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의 말] 미국의 생태 마르크스주의자 존 벨라미 포스터가 <먼슬리 리뷰> 2019년 11월호에 발표한 글을 소개한다. 최근 미국에서 부상한 그린 뉴딜 논쟁에 관해 잘 정리하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8년경 오바마 대통령이나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안한 그린 뉴딜이 생태적 현대화 버전이라면, 최근 기후정의운동이 제기하는 그린뉴딜은 생태 사회주의 지향에 가깝다. 이 글에서 존 벨라미 포스터는 과거와 현재의 그린 뉴딜이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또, 2012년, 2016년 대선 당시 미국 녹색당이 발표한 그린 뉴딜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주도해 미국 의회에 제출한 그린 뉴딜 결의안, 올 9월 버니 샌더스가 발표한 그린 뉴딜의 특징에 대해 논의하고, 장단점을 분석한다. 글 후반부에서는 IPCC가 제안하는 해결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혁명적/변혁적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개혁과 혁명을 일반화해 대립시키는 논리 구조는 다소 아쉽다. 그러나 생태 위기와 사회-경제 위기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본주의 모순적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따라서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매우 소중한 지적이다. 이 글은 전체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각주가 포함된 전체 번역본은 첨부된 파일을 참고할 수 있다.
원문 : On Fire This Time
전문 번역 : 불타오르는 우리 시대
오늘날 우리는 생태 혁명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순간이다. 나오미 클라인이 새 책 『불타오르는 세계(On Fire)』에서 제시한 것처럼, 단지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응해 혁명적 기후운동이 부상하고 한창 불타오르는 중이다. 최근 유럽과 북미의 기후운동에 초점을 맞춰 그 연대기를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지금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 시대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2018년 8월: 15세 그레타 툰베리, 스웨덴 의회 밖에서 학교 파업 시작.
2018년 10월 8일: 유엔 IPCC, “규모 면에서의 전례 없는 … 시스템[체제] 전환”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1.5℃ 특별 보고서> 발표.
2018년 10월 17일: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기후위기에 관한 대규모 시민 불복종을 요구하며 영국 그린피스 본부 점거.
2018년 11월 6일: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그린 뉴딜을 포함하는 강령·공약을 내걸고 미국 하원 국회의원으로 선출.
2018년 11월 13일: 선라이즈 운동 회원들, 미국 하원 의장 낸시 펠로시의 의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새로 하원의원에 선출된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이에 동참.
2018년 11월 17일: 멸종저항 활동가들, 런던 템스 강의 다리 5곳 봉쇄 시위 전개.
2018년 12월 10일: 선라이즈 운동 활 동가들, 그린 뉴딜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립을 요구하며 미국 민주당의 주요 의원 사무실 앞 시위.
2018년 12월 19일: 그린 뉴딜 특별위원회를 지지하는 의원이 40명으로 증가.
2019년 1월 25일: 툰베리, 세계경제 포럼에서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습니다 … 집이 불타고 있기에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고 연설.
2019년 2월 7일: 오카시오-코르테스와 상원의원 에드워드 마키, 미 의회에 그린 뉴딜 결의안 제출.
2019년 3월 15일: 125개국 약 2,100곳에서 청년들이 이끈 기후파업이 160만 명의 참가로 전개(밀라노 10만, 파리 4만, 몬트리올 15만).
2019년 4월 15-19일: 멸종저항, 런던 중심부의 많은 지역 점거/폐쇄.
2019년 4월 23일: 그레타 툰베리, 영국 양원 의회연설에서 “내 말이 들립니까? 내 영어가 괜찮나요? 마이크가 켜져 있나요? 나는 이제 막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2019년 4월 25일: 멸종저항, 런던 증권 거래소 입구에 스스로를 접착제로 붙여 봉쇄 시위.
2019년 5월 1일: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 곧이어 영국 의회도 기후 비상사태 선언.
2019년 8월 22일: 미국 상원의원이자 대통령 후보인 버니 샌더스, 지금까지 가장 포괄적인 그린 뉴딜 계획 발표. 10년간 16조 3천억 달러의 공적 투자 제안.
2019년 9월 12일: 연방의회의 그린 뉴딜 결의안 공동발의자(cosponsors)가 107명에 달함.
2019년 9월 20일: 150개국 2,500곳에서 열린 세계 기후 파업에 400만 명 참가. 독일에서만 140만 명 참가.
2019년 9월 23일: 툰베리, 유엔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전체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대량 멸종이 시작됐지만,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헛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죠?” 연설.
2019년 9월 25일: 열대의 저지대 대도시와 작은 섬들이 2050년까지 “매년 극단적인 해수면 상승”을 겪을 것이라는 IPCC의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 발간.
