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여자 전성시대』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 미국 급진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복원한 책이다. 저자인 에콜스는 급진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당시에 발표한 글을 직접 인용하며 당시 논쟁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한편 1984년에 진행한 인터뷰로 그녀들의 현재적 해석도 함께 보여준다. 즉 이 책은 저자뿐 아니라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당시 활동했던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약전(略傳)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당시로 빨려 들어가 새롭게 조직을 만들고 운동을 실험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응원하고, 운동이 분열하고 한계에 맞닥뜨릴 때 한숨을 내쉬고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시기적으로는 짧지만 방대한 쟁점을 포함한 이 시기의 논쟁을 따라가며 에콜스는 결국 급진 페미니즘이 어떻게 문화 페미니즘으로 귀결되었는지, 이에 따라 대단한 에너지를 가졌던 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축소되어 가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 쟁점 중 상당 부분에 선례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누구와 함께해야 하며 무엇에 맞서야 하는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성의 경험을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 이전과 다른 공동체를 실험하면서 정치를 축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폭발적 운동 속 내재된 분열
…(의장인) 윌리엄 페퍼가 슐리의 머리를 톡 치면서 말했다. “비켜요, 아가씨. 이 자리에는 여성 해방보다 중요한 문제가 많아요.” 그 일이 여성 해방 운동의 기원이 됐다.
(조 프리먼의 인터뷰 중. p.95~96)
잘 알려져 있듯 미국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문제를 전혀 중시하지 않은 신좌파 운동을 비판하며 탄생했다. 1967년 8월 신좌파 운동의 통합을 목표로 개최된 새정치전국회의 총회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 결혼‧이혼‧재산법의 개혁,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 등을 담은 결의문이 제출되었으나 완전히 무시당한다. 이를 저지하려던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의 저자이자 급진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가‧활동가)은 위 인용문처럼 밀려났으며 이후 여성 활동가들은 운동의 분리를 결심하게 된다.
페미니즘 운동의 성격과 목표를 둘러싼 이견은 이러한 기원을 알 때 좀 더 잘 이해된다. 가장 중요한 분열선은 ‘운동 일반’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쟁점이었다. 여성들은 전술적 이유를 넘어 남성을 모임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 여성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지 전쟁과 인종주의에도 맞서야 할지, 어떤 여성들을 조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지 등에서 의견이 갈렸다. 분리주의에 대한 이견은 점차 강화되어 1969년경이 되면 여성들은 상대방을 ‘운동권’과 ‘페미니스트’라고 조롱조로 부르기에 이른다.
초기 여성해방 그룹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뉴욕급진여성’ 내 의식 고양 문제를 둘러싼 쟁점도 흥미롭다. 이 쟁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론과 경험주의의 관계, 여성 내부의 차이를 다루는 방식 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뉴욕급진여성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캐시 세라차일드는 이론을 발전시킬 방법으로 의식 고양을 강조한 반면, 몇몇 이들은 과연 이론을 주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또 대학 교육과 거리가 먼 여성들 일부는 하버드를 나온 세라차일드가 자기들에게 이론 공부를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태도가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의식 고양은 상대적으로 중산층 여성들에게는 편하게 느껴진 반면 노동 계급 여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는데, 여성으로서의 일치된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은 계급‧인종 등 여성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 었다.
이외에도 책에는 지도부로 떠오르는 이들을 공격하고 내보내는 일의 반복, 섹스와 연애관계의 단절 실천과 이성애 관계에 남아있는 여성들 간의 긴장, 남성들이 좋아하는 긴 머리를 자르는 퍼포먼스와 이에 당혹한 여성들의 모습 등이 등장한다. 이는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를 무(無)구조성을 강화하여 해결하려는 경향,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여성적’ 젠더 표현의 문제 등이 당시 운동 내에서도 중요한 논쟁 지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치로서의 페미니즘? 피난처로서의 페미니즘?
