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5년의 후퇴, 앞으로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지난 2월 8일 업로드한 글 「2000년 이후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선거 대응」에 이어, 2016-2017년 촛불 항쟁에 대한 운동진영의 논의와 문재인 정권 5년 간 사회운동 및 대선 시기 움직임들을 돌아보고, 이번 대선 이후 사회운동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촛불 이후 5년의 시간을 ‘후퇴’라고만 규정하기에는 우리(사회운동좌파)에게도 많은 전진이 있었다. 가령 노동조합 조직율을 상당히 높아졌고, 노동자들의 어떤 투쟁들은 유의미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오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

박근혜 정권 시기 사회운동은 세월호 참사, 철도노조 파업, 고 백남기 농민 학살 원인규명 투쟁과 2015년 민중총궐기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맞선 거리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정권 꼭대기의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게이트’가 폭로되기 시작하자 쌓여왔던 분노가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 촛불이라는 광범위한 대중 시위가 폭발하면서 사회운동은 하나의 ‘느슨한’ 전선을 형성했다.

촛불 항쟁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사회운동 그룹들은 대체로 촛불 항쟁이 한국 사회에 축적되어있던 여러 ‘역사적 체제’들이 축적되고 응집되어 대통령이 깊게 연루된 게이트가 폭로됨에 따라 함께 폭발한 것이라고 보았다. 가령 사회진보연대는 “재벌, 부익부빈익빈, 공안통치, 입막음 굴종, 평화위협”을 그 다섯 가지 모순으로 보았는데, 이런 진단은 운동 진영 내에서 대동소이했다. 당시 사회운동 좌파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단일 요구안에 재벌 문제나 양극화 문제를 통합함으로써, 촛불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넓히고 급진화하는 것을 과제로 인식했다.

촛불 직후 진보 학술계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폭정으로 쌓이던 분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또는 이화여대 시위) 이후 100만 군중이 모인 ‘총궐기’로 이어졌다거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 이면에 민중이 겪고 있던 심각한 삶의 조건 악화가 놓여 있었다는 식의 해설이 매우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그러한 분석들은] 왜 ‘지금’ 이토록 광범하게 촛불 항쟁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며, 사실상 “사회경제적 원인보다는 [사회경제적 원인은 여전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지만]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야기한 대중의 분노가 압도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정치 엘리트와 자본가의 헌정 유린 사태가 불러온 대중 시위가 매우 성공적으로 박근혜를 하야시키는 것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시기 사회운동은 하나의 정치노선을 합의하는 것에 이르지는 못했다. 촛불 항쟁에 참가한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기준에는 동의가 있지만, 그밖에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스펙트럼이 넓었다. 또, 대안 세력이나 대안 사회에 대한 합의 역시 상당히 약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하야 결정 후 치러진 대선에서도 ‘촛불’에 모였던 상당수 대중은 민주당-문재인이라는 선택지에 만족했다. 몇 달에 걸친 수백만 명 규모 광장 시위와 대통령 퇴진이라는 성취에 비하면 아쉬운 결말이었다.