지난 1년간 기후변화 시위가 분출한 것은 IPCC가 2018년 10월 발표한 보고서 『1.5℃ 특별 보고서』가 2020년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정점에 달하고, 2030년까지 45퍼센트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배출 순 제로를 달성해야 지구 평균기온 1.5℃ 이상의 상승으로 인해 겪을 파국을 합리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 시스템의 위기에 상응하는 규모로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표적 생태사회주의 운동의 이름인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시스템]변화”가 전 세계 풀뿌리 기후 운동의 경구가 됐다.
툰베리와 학생 기후파업 운동, 선라이즈 운동, 멸종저항, 그린 뉴딜의 급부상은 모두 1년 내의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실제 시위와 파업의 수백만 기후변화 활동가 대다수는 청년이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환경 투쟁에 거대한 변혁이 진행 중임을 의미한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일반적인 기후운동에서 보다 급진적인 기후정의와 생태사회주의 쪽으로 투쟁의 구조가 변화했다. [과거] 기후운동은 대부분 개혁주의적이어서, 기후를 의식하는 쪽으로 기존 관행을 조금씩 바꾸려고 했다. 2014년 민중기후운동이 주최해 40만 명이 참여한 뉴욕의 기후행진은 기후 회의가 열리는 유엔이 아니라 34번가(St.)와 11번가(Ave.)로 진행되어, 시위보다는 목적지 없는 퍼레이드 성격을 띠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멸종저항, 선라이즈 운동, 기후정의동맹과 같은 기후정의 단체들은 직접 행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새로운 운동은 더 젊고, 대담하며, 더 다양하고, 보다 혁명적이다. 지구를 위한 현 투쟁에서 사회적·생태적 생산 관계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2018년 12월 15일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툰베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스템 안에서 해결책을 찾기가 그렇게나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그린뉴딜 : 개혁인가 혁명인가?
지난해 그린 뉴딜, 또는 노동자와 일선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고, 기후변화와 사회·경제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합시키는 프로그램이 부상했고, 생태 혁명을 위한 강력한 투쟁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린 뉴딜은 원래 급진적인 변혁 전략은 아니었다. 오히려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에 가깝다. ‘그린 뉴딜’이라는 말은 2007년 그린피스 국제경제파트의 코디네이터 콜린 하인즈(Colin Hines)와 가디언지의 경제면 편집장 레리 엘리엇(Larry Elliott)이 가진 회담에서 처음 사용됐다. 경제 문제와 환경 문제의 악화에 직면해 하인즈는 녹색 케인스주의 [재정] 지출 정책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를 미국의 대공황 시기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주창한 뉴딜 이후의 “그린 뉴딜”이라고 명명했다. 2007년 말 엘리엇과 하인즈는 영국의 기업가 제레미 레깃(Jeremy Leggett)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국 그린 뉴딜 그룹을 발족했다.
이 아이디어는 환경 정책 집단 사이에 빠르게 확산됐다. 친기업적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미국에서 이 용어를 새로운 자본주의의 생태적 현대화 전략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도 그린 뉴딜 제안을 2008년 대선 캠페인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2010년 중간선거 이후 그 용어와 내용을 없애버렸다. 2009년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속가능한 성장 계획을 담은 『글로벌 그린 뉴딜』 보고서를 발간했다. 같은 달 녹색유럽재단(Green European Foundation)은 오늘날 ‘유럽 그린 뉴딜’로 알려진 케인스주의 녹색 자본주의 전략을 담은 『유럽을 위한 그린 뉴딜』을 발간했다.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하에 도입된 이런 제안들은 모두 위로부터의 녹색 케인스주의, 생태적 현대화, 코포라티즘적인 기술관료 주도의 계획이 결합된 것이다. 온건 개혁적 녹색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고용 촉진, 빈곤 퇴치 등을 일부 고려하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첫 번째 그린 뉴딜 제안은 1930년대 중 후반 산업 노동자들의 거대한 봉기로 촉발된 2차 뉴딜(1935-1940년)보다는, 코포라티즘적이고 매우 친기업적인 성격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1차 뉴딜(1933-1935년)과 공통점이 더 많다.
