트를 타야 하는 장애인의 위태로움과 불편함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면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여러 대의 휠체어가 함께 탑승하기만 해도 지하철 출발은 지연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으로부터 빼앗아 온 시간이 쌓여, 얼마나 긴 차별의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두번째는 혜화역에서의 선전전 장면(16분 30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에도 혜화역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상징적 장소였다. 1999년 6월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장소가 바로 혜화역이기 때문이다. 이규식 현 전장연 서울지부 대표는 바로 당시 사고의 피해자였다. 이 장면 속 혜화역 입구에는 몸을 쇠사슬로 묶고 저항하는 장애인들의 곁에 많은 수의 대학생들(특히 여성이 많았다)이 함께 스크럼을 짜고 경찰에 한 명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투쟁하고 있었다. 아무리 20년 전이라지만 그들은 누구였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이후 질의응답에서는 당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사회복지학과와 특수교육과 등 관련 학과 대학생들이 많이 연대를 했으니 그들이 아닐까 추측한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의 사회복지학과, 특수교육과의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누구와 수업을 듣고 있을까? 이름없는 온라인 연대를 넘어 직접 몸을 엮어 혐오와 위협을 함께 막아낼 이들을 어디에서 조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세번째는 정부중앙청사 앞 휠체어 리프트 장면(27분 0초)이다. 국무총리 사무관 면담을 위해 활동가들이 정부중앙청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계단에 경사로가 없었다. 오직 휠체어리프트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평소 얼마나 많은 ‘턱’을 마주해야 했을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건설교통부 보건복지부의 검토 공문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장면(50분 30초)은 극영화 속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투쟁 끝에 장애인 활동가들이 공무원을 만났지만, “검토해보겠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장면은 이 영화 내내 반복됐고,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서울시청, 보건복지부, 인수위… 장애인 권리 예산에 대한 요청을 “검토해보겠다”라는 말을 화자만 바꿔가며 20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뉴스와 겹쳐 보며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투쟁의 야전사령관’이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소개받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의 토크가 김윤영 활동가(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플랫폼C 회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큐가 발표된 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한 김윤영 활동가는 1학년 때는 농성장에 연대하러 가는 동기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6년에는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며 함께 한강대교 위를 기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토크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희망의 물리적 근거’일 것이다. 버스를 타야 하면 버스에 몸을 묶고, 열차를 타야 하면 선로에 내려가고,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면 휠체어로 천천히 탄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나주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간다. 경찰서를 덜 괴롭히는 대신, 기재부 차관 전화번호를 건네받는다. 상황이 바뀌면 상황이 바뀌는 대로 목소리 내기 위한 전략을 택해왔다. 그렇게 해서 투쟁에서 승리를 만들어 왔다는 자신감이 내게도 느껴졌다.

이날 투쟁에서 또 하나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전장연의 활동가들은 매일같이 마주하는 혐오를 유쾌한 농담으로 넘겨버리는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신 육갑떠냐”는 욕설에 “그렇습니다, 병신이 육갑 떱니다”라고 되받아치고, 한 시민이 막아서자 오히려 발차가 더 지연되는 결과가 있었다는 경험담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 혐오를 직접 받아내며 너덜너덜해졌을 몸과 마음이지만, 오히려 그 상처를 힘으로 바꾸어 내는 투쟁을 해온 셈이다. 그것은 말만으로 하는 투쟁이 아니며, 장애인의 몸으로, 장애인의 속도로 희망을 만들어왔다. 호쾌한 일담 하나하나가 짜릿하면서도, 어느 조직이 이렇게 절박하게 투쟁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처연해졌다.

다들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시네토크 말미, 박경석 대표는 ‘즉석 투쟁노선 회의’를 하자며 이야기를 건넸고, 참가자들은 “다음에 꼭 플랫폼c 회원들이 함께 연대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게 됐다.