물론 진보정당들(민중당, 정의당)도 후보를 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여성 청년’에 대한 위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주목 등으로 이목을 끌어 유의미한 득표(약 200만 표, 6.17%)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를 자신의 조직적인 성과로 전환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하여 선거 이후 당원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당내에서 여러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단일한 합의를 모으지 못하는 상태였고,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조직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것 대신 선거 제도에서의 실리적 성취 등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어 조직력이 매우 이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치른 2017년 대선에서 시민사회운동과 지식인 집단은 촛불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가령 ‘퇴진 촛불’ 백서는 퇴진 촛불이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사회 대개혁으로 나아가는 시민혁명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과 이보다는 훨씬 시니컬하게 평가하는 입장 등으로 나뉜다. 전자의 상당수는 문재인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촛불 정부’, ‘촛불 대통령’이라고 주저없이 칭하면서 시민운동의 영혼을 그곳에 의탁했다. 후자는 정치적 결과에 대한 실망감을 애써 감추며 숨 가쁘게 다음 5년을 준비했다. 동시에 이 두 입장에 모두 속하지 않지만 촛불 이후 탄생한 정권에 시민사회운동의 다양한 요구를 밀어 넣어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매우 광범했다. 이것은 물론 정치노선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그만큼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사회운동은 이 모든 것이 배반당했을 때의 태세를 예비하고 서로를 조직하는 일에 소홀했다. 퇴진촛불 일각에서는 “시민의 힘으로 합헌적으로 권력을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주권자로서 시민의 위상을 재확립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이건 해방 이후 오래 미뤄져왔던 이른바 ‘민주주의 혁명’의 지연된 완결점이라 할 수 있다”고 돌아보면서도, “그런데 이것이 혁명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려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민주공화국 가치에 동의하는 프로세스가 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親(친)민주당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거나 민주당을 ‘우리’의 일부로 쉽게 간주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헌법이 안 지켜지던 나라를 헌법이 지켜지는 나라로 바꿨다”는 이유로 촛불을 혁명으로 불러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호응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정부를 ‘촛불정부’로 자처하면서 촛불 시기 제기된 일부 요구를 ‘적폐청산’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과연 ‘촛불혁명’이었고 ‘촛불대통령’이었나? 촛불 초기 민주당은 거리에 나선 시민 요구와 무관하게 ‘박근혜 퇴진’에 반대하고, 촛불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해 시민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시위 규모가 100만 명을 넘어 매주 대규모 촛불로 이어지자, 이내 입장을 바꿔 버렸다.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의 바람과 달리 ‘그들만의 촛불정부’는 자신의 공약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노동 공약은 대부분 폐기 처분됐고, 이른바 개혁 이슈들은 ‘내로남불’ 논리 앞에 멈춰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극단주의·가짜뉴스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지만, 여기에는 정작 자기 진단이 빠져있다. 왜냐하면 민주당 역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의 첨병이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의 민주주의는 기술관료주의와 포퓰리즘 두 경향을 보인다.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기술관료주의는 전문지식을 갖춘 소수(금융기관·대법원·기재부 등)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이들 집단이 권력을 행사한다. 선출되지 않은 소수가 권력을 장악하기 때문에 “선거 같은 민주주의 절차는 장난처럼 된”다. 포퓰리즘은 이런 전문가집단에 배신당한 대중의 극단적인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문재인 지지자들을 제외한다면 문재인 정권 5년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 간 소득 격차는 다소 줄었지만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발생 이후 우리의 삶은 비상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몇 차례 긴급지원금을 배포하긴 했지만, 건물주는 전혀 손해보지 않도록 하면서 영세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청년‧빈민 등 취약계층은 더욱 바닥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나 코인 열풍에 일부 동참하거나 절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노동 공약들 역시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최근 서구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경제위기로 붕괴한 줄로만 알았던 신자유주의가 부활하는 것에 맞서 대중적인 반대 운동이 일었다. 이는 기존의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전선을 형성했다. 이에 반해 한국 민중운동은 고유의 정치 전략을 잃어버렸다. 반MB‧반박근혜 전선 이후 민중운동의 ‘합의된’ 프로젝트는 존재하지 않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반MB‧박근혜 전선이 사라진 문재인 정부 시기, 시민사회운동 일각은 문재인 정부의 수호 내지 동행을 통한 ‘개혁 과실 따먹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실패의 상징이 선거법 개혁 과정과 조국 사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오늘 우리는 그 후과를 지켜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촛불이 있기 전 마중물을 놓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했지만, 촛불 항쟁 과정에서는 집회를 실무적으로 관장하는 것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시켰다. 따라서 투쟁 방향과 전술에 있어서는 주도성을 발휘할 수 없었다. 콘서트식의 비폭력 대중 시위를 관장해 실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인적‧물적 역량을 올인(all-in)했고, 당시 조건에서 이것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2016~2017년 촛불 항쟁은 서로 융해될 수 없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박근혜 퇴진’이라는 과제에 일시적으로 결합할 뿐이었다.

