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운동 | 사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은 여전히 ‘지역’에 있다
2022년 2월 6일
한국 사회는 길을 잃었다. 촛불 항쟁으로 박근혜를 퇴진시켰지만, 좌파는 그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실망만 안겨주었다. 집값은 계속 올라갔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졌다. 다음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거대 양당의 대선주자 이재명과 윤석열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보다 나은 사회 변화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 암담한 현실이다.
힘있는 그 누 구도 대중이 처한 삶에 주목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일상을 비상사태로 살아가는 대중이 직접 벌여나가는 운동이 절실하고, 그러하기에 대중의 곁에서 대중의 열망을 엮어나갈 사회운동가, 소위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동가의 고민
사회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활동가들은 대개 운동 출발점에 정세 분석을 시도한다. 사건이 일어난 배경, 맥락을 이해해야 운동의 방향을 잘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 분석을 통해 운동의 방향을 잡으면, 이제 ‘조직’할 때다. 활동가는 역량을 살피면서 조직 사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깊은 고민과 과감한 결단으로 운동을 벌여도 오늘날 사회운동은 꾸준한 힘을 받지 못하고 쓰러지기 일쑤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이유만이 전부라고 할 순 없다. 사회 시스템의 복잡성이 심화되면서, 치밀한 정세분석과 조직화 실천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활동가는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하면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자의반 타의반 운동의 자기 숙명으로 여긴다.
사회운동의 일어남을 잘 체감하지 못하고 버팀을 숙명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한 활동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관점이 있다. 이미 있었고 익숙하지만, 그래서 무감각했던 관점이자 사회운동 내 하나의 주제, 바로 ‘지역’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지역’은 사회운동의 오랜 과제다. 사회운동 내에서 사용하는 ‘지역’이라는 키워드는 그 정의에서부터 다양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지역에 대한 가장 보편적 개념은 서울이 아닌 광역 시도로서 ‘지방’이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70년간 중앙집중적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지방은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포화상태로 온갖 도시 문제를 겪고 있지만,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부처 일부를 지방에 이전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수도권과 지방, 또 지방과 지방 사이에 작용하는 지역 혐오정서도 사회문제이다.
사회운동 진영은 광역시도 내 기초지자체인 시군구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짚을 때에도 지역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중앙과 광역 시도에서 각각의 기초단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불평등한 자원 배분문제, 개발로 인한 지역주민의 피해, 대중교통 문제, 녹지공원 존치 문제 같은 작아 보이지만 삶에 매우 중요한 생활밀착형 문제가 거론된다. 충청남도 당진 석탄화력발전소, 강원도 강릉 안인석탄화력발전소 등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는 광역시도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간 환경오염과 주민 건강권 침해라는 공통의 주제를 공유한다.
또 서구의 지배 질서에 의해 착취당하는 대륙이나 국가, 또는 탄압받는 도시들을 언급할 때에도 ‘지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미얀마, 홍콩 등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그러하다. 지역은 대개 ‘글로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나, 강대국 또는 지배권력에 의해 파괴당하는 약소국, 약소도시가 겪는 문제는 해당 지역 시민의 관점에서 온전히 자신의 문제가 된다.
그밖 에 행정단위나 국경선 이외에 동질 한 성격의 공간을 지역의 주제에 담을 수 있다. 그린벨트 지역, 휴전선 인근지역, 빈민가, 노동 벨트, 곶자왈 지역 등이 그러하다.
지역은 모든 사회운동의 현장
지역은 사회 문제가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장소이다. 세계 자본주의 정세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의 세계는 언제나 정세분석의 앞머리를 차지하지만, 이러한 정세에 기반한 사건들은 결코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주 어딘가에서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봉건사회의 몰락과 부르주아지의 부흥, 제국에 의한 약소국 침탈과 식민화, 20세기 말 초국적자본의 지배, 그로 인한 모든 착취구조 등 모든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운동은 단순히 하나의 행정단위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이 아니라, 골목부터 세계까지 지배권력에 의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모든 공간고 사건을 화두 삼아 지역 주민과 현장에서 호흡하며 나아가는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모든 현장을 사회운동의 새롭고 확장된 의미로 다시 사유한 후, 운동의 과제를 재조명해보자. 활동가는 사회운동의 현장에 지역이라는 개념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정세분석에 지역에 대한 고민을 추가하면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운동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가령 나는 2021년 11월에 열린 제1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함께 기획했던 적 있다. 인권운동의 입장에서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익명성이 떨어 지고, 아웃팅의 위협이 심각하다. 활동가들은 이런 조건을 고려해 지역의 보수성에 균열을 내고, 지역에 사는 퀴어 시민의 인권을 실현하는 지역운동을 도모해야 한다. 지역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지역의 상징물인 소양강처녀상에 입혀진 순결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처녀’, ‘임’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여성성을 전복하는 의미로 ‘소양강퀴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기존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지역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인천과 광주, 대구, 제주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함께, ‘연결된 축제’를 기획했다.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지원하는 지역간 연대의 흐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지역 간 연대를 실천한 사례는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때론 국경을 뛰어넘기도 한다. 최근 동북아시아에서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과 관련하여 제주 강정과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하와이 주민이 모여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연대의 틀을 형성하고 공동의 기획을 마련하기도 했던 것이나, 홍콩-양곤-광주의 사회운동이 국가폭력에 대항해 연대한 사례는 그 가까운 예들 중 하나다.
물론 ‘지역’이라는 개념을 사회운동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운동’이 일부 광역시도나 시군구 지 역에 국한된 운동이라는 개념이 퍼져있고, 지역 토호세력의 횡포나 지역이기주의라는 난관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실천에 성급하게 확장된 의미로서의 ‘지역’이라는 개념을 섞다가 낭패를 보기도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 터전에서 벌어진 사회문제를 그 공간에 대한 고민과 무관하게, 공중에 떠도는 이야기들만 믿고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을 기획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지역적 사고로 펼쳐가는 사회운동
사회운동의 주요 과제는 주목받지 않는 곳을 주목하고, 그 속에서 운동의 과제를 끌어내 확장하는 것에 있다. 단순히 사회운동의 한 분야로 국한해 사고해온 지역운동이라는 기존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모든 곳을 사회운동의 과제로 삼고, 정세분석에 지역적 관점을 녹여낸다면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현장 상황에 가까운 운동을 기획할 수 있다.
지역, 지역성, 지역운동을 통칭하는 ‘지역’이라는 화두는 그 자체로 이윤 추구를 위해 모든 자원을 중앙집중화하는 자본과 권력에 맞선 대항담론이다. 또한 사회운동의 대응 전략에 현장성을 불어넣어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운동계획을 만들어주는 재료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오늘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활동가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지역’이라는 화두가 활동을 지속하는 데에 있어 작은 울림을 주는 아이디어로 새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지역운동에 대한 연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고민 을 공유하고 싶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가능하다! 지역에서! 😆
이효성 (강원 춘천지역 활동가, 플랫폼c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