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생에너지는 우리 모두의 요구이다 |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330충남노동자행진 참가후기

공공재생에너지는 우리 모두의 요구이다 |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330충남노동자행진 참가후기

태안에서 함께한 우리의 행진은 먼 곳에 흩어진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고, 묶어주었다.

2024년 4월 13일

[읽을거리]기후정의기후위기, 공공성, 기후정의운동, 대중시위

지난 3월 30일. 전국에서 모인 천 여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태안에 모여 '석탄 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발전 노동자들의 호소에 함께하며 행진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115개 단체 및 개인 268명)가 주관한 행진 참가자들은 2025년 폐쇄가 시작되는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들이 고용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공공 재생 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했다. 발전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 요구를 왜 우리 모두가 지지해야 하는 지 잘 말해 주는 행진 참여 후기를 공유한다.

표지 사진 : 김영민

“내가 이 행진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2023년 9월 기후정의행진이 열린 날,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진에 참여하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다같이 기후정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만으로 과연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언론을 통해 기사가 보도된다고 해도 정책과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눈을 깜빡이기라도 할까? 과연 3만 명 남짓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충분히 위협적일까? 그런데 지난 3월 30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 참여하면서,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행진이 먼 곳에 흩어진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고,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공성과 민주성

2024년 3월 30일 태안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행진은, 폐쇄가 예정된 석탄화력발전소 지역 주민과 발전소 노동자들의 삶과 일자리를 보호하고, 재생 에너지산업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석탄에 기반한 화력발전에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에 필수적이다. 기후위기는 모든 지구생활자의 문제이므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 노동자나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정의로운 전환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냥 빨리 폐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발전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생존권이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주 구체적이고 단단하게 “무조건 정의롭게 전환해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플랫폼씨 돋움활동가들이 행진참가를 위해 직접 만든 팻말
플랫폼씨 돋움활동가들이 행진참가를 위해 직접 만든 팻말



그런데 태안의 가게들을 눈으로 보고, 태안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발전 노동자들을 만나고, 거리를 걷는 경험이 마음을 변화시킨 것 같다. 행진 당일 태안에 도착한 이후에 들깨 수제비를 먹고, 본집회에 참여했다. 인파의 가장자리에서 깃발을 들고 있었던 나는 때때로 맞은편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대책없이 발전소가 폐쇄되었을 때, 이곳의 옷가게, 식당, 카페 등도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집회에서 발전노동자들의 일터를 촬영한 짧은 영상도 보게 되었다. 발전소 내부를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영상 속 장소는 아주 어둡고, 위험해 보였다. 발전 노동자들의 삶을 그 영상을 통해 조금이나마 보게 되었고, 거리의 가게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발전소 폐쇄가 나에게 훨씬 구체적인 상과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일단 누군가의 삶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을 간과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충남노동자행진에 참여한 시간은 서울에 살던 나에게 발전소와 가까운 사람들의 삶과 접촉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기후위기뿐 아니라 부정의한 기후 정책으로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다이인 퍼포먼스' 중인 행진 참가자들
기후위기뿐 아니라 부정의한 기후 정책으로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다이인 퍼포먼스' 중인 행진 참가자들


행진에서는 다이인 퍼포먼스가 특히 인상적었다. 트럭에 타서 다이인을 멀리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이렌이 울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인 이미지이기도 했고, 기후재난이 덮쳤을 때 세상의 모습일까 싶어서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했다. 평소에는 감각하기 어려웠던 위험을 체감하게 한 것이다. 행진을 마무리하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정의로운 전환, 공공 중심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외치고 있다는 생각에 벅찬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행진을 전후로 본 거리의 가게들, 다이인이라는 퍼포먼스의 체험, 발전 노동자들의 일터와 발전 노동자들의 작업복이 나의 삶에 심어진 것 같았다.

1999년생인 나는 자라면서 또래의 사람들이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고 다치는 것을 목격했다. 국회나 정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의 많은 부분이 생명과 삶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더는 누구도 부당하게 죽거나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도 사회운동을 통해 이루어질 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충남 노동자행진은 태안에서의 삶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자리였고, 이런 경험들을 축적해 나간다면 분명 우리가 함께 기후위기에 정의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글: 차송현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플랫폼씨 돋움활동가)

행진 말미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일자리대책을 요구하는 참가자들
행진 말미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일자리대책을 요구하는 참가자들

지난 3월 30일 토요일 춘천을 출발해 충남 태안에 다녀왔다. 나의 외가, 친가는 강원도 영월을 기반으로 한 대가족이다. 외할아버지부터 여덟 분의 친인척이 영원 화력발전소 노동자였다. 화력발전소는 우리 가족을 포함해 영원 산골 지역민들의 오랜 밥줄이었다. 그런데 내년이면 기후위기 대응으로 태안화력발전소가 문을 닫는다. 물론 탄소배출 주범인 화력발전소의 문을 닫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곳에서 삶을 꾸리던 지역민들의 실업과 지역경제의 붕괴에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 화력발전소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함께 외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공공재생에너지발전소를 이 지역에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화력발전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부문의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교육해 이들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지역 경제도 살리면서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석탄 에너지 시스템을 공공재생에너지로 바꾸어야 한다. 화력발전은 탄소배출의 주범이므로 폐쇄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다음 5번째로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은 유출위험이 있는 방사능 폐기물을 계속 만들어 내고, 한 번의 실수가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에 대안이 될 수 없다.