따라서 사회운동 혁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난처함은 촛불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 게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봉기적인 정세를 맞닥뜨렸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의 기대를 안고 가능한 개입하고자 노력할 뿐, 전체 흐름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공통의 정치적 입장을 갖지도, 농밀한 대안을 내놓지도 못한 상태에서는 볼륨을 높일 수 없었다. 이는 어느 한편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사회운동의 역량과 비전이 부재했던 것, 2008년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주류가 ‘반MB전선’에 함몰되어 있었던 사실에 기인한다.

사회운동은 ‘대중 시위’로서의 촛불의 성과를 수확할 준비를 갖추었나? 촛불의 열매를 수확한 것은 누구인가? 사회운동은 이념적으로·조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가령 민주노총은 촛불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를 양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이루었는데, 이는 축적된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이다. 물론 노동운동은 능력주의 담론을 둘러싼 논쟁과 이로 인한 내부 갈등 등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한편 정의당과 녹색당, 그리고 사회운동의 왼쪽 영역에서 그러한 성취를 눈에 띄게 이룬 단위는 드물어 보인다. 촛불의 열매를 수확한 것은 이념·정책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으나 정치적 영향력 차원에서 압도성을 갖고 있던 민주당과 그 친위 부대들이었다. 줄지어 청와대로 들어간 정치 낭인들 개개인이 그 열매를 지극히 사적으로 취했다.

** 2016년 이후 민주노총의 조합원수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정권 초기 노동조합들은 촛불에서 확인된 대중적인 자신감이 일터에서의 노조 조직화로 이어지는 물결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바 있다. 과거에 비해 특히 비정규직·여성·청년 사업장에서 보다 두드러진다.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화 사업이 이룬 결과이지만, 촛불에서 형성된 대중의 자신감도 중요한 요소다.

동시에 우리는 도로공사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의 운동, 2019년 이후 점증하기 시작한 기후위기에 맞선 다양한 운동들,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노동자들의 투쟁, 택배기사들의 파업,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 등 아래로부터의 투쟁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해야 한다. 대중 시위 전후 사회운동의 태세는 그것의 양적‧질적 성취를 규정짓는다.

2022년 대선까지의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이전보다 위축된 형태로, 그러나 응당 해야 하는 과업을 반복하였다. 95개 시민단체들은 ‘불평등 끝장 2022 대선 유권자 네트워크’를 통해 각 당의 대선 후보 정책을 검증하고 있고, 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자가 제안하는 대선의제’를 제안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몇 차례 ‘대선 프리즘’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지금의 정세를 관찰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이런 작업들은 다른 여러 작은 단체들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2000년 이후 선거 시기마다 이뤄지던 정책 협약이나 검증 등 시도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용했는지 역시 평가하고 있다.

민중운동의 실패

작년 9월부터 노동자운동 일각에서는 민중경선 추진 조합원 서명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민주노총 현장에서의 민중경선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현장에서 이에 대한 호응은 높지 못한 상황에서 각 진보정당은 11월 말에 접어들어 가까스로 ‘민중경선 논의’를 위한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는 경선 과정에 접어들기도 전에 선거 룰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책임의 경중은 논외로 하더라도) 실패로 끝났다.

민중경선 추진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기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적이었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민중경선 운동본부가 그러한 동력을 중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10~11월 내내 지역과 현장을 순회하며 주체들을 만나고 조직하려 했지만, 노동운동 내 일부 활동가들의 역량 투여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다분히 역부족이었다. 현장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것에는 ①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근 10년 민주노총 내에서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 교육이 전무했기 때문에 어느 샌가 ‘정치세력화’는 매우 생소한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는 사실, ② 진보정당들간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정파간 갈등이 현장에 전이된 상황에서 일부 활동가들만의 노력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이 존재한다.