이러한 초기 코포라티즘적인 제안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지난해 미국에서 주목받은 급진적인 버전의 그린 뉴딜은 2차 뉴딜의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저항에서 역사적인 영감을 얻었다. 2013년, 다양한 환경정의 조직들이 통합해 만든 기후정의동맹(Climate Justice Alliance)이 이러한 변모의 핵심 세력이었다. 기후정의동맹은 현재 저소득 공동체, 유색인종 공동체를 대변하는 68개 일선 조직들의 연합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지지하고 환경정의를 위한 직접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비판적 개념은 1980년대 석유·화학·원자력 노동조합의 생태사회주의자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가 급진적인 노동-환경 정의 운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서 유래했다. 이후 이를 미국철강노조(United Steel Workers)가 추진했다. 경제 투쟁과 생태 투쟁 간의 차이 극복을 지향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최근 기후 자체에 대한 보호조치를 넘어서는 민중적 그린 뉴딜(Peoples’ Green New Deal)을 위한 투쟁의 주요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린 뉴딜은 2012년과 2016년 미국 녹색당의 질 스타인(Jill Stein) 대선 운동 시기에 급진적인 풀뿌리 전략(또는 ‘민중을 위한 과학’ 그룹의 용어로는 “민중적 그린 뉴딜”)으로 변모했다. 녹색당의 그린 뉴딜에는 네 가지 핵심 축이 있었다. ① 고용 권리, 노동권, 보건의료 권리(모두를 위한 메디케어), 연방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고등교육·무상교육 권리 등을 포함하는 경제적 권리 장전, ② 소기업·녹색 연구·녹색 일자리에 대한 투자 지원과 녹색 전환, ③ 자가주택 소유자와 학생 부채 탕감·통화정책의 민주화·금융기업의 해체·정부의 은행 구제금융 중단·금융 파생상품 규제 등 금융 개혁, ④ 기업의 법인격 폐지·투표자 권리장전 통합·애국자법 폐지·국방 예산의 50% 감축 등을 통한 민주주의의 기능 회복.
녹색당의 최초 그린 뉴딜 정책은 급진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이 계획의 핵심은 미국의 국방 지출을 절반으로 줄이고, 다른 영역에 지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녹색당 그린 뉴딜의 핵심은 미국 제국의 경제․금융․군사 구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최대 2천만 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녹색 전환 경제 정책 제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녹색 전환 부분이 녹색당 그린 뉴딜의 가장 약한 요소였다. 그러나 녹색당이 혁신한 것은 주요한 환경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의 필요성을 동등하게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2018년 11월 미국 중간 선거에서 선출된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앞장선 후에야 의회에서 급진적 그린 뉴딜이 터져 나왔다. 그린 뉴딜이 갑자기 미국 정계의 주요 변수가 됐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6-2017년 노스다코다 주 스탠딩록에서 열린 다코다 파이프라인 중단을 위한 원주민 주도의 격렬한 투쟁에 참여한 후에 출마를 결심했다. 뉴욕 14 선거구(브롱스와 중북부 퀸스의 일부) 선거운동 중에 그녀는 선라이즈 운동의 <화석연료 기업 후원금 거부 서약>에 서명했다. 그 결과 선라이즈 운동이 유세를 지원해서 10선 현직 하원의원인 조 크롤리에 맞선 놀라운 승리에 도움을 줬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중간선거 일주일 후에 벌어진 선라이즈 운동의 펠로시 사무실 점거에 즉각 참여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선거운동은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의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샌더스의 대선운동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를 재활성화시켰고,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선거를 앞두고 이 그룹에 가세했다. 처음부터 민중적 그린 뉴딜 결의안은 많은 면에서 생태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2019년 2월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마키가 제안한 14쪽의 그린 뉴딜 결의안에서 기후 비상사태의 실상은 미국 사회의 문제점들과 함께 제시됐다. “관련된 위기”의 목록으로 제기된 것은 다음과 같다. 기대수명의 감소·임금 정체·계급 이동 감소·불평등 급증·인종에 따른 부의 큰 격차·젠더 소득 격차. 여기서 제안된 해결책은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순 제로를 달성하는 그린 뉴딜이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만 개의 고임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는 “(결의안에서 “일선의 취약한 공동체”라고 언급한) 원주민·유색인종과 이주민 공동체·탈산업화된 공동체·공동화된 농촌 공동체·저임금 노동자·여성·노인·무주택자·장애인·청년들에 대한 역사적 억압을 뒤집고, 정의와 공평 을 증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린 뉴딜 결의안은 “10년의 국가적 동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기간 동안에 “미국 전력 수요의 100%를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배출 제로 에너지원”으로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다른 정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국내 또는 국제적 독점” 반대, 가족농 지원,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 구축, 배출 제로 차량 인프라 구축, 공공교통 활성화, 고속철도 투자, 기후 관련 기술의 국제적 교류 보장, 일선의 공동체-노동조합-노동자협동조합 간 협력 창출, 노동자 대상의 일자리 보장·훈련·고등교육 제공, 미국민 전체에 질 높은 보편적 의료보험 보장, 공공 토지와 용수의 보호.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마키가 제안한 민주당의 그린 뉴딜은 녹색당의 그린 뉴딜과는 달리, 금융자본과 미국의 군사-제국적 [재정] 지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급진적 성격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동원을, 재분배 경제 조치를 포함한 일선 공동체의 정의로운 전환과 연결하는 것에 국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요구의 급진적 성격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의 완전히 실행을 위해서는 미국 자본의 거대한 변혁과 화석연료 산업의 몰수(expropriation)를 목표로 한 사회 전체의 대규모 동원이 필요할 것이다.