반면 탄소배출이 거의 없고, 무한히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전지구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고, 일부 국가에서는 2021년 이전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지기도 했다. 재생에너지는 충분히 대체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사회시스템 전환이라는 숙제를 회피하고, 오히려 민간에게 넘기고 있다. 에너지 시스템이 민영화되면 에너지를 통제하는 기업과 자본가들은 기존의 에너지원을 계속 사용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공공재생에너지의 실현은 어려워진다. 국민들은 계속되는 기후위기 속에 비싼 요금까지 감당해야 할것이다.

에너지는 상품이 아니며 물, 공기, 햇빛처럼 공공재로 운영,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민영화되어 똥물로 변해버린 영국 템즈강같은 열악한 조건을 수시로 겪게 될 수 있다. 국가는 주권을 가진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집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퍼포먼스
집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퍼포먼스

지금 우리는 기후재난으로부터 노동자와 농민, 일반 시민의 일과 삶, 모두의 존엄과 안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만들어 가야하는 중요한 시기에 있다. 방향을 잡고 함께 만들어 가면 못할 것도 없다. 태안에서부터 공공재생에너지의 기반을 만들면 된다. 이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과제

그런데 정작 집행권한을 가진 정부와 법을 만드는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녹색정의당과 노동당 등 진보정당만이 기후정의를 강조하고, 이번 330노동자행진에 함께 해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했다. 비록 원내정당이 되진 못했지만 거대양당과 독립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진보정당에게 표를 준 64만명의 지지는 앞으로 우리가 거리에서, 일터에서, 지역에서 만들어야 할 공공에너지중심의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정의의 새로운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전세계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으로 인한 소수의 과잉된 욕망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부의 세습으로 인해 성장을 해도 이 세상은 언제나 늘 결핍상태이죠. 결국 이 세상의 결핍은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중략) 우리가 이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위기가 이 세상을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녹색정의당 비례후보 출마 기자회견 중)

우리는 어디서 서로 도움과 감사를 나눴는지 모를 뿐 서로에게 깊이 상호의존해왔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며 서로의 존엄과 안전, 생명을 지키는 정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들은 이 사단 앞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들의 상황, 선택, 미래를 그들의 문제로 홀로 남겨둘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의 노력은 나를 위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글 : 베로 (예술가노동자라고 처음말해보는 예술가노동자)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결의문>

현실화되고 심화되는 기후위기, 우리에게 전가하지 말라

  • 기후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뭄, 폭염, 홍수, 산불, 한파 등,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의 땅에서도 기후재난의 일상화되고 있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와 땅과 하늘에 의존하는 농민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겪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계속 외면하거나, 단지 돈벌이 기회로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지구와 기후는 돈을 벌기 위해서 외면하거나 혹은 돈벌이 수단이 될까 눈독을 들이는 대상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생존과 삶의 기반이다. 노동자, 농민, 시민, 평범한 사람들이 마주한, 일터과 삶터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
  • 기후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은 과감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전세계 그리고 한국 경제의 신속한 탈탄소화 전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발전해온 경제가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화석연료 경제에 의존해왔던 노동자와 지역 사회 역시, 기후재난 만큼이나 탄소중립 정책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분별없는 기후정책은 책임없는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피해와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명확히 밝힌다.

충남, 태안은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투쟁의 최일선이다.

  • 충남은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의 최일선이다. 여기 충남에서 발전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투쟁이 한국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인 모습을 결정짓는 첫 싸움이다. 정부는 기후위기가 마치 발전노동자들의 잘못인듯, 석탄발전소 폐쇄하면서도 일자리는 알아서 찾으라며 뒷짐지고 있다. 지역 쇠퇴를 겪고 있는 지역 주민들, 애써 농업을 지키는 농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진짜 유발자인 부유층과 대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싸우며 또 연대하고 있는, 여기 우리가 기후정의며 정의로운 전환의 미래다.
  • 우리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요구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 재생에너지에 대규모로 투자하여 신속하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여기에서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통합된 발전공기업이 발전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윤 추구를 가장 우선시하는 민간 기업과 자본에게 맡겨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너무 느리며, 무엇보다도 정의롭지 못하다. 고용 불안을 겪는 발전노동자의 고용 보장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 제공도 불가능하다. 또 다른 환경 파괴와 주민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다. ‘공공재생에너지’가 대안이다. 신속한 에너지전환과 산업의 민주적 계획과 통제를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우리 기후정의의 목소리를 들어라

  • 여기 모인 우리는 일터의 폐쇄를 앞둔 채 기후위기 최전선에 서있는 발전노동자이며, 비슷한 처지로 어깨를 걸고 있는 다른 산업의 노동자이고, 지역사회 붕괴에 직면한 지역 주민이며, 기후위기에 맞서고 기후정의를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다. 또한 우리는 국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구적 기후정의운동의 일부이며, 2019년부터 시작된 대중적 기후운동, 2022년과 2023년의 기후정의행진과 기후정의파업을 잇는 목소리다.
  • 석탄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있는 여기 충남 태안에서, 그리고 총선을 앞둔 지금, 국가, 지자체, 발전공기업과 자동차 및 철강산업을 비롯한 대기업 자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우리의 요구>
1. 기후재난으로부터 노동자와 농민, 시민의 일과 삶을 지키고, 모두의 존엄과 안전, 생명을 보장하라.
2.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에너지 불평등의 대안으로, 에너지 민영화가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시민이 통제하는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라.
3. 탈석탄 지역 발전 노동자 모두의 노동조건 후퇴없는 총고용을 보장하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4.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라.
5. 탈석탄 지역사회의 쇠퇴를 저지하고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라.
6.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전환의 ‘주체’인 노동자와 농민, 시민의 실질적인 권한과 에너지 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라.
7. 기후위기, 노동위기, 경제위기로 심화되는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라!