노동자운동은 민중경선 추진의 뼈아픈 실패가 단순히 어느 한쪽의 욕심에 있다고 일면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미비할 수밖에 없었는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이른바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라는 쟁점에 대한 논의를 가동하고, 조합원 교육 커리큘럼을 재구성하여 지금의 상황에 맞는 조직 이데올로기로 거듭나게끔 갱신해야 한다. 대중조직에서 이와 같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정파 간 갈등 구조 역시 극복할 수 있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공히 포퓰리즘*** 정치 요소와 친자본-반노동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시민사회운동 혹은 비판적 지식인의 바운더리에 있었던 개인이나 그룹이 자아분열의 혼돈 속에서 내세우는 어떠한 기준도 민중운동의 독자성을 위협할 수 없다. 오는 대선에서 민중운동‧사회운동은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직간접적으로 후보 전술을 구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별수 없이 선거일이 되면 우리는 세 좌파 후보들 중 하나를 택하겠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 효과는 현실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사회운동에게 있어 어느 후보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 2000년 이후 한국 정치는 ‘포퓰리즘’이 담론과 실천의 두 측면에서 전면화되었고, 시민사회운동은 그것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개입하거나, 전복시킬 변수이기보다는 그 영향을 수동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지난 20년,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대중영합주의’나 ‘대중선동주의’와 같은 부정적 의미에서, 보수언론이 사회운동을 공격할 때, 촛불과 같은 정치적 현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 주로 사용됐다. 벤자민 아르디티(2007)는 포퓰리즘이 때때로 민주주의의 타자이거나 적이기보다 민주주의의 조건(혹은 증상)이기도 하다고 본다. 따라서 진태원(2013)은 모든 포퓰리즘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얼마간 대중의 정치에 대한 참여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무비판적인 옹호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진보정당운동 자신의 변화는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 진보정당들은 사회운동의 기반이 있어야 진보정당 자신의 성장 역시 가능하다는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따라서 ‘당 밖의 사회운동’을 고의든 아니든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을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각 의제와 영역마다 분투해온 단체들은 사회운동의 독자성을 스스로 만들어왔으며, 제도권 정당은 이를 동지적인 자세에서 대면하고 존중해야 함으로써 연대의 밑거름을 만들어야 한다.

통합진보당 이후 진보정당-사회운동의 간극이 커지고 인식차가 넓어지면서, 당 바깥의 활동가들 사이에는 진보정당들이 당 밖의 사회운동을 좋게 봐야 ‘정책 하위 파트너’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팽배하다. 선거 시기마다 반복되는 이상한 분업화가 선거 시기의 공기를 지배한다는 비판도 많다. 이는 진보정당을 포함한 사회운동 전반이 어떻게 공동의 경험 만들면서 기득권 정치에 파열을 낼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 진보정당, 특히 정의당의 상당수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혹은 지지자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운동정당-대중정당으로 설정된 대립항에 ‘아마츄어리즘-프로패셔널리즘’의 등호를 붙이고, ‘운동권-대중’의 가짜 대립까지 갖다 붙인다. 하지만 이는 ‘사회운동’을 ‘정치’와 대립시키고, 정치를 대중으로부터 멀게 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둘째, 해묵은 갈등에 사로잡히거나 그와 같은 상태에서 상층부 활동가/관료들만의 논의에 갇히지 말고, 당-당의 토론, 운동-운동의 소통을 기획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기반을 내실있게 다지면서, 조직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 2021년 민주노총의 주관 하에서 이어지던 진보5당 협의를 이후로도 지속시켜나감으로써 공통의 토론과 논쟁을 축적하고, 이를 다시 각 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공유하는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이것이 일상적인 사이클이 될 때에만 누적된 갈등도 조금씩 풀릴 수 있으며, 동시에 각 정당의 질적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 나아가 선거 시기가 닥쳐 주먹구구식으로 상층부 협상만 하는 선거 연합 논의가 아니라, 어떤 대안을 만들 것이며 왜 연대‧연합을 추진해야 하는지 대중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과정을 동반할 수 있다.