우리의 문화는 고립 지대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지금 상태를 더 쉽게 견디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꿈을 구체화해서 반란을 강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잇 에인 미 베이브》 1970년 4월 사설 중. p.368)
급진 페미니즘의 문화 페미니즘으로의 변모를 운동의 축소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에콜스는 문화 페미니즘이 백래시의 시기에 등장한 사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손에 넣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성과가 역전된 상황에서 문화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오염되지 않은 문화와 공간’을 구성할 가능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남성 우월주의에서 벗어나는 안식처와 언뜻 보기에 종속에서 탈피하는 통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저자의 분석은 현재 페미니즘 운동에도 시사점을 준 다.
최근 등장한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 그룹을 인터뷰한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한 그룹은 ‘이미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조직을 확대해서 갈등의 위험을 떠안지 않겠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랑 어울리는가.’라는 주장을 한다. 이 그룹만의 특수한 주장이라기보다, 페미니즘 운동을 남성중심의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만드는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가 문화 페미니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문화 페미니즘의 부상의 문제로 여성 운동의 급진 분파가 하나의 운동보다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 자기 폐쇄 경향이 강한 이런 공동체는 소속된 이들에게는 버팀목이 됐지만 소속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종종 무관심해 보였다는 점을 짚는다.
자족적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여성만을 포괄할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도 약하다. 마음 맞는 공동체는 필요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론과 운동도 등장하겠지만, 누구도 그러한 공동체 내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반성폭력 운동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대학에서 사회로 나간 뒤, 이런 대학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차라리 적응해 살기 편했을 것이라는 대학동기의 말을 기억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어려웠다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지적도 떠오른다. 90년대 후반 영페미니스트의 등장과 활발한 반성폭력 운동 이후에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운동으로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오로지 백래시, 외부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미국의 6-70년대의 급진 페미니즘 운동의 경우, 저 자는 급진 페미니즘 이론 내부 뿐 아니라 균열과 대립이 가속화된 70년대 중반의 구체적 상황을 이유로 든다.
다른 길이 있었을까
… 문화 페미니즘의 맹아는 모든 종류의 급진 페미니즘에 들어 있었다. ‘여성’을 단일한 범주로 규정하고, 남성은 구제불능의 성차별주의자로 묘사하고 여성은 무기력한 희생자로 묘사하며, 페미니즘이 단일한 변혁 이론이라고 확신하는 급진 페미니즘의 견해는 모두 문화 페미니즘이 등장하는 길을 닦는데 일조했다. … 그렇지만 급진 페미니즘의 종언은 자체의 이론적 결함이나 점차 보수적으로 바뀐 1970년대의 분위기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 (p.298)
에콜스는 문화 페미니즘의 맹아가 모든 종류의 급진 페미니즘에 있었으나 급진 페미니즘의 종언이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급진 페미니즘과 문화 페미니즘을 분리하는 이러한 접근이 독자의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갈림길은 어디였을까. 기존 운동이 페미니즘에 대해 계속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 젠더가 주요 모순이며 페미니즘이 유일한 변혁적 사회 이론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이론적 한계를 더 빠르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면? 무구조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남길 수 있었다면? 실은 이 책만을 통해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운동을 더 오래 그리고 강력하게 지속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을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알기 가 어렵다.
다만 현재의 쟁점 대부분에 선례가 있다는 점에서 피로나 절망보다 안도감이 든다. 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역사 없이’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이전 세대가 왜 폭풍 같은 논의에 지쳤으며 어느새 페미니즘을 옆에 치워두었는지도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주장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기도 하고, 함께 운동했던 동료 여성들을 운동에서 떠나게 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여야 할 여성들을 페미니즘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한 그 역사 모두 페미니즘의 역사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20년 한국은 어떤가. 페미니즘의 모든 흐름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강조, 4B(비혼, 비연애, 비출산, 비섹스), 탈코르셋 등의 쟁점을 보면 이미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자신이 급진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중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우리 역시 이 유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 그것으로도 이 역사책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글 :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