2월 11일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 연대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과 달리 띄엄띄엄 이루어지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설 연휴가 끝난 2월 3일부터 매일매일 이어졌다. 기획재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고, 당시 진행되던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에게 권리 예산 보장을 약속하라는 요구가 전면에 세워졌다. 이때부터 전철 지연이 본격적으로 이슈로 등극했다. 인터넷상에서는 더 많은 혐오 발언이 쏟아졌고, 활동가들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기도 했다. 혜화역 승강장에 붙은 전장연 전단지를 직접 뗐다고 인증하는 글도 게시됐다.

월례포럼에서 약속해놓고 가보지 못한 연대를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장연에서 활동하는 플랫폼c 회원을 통해 2월 11일 금요일 오전에 연대를 가기로 정해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다들 출근해야 할 금요일 아침 8시까지 혜화역으로 모이는 일정이었지만, 아침 일찍 7명이 모였다. 가기 전에는 “우리도 함께 지하철을 타야 하겠지?”라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긴장한 채로 아침에 모였는데, 8시 선전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혜화역 하행선 5-3 승강장은 경찰과 지하철보안관으로 둘러싸이게 됐다.

우리는 직접 전철에 타지는 않고, 승강장 위에서 한시간 내내 선전전을 하는 것을 맡게 됐다. 승강장에 사람이 지나가면 얼마나 지나가겠냐는 의문도 들었지만, 이내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시부터 승차를 시작하자, 차량당 15분 정도씩 정차되었다. 정확히는 휠체어로 초만원 전철에 타는 것인데, 사람들이 꽉꽉 차 있는 상황에서 휠체어가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불법도 아니고, 그저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열차를 네 번만 타면, 1시간 동안 전철이 연착될 수밖에 없다. 탑승이 이뤄지는 시간동안 혜화역 승강장에서 문이 열린 채 멈춰 있는 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선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었다. 15분 동안 관객을 세워놓고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는 시간이었다. 왜 이 시간에 전철을 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 우리에게 마음껏 욕설을 할 수 있다는 사과, 그렇지만 우리의 요구사항을 한번만 들어달라는 읍소를 한 시간 내내 반복했다.

그 1시간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 울분을 토하며 달려드는 사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거나 큰소리를 내진 않아도 나지막이 협박을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꾸준한 연대가 왜 필요한 지 더욱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지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마지막에 인사를 드리며 “또 오겠습니다.”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4월 1일 경복궁역 삭발투쟁 연대

그 사이 3월 9일에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3월 17일에는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서울교통공사 내부 문건이 보도됐다. 논란이 일자 ‘개인의 잘못’이라는 서울교통공사의 꼬리자르기식 사과가 이어졌다.

3월 24일,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선전전이 재개됐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전장연을 공격하는 글을 다수 게재하며 혐오 여론을 부추겼다.

3월 28일에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경복궁 역사에 방문해 무릎을 꿇었고, 3월 29일에 인수위가 전장연을 방문하면서 출근길 지하철 타기 선전전은 삭발투쟁으로 전환됐다. 삭발투쟁이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연대가 필요한 순간이었기에, 플랫폼c도 한번 더 힘을 보태기로 했다.

4월 1일, 플랫폼C 회원 8명이 다시 모였다. 삭발식 시작 예정 시간인 오전 8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사용할 피켓을 손수 제작했다. 삭발식이 시작되었고,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머리카락이 삭발함 안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을 보는 것마저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신체부위를 절단하는 것, 혹은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모종의 자기결정권, 존엄의 일부를 내려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껴졌다.