셋째,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국민의힘 두 기득권 정치세력과는 훨씬 강한 분별력을 갖추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재명보다 조금 나은 대안, 민주당의 왼쪽과 구별되지 않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대안 사회의 정치적 대안을 드러낼 수 없다. 당장의 지지율이나 투표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선거일 이후부터 펼쳐질 사회운동의 미래, 인민의 현실, 현실 속의 무수한 보이지 않는 계급투쟁들에 주목해야 한다. 대안 세력의 선거 전략과 공약은 단순히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삶에서 대안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진보정당 일각에서는 대선 이후 크든 작든 정계 개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통해 진보정당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층 정치에서의 흐름이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며, 상당 부분 망상으로 가득차 있기도 하다. 무너진 운동을 근거 없는 몽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중장기적 전망을 모색하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모든 사회운동은 202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나 ‘민주 vs. 반민주 전선’에의 복무 등을 운동의 정치적‧조직적 목표로 삼지 않아야 한다. 대신 민주당-국민의힘 어느 세력도 유의미한 승리라고 판단할 수 없는 대선으로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장석준은 “둘 중 누가 당선되든”, 승자는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제6공화국의 기정 정치”라며, “양당 정치에 대한 모든 도전은 정당하다”고 긍정한다.

동시에 지금껏 길내는모임에서 수차례 논의해왔듯, 체제내화 경향에 대하여 강한 경계심을 견지해야 한다. 대중의 시선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비추어지는 순간, 사회운동의 운명은 민주당의 정치적 실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회원이 우수수 떨어지는 문제를 겪는 것, 사회운동이 종종 민주당의 정책 방향이나 민주당 정권의 행위에 대해 비판할 때 인터넷상에서 쏟아지는 ‘배신자’라는 딱지붙이기는 매우 부당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한 심리가 형성되는 것에 사회운동이 어떤 빌미를 주진 않았는지 뼈아프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정당이나 후보와의 정책협약 등 사회운동 아젠다를 표면화하는 전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의 정책협약이 정당에게 일종의 ‘외피’나 알리바이로만 작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정책협약 등의 전술은 어디까지나 ‘조직화’에 대한 기획‧실천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조직화’를 우회한 상층부 간 협약은 아무런 강제력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운동) 조직화를 밑거름 삼고, 이를 협약 이후로도 유지하고 있어야 상시적인 압박과 통제, 감시도 가능하다.

사회운동은 지향과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대중을 확보‧조직하고, 잃어버린 대중과의 마주침을 더 많이 기획해야 한다. 기성 정당들이 사회운동단체를 ‘소스’처럼 활용하는 문제에 거리를 두려면 스스로 세력화할 필요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속적인 아스팔트 투쟁과 자기 대중의 조직화, 점거 농성 등 이슈파이팅이 정책협약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조직화로 이어지는 전장연의 운동 메커니즘은 몇 안 되는 ‘세력화’의 모범 사례다.

2016년 이후 소위 ‘영영 페미니즘’이 부흥하면서 여성운동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미투 운동을 포함한 반성폭력 운동, 스토킹 범죄와 불법 촬영에 대한 규탄, ‘n번방’ 등 디지털 성폭력 반대운동 등 다양한 운동들이 쏟아져나와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 주체를 형성했다. TERF 논란 등 성소수자 혐오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신자유주의 논리를 적극 수용한(혹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흐름도 등장했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전히 최근 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있지만, 급진화를 위한 논의와 실천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앞으로 십년

지난 글과 이번 글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시민사회운동 전반이 ‘반보수 전선’으로 결집하거나 혹은 친민주당 경향에 정치적 주도권을 내어주면서 사회운동의 한계 역시 노정했다는 점, 진보정당 운동의 독자적 이념과 사회운동과의 연결 부재가 오늘날 진보정당의 위기와 함께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위기는 이번 대선에서 좌파 후보들(민주당마저 ‘좌파’로 묶는 궤변은 논외로 한다)이 도합 5퍼센트를 넘건, 그렇지 못하건, 전면적인 자기반성과 정정의 과정이 없다면 해소될리 만무하다. 우리에겐 공통의 비전이 없었으며, 공통의 분석도 미비했고, 토론과 논쟁도 불충분했다.