샌더 스의 34쪽짜리 그린 뉴딜 계획은 이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2030년까지 전력 및 운송 부문의 100% 재생 에너지(미국 탄소 배출량의 71% 감축)와 늦어도 2050년까지 완전한 탈탄소를 목표로 한다.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16조 3천억 달러의 공공 투자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고, 노동자들과 일선의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고, 기후변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뉴딜 시기의 시민자원보존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재창설하고, 해상시추·프래킹·정상제거탄광(mountaintop removal coal mining)을 금지하는 것 등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달성할 계획이다. 또한 2030년까지 덜 산업화된 국가들의 탄소 배출 36% 감축을 돕고,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서 녹색기후기금에 2천억 달러를 제공할 것이다.
샌더스는 화석연료에서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노동자들에게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최대 5년간의 임금 보장, 일자리 전환 지원, 이주 지원, 건강보험, 과거 임금에 근거한 연금” 등을 주택 지원과 함께 제안했다. 노동자들은 4년대 대학 교육에 대한 완전한 비용 지불을 포함해 다양한 직업 진로를 위한 훈련을 받는다. 건강보험 비용은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가 부담한다. 일선의 공동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정의의 원칙을 지키고, 원주민을 포함한 공동체에 자금이 제공될 것이다. 샌더스는 원주민 집단[부족]의 토지 접근과 확대 프로그램에 12억 달러를 지원하고, 부족의 주권을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가족농업을 지원하고 “생태적 재생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동물 사료 사업에 투입할 410억 달러를 마련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자금 조 달 계획은 다음과 같다. ① “오염 기업 및 화석연료 투자자의 수입 및 자산에 대한 대규모 세금 인상”과 “화석연료 발전으로 인한 오염에 대한 처벌 강화”, ②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보조금 철폐, ③ “지역 전력판매국의 에너지 도매에서 발생한 수익”- 2035년까지 그린 뉴딜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 수익을 사용하며, 그 후엔 운영·유지 비용만 받고 고객에게 전기를 거의 무료로 제공, ④ 세계 석유 공급의 보호를 위한 군비 지출의 삭감, ⑤ 기업과 부자에게 “공정한 몫”을 부담하게 만들기.
따라서 샌더스의 그린 뉴딜은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마키의 의회 결의안과는 다음과 같이 다르다. 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명확한 시간표의 설정(미국 고유의 책임 때문에 세계 탄소 예산에 따라 전 세계에 요구되는 것보다 더 야심찬), ② 화석연료 자본과의 직접적인 대결, ③ 특정한 공동체에 초점을 두면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필요에 명시적으로 기초한 정의로운 전환, ④ 이전의 녹색당 뉴딜 제안과 같이 2천만 개의 새 일자리 창출, ⑤ 해상시추·프래킹·정상제거탄광사업의 금지, ⑥ 세계의 화석연료 경제를 보호하는 군사력과의 대결, ⑦ 10년간 그린 뉴딜에 16조 3천억 달러의 연방 정부 예산 지출 명시, ⑧ 그린 뉴딜에 필요한 자금을 위해 오염 기업에 세금 부과. 그러나 샌더스의 계획에는 국방 지출 50% 삭감이라는 녹색당의 담대한 제안은 빠져있다.
최근에 발전되고 있는 민중적 그린 뉴딜 전략은, 경제적·정치적·생태적 권력의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지향하는 개혁,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회피하지 않고 지향하는 개혁, 즉 사회주의 이론에서 혁명적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들로 구성된다. 구상되는 변화의 규모는 1930년대 후반의 2차 뉴딜이 제기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자본의 권력에 더 가공할만한 위협이 된다. 화석연료 매장량을 포함한 화석연료에 대한 완전한 투자철회는 순전히 그 필요성에 의해서 추진되는 폐지운동(abolitionism)의 일종이다. 이는 전체 경제 규모에 미칠 영향의 측면에서 미국의 노예제 폐지에 유비할 수 있을 정도다. 1860년에 노예는 “모든 제조업과 철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는 미국 경제 전체에서 가장 큰 단일 금융 자산”으로 추정됐다. 오늘날 화석연료 산업과 전체 금융 구조를 포함하여 그와 연관된 산업 및 인프라와의 대결은, 그 규모의 측면에서 부 및 권력과의 진짜 갈등으로 유비할 수 있다. 또한 이 대결은 전체적인 생태적·사회적 변혁의 일환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2016년 미주개발은행은 전 세계가 화석연료 채굴을 중단하면 에너지 기업들이 입을 잠재적 손실이 28조 달러라고 발표했다.
