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1년 …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낙태죄 폐지 1년 …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2022년 4월 8일

[읽을거리]페미니즘페미니즘, 임신중지권, 사회운동, 대중시위

3년 전인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관련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 주는 결정으로,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이 6개나 계류되어 있지만,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져 법안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결국 작년 4월 11일, 관련 법의 법적 실효가 상실되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지 1년이 지나도록 여성의 임신중지권리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방치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데 2020년 10월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만 임신중단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외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낙태죄를 유지하겠다는 골자의 입법안을 제시했다. 이 법안은 14주 이상의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결국 낙태죄를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여당의 권인숙 의원 조차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권의원 등이 ‘낙태죄 전면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정도 되지 못했다. 국회에서 과반수를 훌쩍 넘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낙태 찬반 양쪽에서 싫어하는 안이다 보니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아무도 총대를 메려고 하지 않으며”(중앙일보, 2020년 11월12일자 「박주민 ‘24주 절충안’도 지워졌다. 낙태죄 딜레마 빠진 민주당」 보도 인용) 이 쟁점에 기권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낙태죄 폐지에 진지했다고 볼 수 없으며, 여성의 임신중지 권한을 조건부로 승인하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하지만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 세계보건기구 WHO가 발표한 새로운 임신중지 가이드 라인은 가장 첫번째 항목으로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하면서, “비범죄화란 모든 형법과 관련 처벌 조항에서 임신중지를 삭제하고, 살인이나 과실치사를 임신중지에 적용하지 않으며, 임신중지를 한 사람이나 지원한 사람,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강요에 의한 임신중지는 심각한 폭행이라는 점도 확인한다. 이어서 다음 항목에서는 특정한 조건에 따른 허용 조항을 두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고, 여러 나라에서 적용되고 있는 조건부 허용은 모두 ‘여성의 요청에 따른 임신중지 허용’으로 수정되어야 하며, 관련 조건들을 삭제하고 전면 비범죄화로 수정되기 전까지 기존의 조항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신 기간에 따라 제한을 두는 법률이나 기타 규정에도 반대하며, 의무대기 기간을 두는 방식,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초음파 촬영을 요구하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부모나 파트너 등 제3자가 당사자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조치도 없어야 한다고 권장한다.

  • *셰어 이슈페이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사회의 기준 변화 : 완전한 비범죄화와 유산유도제의 접근성 확대로」(2022. 4. 4) 중 WHO 가이드라인 관련 부분 요약 인용

2019년 2월 발표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이뤄진 임신중지는 5만여 건에 달한다. 2005년 추정 건수 34만2천433건, 2010년 16만8천738건(15.8%) 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하루에 130여 건이 넘는 임신중지가 이뤄지고 있다. 관련 법률이 공백인 상태에서 많은 여성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임신중단에 비싼 비용을 감내하고 있다.

지난해 여성정책연구원이 5년 내 임신중단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신중지 비용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비용이 80~100만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16~2017년에 15.6%에 불과했지만 2019년 21.7%, 2020년 30.3%를 거쳐 2021년 40.0%까지 늘었다. 100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2019년부터 20%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접근성 제고 방안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1. 5)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법 공백으로) 임신중단 수술비용을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책정하면서 지역, 대상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청소년 등 젊은층과 저소득층에서 의료비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면서,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단 의료접근 제고를 위해 약물을 포함한 모든 의료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비용을 건강보험에 적용해 보편적 공공의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낙태죄’가 존속할 때까지 임신중지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는 모자보건법상의 매우 제한적인 허용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뿐이었고, 이는 전체 임신중지 중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형법 ‘낙태죄’의 법적 실효가 사라진 만큼 이 조항과 연동되었던 모자보건법상 제한적 적용 조건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 의료비 때문에 임신중지 자체는 물론 임신중지 전후의 생활에 곤란을 겪는다.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은 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에 손을 뻗게 되면서 사회경제적 위험에 노출된다. 또 비용 마련에 소요된 시간 때문에 임신중지가 늦춰져 의학적 문제를 겪기도 한다. 비범죄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돈 때문에 임신중지 권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여성이 없도록 모든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미프진’과 같은 경구투여 유산유도제(먹는 인공임신중절 약)의 즉각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유산유도제를 통한 임신중지는 특별한 부작용 우려 없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해외에서는 1988년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70여개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이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아직 이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유산유도제 신속승인을 약속했던 식약처는 아직도 허가를 미루고 있다. 결국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불법’이다 보니 터무니 없는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 밖에 없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더 나쁜 경우는 불법 유통되는 인공임신중절약에 노출되어 성분미상의 의약품을 복용한 뒤 부작용을 겪는다. 작년 5월에는 무허가 가짜 임신중절약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약으로 속여 판매해 1억 3천여만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한 불법 유통업자 일당 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김동식 선임연구위원은 “대체입법의 부재와 정부의 약물 도입에 대한 정책 마련이 늦어짐에 따라 불법 약물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매하는 행위는 지속되고 있다”며 “관련 법제도 개선 및 허용 절차 등 약물 도입에 필요한 조치를 적극 추진해 (약물적 임신중단을) 신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신중지는 단순히 태아 대 여성의 권리, 개인의 사적인 출산 결정에 관한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경제적 안정, 건강과 신체적 통합성, 현재 키우는 아이들을 돌보는 능력, 건강한 관계에 대한 전망, 미래 계획에 관한 것이다. 임신중지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문제다.”(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턴어웨이-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 동녘) 그러므로 임신중지 및 출산에 수반되는 재생산 권리 전체는 기본적 권리로 보호되어야 하며, 관련된 건강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뉴질랜드, 콜롬비아, 칠레, 베넹,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구시대적인 임신중지 처벌법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산부인과학회 또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접근성 제한이 건강과 안전을 침해한다고 보고 각국에 임신중지의 전면 비범죄화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투쟁해서 얻은 성과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이뤄낸 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임신중지로 처벌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위해 이어온 우리의 투쟁은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한 투쟁이다. 낙태 비범죄화를 넘어 모두에게 임신중지가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제공될 때까지, 우리의 권리가 온전히 실현될 때까지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4.10 공동행동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일을 하루 앞둔 4월10일(일) 오후 2시 보신각에 모여 온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촉구하자.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유산유도제 즉각 승인, 건강보험 보장,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구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

글: 민희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