앞으로 10년 사회운동 세력은 자본주의 체체를 변혁하기 위한 이념적‧정세적 실천을 전면화해야 한다. 역사적 자본주의는 식민주의나 국가관리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방식으로 잠정적 해결 국면을 통해 자신의 위기를 잠정적으로 넘겨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번 위기는 지구 생태계 자체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전과는 다른 “진정한 획기적 위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회운동은 자본주의 착취에 맞선 생태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 자본주의 체제의 생태적 모순이 경제·정치·사회 모순들과 엮여 있고, 각각 따로 떼어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권을 옹호하고 확장하는 운동과 빈곤에 맞선 도시 빈민들의 운동,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공공성 확대를 위해 싸우는 운동,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에 맞서 싸우는 운동, 권위주의와 인종주의적 억압에 맞선 운동은 함께 연대해야 한다. 사회운동이 반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의 전망을 향해 중장기적 목표를 함께 세우고,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또 종종 결집해 해당 정세에 맞는 공동의 과제를 설정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사회운동은 정치형식을 재발굴‧발명하고 조직함으로써 ‘대중’과 ‘사회’가 스스로 정치적 능력을 획득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만든 ‘탈정치화’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 사회운동이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사회운동 강화라는 밑거름이 있어야 정치운동 역시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사회운동이 진보정당운동에 우선한다는 의미도 아니며, 운동들 간의 대당이 성립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민중운동이 공히 독자성을 견지하면서 정치적 성취를 이루려면 사회운동이 근간에 있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기조에서 사회운동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야 하는 바는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를 예비하는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며, 그것은 가급적 ‘공동의 약속’일수록 좋다. 공동의 약속과 질적‧양적 목표를 상정해서, 네트워킹을 끈끈하게 다지고,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두더지의 여정

얼마 전 대통령 선거에 관한 어느 토론회에서 한 패널은 “당장은 빛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라도 땅을 파는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언급한) ‘두더지’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사회운동의 태세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하다. 이어서 이 패널은 “그 두더지가 땅 밑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중단 없는 계속되는 두더지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주류정치는 퇴행적이지만, 희망을 만드는 흐름들에 주목해야 한다. 조금이나마 진보적인 아젠다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평등과 연대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시도들이 논의되어야 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시도들조차 장기적으로는 두더지의 노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두더지’이어야 할까? 유의미한 정치세력화는 어떻게 가능하며, 어떠한 모습일까. 논의 활성화를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공동의 행보는 공동의 인식 속에서 가능하다. 차근차근 큰 틀의 정세 전망을 함께 도출하고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정세전망’을 작성한지 오래된 사회운동이, 주류 정치-지배계급에 대응하는 자신의 전망을 구축하고, 함께 확인해야 따로-또-같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두더지’ 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질적‧양적 성장을 이루면, 그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변혁 운동에 대한 지향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의 모순을 지양해나가는 싸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둘째, 새로운 활동 주체를 양성하고 조직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당장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단체부터 인력난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의 학생운동이 소멸해가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형태의 ‘준비된 활동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활동가 양성을 위한 제도적‧실험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예컨대 2021년 민주노총과 양대 산별노조가 실시한 신규 청년 활동가 교육 시범과정 ‘민주노총을 알려드림’을 비롯한 다양한 청년 활동가 프로그램들, 미국 Justice Democrats의 Movement School 등은 방법적 차원에서 이런 노력의 좋은 예시이다.

셋째, 이러한 질적 성장과 더불어 ‘더 큰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앞선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체제변혁을 지향하는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들과 개인들이 함께 대중 조직화를 도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폭넓게 조직한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변화의 크기에 비례하는 세력의 조직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득권 세력에 수렴되지 않고, 독자성을 견지하는 사회운동이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함께 5만, 10만을 조직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대중운동의 한 과정이다. 그럴 때야 일상적인 시기에도 사회운동이 정치세력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지 않을 수 있으며, 선거 시기에도 지배정치에 맞서 펼칠 수 있는 전술‧전략도 다양해질 수 있다.

더 많은 동료를 조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노동조합이나 정당도 마찬가지이고, 대중조직이나 정치조직에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다. 제도 바깥의 사회운동도 얼마든 ‘조직화’라는 문제를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세력화는 누구보다 우리(사회운동 자신)의 몫이다. 이러한 중간 과정, ‘비전이 있는’ 두더지의 여정이 있어야 반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의 길 역시 보다 강력한 언어가 되어 설득력 있게 대중에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

글 : 홍명교 (활동가)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