자본이 처음부터 이해한 바와 같이, 이러한 변화는 전체 정치-경제 질서를 위협할 것이다. 일단 사람들이 변화에 동참하면 자본주의 생산의 전체 물질대사가 도전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말처럼, 에너지 기업들은 “수조 달러어치의 확인된 지하 화석연료 매장량(그들이 자산으로 계산한)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기후정의운동이 이런 방식으로 화석연료 자본 및 지배적인 자본주의 체제 전체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몇 년 사이에 생산 및 에너지에 거대한 변혁이 시작되는 것과 함께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동원과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그린 뉴딜 제안들은 오늘 날의 지구적 비상사태가 요구하는 광대한 과제들을 훨씬 덜 강조하고 있어, 이를 담는 데 근접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유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의 혁명적 투쟁이 불붙는 데에 필요한 충분한 기반이 됐다. 비상사태 속에서, [그린 뉴딜이] 검토한 변화는 자본의 논리 그 자체에 맞서는 것이고, 전체 인구가 동원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인 그린 뉴딜 전략 자체에는 경제 성장과 자본 축적에 대한 강조와 관련된 모순이 남아 있다. 기후 안정을 위해서는 생산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엄중하게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의 모든 그린 뉴딜 제안들은 자원의 직접적인 보존이나 전반적인 소비의 감소에 관한 언급을 대부분 회피한다. 사회적 희소자원의 재할당을 위한 공평한 비가격 수단인 배급(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꽤 대중적인 수단이었다)과 같은 비상 수단은 훨씬 덜 언급된다. 현 축적 체제에 내재된 엄청난 규모의 낭비를 어떻게 생태적 이점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없다. 2차 뉴딜의 진정한 성공이 경제성장보다는 사회적 재분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한 지구 비상사태를 악화시킬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획은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경제성장이나 자본축적을 촉진한다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경고처럼 그린 뉴딜 계획이 “기후 케인스주의”의 경로를 밟는다면, 지구를 보호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실행하는 데서 모두 참담하게 실패할 것이다.
IPCC와 감축 전략들
그렇다고 구조적인 전환이 그 바 탕에서부터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요즘 한창 지지받는 급진적 그린 뉴딜 전략들은 기후 변화와 씨름하자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느냐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모든 좌파적 사회 개입 전망을 가로막았던 IPCC 주도의 과학주의적 정책 과정을 중단시키고 말 듯하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들에 관한 그간의 접근들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개입과는 거리를 두며 신중했다. IPCC가 기후 비상사태를 완화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제안한 사회적 행동들은 이제껏 대부분 현재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세계적 규모로 줄이려는 감축 전략들은,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축적 관계가 거의 전적으로 지배적이고 신고전파 경제학의 헤게모니가 발현 중인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감축 전략 속에서 응당] 고려해야 할 매개변수/요소들이, 이렇게 전제된 감축 시나리오 속의 가이드라인들에서는 통합평가모델(IAMs, 온실가스 배출량을 에너지 시장 및 토지 이용과 통합하는 대용량컴퓨터 모델) 및 사회경제적 공유경로(SSPs, 모든 모델에서 상정한 기후정책 실행의 부재 및 실질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체로 기술적 프레임워크에 기초한 것으로, 다섯 가지 현상유지 경로로 구성) 같은 장치를 통해 심대하게 제약받게 되는 셈이다.
현상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지들은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이 같은 보수적 모델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비현실적 평가를 확산시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IPCC 과정에 통합된 감축 시나리오들에서는 ① 현재의 정치경제 헤게모니를 영속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② 많은 경우 실존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기술적 해법들에 바탕을 둔 변화에 우호적인 가운데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가 가진 의미를 격하하는 한편, ③ 탄소 배출 저감에 관해 수요 측 변수나 생태적 소비의 직접적 감축보다는 공급 측면, 주로 가격 관련 및 기술적 변수들에 방점을 찍으며, ④ 오버슈팅(overshooting) 배출 목표를 허용하는, 대기 중 탄소의 포집 및 어떤 방식의 격리 같은 이른바 음의 배출에 의존하고, ⑤ 최소화된 대중 참여 속에 간부급 엘리트 주도로 변화가 관리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대부분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⑥ 생태 혁명의 가능성(사실은 필연성)은 제쳐둔 채 완만한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
IPCC 모델과 그 전망치가 ‘기후 변화’와 그 사회・생태적 여파의 규모는 잘 잡아냈다. 그러나 IPCC에서 활용한 수많은 감축 모델은 이 같은 도전에 필요한 ‘사회 변화’의 규모를 체계적으로 격하시켰다. 그 대신 마법의 탄환들 이를테면 (탄소 거래 같은) 시장-가격 기반의 개입 방식이나, 필요성이나 규모면에서 적절치 않으며, 음의 배출에 기댄 미래 기술에서 파생된 해법들이 탄력을 받는다. 이 모델들은 파국적 귀결을 우려하면서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않거나 불합리하고 기이한 기술과, 이른바 시장 효율성을 유일한 비책처럼 가정한다. 이런 접근법들은 현재의 생산 양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로 사회가 굴러가도 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후 감축 모델에서는 바이오에너지 탄소 포집 및 저장(BECCS) 기술을 포함시킨다. 이 기술은 에너지 생산용으로 소각가능한 대규모 식물(주로 나무) 재배를 촉진하고, 동시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지질이나 해양에 어떻게든 격리・저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려면 인도의 한두 배 크기 정도 되는 땅과, 물 부족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농업에 투하되는 규모 정도의 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순전히 기계적인 접근법들이 게걸스레 부추겨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IPCC 보고서가 구성된 방법 및 그 저면에서 보고서가 부응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깊숙이 관계된다.