[투쟁결의문] 대한민국이야말로 장애인에게 비문명적이지 않습니까? / 권달주

삭발식과 플랫폼C의 연대발언이 끝날 무렵, 한 남성이 고성을 지르며 우리 쪽으로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전장연을 향하던 무수한 카메라는 등을 돌려 일제히 남자의 삿대질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짙은 탄식을 내뱉었다. 장애인의 투쟁을 담아내야 할 언론이 어떻게 혐오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쥐어주는지를 절감한 순간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분명 지하철 연착 시위를 하는 날도 아니었는데, “장애인의 지하철 탑승으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안내 방송이 반복됐다. 한 남성은 왜 문을 가로막냐며 삿대질까지 해가며 화를 냈고(전장연은 한 번도 문을 가로막지 않았고, 이 남성 역시 무색할만큼 쉽게 하차했다), 한 여성은 “직장에 늦으면 책임질 것이냐”며 고성을 질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혜화역에서는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전장연을 저격한 이후 혐오 표현의 수위가 무척 강렬해지고 또한 빈도도 높아져, 지하철을 또 타다간 정말 “맞아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이 풀어버린 혐오의 빗장에 분노하면서도,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갈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아연해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여론조작 문건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불가침의 성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회는 언더도그마에 빠져 있지 않았고, 장애인 시위에 혐오를 끼얹는 것을 주저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연대 활동 이후 계속해서 ‘발빠짐 주의’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이 귓가에 맴돌게 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간극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극,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인의 혀 끝, 대중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애인 사이에 놓인 간극, 우리 사회가 죽자고 참아내는 것과 죽어도 못 참는 것 사이의 간극 등 무수히 많은 간극들에 대해서 말이다.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20주년

혐오가 판치는 만큼, 여느 때보다 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4월 20일이다.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불편없는’ 일상은 비장애인의 이동권을 박탈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사이에 우리들은 동료 시민으로서 이를 방관한 책임을 마땅히 통감해야 한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언젠가 “당신도 하지 않았고, 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는 사람이자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쓴 바 있다. 각자도생의 구호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공동체 감각은 쉬이 희석된다. ‘우리’는 사라지고, 파편화된 개인인 ‘너’와 ‘나’만 남는다. 현재 여론을 살펴봐도, 장애인이 지금 겪는 차별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것이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회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은 모두의 ‘개인의 귀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교묘하게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된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에 “인수위로 가라”, “국회에 가라”고 일갈하는 사람들의 백래시(backlash)는, 단순히 전장연이 20년 넘게 정부 부처들에 수없이 항의했다는 사실을 몰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한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동료 시민으로서 방관한 책임을 느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태연함이 비장애인으로서 가진 권력의 폭력적인 표출이다. 한국은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노(NO) 장애인 존(zone)’이다.

4월 13일,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토론이 있었다. 토론의 실시간 채팅 창에 올라오는 혐오 댓글의 다수는 “결국엔 (박경석이) 돈 달라고 떼 쓴다”는 내용이었다. 이준석이 반발하는 사람들을 향해 덜컥 열어버린 혐오의 빗장이 어떻게 실질적인 여론으로 결집하는지 잘 보여주는 악플이었다. 이준석은 전장연에 대해 “선량한 소시민”을 상대로 “을(乙)질”하는 존재로 수차례 호도했다. 그 결과, 장애인이 최소한의 삶을 안위할 수 있게끔 하는 예산을 요구하는 사회적 약자의 절박한 호소조차도 떼법에 호소하는 것으로 왜곡하게 된다. 서울 지하철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2.3%라는 통계가 주는 착시를 활용해 정치권의 과오를 숨긴 것 또한 교묘하고 유해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처우에 대한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장애인예산편성 평균의 3분의1에 머물고 있으며,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7%(목표치 42%)에 머물고 있다. 이준석이 개중 92.3%라는 숫자만을 골라 이야기한 것은, 그마저도 20년 투쟁의 결과인 전철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율 하나뿐이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을 면피한 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올해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는 우리의 연대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악한 자들의 증오에 찬 말과 행동에 대해 가책’뿐만 아니라 ‘선한 자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 가지는 위험성 역시 인지해야 한다. 우리의 침묵은 방관이자, 광의적인 측면에서는 가해이다. 연대하자. 그 방법이 후원일 수도 있고, 출근길 선전전에 동행하는 것일수도 있고, 그마저 어렵다면 기재부나 서울교통공사에 민원을 넣는 일, 여론 순화를 위해 응원 댓글을 다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변에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 되길, 차별에 맞선 집단의 저항이 보편적 시민권의 확장을 만들어왔다는 불변의 진실을 되새기는 하루가 되길 희망한다. 👨‍🦽

글 : 김희주 & withgr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