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임신중지는 전 세계 모두를 위한 소중한 권리이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출범을 환영하며

2021년 1월 1일 부터 한국은 임신중지가 완전히 비범죄화된 국가다. 그럼에도 이후 대체 입법을 통한 제대로 된 임신중지권 보장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과 정책들이 시급히 정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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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과 정책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현재 한국에서 임신중지는 완전히 비범죄화되어 있고, 어떠한 사유도 입증할 필요가 없으며, 임신 기간에 대한 제한도 전혀 없다. 즉, 관련 법들을 개정하는 것은 좀 더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선행되기 전에는 낙태죄가 여전히 존치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낙태 관련 형법인 27장 269조와 270조는 헌법불합치로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 조항들을 삭제 및 개정하지 않은 것이 임신중지 불법화의 근거는 될 수 없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관한 각 호들도 혼란을 야기하고 있어서 이후 시급히 삭제되어야 하지만, 이 법률들 또한 임신중지 불법화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한편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한국에서도 임신중지 관련 법·제도 향방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로 대 웨이드’ 판례란, 1970년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노마 맥코비가 ‘제인 로’라는 가명으로 당시 텍사스주(州) 댈러스카운티의 지방검사장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임신 중단을 금지한 텍사스주법의 합헌성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판결이다. 이 소송의 원고와 피고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당시 항소를 거듭하며 이어진 소송 결과,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범죄화하거나 제한한 법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임신중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 이후 반세기 동안 미국 여성의 ‘낳지 않을 권리’가 보장됐고, 연방 차원에서 지켜져 왔다. 그런데 지난 5월 3일, 인터넷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미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를 뒤집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판결문 초안 유출본을 공개했다. 이 판결이 뒤집힐 경우, 미국 내 절반 이상의 주에서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거나 그에 준하게 금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판결 번복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6월 24일 미 대법원은 다수의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 6명은 모두 공화당 시절의 대통령이 지명한 종신직 대법관들이다. 이 판결로 미국의 개별 주에서 임신중단을 금지할 수 있게 됐다. 여성들의 낙태 접근권의 정도는 각 주의회로 공이 넘어갔다.

8월 2일, 캔자스주가 이 사안을 두고 처음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임신중지권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가 발의한 투표였다. 그러나 결과는 60퍼센트의 주민이 임신중지권을 옹호로 나타나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거부했다. 투표 몇 주 전부터 캔자스 주 전역에서 분노에 찬 캠페인이 넘쳐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캔사스 유권자들은 이번 투표에 90만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이는 2018년 중간선거의 투표자 47만여 명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캔사스 유권자들의 이번 선택은 아무리 최고의 법원의 판결이 있더라도, 주민들의 삶을 극도로 제한하거나 금지시킬 수 있는 낙태권 등 권리와 이슈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거부하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 사회에는 미 연방대법원의 부적절한 판결을 “환영”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해당 판결이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이라고 주장하며, 임신중지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

그러나 캔자스주 투표 결과는 연방대법원 결정이 국제 사회의 흐름에서 크게 역행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 뿐임을 보여준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어떠한 기준이나 지표도 될 수 없고,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비범죄화가 이루어진 현재의 조건을 바탕으로 법을 개정하고, 실질적인 보건의료 체계와 사회경제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 나가면 된다.

이와 같은 법·제도 정비를 촉구하고,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와 이에 필요한 권리들이 당연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오는 8월 17일 오전 11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26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 출범을 선언한다.

📃모임넷 :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녹색당,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진보연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플랫폼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비범죄화부터 권리보장까지, 오로지 직진!” 출범식에서 <모임넷>은 정부와 보건당국, 관계부처에 입법 공백 핑계 말고, 다음과 같은 법과 정책, 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7대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7대 요구안

1) 임신중지 건강보험 전면 적용
2) 유산유도제 도입 및 접근성 확대
3)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
: 1차-3차 의료기관 진료 연계 체계 구축, 국공립 병원에 안전한 임신중지 시술 및 관련 정보, 상담/사회복지 서비스 등 연계 시스템 마련, 지역별 임신중지 시행 산부인과 인프라 격차 해소, 보건의료/상담/교육 현장에 WHO 기준의 임신중지 가이드와 공식 지침 전달 등
4)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 시술/약물을 이용한 안전한 임신중지 방법, 임신중지 전/후 가이드, 임신중지 후 피임 안내, 시술/처방 의료기관 안내 등 누구나 쉽게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이트 및 정보 제공 체계 구축
5) 임신중지 권리 보장 교육 실행
: 예비/보건의료인, 상담 인력, 교사, 기업,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임신중지 권리 보장 교육 실행
6) 사회적 낙인 해소 및 포괄적 성교육 시행
7)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 법 체계 마련
: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 모자보건법, 의료법, 근로기준법 등 관계 법령 개정

임신중지는 이제 처벌이 아닌 권리의 영역이 되었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서 이어져 온 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함께 연결되어 있으며 그 길을 함께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임신중지의 다양한 상황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방치한 채, 처벌로서 그 책임을 전가해 온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나야 한다. 8월 17일 서울 보신각에서 함께 “비범죄화”와 “권리보장”을 외치자.

글: 류민희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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