영국의 틴달 기후 변화연구센터(The Tyndall Centre for Climate Change Research) 소속 기후학자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은 이렇게 말한다.
"1.5-2℃라는 목표치를 이루려면 부유한 국가들마다 매년 10% 이상의 배출 감소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율이 현재 경제 시스템하에서 통상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바를 훌쩍 상회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궁지를 바로잡기 위해서 통합평가모델(IAMs)이 중요하고도 위험한 역할을 한다. 객관성이라는 탈을 쓴 이러한 리바이어던 같은 컴퓨터 모델의 사용으로, 기후 변화 감축에 관한 해석 작업이 번잡하고 맥락적인 개입의 정치에서 맥락 없는 수리적 형식주의로 대체된다. 이러한 전문가적 경계 안에서, 통합평가모델은 금융적 문법과 기술적 변화를 신뢰하고, 인간 행동에 대한 [정통적인] 경제적 해석을 버팀목 삼아 단순한 기후 모델들을 종합한다. (…) 통상적으로, 통합평가모델은 자유 시장의 공리들에 기초한 모델을 사용한다. 이들 모델에 뿌리박힌 알고리즘은 경제[학]적 균형에 근접한 한계 개념 기반의 변화들을 가정한다. 또 가격상의 한계적 변화에서 기인한 수요상의 작은 변이/편차들에 크게 의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오늘날의 시장 경제적 균형에서 크게 탈피한 감축 목표를 설정하면서,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현존 사회의 모든 면면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앤더슨이 강조하다시피, 실제로 IPCC가 제공하고 국가적 감축 계획으로 통합된 현재의 기후 시나리오의 모델링과 예측치들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일반균형 분석에서 도출된 여러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이윤 시스템상의 여러 요구들에 기초한 점진주의적 변화라는 발상을 따르고 있다. 감축 시나리오상으로 이렇게 전제된 조건들은 현존하는 기후 비상사태란 맥락에 비춰 무의미하기도 하고, 필요한 행동들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는 큰 위험이기도 하다. 그 결과 현존하지 않는 기술이 유일한 구원자인 양 여겨지는 것이다. 2018년 발간된 IPCC 보고서를 보면 여기서 고려된 많은 모델들은 ‘전부’ 탄소저감(CDR)이나 이른바 음의 배출을 요구하고 있는데, 조림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은 기술적인 수단을 통한 것이다. 앤더슨의 설명에 따르면, IPCC의 모든 감축 조치는 지금까지 “실패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보고서상의 예측치와는 근본적으로 상반된 과정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이래로 70% 늘어났다.” 이같은 배출의 결과는 온갖 양의 피드백 효과와 더불어 누진적이고 비선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배출 감축이 실패한 현 상황은 경제 시스템의 온건한 변화가 아닌 혁명적 재구성이라는 도전과 맞닥뜨리게 만들었다. 이는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이 아니다. 이런 입장은 파리 기후협약에 관한 과학적이고 수리적인 해석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이다.”
2018년도 IPCC 보고서는 도입부에서 기후 비상상태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 감축 조치들이 앞선 보고서들에서 조심스레 독려됐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조치란 곧 소비를 줄일 방법들에 관한 것으로, 보통은 증대된 효율을 통해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된다(보통 여기서는 널리 알려진 ‘제본스의 역설’, 즉 자본주의하에서의 효율 증대는 축적 및 소비 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이 경시된다). 그간 소개된 다수의 감축 시나리오들은 수요 측면에서의 개입이 기후 변화를 다루는 가장 빠른 길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떤 모델에서는 1.5℃ 이하의 목표치가 경미한 오버슈팅만으로, 이른바 음의 배출 기술에 대한 의존 없이도 (이산화탄소 감축의 비기술적 형태라고들 하는) 영농 및 조림 관행의 개선으로 충족될 수 있음을 제안할 정도다. 이들 결과는 게다가, 빠른 경제 성장을 주되게 상정한 한편으로 기후정책적(또는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는 IPCC식 감축 모델상의 극히 제한적 가정들 ‘속에서’ 달성됐다. 이에 따라 가령 제이슨 힉켈과 기요르고스 칼리스 같은 상당수 급진적 비평가들은 수요 측면에서의 풍요와 재분배 정책들을 강조하고, (오늘날 0.01% 위주로만 혜택이 돌아가는) 이윤과 성장에 관해선 제약을 부과하는 사회정치적 접근법들이 감축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됐다.
따라서 변혁적 변화라는 문제를 인류 문명이 살아남기 위한 기반으로 제기한다는 점과, 또한 실제로 필요한 것[필연적인 것]에 실제로 가능한 것의 영역을 개방한다는 점이, 급진화된 또는 민중적인 그린 뉴딜 전략의 주요 미덕이다. ‘필연의 자유’가 이 전략으로부터 가능해지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가능해질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혁명이 ‘생태민주주의적’이고 ‘생태사회주의적’인 두 단계를 거치게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대중의 자기-세력화/동원(self-mobilization)은 처음에는 생태민주주의적 형태 속에서 정의로운 전환과 결부된 에너지 대안들의 구축을 강조 할 것이다. 생산이나 소비의 체계를 겨냥한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후 변화의 압박과 다양한 공동체들의 동원으로 추동된 사회적・생태적 정의를 위한 투쟁에 힘입어, 좀 더 포괄적인 생태 혁명적 관점이 생겨나고 기존 이데올로기의 장막이 파열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여전히 독점-금융자본의 권력이 지배적인 세계에서, 급진적 그린 뉴딜 구상은 여전히 녹색 케인스주의로 되돌아가는 경향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될 것이다. 무한한 일자리와 급속한 경제성장, 더 많은 소비에 대한 약속은 전 지구적 위기에 관한 그 어떤 해법과도 양립하기 어렵다. 『불타오르는 세계』에서 나오미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뢰할만한 그린 뉴딜이라면 그 어떤 경우든, 좋은 녹색 일자리로 번 돈이 고도소비형 생활양식으로 곧바로 이어져서 의도치 않게 탄소배출을 늘리고 마는 쪽(모든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와 많은 가처분소득을 얻지만 이를 일회성 상품 소비에 사용하는 시나리오)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은 [자원] 추출에 강력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삶의 질을 고양하며, 끝없는 소비의 쳇바퀴 바깥에서 즐거움을 누릴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는 전환이다.
생태적・사회적 자유를 향한 길을 만들려면, 인간 노동의 착취 및 자연과 인민의 수탈에 근간해 그 어느 시절보다도 더 빈번하고 극심한 경제・생태 위기를 초래중인 생산 양식은 기각돼야 한다. 독점-금융자본 체제하의 과잉축적 탓에 현 시스템의 보존을 위한 악폐가 모든 수준에 걸쳐 발생 중이다. 또한 자본에게 합리적인 것이 세계의 인민들과 지구에게는 불합리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삶과 노동이 쓸모없는 상품들을 생산하는 데 낭비된다. 또한 세계의 물질적 자연자원들은 탕진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생산과 부, 그리고 지구 자체가 이토록 방탕하게 소진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지속가능한 환경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 자유를 신장시키고 개인적・집단적 필요를 충족시킬 잠재역량도 그만큼 엄청나다는 얘기다.
현 기후위기 속에서, 지금 환경에 집적된 엄청난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생산해온 건 바로 이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여전히 1인당 배출량이 가장 많다. 더욱이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부와 기술은 그 국가들이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기후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부유 한 국가들이 연간 10%나 그 이상으로 탄소를 감축하는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일이 꼭 필요하다. 멸종저항 같은 변혁적 운동들의 갑작스런 부상은 지구적 필연의 산물인 것과 더불어, 바로 부유한 나라들의 책임을 인정하자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생태적 전환의 주된 추동력은 지구 남반구에서 생겨날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세계체계 속에서 부유한 국가와 빈곤 국가들 간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다가 전 지구적 규모의 생태 위기의 여파까지 혹독하게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주변부야말로 혁명의 유산이 강력하게 전승된 곳이다. 또한 절실한 변화를 어떻게 이뤄갈지에 관한 구상이 가장 심원하게 지속중인 곳이기도 하다. 특히 쿠바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제국주의 세계체계의 가혹한 공세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경우 지구 경제 차원의 헤게모니 구조로 강요된) 에너지 추출에 의존해온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회 혁명을 위해 분투해왔다. 일반적으로 지구 남반구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이 생태적・경제적으로 악화되는 가운데 환경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가장 빠르게 불어날 장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중국이 가진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면서도 모순적이다. 중국은 자원 소비와 오염이 가장 극심한 나라이자, 대량의 탄소 배출로 지구적 규모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나라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생태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이루고자 그 어떤 다른 나라들보다 대안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진력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특유한 농업 체계 덕에 먹거리 자급이 대체로 유지중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체계에서 농지는 사회적 소유물로 규정되고 농업 생산은 인민공사-단위 체제 시절의 책임 관계를 부분적으로 승계한 소규모 생산자들에 의해 주로 이뤄진다. 분명한 것은, 생태 문명의 창출이란 측면에서 중국 당-국가가, 이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는 중국의 인민들이 지금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지구의 장기적인 명운을 가름하는 데서 관건이 될 거라는 점이다.
생태 혁명은 자본주의 체계 전반과의 불화를 겪는다. 적어도 그것은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 과정이 충분히 펼쳐지게 될 때 자본주의 체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극우파로부터의 후방 지원을 받는 자본가 계급의 반동적 대응은 퇴행적이고 파괴적이며, 제멋대로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하고 화석연료 추출을 가속화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와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여러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아마도 그 이면에 선단처럼 포진해 있는 세계적 투쟁 저변을 불태우고자) 소거하려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허다한 시도들 속에서 이 같은 양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생태적 야만 내지 에코파시즘은 현재의 세계정치적 맥락에서 감지되는 위협이다. 이는 생태적인 대중 봉기가 쟁투해가야 할 현실의 일부다. 개혁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혁명적인 투쟁들만이 이런 여건들 속에서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변화의 시대
현행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사회과학 문헌에서는 공통적으로, 단순하게 개인들의 행 동이 합쳐져 사회가 구성된다고 본다. 좀 더 비판적인 다른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정반대의 시각이 제시되는데, 여기서 개인들은 총체적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제3의 일반적 모델은 개인들을 일종의 전진-후퇴 움직임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한편 그 사회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구조와 행위성 사이의 종합으로 본다.
진정한 사회 변혁의 여지를 거의 두지 않고서 대체로 자유주의적 접근법에 입각해 있는 이런 주류들과는 아주 다르게, 역사-변증법적 접근법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비판적 실재론의 철학자인 로이 바스카가 “변형론적 사회적 행위 모델”이라고 일컫는 것을 따르고 있다. 이 모델에서 개인들은 주어진 특정 사회(생산양식)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그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또한 이 특정 사회(생산양식)가 개인적 실존의 초기 변수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조건 및 생산관계는 이들의 생애 속에서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들과 모순들, 위기들을 낳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역사적 상황들에 속에서 인간 존재는 저마다의 계급[적 조건]과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이 반영된, 자생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어떤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존의 사회적 재생산 구조를 바꾸는 사회 변혁을 꾀하고자 한다. 급진적 도약 및 혁명들로 이뤄진 중대한 역사적 계기들과 새롭게 생성되는 여러 현실은 이로부터 나타난다. 칼 마르크스가 썼듯이 “인간은 저마다의 역사를 만들어내지만, 그들이 바라는 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들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 로 마주치게 되며 그로부터 주어지고 전래된 환경들 아래서다.”
사회적 행위에 관한 이런 변형론적 모델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기해방 이론을 지지해준다. 기존 사회관계들은 보편적인 인간 발전에 족쇄가 되지만, 이 족쇄는 또한 노동 및 생산 과정(또는 마르크스가 인간과 자연 간의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이라 했던 것) 속에서 근본적인 모순들을 낳는다. 어떤 위기와 변혁의 시기가 이로써 도래하여, 사회적 생산관계들(내지 계급・소유・권력 관계들)은 이 시기 동안 혁명적 전복의 위협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사회 간 물질대사 과정 속에서든, 생산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든 아주 극심한 모순들과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말이지 전례 없던 방식으로 말이다.
인류세 국면에서 지구적 규모의 생태적 비상상황은 자본의 과잉축적 및 제국주의적 수탈의 강화 과정과 중첩되고, 이는 신기원을 이루는 중이라 할 경제적, 생태적 위기를 낳고 있다. 이윤의 흐름을 지속하고자 새로운 소비 진작 경로를 마련하려는 자본의 움직임이, 자본 과잉축적이 전 지구적 생태위기를 가속화한다. 그 결과는 일종의 지구적 아마겟돈 상태로, 이는 사회경제적 안정성뿐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인간 종 자체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클라인은 그 핵심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생명 그 자체의 자연 법칙’과 자본주의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균열’”에 주목한다. 또한 “자본의 무제한적이고 게걸스러운 탐욕에 근거한 경제 체계가 생명이 의존하는 자연 체계들을 압도하게 되리라고 많은 좌파들이 주장해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금까지, 엄청나게 가속화된 경제적 활동과 부유층의 과잉소비, 그에 따른 생태적 파괴를 통해서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 정확히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래도록 자연에 대한 지배를 영예로워했다. 위대한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1906년 “전쟁의 도덕적 등가물”에 관해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좀처럼 언급되진 않지만, 그가 말한 도덕적 등가물은 ‘지구에 대한 전쟁’이었다. 그는 “군대의 일부를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에 맞서 싸우도록 편성”하자고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제안을 뒤집어서 새롭고 혁명적인, 전쟁의 도덕적 등가물을 창출해야 한다. 지구를 정복하고자 부대를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거주 장소인 지구를 지켜내고자 사람들이 자기-세력화할 수 있는 쪽으로 말이다. 이 같은 전환은 지구적 공유자원[커먼즈]의 부활을 목표로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실질적 평등을 이루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이룩될 수 있다. 지난 9월 23일 유엔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겁니다. 세계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아니든, 변화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우리 시대가 불타오르고 있다. 🔥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 오리건 대학교 교수, 먼슬리 리뷰 편집장
번역 : 박동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